이 책에서 필립 로스가 소설가가 된 동기, 습작 시절, 창작 방법, 영향받은 작품 혹은 그가 전하고픈 삶의 교훈 등 성공한 소설가의 자서전에서 흔히 기대할법한 구체적 정보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애초에 로스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처음부터 자서전 같은 걸 쓰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에 주커먼을 등장시키는 것도 모자라 기어이 그가 로스에게 말을 건네는 걸 보면 이 책 또한 한 편의 소설, 아마 그가 최초이자 유일하게 쓴 비-리얼리즘 소설이라고 할까. 자기자신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찰리 카우프먼처럼(<어댑테이션>이 이 책보다 한참 뒤에 나오긴 했지만) 이 책도 실존하는 미국 출신의 유대인 작가와 이름과 생년월일이 같은 평행 우주 속 또다른 필립 로스가 주인공인 필립 로스 소설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가 이런 형식을 택한건 사실과 그로부터 가공된 소설 사이의 긴장과 변증법에 대해 로스 특유의 화법, 즉 나레이터에 의한 길고 상세한 설명을 하기 위함인 듯하다. 단적으로 말해 그나마 실제 자서전 형식에 가까운 '주커먼에게'라는 장에 담긴 자술적 회고가 실제로는 얼마나 가공되었으며, 또 가공이 왜 불가피했는지, 다시 말해 사실을 서술한다는 것의 불능성에 대해 마지막 장인 로스에게에서 주커먼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진짜 의도가 여기에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주커먼이 로스를 비판하는 요지는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여러 면에서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한마디로 자서전은 가장 조작적인 문학 양식이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기 위한 자기 검열 때문에 정작 더 자세한 서술이 있어야 할 부분에서 생략과 배제가 수시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했으면서도 로스가 왜 조시를 택했는지 그 결정적인 동기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고, 도대체 어떻게 자신이 등장했는지 그 탄생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도 자칭 자서전이라는 이 책에서는 알 수가 없다고 주커먼은 로스를 힐난한다.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마음으로 인한 타협도 문제다.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상상력의 힘을 빌어 진정성과 내심을 내비칠 수 있었던 대목에서도 자서전인 이 책에서는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다음 인용을 보면 완전히 말을 거꾸로 바꿔서 하고 있다. 로스는 애초부터 소설의 인간이지 자서전 같은 걸 쓸 사람이 아니었다.

 

자네가 자서전의 위장들을 포기하고 사실들의 자리를 상상력에 넘겨준다면 많은 미스터리들이 풀리겠지. 그리고 신의라고 불리는 왜곡은 자네의 전문이 아니며 -완전한 공개에 도전하기에 자네는 너무 사실적이야. 자넨 위장을 통해서만 '솔직함'이라는 조작적 요건들로부터 자유를 찾을 수 있지. 268

 

주커먼의 편지를 통해 유추해본다면 로스는 이런 말을 하고싶었던 것 같다. 사실은 소설로 가공되었을 때 오히려 더 진정성을 갖고 더 진실에 가까워진다고. 자신에게 실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냥 놔두지 못하고 전부 논리와 이유를 붙여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작가는 탄생한다. 그 집요함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지만 바로 그것에 매혹되어있음을 로스가(혹은 주커먼이) 결국 인정하는 것이 주커먼의 편지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에게'를 읽어가면서 그 앞에 실린 '주커먼에게'가 어쩌면 전부 창작은 아닐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이렇듯 객관적이고 냉철한 자기 비판을 주커먼의 입을 빌어 로스 스스로 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 정도의 내밀한 고백을 한 소설가가 이전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 장의 거의 맨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자서전 쓰기의 실패를 고백함과 동시에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의 전능함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고 있다(등장인물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말하는 작가들이 순진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지적은 통렬하다). 따라서 이 책은 예순을 바라보던 시점에 자신의 개인사를 회고하고 정리하겠다는 사적인 관심보다는 오히려 작가라는 존재의 의의를 다시금 자문해봄으로써 이제부터 펼쳐질 노년기의 작품 활동을 앞두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각오를 다지기 위해 쓰인듯하다. 전반기 못지않게 밀도가 높은 그의 경력 후반기 작품들이 실제 결과물로서 그 각오를 증명하고 있음은 모두가 알고있다.

 

사족. 소설가의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 그리고 작품간의 관계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작품들로 인해 세간에 이런저런 오해를 받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누리는 특권인 것처럼 말하는 로스를 보노라면 작가 연구에 있어서 사생활에 대한 관심과 투영이 과연 얼마나 타당할까싶다. 그리고 우리와 일본같이 사소설 논쟁이 있는 나라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줄곧 자신의 민족 정체성에 대해서 아니면 당대에 벌어지던 정치 사회적 이슈에 관해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을 써온 필립 로스는 사소설 작가인가 아닌가.

거의 완벽하게 교착화된 갈등인지라 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들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해결책이 도출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끝에 해결이나 결론이라고 지칭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적합한 그러한 어떤괴상한 무엇인가에 이르는 일이 있다. 어떻게든 대안을 끌어내려는 무리한 노력끝에 나온 이런 논리적 비약 혹은 초월에는 그 정합성 여부에 대한 판단보다도 그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의 절박한 속내가 먼저 보인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자.

 

문학은 틀릴 수 있는 상태에 놓인 올바름쪽이 국외적인, 안전한 진리의 상태에 놓인 그런 올바름보다 깊다고 말한다. ...문학은 틀릴 수 있음 속에서 무한을 본다. 197 198

 

이렇게 보아서는 딱히 반박할 필요가 보이지 않는다. 문학은 승자가 아닌 패자의 양식이라는 식의 주장은 익숙하기도 하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용을 위해 앞뒤를 딱 떼어놓은 문장만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진정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는 그 다음을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나는 에즈미를 향한 외침에서 논 모럴, 바로 저 '그런 건 몰라'라는 것이 전후 이후에 살아남을 가능성을 보는 것 같다. ... 예를 들어 전후책임이라든가 타국에 대한 사죄라든가 이런 것들은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세상이 파멸한대도 내가 언제든지 차를 마실 수만 있다면 그걸로 좋아"라는 저 목소리, 거기에 근원을 둔 '나는 상관없어'라는 목소리를 기점삼아 생각해야만 한다. 가능하다면 틀릴 수도 있는 형태로 계속 생각해나간다. 그때 우리는 한정된 시대적 문제를 무한히 연결되는 문제로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심한다. 우리는 자기가 틀릴 수도 있는게 아닐까하고 의심한다. 그렇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우리는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이때 잘못을 제거해버리면 우리는 소중한 사상의 씨앗과 과제도 내버리는 셈이 될 것이다. 어떤 인간 속에도 그런건 몰라라는 목소리는 숨어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그런건 몰라'라는 목소리가 우리 속에 살아있는 한, 어떤 고통 속에서도 어떤 잘못 속에서도 다시 한번 거기서부터 '모든 기능이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을 반드시 지니고 있'는 것이다. 202

 

사죄하라고? 난 그런건 모른다, 난 상관않는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한다. 내가,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안에는 고통 속에서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라는 표현의 섬뜩함을 못본척 하더라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외부로부터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겠다. 비판을 듣더라도 개의치말라. 그것이 나중에는 틀린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옳은게 될 수도 있으니 그냥 당당하게 나가자는 말을 저런 식으로 쓸 수 있다면 뻔뻔함이 문학적으로 미학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이렇듯 소설가 못지않게 창의적인 문장을 쓰는 문예비평가 가토 노리히로는 이 책 <패전후론>(번역본 제목은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1998)에서 한쪽에서는 피해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척)면서 사과를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완전히 무시하는듯한 망언을 다른 쪽에서 되풀이하는 과정을 무한반복하느라 좀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본의 교착된 상황을 보면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즉 사죄와 망언을 반복하는 이 도돌이표 같은 상황을 타개하고 진정한 사죄를 하려면 우선 일본 사회가 안고있는 '비틀림', 그러니까 일본이라는 주체의 '인격 분열'을 해결해야하며 그 방법은 자국의 전쟁 사상자를 아시아의 피해자보다 먼저 애도함으로써 분열되지 않은 단일한 국민공동체를 먼저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더라도 뭔가 앞뒤가 바뀌어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당사자가 사과를 하고 그 다음 용서를 구해야한다는건 보편적 상식이지만 가토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피해자에게 사과하기 전에 가해자의 비틀림부터 먼저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식민지배 피해자를 향한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기(정식 사죄와 배상)는 여러 이유로 어려워보이니 그렇다면 우선 자신이 자신을 셀프 용서함으로써 '가해자'라는 레테르로 인한 심리적 트라우마부터 먼저 어떻게든 극복하겠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통해 자국의 사상자를 애도하겠다는건지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을 하기 이전에 저러한 의도를 파악한다면 가토의 주장이 결국 피해자에게 사죄하지 않겠다는 말(혹은 일본은 사죄가 불가능하다는 현실 인정)에 다름 아님을 쉬이 알 수 있다. 이렇게 돌려 말하면 상대가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을까.

 

도무지 이해가 어려운 글을 쓰는데는 대략 두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읽는 이의 문해력 부족은 차치하고). 주제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거나 아니면 비판이나 비난이 두렵거나. 가토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과 논리가 도착적이고 비틀려있음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화법 대신 이렇듯 빙빙 돌아가는 알듯모를듯한, 어떤 방향으로든 해석가능한 간접적인 어투를 시종일관 구사한다. 의뭉스러운 문장일수록 그걸 읽는 이는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쓰는 이도 처음부터 이 점을 의도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다 이미 알고있는 정답을 저쪽으로 치워둔 채 펼쳐지는 저 도착적 상상력보다 더 주목해야할 점은 저자 스스로도 그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글이 공적으로 출판되는 일본 사회의 상황이다. 혐오발언처럼 표현의 자유를 남용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출간 이후 나름 찬반의 대상이 되면서 이 책은 출판물을 통한 논쟁이라는 일본 나름의 지적 전통 혹은 지적 활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이 책이 출판되고 긍정적으로 수용되는 상황은 가토가 속한 일본의 자유주의계열 지식인 이른바 일본 리버럴 세력의 속내를 은연중에 그러나 또렷이 내비친다는 점에서 징후적이다. 이들은 우익처럼 성마르고 강건한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인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마치 오랜 시간 공들여 사유한 심원한 '사상'의 결과인냥 이런 말과 글을 내놓는다. 우익과 달리 자국의 과거 잘못을 인정하지만 그 대신 잘못된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까지 과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거나, 결정권자의 선택 과정에서의 내면을 탐구(유추)해보거나, 가토처럼 화해의 가능성이나 조건을 사변적으로 상상해본다. 지나치게 자세하거나 작은 것에의 집착, 또는 지나치게 사변적인 것 모두 본질적으로는 탈정치적이거나 내지는 초정치적이다. 바로 여기에 한일간 그리고 일본 내 교착화된 상황이 풀리지 않는 또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른다. 좌와 우의 의도치않은(?) 합작 말이다. 거기에 이런 책을 일본의 비판적 지성이 내놓은 경청해야 할 고견인 것처럼 소개하는 한국의 '지성'들까지 포함할 때 한국 내 교착화된 상황에 대한 이해도 도울 수 있다는 말을 덧붙여야 하겠다.

<논쟁>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그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전방위적 방향과 정도 때문에라도 히친스가 장수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만약 그가 현재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 분노는 줄어들기는 커녕 더 옹골찼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사망 이후 불거진 큰 전세계 이슈만 꼽더라도 IS의 부상, 트럼프의 당선, 브렉시트, 시리아 내전, 거기에 (그가 생전에 중동에 들인 관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것으로 보이는) 동아시아에도) 남북, 북미간 정상회담이나 커지는 미중 갈등까지. 장소로는 쿠바, 우간다, 알제리, 튀니지, 예루살렘, 베트남, 북한까지, 인물로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부터 나보코프, 스티그 라르손까지 이 책에서 다뤄지는 소재만 봐도 그 폭을 종잡기 어려울 정도다. 히친스를 읽을 때마다 전세계 이슈에 대한 그의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의 연원이 뭘까 늘 궁금해지는데 영국 해군이었던 아버지를 둔 가족 배경이나 이력으로 유추해보아 이것도 그 누구를 만나도 수월하게 인터뷰 할 수 있는 영어 사용자 그중에서도 백인상층계급에게나 가능한 특권의 하나가 아닐까라는 선입견적인 결론을 내려보기도했다. 국내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한국의 기자들에게는 좀체 기대하기 어려운. 인정을 하든 하지않든 변방과 중심이라는 이분법적 분류는 이럴 때 재차 확인된다. 

 

911 이후 그러니까 2000년대에 쓴 글들이 모여있는 선집이기에 자연히 그의 분노는 미국이 중동에서 벌인 전쟁의 명분에 대한 의심과 비판에 주로 향해 있다. 두 편의 존 업다이크 신간 서평과 고어 비달 비판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한결같이 부시 정권의 음험한 의도, 적국(이라기보다는 적들)과의 비교불가능한 미국의 가공할 군사력을 비판할 때 그는 이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히친스가 이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파 전향자의 그것과 일치하는건 맞다. 왜 미국의 동기를 의심하는가. 정당한 명분을 왜 의심하는가. 석유를 얻기 위해서라고? 유대인이 뒤에서 계획한거라고? 이 전쟁은 단연코 이스라엘의 국익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등등. 그는 시종일관 미국을, 당시의 부시 정권을 변호하느라 바쁘다.

(에드워드) 사이드도 미국이 석유를 수송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기회가 생기기만을 기다리며 안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걸까? 내가 보기에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이 그 정도로 불안하게 들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은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그저 자신을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392

 

내가 하는건 선이고, 나는 정의와 선의 편이며 보편을 대변한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불의를 보면 세계 어디라도 개입해야한다는 생각이 타당한지 여부를 증명하거나 부연할 필요 자체를 그는 아예 느끼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외부인들'이 남의 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아주 조금이라도 인정해주는 주장에는 반드시 반대할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주장들은 문화적 파괴를 막는 것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맹목적인 믿음으로만 해결하려 하는 어리석고 보수적인 세력의 손에 문화가 지배당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바로 이것이 처음부터 문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382

 

물론 그도 개입의 명분을 아예 완전히 모르는 척 하지는 않는다. 이 두꺼운 책에 실린 글들 중 내가 보기에는 딱 한 편에서 그는 미국이 개입해야하는 근거를 모색한다.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강제로 억압하는 것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전혀 상관이 없었을까? 나토의 이익은 또 어떤가? 그 지역에 개입함으로써 귀한 전투 경험을 얻지 않았던가? 심지어 국가를 건설해보는 경험도 얻지 않았던가? 냉전 이후의 국제체제가 지니고 있는 일부 결점과 약점이 노출된 것은 오히려 유용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중세시대 같은 폭정에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해방시키는 것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실리적인 이득이 함께 고려되지 않았던가? ... 이런 의문들은 명예롭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488 489

여간 궁색하지 않다. 약점이 노출되었으니 오히려 유용하지 않냐니. 본인도 이런 주장이 무리수라는걸 알고 있었는지 기어이 그는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만다. 남의 입을 빌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방법은 솔직하지는 않지만 

배스의 책에 제시된 대부분의 증거들은 전쟁과 분쟁이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엔진임을 보여준다. 또한 인권, 인도적 개입, 국제법이나 기준의 발전 등에 대한 논란이 모두 결국은 반드시 문명들 사이의 충돌은 아닐지언정 문명의 구성요소를 둘러싼 충돌의 일부라는 것도 보여준다. 491

 

쓸 당시에는 최신 시사 이슈를 다룬 글을 발표된지 십여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읽는 재미는 아무래도 글쓴이의 선견지명과 단견을 대조할 때다. 유럽 통합을 지지하지만 그 이상이 현실에서 균열을 보이면서 느끼는 불안(<유로는 파멸할 운명인가?>)은 브렉시트를 두고 벌이는 작금의 혼란을 보면서 그 선견지명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pc강박에 빠진 나머지 기계적 중립이라는 제스처로부터 빠져나올줄 모르는 서구의 자유주의자들을 향한 비판(<덴마크를 위해 일어서라> <금기를 피하라>)은 '상대주의'나 '다문화적 관용'이 그 스스로 새로운 교조적 강령이 되어가는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서구자유주의를 보편적 정의로 보는 입장이기에(그가 자신의 이런 모순적 위치를 의식했을까?) 프랑스의 히잡 논쟁에 대해 그는 간결하고 단호한 태도를 표명한다. 왜 유독 "한 종교, 그것도 여성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수상쩍은 기록을 갖고 있는 종교를 만족시키기 위해 평등과 개방성이라는 오랜 전통을 버리라는 요구"(269)를 들어주면서 예외적이어야하는가. 관용은 이런 경우에 들먹여야 할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슬람혐오증'이라는 표현을 들이밀면서 이슬람에 대한 비판을 사전에 원천차단해버리려는데 대해 격렬하게 반대한다. "두가지를 동등하게 보는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매사에는 늘 옳고 그른 판단의 여부가 있는 법이니 그걸 가려야하고 잘못된 것은 가차없이 비판해야한다. 이슬람은 결코 문화상대주의나 다문화주의적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폭력적인 폭동과 결코 꺾일 줄 모르는 독재의 이데올로기"(536)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덴마크 신문 만평 사건 때 침묵하는 서구 언론만큼 비겁한 행동은 없다. 그의 이러한 이분법에 의해 쿠르드족,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아프가니스탄, 시아파는 응원의, 반대로 늘 미국을 뒤통수쳐온 이란을 비롯해 파키스탄, 북한, 수니파를 포함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경멸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결국 십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그의 글이 품고 있던 가정 자체가 그른 것으로 판명된 지금 또렷이 보이는건 히친스의 분노와 증오 그리고 악의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이라크에서 미국이 사라져야한다는 이야기를 느긋하게 하고 있다"며 했던 비난은 지금 보면 얼마나 성급했던가. 이 책에서 가장 어이없었던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격살인사건에 관한 글도 마찬가지. 당시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히친스는 이른바 "예의바른 절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앞으로 우리의 평정심을 뒤흔들만큼 더 강렬한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항상 애절한 표정으로 마조히즘을 연습하는데 힘쓰는 대신 의지를 다지는 연습을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580

슬픔에 관한 연대의 표시로서의 추모는 경쟁이 아니며 따라서 강도나 정도의 문제를 따질 일이 아니다. 지금의 비극을 추모하기에 앞서 이전 있었던 비극들과 견주어 그 정도를 비교해가며 슬픔을 표현해야한다? 비교대상을 언제부터 포함하고 그 단계를 어떻게 나누어 슬픔을 배분해야할까? 한 10단계쯤 나누면 되는걸까? 넉넉하게 5단계? 히친스가 이런 억지를 쓰는 이유는 슬픔을 표현해야 마땅한 더 중요한 사안, 그러니까 "6년전에 이 나라가 공격을 받았을 때처럼 진정한 위기와 응급상황이 닥쳤을 때"나 "어느 정도의 감정 표출이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질시하고 있었다.

 

과연 청년 시절의 그가 이때와 어떻게 달랐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이 선집에 실린 만년 즈음의 그의 정서는 확실히 공격적인 비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우파로의 전향이라는 규정 이전에 미국의 중산층 이하 남성 백인 노동자(이른바 레드넥)의 일반적 감수성에 가까워보인다. 미국이 미국 바깥에서 벌이는 일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고, 월스트리트 부자들 배만 배불리는 구제금융은 당장 폐지되어야하며 이슬람은 광신과 독재의 이데올로기라는 혐오발언을 공공연히 내뱉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그가 아무리 '한 줄짜리 문장에 두 세 권의 책을 언급'하며(옮긴이의 말 중에서) 풍부한 인용을 한다 하더라도 그를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적어도 그가 일관되게 비판하는, 늘 한발 물러서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체 하려는 서구의 자유주의 지식인은 확실히 아니다. 그런 종류의 지식인 취급은 스스로도 거절했겠지만. 히친스의 전향 여부에 관한 판단은 그런 점에서 좀더 면밀함이 요구된다. 젊은 시절에도 그는 늘 이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가정을 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다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되는 자신이 선 위치가 살짝 바뀌었을 뿐 그는 쉼없이 선악을 가름하고 반대하는 대상을 가열차게 비판해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분명히 확인한건 아무리 봐도 생을 통틀어 그가 확실히 전향, 즉 방향을 바꾼건 국적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정론보다는 가십, 정사보다는 야사에 가까운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60년대말 시작된  뉴아메리칸 시네마에 대한 피상적이고 선입견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하면서도 동시에 낯설게하기를 하고 있다. 영화 내적인 텍스트만이 아니라 이 무브먼트를 이끌었던 감독, 제작자, 배우 등의 주역들이 실제로 남성성을 과시하다 못해 테스토스테론 과잉에 의한 흥분상태였음을 설명하는데 집중하는 서술이 선입견을 극대화한다면, 다른 한편으로 뉴아메리칸시네마의 최전성기는 1970년 이전이고 이 해를 정점으로 그 직후부터 서서히 그 에너지가 쇠하기 시작했다고, 즉 뉴아메리칸 시네마란 이후 다시는 업계에서 재기하지 못하고 스러진 일련의 실패한 남성 감독과 제작자들의 짧지만 영화로웠던 화양연화같은 그런 시절이었다는 시각은 낯설다고 할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 이 책이 야사인건 심도있는 작가론이나 평전, 약사(略史)라기보다는 서술 전체가 약물을 포함한 여러 일탈, 거대 스튜디오와의 갈등, 그리고 온갖 여성들과의 장황한 연애담 이 세가지 패턴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특이한건 저자가 이 시기를 철저히 여성이 배제된 남성들만의 서사로 규정하고 따라서 그 안에서 여성이 얻은 분량이라곤 상시적 흥분과 분노 상태였던 남성 제작자와 감독, 배우들의 연애 상대이자 섹스 파트너로 철저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성차별적 시선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가지가 이 책의 중심서사 즉 이 마초 남성들이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메이저 영화사와 얼마나 처절하게 싸워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스튜디오를 배제하고 조금이라도 더 자신들의 창의성을 구현해내려 노력했는가에 대한 신화 내지 전설 만들기에 할애되어 있다. 워런 비티, 조지 루카스, 스필버그, 할 애쉬비, 데니스 호퍼, 피터 보그다노비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윌리엄 프리드킨 같은 감독, 로버트 타운, 폴 슈레이더 같은 각본가(출신의 훗날 감독들), 그리고 이들과 뜻을 같이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인디제작 방식을 일찍이 시도했던 버트 슈나이더같은 명 제작자까지 이 불같은 남성들이 무엇을 원했고 어떻게 그 뜻을 이루었으며 또 어떻게 실패했는지 온갖 트리비아와 일화들이 실려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의 관점이란 이런 것이다. 이 남성들은 마약과 여자가 없이는 도저히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사내들이었고 때로는 이 셋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뭐가 먼저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의 감독들 중에서 스필버그와 루카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그 짧은 전성기 이후 처절하게 실패하다가 할리웃에서 거의 매장되다시피했다는 저자의 관점이다. 70년 이후 실패작들의 연속으로 이들은 업계 밖으로 쫓겨났고 이후로는 그저 변변한 경력을 가까스로 이어갔을 뿐이라는건데 이는 너무 매몰차다. 보그다노비치의 경우 더러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드팔마나 스콜세지는 어떤가. 라펠슨과 애쉬비도 충분히 우호적인 평가를 받을만한 커리어를 이어갔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이 출간되고 20년도 더 지난 올해 그것도 공교롭게 이 책을 읽을 즈음 폴 슈레이더가 실로 오랜만에 <First Reformed>로 비평적 성과를 거두면서 아카데미 후보 지명을 받았다. 

 

케네디 암살과 워터게이트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와 패러디로 가득한 코미디를 주로 만들던 독립영화 감독 브라이언 드팔마는 어떻게 스릴러 전문 감독으로 거듭났는지, 촉망받는 신예 평론가였던 슈레이더와 보그다노비치는 어떻게 미국영화계를 짊어질 젊은 거장으로 올라섰는지, 유능한 편집자였던 할 애쉬비가 어떻게 스스로 각본을 쓰고 감독이 될 수 있었는지, 주체할 수 없던 자신의 창조력을 비즈니스와 어떻게든 연계하려 워런 비티가 얼마나 분투했는지, 남다른 사업감각을 갖고 있던 조지 루카스가 어떻게 할리웃의 실세가 될 수 있었는지 등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속도감있는 문체, 그리고 무엇보다 야사에 걸맞는 번역자의 무자비하게 자의적인 한글 외래어 표기와 조악한 구어 번역 등과 맞물리며 스포츠신문이나 주간지같은 타블로이드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당연히 이런 가십지를 읽을 때면 드는 의심을 피하기도 어렵다. 글의 신뢰도에 대해서 말이다.

<산시로> <그후> <문>의 비공식 연작은 물론이고 <마음>, <우미인초> <행인> 그리고 미완성 유작 <명암>까지 소세키는 삼각관계와 그로 인한 불행한 연인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한눈팔기>는 그러나 이런 흐름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는 한편이다. 반자전적인 이야기라 알려진 이 소설의 주인공 겐조는 어릴 적 자신을 파양한 후 절연했던 수양 부모로부터 뒤늦게 갑작스런 금전적 원조 요구를 받는 가운데 아내와의 갈등, 생계에서 비롯하는 자괴감 등으로 고뇌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년 남성의 분투라 요약될만한 이 작품에서 소세키는 겐조만이 아니라 그의 아내 오쓰네의 심리와 주관까지 모두 삼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보니 자기자신을 투영했을 겐조에게도 마냥 동정적이지는 않다. 자신의 편벽과 염세, 외골인 성정까지 닮았을지언정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이런 태도에는 그때까지의 자신의 삶 전체를 스스로 총괄해보려는 의도가 있었던걸까. 이전까지는 집필 시점에 있었던 실제 사건들을 작중에 언급함으로써 실시간을 배경으로 했음을 알 수 있었던데 반해 여기서는 발표 시점으로부터 약 십여년 전 그러니까 그의 등단 즈음인 1904년경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사망년 전, 미완성작 <명암>을 제외하면 완결된 마지막 장편인 이 소설을 쓰면서 소세키는 어떤 예감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겐조가 느끼는 오쓰네와의 심리적 격절에 관한 내용이 양부와의 갈등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두번째 읽으면서 뒤늦게 알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소세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파양에 더 눈이 쏠렸던 것이다. 하지만 자살 시도같은 일화를 포함해 아내 교코의 회고록을 보더라도 생전 소세키 부부의 사이가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음은 쉬이 알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자신의 과거(양부)만이 아닌 현재(아내)의 고뇌와 고통도 동등하게 토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소세키는 이 소설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나는 과거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과거 악연으로부터의 영향에 여전히 사로잡힌 탓에 지금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를 포함 주변 사람 그 누구도 신뢰하거나 애정을 갖지 못한 채 혐인과 염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이다. 일이 잘 풀리건 그렇지 않건 감옥 같은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글씨가 파리 머리만해질 때까지 원고지를 가득 채우면서 겐조가 그토록 쓰고 싶었던 것은 소설일까 자서전일까 아니면 주문(呪文)일까. 갑자기 큰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밤을 새워 쓴 원고를 팔 줄 알았던, 그러니까 소설의 환금성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초보 작가의 탄생은 원대한 예술가의 야심보다는 생계의 방편으로부터 기원하는걸까.

 

외골이고 편벽된 성정을 가진 겐조의 주위에는 온통 자신에게서 한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사람들 뿐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학교에서 가르치는 젊은이들처럼 겐조도 앞을, 미래를 바라보려 하지만 과거에 계속 발목 잡힌 채 넘어지는 자신에 대한 자조가 계속된다. 즉 삼인칭 시점을 취하고는 있지만 내적으로 이 소설은 겐조의 독백으로 일관하는 일인칭에 가깝다. 현재 시점의 구체적 사건보다는 어릴 적부터 시작해 과거의 여러 순간들을 회고하다가 가끔씩 현재로 돌아와서는 자신보다 더 불우한 형제와 인척들, 아내와의 불통, 그리고 돈을 요구하는 양부와의 갈등을 묘사하고는 곧 다시 회억에 빠지는 패턴으로 전개된다. 한마디로 겐조는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생각(기억)하는 인간, 즉 "움직이지 않으려"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그러한 겐조가 후반부에 이르러 마침내 변한다. 

 

아무리 달라붙어도 성가시지 않습니다. 어차피 세상일이라는게 여기저기서 달라붙는 것 투성이니까요. 설령 성가시다 해도 없는 돈을 내놓으라고 하니 그냥 가만히 성가심을 참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의 아찔함은 몇번을 더해도 덜해지지 않는다. 어차피 세상은 마지막까지 성가신 일의 연속, 그러니 구태여 피하지 않겠다는 자각. 내내 과거를 회고하느라 정작 현재 일어나는 일 앞에서는 수동적이고 체념하는듯 하던 겐조는 이 대목에서 돌연 어떤 단호함을 보인다. 이는 우회적이고 소극적인 희망의 피력인가 아니면 절망의 반어적 표현인가. 떨칠래야 떨칠 수 없는 두 번의 파양과 복적이라는 과거, 가족 부양의 책무를 짊어졌지만 동시에 가장 가까운 가족인 배우자와의 갈등으로 고뇌하는 현재 사이에서 겐조는 자신이 어떻게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사환이 될까 두려워했던 어린 시절의 불안과 달리 유학까지 다녀온 대학 교수이자 작가라는 당대의 최고 엘리트가 된 끝에 겐조(또는 소세키)가 얻은 결론이란 애초에 결론 같은건, 그러니까 '매듭지어지는 일' 같은건 없다는 역설적 깨달음이다. 움직이지 않고 생각만 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이 깨달음은 '즉천거사'(최근에는 다른 해석들도 나오고 있지만)로 대변되는 소세키식 개인주의의 다른 표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의지대로만 주재할 수 없는 삶의 고통에 대한 인정은 현실에 투항하는 숙명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차가운 진실의 일면임은 분명하다. 여생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을 소세키에게 이것이 깨달음인지 현실 투항인지는 구분할 수도 없고 구별할 필요도 없는, 그 자신에게만은 손안에 들어온 사물처럼 또렷한 사실이었으리라. 그래서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소설이 소설로서 성립하기 위한 사건이나 갈등, 서사가 빈약할 수는 있어도 이 작품에는 사이드가 말한 만년성이라할 일말의 아이러니가 꿈틀거린다. 만년에 이른 예술가의 작품은 조화와 고요가 아니라 오히려 더 반항적이고 실험적이며 날이 서 있다는 통찰 말이다. 양부에게 돈을 주지 않기로하고 가만히 성가심을 참는 걸 투항이 아닌 저항으로, 어차피 매듭지어지는 일 따위 없다는 자각을 주어진 생을 거의 채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씁쓸한 농담이 아니라 생의 의지의 재확인으로 읽는다면 소세키의 만년은 필멸을 인정하고 체념하는 그런 노작가의 풍모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는 차기작이자 유작인 <명암>에서 확증된다. 미완성임에도 (번역본 기준으로) 데뷔작 다음으로 긴 이 작품에는 여느 작품보다 날선 긴장감으로 팽팽한 삼각관계가 그려져 있다. 마치 영원히 쓰고자했던 것처럼 길고 밀도 높은 서술은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에 매달렸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본다면 <한눈팔기>는 이러한 회심작을 쓰기 앞서 이루어져야(만)하는 선행 작업으로서 자신의 생(의 기록)에 관해 직접 정리하려했던 시도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결과는 회한이나 애상의 노스탤지어로만 채워져있다기보다는 이지적이고 때로는 분석적으로까지 보이는 학인다운 객관적 자기반영성이 혼재되어 있다. 이는 요즘 읽고있는, 소세키와는 활동 시기도 국적도 판이하게 다른 어느 현대 미국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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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서 추상은 더 민감하다. 글과 말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일수록 다양한 해석과 여지가 남는다. 그래서 저마다 해석의 우위와 정당함을 주장하다가 점차 지리한 논쟁으로 빠져들기도 하는데 말할 것도 없이 종교 경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경전같은 형이상학적인 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네 삶의 결에 촘촘하게 닿아있는 법도 마찬가지. 그 중 법들의 법인 헌법은 가장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나머지 각 정치적 당파들은 헌법 해석의 주도권을 쥐려하지만 추상적인만큼 그 스스로 권위를 확고히 한 채 헌법은 거의 불변한다. 어느 쪽으로도 해석가능하기에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또 추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짐짓 두려워하기에 섣불리 고치려 들지 못한다. 일본 자민당이 긴 세월동안 그토록 헌법 9조를 개정하고 싶어했음에도 지금까지도 못한건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적인 '명문 개헌'을 하는 대신 '해석 개헌'이라는 우회로를 택해 기어이 2015년 집단자위권을 통과시켰다.

 

헌법의 추상성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어쨌든 외부로부터의 틈입을 완전히 막지 못한다. 게다가 호헌을 지지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틈입을 막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호헌 지지자들이야말로 여러 방향에서의 틈입을 허용하기도 한다. 바로 미국의 수정헌법 1조가 그렇다. 유럽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이 혐오발언과 인종차별에 관한 규제관련 법안을 갖고 있는데 반해 미국이 그렇지 않은 이유는 마치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처럼 반민주주의적이고 보편적 원칙에 어긋나는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서마저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해 관용과 자유를 용인해야한다고 주장하는 '헌법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혐오발언,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의 저자 제러미 월드론은 말한다. 그래서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는 여러 예외 사례들을 받아들인, 그의 표현을 빌면 '주전원'이 붙어있다. 법문 그 자체는 불가침으로 두고서 계속 기워내는 것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가 내세우는 혐오표현 규제의 근거 두가지, 즉 공공선의 원칙과 존엄성 유지의 필요 주장 때문이 아니라 혐오발언의 자유까지 보장하는(것처럼 보이는) 수정헌법 1조에 어떻게 저자가 대응하고 있는가였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혐오규제 입법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상식과 보편을 거스르는 발언이라 하더라도 제재를 하려면 일단 발언의 기회를 준 이후에야 비로소 그것을 제재할 수 있는 정당성을 얻는다. 만일 정말 그것이 보편을 거스르는 발언이라면 발언권을 준다 하더라도 시민 사회에 논쟁을 부쳤을 때 반박됨으로써 자연스레 기각되고 부정될 것이다. 즉, '논쟁의 장 안에서 민주적 도전'을 받으라는 것이다. 여기에 섞여있는 두가지 가정을 정확히 구분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이 말할 권리는 거부되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표현을 통한 개인의 자기 드러내기의 중요성이 있다. 발화자는 원인 제공을 할 뿐이다. 거기에 청중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알 수 없다. 발화와 반응 사이에는 '정신적 매개'가 있다. (에드윈 베이커)

둘째, 혐오발언 금지는 민주주의 사회의 정당성을 훼손한다.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의 일부다. 어떤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아예 발언 기회를 차단당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구체적으로 말해 혐오표현 금지법은 다른 (하위의) 법, 즉 민주사회의 다수결 원리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혐오표현 금지법은 그 하위의 법인 인종차별금지법이나 폭력을 금지하는 법률의 정당성을 훼손한다. (로널드 드워킨)

 

월드론은 그렇다면 어떻게 위의 두 전제를 각각 반박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원칙에 도전하는가.

 

첫번째, 베이커를 반박하면서 월드론은 단번에 수정헌법 1조에 직접적으로 도전한다. 즉 그는 금지법이 수정헌법 1조가 금지하고 있는 '내용에 기초한 제한'이며, 개개인의 사상의 공공연한 표현을 '덜 자유롭게' 한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금지법 입법을 주장하는 이유는 혐오표현이 그 자체로 표현적 기능을 갖고 수행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혐오표현 발화는 순수한 자기 드러내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공공선을 위협하고 사회가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한다는 확신을 위협한다. 또 직접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그 표현에 의해 발생하는 2차적인, 구체적 행위로서의 결과, 즉 소수 인종이나 특정 종교 신자를 향한 폭력이나 배제를 불러온다. 이런 점에서 혐오표현은 사회에 해를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 기초한 제한과 그렇지 않은 제한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신적 매개'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발화 행위를 한 순간 이미 악영향을 끼치고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발화 행위 그 자체가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한편, 수정헌법이 내용에 기초한 제한을 금지하는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권력을 가진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금지나 억압으로 기능할 가능성 때문인데 여기에 대해서도 월드론은 역으로 정부가 사회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건 당연하며 그 예로 자유시장 경제 하에서 분배적 정의를 구현하기위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 노력을 들고 있다.

 

두번째, 드워킨의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먼 고담준론에 불과하다고 월드론은 비판한다. 드워킨은 진정으로 혐오발언 금지법이 하위 법을 불법으로 만든다고 믿을까. 이는 그저 철저히 법 이론의 관점에서만 본 추상적인 지적 놀음이 아닐까. 상위 법으로서의 금지법이 잘못됐기 때문에 그 하위법으로서의 폭력과 차별 금지법의 정당성이 과연 훼손되는가? 정말? 그렇다면 인종폭력이나 차별에 강력하게 대처하려면 그 범죄 원인에 대해서 관용해야 하는가? 이것이 월드론의 반박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럴지몰라도 실제 우리 현실 사회에서는 설령 "하류에서 정당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가 압도할지라도 상류의 법 정당화를 고려할 가치가 있는 경우"가 있다. 하위법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그 상위법의 정당성이 의심된다면 그때는 상위법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헌법 자체를 재고할 필연성이 생기는 거라고 그는 주장한다. 게다가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상위 법으로서의 금지법이 논쟁 자체를 원천차단하지는 않는다. 극단적 표현을 담은 혐오발언이 아니더라도 종교나 인종에 대한 반대 의견은 충분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성까지 굳이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외에, 법이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해 규제하는게 맞느냐, 게다가 정부의 개입이 법의 힘을 빌려 소수자를 억압하는 그릇될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도 있지 않느냐는 반론에 대해서도 애초에 혐오표현 금지법은 소수를 향한 다수의 횡포가 아니라 반대로 소수를 배려하는 법임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사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벌이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조정하려는게 당연하듯이 혐오표현 금지법도 그러한 공론을 만들어가는 자연스러운 시민 사회의 논쟁 과정의 일부이자 동시에 이를 지원하고 조율하는 것이라고 월드론은 역설한다. 어떤 사회 문제가 불거지면 적극적 논의 과정을 통해 세세하게 정도를 가리는, 즉 저울질을 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런 점에서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 간의 관계에 대해서 이제부터라도 심도깊은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는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18세기 관용 담론을 이끌었던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문헌을 주의 깊게 독해함으로써 금지법의 '사상적 계보'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 장의 설득력은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으며 권위에의 의존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혐오표현은 그 자체가 사회에 해악을 야기한다. 따라서 한번 뱉어지고 나면 사라지는 일회적 성격이 강한 말과 달리 출판이나 방송 등에 의해 반영구적으로 게시됨으로써 사회 환경의 일부가 되는 혐오표현은 금지해야 하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 원칙과는 일부 상충할 수 있으나 다른 보편적 원칙 즉 사회의 개별 구성원이 누려야 할 존엄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공공선을 보장하는데 기여하므로 혐오표현 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논지다. 그러나 만약 실제로 금지법의 입법 추진이 시작되면 드워킨과 베이커보다 더 다양한 반대와 반론이 예상된다. 법에는 문외한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건 대략 두가지다. 첫번째, 그렇다면 누가 무슨 기준으로 '혐오표현'의 기준을 정할 것인가? 월드론은 굳이 혐오표현까지 하지 않더라도 특정 종교나 인종에 대한 반대의견은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즉 어느 선을 넘어설 때부터 그것은 '혐오표현'이 된다는건데 그렇다면 그 수위와 정도는 어떤 기준에 근거해 누구에 의해 규정될까. 단적으로 말해 과연 어디부터가 처벌 대상의 '혐오표현'일까? 이때부터 표현의 자유 논쟁은 더 점입가경으로 전개되리라 예상된다. 사법 처벌을 하기 위해 어떤 '말'이나 '단어'가 혐오표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지난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두번째 '정신적 매개' 혹은 다른 뭐라 부르든간에 혐오표현 발화자와 차별 및 폭력 행위자를 구분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한 저자의 반박을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둘 간의 인과관계를 '객관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한 금지법에 의거해 발화자까지 처벌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이런 물음은 결국 법률에 의한 제재의 한계를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시민 사회 내에서의 '자연적' 과정이 아니라 굳이 법률로 제재를 하려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월드론의 입법취지와 달리 혐오표현 금지법이 정반대의 목적으로 쓰일 가능성이 전혀 없을까. 다시 말해 모든 정치적 분파들이 자신의 반대파를 겨냥해 금지법을 이용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모든 법은 정의라는 이상을 바라보며 만들어지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 법률을 피하기 위한, 또 악용하기 위한 더 많은 혼란과 난맥을 야기한다. 이를 어쩔 수 없이 감내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하면 논쟁은 다시 그럼 어느 쪽의 효용이 더 큰가의 문제로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금지법은 사실상 '내용'과 '표현' 모두를 제한하기 때문에 월드론 자신이 인정하고 있듯이 공적 발언을 하기에 앞서 개인들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든 자기 검열을 해야하는 정신적 부담을 안게 함음으로써 그의 표현을 빌자면 '덜 자유롭게' 만든다. 금지법 이전에 표현의 자유라는 대원칙을 제한하는 이 문제에 대해 월드론은 공공선과 구성원의 존엄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자꾸만 넘어가려 하지만 혐오표현 금지법을 둘러싼 논쟁의 최전선은 돌고돌아 결국 바로 이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한 저자의 진정성과 의도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구체적 실천 과정의 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 이 책의 역설적 의의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그런 자유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도 없음을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경험적으로 안다. 혐오표현까지 관용하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일까 아니면 소수자를 억압하고 해치는 사회일까. 처벌이라는 책임을 가정하기에 관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혐오표현의 관용은 민주주의 사회의 저력을 신뢰한다는 표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혐오표현 제한만이 아니라 사회 이슈를 향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 자체에 대해 다소 나이브해보일 정도로 굳은 신뢰를 보내는 저자에게는 금지법은 당연한 구상일 것이다. 그래서 법률적 제재가 만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듯 하다. 그러나 '하류의 법'이 자꾸 늘어간다는건 오히려 그만큼 그 법들이 제구실을 못함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법이 추상적이면 저마다의 해석과 적용이 난립할테고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점점 구체적이 되면 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 적용은 처음의 입법 취지나 목적을 충족시키기 어려워질 것이다. 혐오표현 금지법의 딜레마도 바로 여기에 있지않을까.

조지 오웰은 어느 글에서 빈한하고 남루한 (그래도 영화평론가보다는 낫다는) 서평가의 생활을 자조한 적이 있다. 춥고 답답한 방에 공과금은 밀려있고 원고독촉에 시달리는 가운데 어떻게든 글을 짜내려 고군분투하는 서평가의 초상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 글은 좋은 서평의 조건에 관한 언급으로 넘어간다. 600단어 정도의 중간 길이 서평은 정말로 쓰고 싶어한다 해도 가치가 없으며 중요한 소수의 책에 대해 최소 1000단어 정도의 긴 서평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오웰 본인도 한 해에 스무권 이상의 서평을 쓴 적이 있고 죽기 전까지도 계속 썼다. 서평이 아닌 신문 칼럼을 모은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은 비판적 저널리스트이자 동시에 원고생활자였던 오웰이 2차 대전 기간 동안 신문 지면에 대체 무엇을 썼는지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오웰에 그토록 공감한 이유 중 하나를 이 책을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2003년 이라크전을 찬성 및 지지하면서 '전향자' 취급을 받은 히친스는 전쟁을 바라보는 오웰의 시각에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확인하지 않았나싶다. 전시 기간 중에 쓰인 글이 주로 실려있는 이 책에서 통념과 상식이 갖는 선험적 가치나 당위에 대한 오웰의 동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표적인 예는 무차별 공습을 반대하는 반전주의자와 평화주의자를 향한 반론인데 아이와 여성의 목숨이 참전한 젊은 남성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냐고 그는 반문한다.

 

젊은 군인들만 죽는다고 해서 전쟁이 더 인도적이고 노약자들이 희생된다고 해서 전쟁이 더 야만적이라는데에 나는 공감할 수 없다. 154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전쟁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잔혹성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이 이중적 태도에는 굉장히 역겨운 면이 있다. ... 전쟁을 '제한적으로' '인도적으로 치르자는 구호는 순전히 말장난이다. 154

 

여자를 죽이는게 남자를 죽이는 것보다 왜 더 나쁘다는건가? 사람들은 여자를 죽이는건 번식 개체를 죽이는 거라고 말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희소가치가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인간을 짐승과 마찬가지로 교배시킬 수 있다는 착각에 기인한다. .... 남자 한 명이 수많은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남자 한 명의 목숨 가치는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축이 아니다. 160

 

포탄과 로켓, 장거리 발사 무기는 노인과 어린이,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만약에 이 전쟁(1차 대전을 가리킴)이 그런 무기 위주로 치러졌다면 유럽 사회 전체가 입은 피해는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161

 

전쟁에서는 어쨌든 승리를 최우선으로 해야하기에 위선이나 기만, 이중잣대 등은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이런 시각은 다른 글에서도 일관되는데 바로 이 가정, 즉 일단 시작된 전쟁이라면 승리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웰식의 이중잣대가 발생한다. '언론의 자유는 필요하지만 동시에 언론의 국영화는 불가피하다. 소수의견을 내는 안 알려진 소규모 언론사나 출판사는 제외하고 대형언론사를 국영화 해야한다',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해야하는 이유는 적이 아닌 우리가 승리를 하면 적어도 거짓말을 적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등등. 적어도 우리가 적보다는 거짓말을 덜 하리라는 이 자칭 '분석'은 오웰의 순진함을 보여주는걸까 아니면 그저 프로파간다인걸까. 이보다 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로 보이는 글도 있다. <영국군과 잠수함>에서 오웰은 침략으로 인해 넓은 영토를 갖게 된 독일보다 영국의 식량 사정이 더 좋고, 식량배급제 시행으로 전전에 비해 오히려 영국인들의 영양 상태가 더 개선됐으며 영국 잠수함의 개량으로 독일 잠수함을 상대로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배급제가 영국 국민들의 영양 불균형을 교정했다거나 전쟁으로 인해 영국인들이 돈은 덜 들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사람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오락과 여흥을 갖게 되었다는 등의 견해는 진심으로 저렇게 믿는게 아니라면 결과적으로는 견강부회일 뿐이다. 뿐만 아니다. 모순이라는 표현 외에 다른 해명이 불가능해보이는 부분도 있다. 1943년 12월 10일자 트리뷴에 쓴 칼럼(<인종 차별 문제>라는 제목은 국내 출판사가 붙였다)에서 오웰은 '니그로'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로부터 8개월 뒤인 1944년 8월 11일 자 같은 지면(<유색인 차별을 멈추려면>)에는 대놓고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영국에서 복무 중인 서부 인도 출신의 니그로 병사가 국토방위군 제복을 입고 있는데도 유흥업소로부터 입장을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번역자가 '니그로'에 대해 "흑색 인종. 당시에는 '니그로'라는 표현을 지금처럼 금기시 하지 않았다"라는 각주를 붙여놓긴 했지만, 그보다도 의문은 오웰이 정말 자신이 한 말을 불과 8개월만에 뒤집었을까라는 점이다. 편집 실수가 아니라면 이는 그의 기억력이나 다른 어딘가에 착오가 있었음을 보이는걸까. 

(살펴보니 이는 번역자 혹은 출판사의 편집 실수는 아니었다. 사정을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43년 12월 10일자 글에서 정확히 오웰은 다음과 같이 썼다(58). "'니그로'(원문에는 'Negro')도 마찬가지다. 흑인 대부분은 이 단어를 소문자 'n'으로 쓰는 것을 증오한다. 하지만 지금도 지면에는 심심찮게 '니그로'라는 단어가 실린다. 이런 이슈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꾸준히 습득해야 한다." 그리고 44년 8월 11일자에는 바로 위와 같이 썼다. "서부 인도 출신의 니그로 병사"의 원문 영어 표현은 정확히 "West Indian Negro working in this country"라고 되어있다. 즉 오웰의 입장에서 변호를 해본다면 그는 여기서 흑인 비하의 의도가 아니라 그저 인종을 정확히 명시하기 위해 마치 고유명사처럼 "West Indian Negro"라고 대문자 표기를 한 것이다. 그는 8개월 전에 자신이 했던 주장, 즉 흑인 비하 의미의 소문자 'negro'를 쓰지 말아야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George Orwell: A Literary Life>(1996)에 따르면 위에 언급한 번역자의 각주와 마찬가지로 당시에 대문자 'Negro'는 용인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오웰과 BBC에서 함께 일했던 인도인 작가 세드릭 도버가 대문자 'N'의 중요성 즉 소문자와 대문자를 구별할 것을 오웰에게 주의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번역자의 각주는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지만 불충분한 설명이다. '대문자 'Negro'라는 표현은 지금처럼 금기시 하지 않았다'라고 고쳐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예들은 저널리스트의 어떤 얄궃은 처지에 대해 생각케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사에 바로바로 개입해야하는 언론인이라면 즉각적 판단에 의한 공적 발화가 훗날 오류로 밝혀지거나 대중을 거스르는데 따르는 비판 및 설화를 피하기 쉽지 않다. 전시에 썼던 글에 대해 오웰이 전후에 해명한 적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상기 포함 이 책에 실린 몇몇 글들은 전시 상황의 특수성이 언론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직업적 저널리스트의 궁지를 예증한다. 직업 언론인이 아니라면 굳이 밝히지 않고서 침묵하고 넘어갔을 최신 이슈에 관한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그들은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이 책에도 독자들의 격한 반론에 대한 오웰의 재반론이 실려있는데 바로 여기서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오웰은 모순에 대한 지적을 포함한 자신을 향한 비판이나 우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견결한 사회주의 신념이 있었기에 파시스트에 굴복하는 자신의 조국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프로파간다 방송물 제작에 참여했고 정부 정책 홍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배급제가 국민의 영양불균형을 교정했다는 주장은 전시에나 가능한 선전성 문장이지만 거기에 그의 어떤 진심이 전무하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어차피 치러야 할 전쟁이라면 모든 연령대의 인구가 골고루 제거되는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발언에서 생명 경시나 잔혹함을 볼 수도 있겠지만 하루라도 빠른 승리를 통해 더이상의 무차별적인 죽음을 막아야한다는 의지 그리고 무엇이 진정 더 중요한지를 착각하고 있는 평화주의자들의 모순을 일깨우려는 역설적 의도를 읽어낼 수도 있다. 정책 홍보를 통한 국민들의 정치 이해도 개선과 인종주의를 막기위한 지식의 전파를 역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반유대주의를 상대하는 진보진영의 합리주의적 접근이 갖는 약점을 지적하는 일(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지적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이 가능한 것은 그가 현실의 복잡다단함과 피할 수 없는 모순을 있는 그대로 인식했기 때문은 아닐까.

 

공적 발언을 하려는 굳건한('편향된') 신념을 가진 문필가가 실제 발언권을 얻게 됐을 때 어떻게 그 신념을 실천 및 변용하게 되는가. 오웰에겐 제국주의 체제 복무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약육강식의 세계 구조에 대한 냉철한 현실주의적 인식과 이상향으로서의 사회주의라는 목표가 공존했다. 그래서 노약자와 여성을 젊은 참전 남성보다 중시하는 의견을 또다른 인종주의쯤으로 여겼을런지도 모른다. 국영라디오가 "밤낮으로 프로파간다를 주입하는 전체주의적 권역의 핵심이자 국수주의 선동의 주목적인 도구"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 BBC에서 프로파간다를 행하고 정부에 의한 대규모 사회조사와 정책 홍보의 필요성을 역설한(어쩌면 그는 문필가가 아니라 개혁가나 행정가가 되고 싶어했던건 아닐까) 것도 그만큼 프로파간다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일 수 있다. 사회주의자라고해서 교육과 홍보를 무시할 필요가 없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오웰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나 이념이라도 취하거나 버릴 수 있는 무원칙의 맹목적이고 강퍅한 교조주의자인걸까.

 

출생률이 급감함에도 난민 수용을 격렬히 반대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극심한 주택난 속에 다같이 교류하는 공적 공간도 줄어들며 언어의 인플레 현상은 심한 반면 표현의 자유는 갈수록 줄어드는 영국 사회를 격렬히 고발하는 비판자의 초상이 이 책에서 보이는 오웰의 첫인상이다. 현재 진행중인 전쟁에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파시스트들의 승리나 득세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이번 전쟁이 결코 마지막일리 없다는 비관주의자의 모습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점점 읽어 나갈수록 보게되는 오웰의 또다른 얼굴은 진정한 사회주의의 도래를 위해 (목표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인류 해방과 복지를 바라마지않는 이상주의자의 그것이다. 사유재산 폐지는 첫걸음에 불과하며 사회주의 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동지애 혹은 인류애라는 발언에서 여타 사회과학에 기반한 사회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로부터 변별되는 오웰의 지향점이 확인된다. 서로 모순되거나 이중적으로 보이는 오웰의 발언들은 이렇듯 그가 추상적인 궁극의 목표와 이상을 두었기 때문은 아닐까. 사회과학자와 달리 대중을 직접 상대해야하는 언론인의 특성도 있겠지만 오웰의 이런 관점은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케한다. 생산 양식과 생산 관계의 변전을 규명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밝히는 것만으로 사회주의자가 바라는 세상이 도래할리는 만무하다. 모든 것을 아는 자가 그 모두를 바꾸거나 갖지는 못한다. 중요한건 쓰러지고 넘어져도 언제든 바라보는 목표점을 가졌느냐의 여부다. 바라는 바가 추상적이고 보편적일수록 현실의 각 단계에서 매번 좌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동력을 유지하려면 어디서든 보이는 목표가 있어야한다.   

 

또 하나, 오웰이 아주 명징한 정치성을 띤 언론인이었다는 점도 더 생각해봐야 한다. 공산주의(자)를 향한 반감과 자본주의 비판, 영국 언론과 정치의 질적 저하에 대한 신랄한 풍자 그리고 그 질적 저하의 핵심이랄 수 있는 언어의 타락에 대한 일관된 그의 근심이야 오웰의 독자라면 이미 익숙할테고, 이 책에서 확인되는 그의 모순적 서술들이 이전에 미처 몰랐던 오웰의 '약점'이나 '결점' 혹은 생계를 이어야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처지나 인간적 면모를 조명한다는 식의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들의 정치 이해도가 낮다 어떻다 하는 발언은 지금이나 그때나 대중으로부터 우호적인 반응을 얻기 쉽지 않겠지만 이는 영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헤게모니 다툼이 배면에 깔려있는 발언임을 의식해야하는 것이다. 이런 발언들에서 읽어야하는 것은 오히려 전시였기에 더 분명하게 그어진 진영간 정치적 당파성이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되는 스페인 내전 기간 인민전선 내부의 분파들간의 갈등 같은 것은 2차 대전 기간 영국에서도 다르지 않았을테고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쓴 그의 칼럼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했다기보다는 '트리뷴'이라는 사민주의 신문을 읽는, 즉 그 정치적 성향과 이념이 또렷이 예상되는 독자들을 상대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그것을 읽는 행위 자체가 자신들의 당파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분명한 정치적 의사표시라는 점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은 추축국하고만 하는게 아니었다. 또 하나의 '내전'이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전쟁이 다 그러하듯이. 분명하게 그어진 이중의 전선 아래 칼보다 강했을지 모르는 펜을 휘둘렀던 문필가 오웰의 초상이 여기에 있다.

 

이 책에 실린 오웰의 글은 노골적 반동이나 전향성을 띤 것은 아니지만 어떤 대의에 복무하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직업 저널리스트의 궁지' 따위로 부를 수 있는게 아니다. 이 글을 쓸 때의 그는 불편부당하게 객관적 사실을 보도하는 '리포터'가 아니라 작게는 자신의 정치적 당파성을 재현하고 크게는 전시 체제를 지원하는 '이데올로그', 더 정확히는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전한다는 의미에서의 '칼럼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오웰의 시대로부터 반세기도 훨씬 지난 현재를 사는 우리가 지금도 느끼는 언론 환경에 대한 환멸과 혼란은 어쩌면 이렇게 '저널리스트'와 '칼럼니스트'와 '리포터' 혹은 '저널'과 '기사'와 '선전'을 혼동, 오인 및 무시하는데서 기인하는지 모른다. 그럼 칼럼니스트란 누구일까. 자신의 발화가 갖는 내재적 필연성을 납득시킬 수 있는 논리적 정합성, 그리고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그 행위를 추동하게 한 대의와 명분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진정성 그리고 태도를 공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사람임을 이 책은 예증한다. 

송네 피요르드 투어 당일 아침, 캐리어를 기차역 안 락커에 임시로 넣어두고 출발했다. 일단 그날 밤 묵을 유스호스텔 방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설사 정해졌다하더라도 낮시간에 덩그러니 짐을 방 안에 두고 떠났다가는 단 십 분 안에 도난당할게 뻔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기차역에 와서 주의깊게 사용설명서를 봐가며 짐을 락커 안에 넣어두었다. 이제 돌아서서 나오려는데 고개를 돌리자마자 왠 젊은 아시안 여성이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락커 사용시간은 어떻게 연장이 되느냐 등 사용법에 관한 것이었는데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딱 한마디, 잘 모르겠다였다. 하나도 도움 안되는 나의 대답을 듣고 그 사람은 걸음을 돌렸다. 방금 전 락커에 짐을 넣는걸 뻔히 봤을텐데 왜 모르겠다고 대답한걸까. 무엇보다도 지금와서 돌아보면 대답 자체보다도 쌀쌀맞기 짝이 없는 내 태도에 학을 뗐겠다싶다. 본능적으로 타인을 경계하고 멀리하는 습관이 반사적으로 나온거였는데 사실은 당시 그 순간에도 이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안한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용 요금 영수증을 챙겨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찌 된 일인지 방금 전까지 있던 사람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 얘기를 가끔 누군가에게 하면 더러는 내 예감이 틀렸던게 아니라 어쩌면 정말로 나를 목표물 삼아 낚으려 했을거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불과 단 몇초만에 그 자리에서 사라진걸 봐라. 대상과 방법을 바꾸기로 하고 바로 빠져나온거다. 만약 진심으로 그런게 궁금했다면 너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물었어야하는거 아니냐' 등등. 하지만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런 의심보다 일단 '반응'을, 그러니까 '리액션'을 했으면 어땠을까싶다. 만약 진심이었다면? 정말 도움이 절실해서 주저주저하다가 용기를 내서 처음보는 사람, 그중에서도 그나마 같은 인종인 나에게 말을 걸어본거라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피렌체를 향하는 중이었을 때다. 기차 통로 건너편 옆자리에는 이번에도 우연인지 동양인 여성이 앉았다. 일개 관광객인 나와는 달리 이태리어(프랑스어였던가)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며 처음 보는 자신의 옆자리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낯선 이와 영어가 아닌 유럽 국가의 언어로 대화하며(이게 중요하다. 영어가 아니라는거) 친해지는 여행은 어떤 느낌일까. 혼자 상상하던 중 마침내 내 옆자리도 채워졌다. 한 눈에 봐도 뭔가 불안해보이는 눈빛을 가진 사내였다. 짐도 없이 훌쩍 몸만 올라 탄 그는 한동안 멍하니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히 그가 내 차림을 살피거나 하면서 은근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나를 계속 신경쓰고 있음을 알아챘다. 모르는 척 했지만 반복적으로 그러는걸 보고 있으니 자연히 이쪽에서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고 조금씩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나 혼자 하던 중 딱 한번 그가 나에게 말을 붙였다. 현재 시각을 물어온 것이다. 이거 내 손목시계 브랜드를 확인하고 싶은거 아닌가라는 망상과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중에 기차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지역에서 멈춰섰다. 둘 중 한 나라로 보이는 관헌들이 들어와 여권검사를 시작했다. 안 좋은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역시나 남자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 같더니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과 함께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기차는 곧 다시 움직였고 움직이는 창 밖 광경 속에 경찰들에 둘러싸여있는 남자의 모습이 찰나에 지나갔다. 무전여행이라도 하는 중이었을까 아니면 일자리를 구하기위해 다른 나라에 들어가려던 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망명이라도 꾀하는 중이었을까. 옆자리에서 바라본 남자의 시종일관 그 불안한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타인에게 늘 친절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반사적으로 타인을 경계하는 내게는 안타깝게도 저런 이들이 가장 멀게 느껴진다. 질투라기보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원활한 대인관계 유지에 요구되는 교화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다른 무언가를 기회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늘 한결 같을 수가 있을까.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하는 자체가 내 머릿속에서 지어낸,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상상은 빠르게 커 나간다. 한 개인이 자신이 가진 사고의 관성과 습관과 편벽에 지나치게 경도되면 보고싶은 것만 보고는 조금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은 채 생각하고 싶은대로 사후정당화까지 일사천리로 해치워버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특정한 경향과 방향이 그 개인의 행동과 사고방식으로 고착될 때 이는 곧 '성격'과 '캐릭터'라 명명될 것이다.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과 평판이 이렇게 결정되고나면 그 다음엔 그러한 타인들의 반응에 내가 피드백하면서 그들을 다시 나의 시선으로 유형화한다. 그 먼 유럽 땅에서 그때의 나는 그 두 사람을 상대하는동안 어떤 선입견과 어떤 피드백을 했던걸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돌아보는 과거에 대한 감회는 수많은 생각들을 가지로 뻗쳐나가게 한다.

이 책의 원문은 1999년 문예춘추 5월호에 전문 게재됐고 그로부터 약 두 달 뒤 저자 에토 준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세키와 그의 시대>(1970~1999), <성숙과 상실>(1967)을 비롯해 읽고 싶은 그의 저서는 많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건 이 책이 유일하다. 분량이 매우 짧긴하나 한 가지 특징(?)이 크게 눈에 띄었는데 바로 날짜와 시간에 관한 유난한 집착이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작업 일지 쓰듯이 상세하게, 특히 그 내용이 플래시백을 포함하는 비선형적 전개일 경우, 각각의 시간의 경과와 순서를 매우 세세하게 명시한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는 전례없는 길이의 평전일 <소세키와 그의 시대>를 쓰면서 들인 습관일수도, 아니면 그저 일관된 그의 글쓰기 방식일 수도 있다. 실제로 사적인 일기이기에 이렇게 썼다고 보기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었다고 볼만한 대목이 여럿 있다. 어쨌든 그렇게 읽다보니 날짜, 시간, 장소 및 행적에 관한 세세한 명기와, 극도로 건조한 문장이 혹시 그의 극우 사상과 연관이 있는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치나 문학 비평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 책에서도 보수적인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경향이 역력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아내를 향한 절절한 애정이 본문 내내 이어지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중심적이면서 동시에 우파적인 상상력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들,

 

"게이코는 무언의 말을 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자신이 행복했노라고. 자기의 진짜 병명을 '고지'해주지 않은 것을 포함하여,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41년 반에 이르는 우리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고. 아니 훌륭했다고.
  나는 그녀의 무언의 말에 대하여 역시 무언으로 되풀이하였다. 고맙다고, 알아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당신의 생명이 다한다 하더라도 내게 의식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기억 속에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거라고.
  그 무언의 대화가 도대체 몇 분, 아니 몇십 분 계속된 것인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대화 속에는 이상하게도 눈물은 없었고, 끝없이 깊은 충족감만 있었다. 게이코의 웃는 얼굴은 변함이 없었고, 나도 나 자신이 미소를 짓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당신의 손이 아직 따뜻할 때>(2000)중에서 88~89


이런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지면에 쓸 수 있다는 것이 에토 준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파적 심성을 이루는 중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당당함, 즉 자기본위적 세계관과 그 대담한 전시가 아닐까. 아내의 입원 후 빨래, 식사, 설거지, 다림질 등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 중 어느 하나도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걸로 보아 그가 이전까지 어떻게 살아왔을지 짐작이 되는데 이를 가감없이 털어놓는 그 당당함이야말로 자연인 에가시라 아츠오와 문예비평가 에토 준이 동일인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자기본위적 경향은 당연히 문장 자체에도 이어진다. 우파 중에는 미시마 유키오처럼 탐미적인 문장가도 있지만 수사가 일절 배제되다시피한 에토 준도 있는 것이다. 문예비평가이자 작가이지만 그가 쓰는 비유들은 문체의 건조함만큼이나 투박하고 직선적이다. 본문에 계속 나오는 '삶과 죽음의 시간' 대 '일상과 실무의 시간'이라는 표현은 마치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을 두고두고 계속 써먹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처럼 고루한 비유의 반복적 사용과 아내를 향한 일편단심의 순애보는 그의 일관된 성격에 관한 증거로 제출될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건 에토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마저 그 일관성을 끝까지 유지하려 했다는 것, 즉 지금까지 유지해 온 자신의 일상과 경력이 흔들리는 조금의 균열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존엄성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려 했다는 점이다. 그 최후의 방법으로서 택한 자살은 그래서 미시마의 그것과는 맥락을 달리한다. 미시마가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고 퍼포먼스로서의 자살을 행했다면 에토는 공적 영역에서의 경력과 그것을 실질적으로 가능케 했던 사적 영역에서의 자연인으로서의 삶이 더이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걸 막기 위한 회피이자 결단이라는, 매우 유구한 형태의 자살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에토의 자살은 우익으로서 살아온 생전의 행적과 상반된 게 아니라 오히려 제 때 제자리에 찍힌 마침표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유작에서 일편단심의 로맨티스트로서 자신을 묘사하고 규정하기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더없이 완벽한 마무리란 말인가.

 

 

사족.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세키와 그의 시대>를 레퍼런스로 하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에토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그 영향력이 어디에서 연원하는지를 3장에서 알 수 있다.

 

사족 2. 사이토 미나코는 <취미는 독서>에서 이 책을 일종의 동시대 '귀족 문학'으로 규정한다.

 

그러면 조직적 범죄인 종군위안부제도에 가담한 당시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단순한 응답을 넘어 책임을 져야하는 이유는 왜일까. 요컨대 포스트콜로니얼한 책임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만약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는 사상에 대해서 무죄라면, 일본인인 나의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나 조직적 범죄로서 종군위안부제도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조직적 범죄로서의 종군위안부제도에 가담하지 않았다"라고 확실히 주장할 의무를 지니고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나는 우연히 일본 땅에 태어나, 일본 국적을 얻었고, 일본국가의 보호를 받아 온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적 범죄로서의 종군위안부제도에 가담한 당시 일본인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탄핵한다. 그런 이상, 나는 혐의를 받은 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증받는 상태에서, 그들이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도록 노력할 것이고, 그들의 범죄를 은폐하는 인간과는 우호관계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이라고 해서 내가 그들과 공범관계를 가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음을 공적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

전쟁 범죄 등에 대해서, 범죄자와 내가 동포라는 사실이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만약 '일본인'이라는 국민이, 가메이 가쓰이치로가 말하는 것처럼 공감에 의해(즉 공범에 의해) 통합된 집단이라면, 나는 그런 일본인일 필요가 없다. 이렇게 가메이 가쓰이치로가 사용한 '인간'과 '일본인'이라는 말과는 완벽하게 양립하지 않는 그런 방법으로, 나는 '인간'과 '일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nbsp; 다시 말하면 일본인을 분할하는 일이다. ......단순한 유죄가능성의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책임 단계에서 유죄의 정도나 전쟁범죄와 개인의 관련성을 탐색해 가는 일이다. 전쟁범죄자를 일본 국민 안에서 확실하게 떠미는 일이다. 일본인의 내실을 크게 변화시켜가기 위해서는 일본인을 통합시키기는 커녕, 일본인의 즉자적인 공동성에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본의 국민주체에 간섭하고 그 일본인 통합의 환상에 관여하는 일이다.

......


국민적 동일성으로 한정된 일본인 대 한국인 전 종군위안부라는 사회관계에서, 국민적 동일성과는 다른 주체적인 입장으로 한정된 관계로 이행할...

 

사카이 나오키, <일본, 영상, 미국> 중 325~328pp. (굵은 표시는 인용자)

 

과연 이런 일은 가능할까. 그럼 다음과 같은 응답은 어떤가.

 

두가지 조건들이 집단적 책임을 현존하게 한다. 나는 내가 행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나의 책임의 이유는 내가 자발적으로 탈퇴할 수 없는 그룹(집단적)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즉 나의 의지에 의해 탈퇴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십과는 전혀 다른 멤버십 말이다. ......

  모든 정부는 그 이전 정부의 선행과 악행에 책임을 지며 모든 국가도 과거의 선행과 악행에 대해서 마찬가지다. 이것은 심지어 그 전임자가 이미 시작해놓은 계약 동의의 신뢰성을 부정할 수도 있는 혁명 정부도 마찬가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의 지배자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은 샤를마뉴 대제부터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까지 프랑스가 해온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인수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은 내가 이 나라의 구성원이자 정치체의 대표인 하에서는 내 이름 아래 행해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들의 공에 대한 보상을 우리가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죄에 대해서도 늘 책임이 있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그들의 선행을 우리의 공으로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악행에 대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유죄는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인 동시에 엄격한 집단적인 책임으로부터 오로지 그 공동체를 떠남으로써만 탈출할 수 있는데 어떤 공동체에의 소속 없이는 누구도 살아갈 수 없으므로 탈출이란 하나의 공동체에서 다른 공동체로의 전환을, 그래서 어떤 종류의 책임을 다른 것으로 전환함을 단순히 의미할 수 있다.      

 

Arendt, H. 'Collective Responsibility', in Jerome Kohn(eds), Responsibility and Judgement(2003), Schocken Books, New York 중에서

 

아렌트에 의하면 다른 국가의 국민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립하는 집단적 책임이란게 있다.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특정되는 사법적 죄과가 아니라 구성원 전체에게 지워지는 정치적 책임이자 도덕적 책임을 가리킨다. 아렌트가 60년대 후반에 쓴 이 글을 알고 당연히 알고있을, 냉전 시대 내내 침묵했던 피해자들의 증언이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터져나온 90년대에 사카이 나오키는 위와 같이 국민공동체에 귀속됨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지워지는 탓에 수동적 함의를 가질 수 있는 '집단의 책임' 논의로부터 빠져 나와 능동적으로 반성하는 주체의 성립 가능성을 논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결론이란 전쟁범죄자를 일본 국민 안으로부터 분리해낸다는 급진적 주장이다. '나'와 전쟁범죄자들은 공범 관계가 아니며 그들을 우리 공동체로부터 밀어내는, 즉 '일본인'이라는 멤버십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인지라 사카이의 주장은 급진적인만큼 반동적이 되기 쉽다. 범죄자들을 추출 및 분리해냄으로써 '일본인' 공동체의 내부를 '정화' 혹은 '살균'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카이의 이러한 주장은 90년대 후반에 나온 우에노 치즈코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전쟁범죄 비판을 상기시킨다. 당시 우에노는 '일본인'이라는 국민국가의 국민 정체성보다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을 더 우위에 두는 주장을 전개했는데, 이를 두고 결과적으로 식민침략 및 제국주의 비판을 무력화하고 가해자를 면책하는 수사학적 전략이라 서경식이 비판한 바 있다. 맥락은 약간 상이하지만, 일본 내부로부터의 반성과 역사 청산을 통한 가해자 처벌과는 별개로 사카이의 논의 또한 최종적으로는 '일본인' 정체성의 동질성 강화로 (그의 용어를 빌리면) '전위'될 가능성이 있다. 공동성에 분열을 일으키고 통합이라는 환상에 관여해 혼란을 주는 일과, '분할'이나 '떠미는 일'이 서로 동등한 층위에 서는걸까. 아무리 봐도 양자는 동일한 뜻을 공유하지 않는다. 공동체 내부를 균열시키고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 어디까지나 내부에서 벌어지는 내부적 관점에서의 전개라면 '분할'이나 '떠미는 일'은 경계 획정을 이미 염두에 둔 이후의 논리 전개다. 시선과 관점에 있어 근본적으로 상이한 것이다. 또한 만일 이와 별개로 사카이의 주장이 어떤 방식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가능하다면 그때는 정말로 '결백한 일본인'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 경우 그러한 일본인은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될까(이는 추후 논의가 더 필요하다).

 
"역사적 여건을 전제로, 책임을 묻는 부름은 나에게 호소해 온다. 전쟁이 끝난 뒤에 태어난 일본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일본인으로서의 전쟁책임에서 도망갈 수 없다"(321). 아렌트와 거의 흡사해보이는 이 발언에서 사카이의 '진심' 혹은 진정한 '의도'를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일본 리버럴의 사상적 퇴락은 아닐까. 포스트콜로니얼하며 동시에 소수자 정치에 우호적으로 보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수동적이고 더 나아가 반동적이 되어버리는 일본 리버럴의 주장 말이다. 사카이는 집단의 책임을 논하는 아렌트와는 반대로 집단으로부터 개인으로 좁혀들어가는 과정을 상정하고 있다("집단으로서의 책임 단계에서 유죄의 정도나 전쟁범죄와 개인의 관련성을 탐색해 가는 일이다"). 개인적 책임을 특정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집단의 책임을 논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에노나 사카이 모두 국민국가적 정체성으로의 귀속을 개인의 내면을 일률적으로 환원하고 횡령하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무엇으로 (의도적) 오독하면서 이러한 국민국가 정체성으로 기우는 경향성을 극도로 꺼려한다. 하지만 국민국가적 정체성은 한 개인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얼마든지 그리고 매순간 끊임없이 변용되고 재구성되는 일종의 구성물이지만, 그 안에는 그 개인이 손쉽게 다룰 수 없는 것들이 상당하다. 국가, 민족, 성, 종교가 대표적이다. 그 중 국민국가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은 한 개인의 삶을 이루는데 있어 때로는 결정적인 것 그 이상의 점성 높은 구성물이다. 늘 의식하고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으며 내 삶의 경계를 한정하는 동시에 확장시키는. 하지만 우에노는 이보다 젠더가 더 유의미하다고, 그리고 사카이는 국민국가의 국민이 아닌 다른 관계를 통할 때 가해자-피해자 사이의 사죄와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일견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근대 이후의 인류는 국민국가를 디폴트 세팅으로 알고 살아왔다. 국민국가가 없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보자. 어쩌면 진정으로 그 세상에서는 전쟁을 포함한 어떠한 대규모의 집단적 가해-피해도 없을지 모른다. 또한 우에노의 젠더 혹은 사카이의 '정'의 공동체를 국민국가보다 우위에 둘 때 진정한 화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죄와 반성을 둘러싼 이 모든 갈등은 애초에 식민지배와 제국주의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는 다시 그 이전에 국민국가 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해결이 국민국가라는 인식적 지평을 양자가 공유하는 가운데 행해져야함은 너무나 분명하다. 

 

나에게도 '한국인'이라는 것은 '나'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른 집단에 대한 어느 집단의 가해 책임이 문제시되고 있는 곳에서는, 피할 수 없는 그 한 측면 때문에 '당신'으로 지목을 받는 것이다. 지목에 응답하는 것은 결코 "단일한 카테고리의 특권화나 본질화"가 아니다. 베트남 사람이 나를 "어이! 한국인!"이라고 지목할 때 "아니, 나는 남자입니다"라고 '나'의 다른 측면으로 응답한다면 그것은 얼버무리는 것이며 대화의 거부에 다름 아니다.

 

서경식,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둘러싸고 - 반半난민의 위치에서> 중에서

 

내셔널리즘 비판은 유효하며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자국의 과거 내셔널리즘이 야기한 전쟁범죄를 면책하려는 세력과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의도치않게(?) 공명하는 흐름은 일본의 논단 쪽에서는 이제 제법 익숙한 레퍼토리가 된 듯하다. 그것이 고의인지, '악용'되었는지는 시비를 가리기도 어렵거니와 그 이전에 이를 따지는 일 그 자체가 소모적이다. 공적 지면에 글을 쓰는 학자나 작가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에 대해 대체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한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우에노의 항변은 흥미롭다. 발언 내용의 설득력이나 정합성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 항변하는 어투 자체가 평소에 쓰는 지적 자의식을 한껏 휘두르는 '화장'한 문장과 달리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픈 의도와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못박아두기 위해서 반복하자면, 그것은 일본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내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가. 내 생각과는 달리 주장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235

그래도…… . ‘민족’이라고 하면 젠더를 무시한 것이 되고, ‘젠더’라고 하면 민족을 잊은 것이 된다는 ‘강요당한 대립’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을 “젠더를 최우선하는 사상”이라고 해석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오해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251 252

 

우에노 지즈코,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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