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 무리의 의견을, 대중과 미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이 들었을 때 뿐이다. 나이 든 사람은 이제 가까이 다가온 죽음과 더불어 혼자이며, 죽음에는 눈도 귀도 없으며, 그러니 죽음한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이제 마음 내키는대로 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 <삶은 다른 곳에> 중

 

여생이 길지 않기에 일체의 위선도 가식도 없이 마냥 솔직할 수 있다는건 장점일까 아닐까. <진짜와 가짜>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공동환상론>같은 주저들이 번역되지 않은 국내에서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지명도는 일정 정도 신화화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2차 문헌을 주로 통할 수 밖에 없는 현재 상황에서 요시모토에 온전히 한 장을 할애한 오구마 에이지의 <민주와 애국>은 그런 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오구마가 검토하는 학자나 비평가, 작가들 중에서 드물게 아니 거의 유일하게 부정적 평가를 받는 이가 바로 요시모토라는 점에서 이는 또다른 선입견을 낳을 위험이 있긴 하지만 <진짜와 가짜>를 오구마의 책보다 먼저 읽은 입장에서는 요시모토에 대한 그의 비평이 그다지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한마디로 <진짜와 가짜>에서 요시모토는 ‘지나치게 솔직하다’. 나이가 그쯤되면 이미 쌓은 명성과 무관하게 거리낄게 없게 되는걸까. 국가, 종교 등 모든 공적인 것을 거부한다는 오구마의 평가대로 만년에 내놓은 이 책에서도 요시모토는 생의 마지막 공적 발언일 수 있다는걸 의식이라도 한듯 전방위적으로, 마치 자기검열에서 해방된 것처럼,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보기를 포기한듯한 단견과 요설을 마치 현자의 지혜인양 늘어놓는다.

 

잘난 체하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중국도 피차일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상대도 하고 이쪽도 하는 측면이 있어서 일방적이 아니라는 점이 있습니다.
  중국은 당시 서유럽 국가에 많은 조계를 만들게 해놓고 왜 일본에만 침략이다, 침략이다, 하고 비판하느냐고 하면, 중국은 또 반박할 이유를 생각해야만 해서 서로 끝이 없을 겁니다.
  모든 각료를 데리고 참배하면 공적인 일일지 모르지만 혼자 참배하는 것은 사적인 일이라, 개인의 자유다, 주위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 일이 아니라는 것이 정당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전쟁을 아는 세대라서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전쟁이란 쌍방이 서로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라서 일본인은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일로 송구하게 여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96 97

 

지금도 식민지 출신자가 일본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규탄하는 사람은 많습니다만, 사실은 어땠을까요. 분명히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평등하게 대해준 사람도 많았을 텐데 그런 말만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 저의 실감입니다. 224

 

그런데 어리광이 심한 것의 이점 가운데 하나로, 일본의 여성이 얌전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 여성은 외국인과 결혼할까 말까 할 때도 어지간히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남편 나라로 가서 가정생활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본 여성은 그런 것에 겁이 많은 경향이 있겠지요. 그것은 어리광이라고 하면 어리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68

 

만약 진보적인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정당의 주인이 된 시점에서 대표 후보로서 자신과 대립한 사람을 여봐란 듯이 음지에 놓아두는 방식을 쓰는 법입니다. 사민당이나 공산당이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오자와 씨는 다나카 가쿠에이로부터 배운 정치 방식이 몸에 배었겠지요. ... 이제 오자와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좀더 포용력이 있었다는 인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보수적인 방식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보스 정치가 되기도 하는 점입니다. 108 109

 

열 길 물 속은 알지언정 알 수 없는게 한 길 사람 속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까마득하고 흐릿한건 결국 내 마음 속 한 길이다. 죽음이 멀지 않은 시점에서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겠다는 마음으로 저런 말(사망 몇 해 전에 나온 이 책은 구술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솔직함'이라기보다는 지적, 윤리적 태만(혹은 퇴행) 혹은 위선으로부터 벗어나려다 되려 위악으로 바뀐 것에 더 가까워보인다. 이렇게 되면 진솔함보다는 되려 진정성을 의심받기 쉽다. 처음 읽었을 때는 사후에 남을 자신의 명성과 평판마저 다 내려둔건가 싶었지만 그렇게 후대에 전해질 정도의 명성과 위신이 있기에 오히려 이런 발언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하다. 늘 그런건 아니겠지만 이미 축적해놓은 상징 자본이 크면 클수록 감수해야할 리스크가 적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말하는 '상징자본'에는 그간의 성취와 그에 수반되는 명성과 위신 뿐 아니라 연령도 포함된다. 한 인간의 생산성이 정점에 이른 뒤, 특히 은퇴 이후 시점부터는 연령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발언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공적 담론상의 의미도 줄어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익의 반대편이라는 뜻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리버럴'이라는 단어로 통칭해버리기에는 일본의 자유주의 진영 지식인들의 스펙트럼이 드넓고 그 개개인들의 입장이 실로 다양함을 깨달음과 동시에 번역본 텍스트(그것도 한 권)만 봐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배경 지식과 맥락(이를테면 요시모토가 견지해온 현실 정치에 대한 입장 등)을 놓치고있다는 확신도 다시금 강하게 든다. 일찍부터 '사상가'라고 불리면서 원로 대우를 받아온 이가 저런 사고를 하는 상황에서 일본 내 진보나 개혁 세력이 느낄 피로와 부담감이 어떨지도 살짝 알 것 같고. 그의 다른 책들이 궁금하다.

<높은 성의 사내>(1962)는 대체역사소설 장르에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있는 대표작이지만 추축국이 승리한 이후의 세계라는 설정이 주로 회자되는데 비해 구체적인 내용 해설이나 주제에 대한 비평, 해석을 찾아보기는 쉽지않다. 그래서 개별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펼쳐지다가 마지막까지도 합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끝나는 결말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답답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읽은건 대체 뭐였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걸까. 읽기 전보다 오히려 더 궁금한게 많아졌다. 

연합국이 패배하고 추축국이 승리한 세상, 독일과 일본이 각각 미대륙의 동, 서부를 분할 점령중인 가운데 주요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가 계속 병렬 진행된다. 일본 점령지역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산 앤티크 및 빈티지 골동품을 파는 칠던, 태평양연안 무역대표부 관리인 일본 관료 다고미, 친구와 함께 직접 빈티지 소품을 수공업으로 제작하는 사업을 시작한 유태인 프랭크 프링크, 그리고 프랭크와 이혼 후 독일과 일본 점령지 사이의 중립지역인 콜로라도에 머물고 있는 전처 줄리아나 프링크와 그녀와 우연히 만난 뒤 함께 여행길에 오른 이탈리아 출신 남자 조까지 이렇게 다섯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서로 한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무관하거나 작은 접점만을 가진 타인에 가깝다. 이렇게 따로 떨어져있는 이들 각자의 이야기가 한 챕터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옮겨다니며 병렬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이렇다 할 중심 줄거리는 잘 보이지 않으며 자연히 저자의 의도나 주제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조와 줄리아나는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 연인이 되고 같이 여행길에 오르는데 그러다가 장안의 화제인 소설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의 저자 호손 아벤젠을 만나러 가기로 한다. 소설 속 또다른 소설인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본래의 세계사와 유사한(그러나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세계상을 그리고 있다. 독일과 일본이 패전했다는 '설정'의 이 대체역사소설은 독일이 점령한 동부에서는 당연히 금서로 지정돼있고 저자 아벤젠은 위협을 피해 은둔중이라는 소문이 떠돈다. 두 사람은 그가 어떻게 이러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알고 싶어서 직접 그의 집, 바로 '높은 성'으로 향한다. 

한편 일본 무역대표부 관리인 다고미의 이야기는 그가 스웨덴에서 건너온 사업가 바이네스를 만나는데서 출발한다. 사업상 미팅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왔다고 하지만 사실 바이네스는 정체를 감춘 독일 정부의 요원으로서 일본 정부의 한 고위 관리를 만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독일이 일본을 침공하려는 계획, 한마디로 핵을 이용한 3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물론 다고미는 거의 종반에 이를 때까지는 바이네스의 이런 숨은 의도를 몰랐고 결국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숨은 진실을 알게되면서 어떤 각성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칠던은 다고미가 자주 찾는, 미국 골동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의 주인이다. 주요 캐릭터이긴 하지만 칠던의 역할은 살짝 군더더기에 가깝다. 그는 소설 내에서 일본이 미국을 점령했다는 설정을 계속 환기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패전국 미국을 향한 승전국 일본인의 온갖 페티시적 집착(이는 지금도 여전한 서양인의 일본 문화 페티시에 대한 정확한 거울상이자 비꼬기임을 알 수 있다)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자신들이 쓰러뜨린 미국인이 전쟁 전에 쓰던 온갖 물건들을 집에 수집해놓고 즐기는 승전국 국민의 여유와 호사스러움을 충족시키기위해 그들에게 물건을 공급하거나 소개하는 패전국 상인이라는 구도가 설정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칠던의 내면에서는 동요가 계속된다. 승전국 국민에게 굴종한다는 자괴감,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일본인보다는 문화적으로 더 교양있고 우월한 백인종이라는 정신승리가 그것인데 여기서 아예 더 나아가 칠던은 결국 (유사)인종차별주의로까지 이른다. 

 

백인종만이 창의력을 갖고 태어났어. 칠던은 생각했다. 그런데도 백인의 피를 가진 내가 이 두 사람을 위해 바닥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다니. 만일 우리가 이겼을 경우를 생각해 봐! 저들은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못했을거야. 일본은 사라지고 미합중국은 세계를 통틀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빛나겠지. 


프랭크 프링크는 저러한 일본인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빈티지처럼 보이는 위조품을 만들어 칠던의 가게를 포함해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가 적발되어 체포되지만 유태인인 그를 독일로 직접 데려가 처형하려는 독일 정부의 협조 요청을 다고미가 거부하고는 훈방시킨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뒤 다시 제품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프랭크 부분의 결말이다. 

최종적으로 딕이 아마도 이 소설에서 진짜 하고 싶었을 이야기는 그래서 줄리아나와 조의 몫으로 돌아가는데, 그녀는 조가 사실은 정체를 숨긴 나치로서 아벤젠을 죽이려는 계획임을 알고는 머물던 호텔방에서 그를 살해하고 빠져나와 홀로 파벤젠을 만나는데 성공한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파벤젠이 소설의 거의 대부분을 사실은 주역으로 점을 쳐서 썼음을 알아내고는 가장 중요한 최종의 질문, 즉 왜 아벤젠으로 하여금 그 소설을 쓰게 했는가를 다시 한번 주역에게 묻고 마찬가지로 점괘를 통해 그 대답을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답이란 그 소설이 바로 '내면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 책이 진실이라는 겁니까?"
"그래요"
줄리아나가 말했다. 
아벤젠이 화를 내며 말했다.
"독일과 일본이 전쟁에서 졌다고요?"
"그래요."
아벤젠은 책을 덮고 벌떡 일어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외면하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줄리아나가 말했다. 
한참동안 그는 생각에 잠겼다. 줄리아나는 그의 눈빛이 공허해지는 걸 알아차렸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줄리아나는 생각했다.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혔어. 그러더니 그의 눈이 다시 빛났다. 그는 툴툴거리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군."
아벤젠이 말했다.
"믿으세요."
줄리아나가 말했다.
그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믿지 못하시겠어요? 정말로요?" 

 

<유빅> <파머 알드리치와 세 개의 성흔> <기억을 도매가로 팝니다>등 다른 작품들에서 이미 수차례 변주해온, 필립 K 딕의 머리에서 늘 떠나지 않던 주제, 즉 실재하는 가상 세계(평행 우주)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자신도 허수아비일지 모른다는 정체성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과 혼란이 여기서 또 한번 반복된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가상 세계에서 그 사실을 모른 채 일상을 영위하던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정체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헐리웃 영화처럼 적극적으로 그러한 현실을 타개하기위해 뭔가를 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초월, 각성, 환각 등 무엇이라 부르건 그러한 영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본작에서도 맨마지막에 저렇게 암시만으로 끝내는 것이 모자라다고 여겼는지 후반부에 총격전을 벌인 뒤 도주하던 다고미가 짧게나마 느닷없는 시공간 이동을 체험한다. 분명히 전부터 알던 장소였건만 그동안 알고있던 것과는 풍경도, 사람들의 외양도 달라진 것이다.

 

주요 인물들은 서로 외떨어져있고 필립 K 딕 소설이 대개 그러하듯이 격렬한 갈등이나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다. 다고미가 독일 공작원들을 사살하거나 줄리아나가 조를 살해하는 장면이 그나마 액션이라 할 수 있으나 서술은 건조하며, 그래서 향후 두 국가간 핵전쟁이 벌어졌는지의 여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 이 소설에서 인물들은 대체 뭘 할까. 그들은 생각을 하고 독백을 한다. 그리고, 점을 친다. 인종, 국적, 직업 등 천차만별이지만 고민과 결정의 순간마다 그들은 주역에 의존한다. 주체적 결단을 미루는 회피적 성격은 그들이 사실은 가상의 세상을 사는 꼭두각시들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일견 이해가 된다. 고도의 알레고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긴 누가 만든 어떤 세상인걸까.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필립 K 딕이라는 작가의 <높은 성의 사내>라는 소설 속 세상이라는 답은 가장 즉각적이면서 또 시시하지만 동시에 최종적인 답일 수 있다. 이 소설 자체가 소설 쓰기에 대한, 그리고 소설을 쓰는 작가에 대한 비유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누군가가 만든 세트나 소설이고, 나는 다른 사람이 꾸는 꿈 속의 나비 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의심은 어쨌든 짜릿함을 선사한다. 현재의 삶이 비루하고 고통스러울수록 더 그럴테고. 값싼 자기 위안이기 십상이지만 적어도 필립 K 딕에게는 그렇지 않았던가보다. 줄리아나에게는 가짜 세상을 살고 있다는 깨달음이 '내면의 진실'이었고 자신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돼지나 물고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내면의 진리'를 다고미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주역, 약물, 계시 등 딕이 생전에 탐닉하고 경험했다는 것들 그리고 줄기차게 그가 반복했던 소재와 플롯은 적어도 딕이 어지간히 현세로부터 벗어나거나 눈 앞의 현실을 피하고 싶어했음을 짐작케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다른 (대체) 역사소설의 작가들처럼 거대하고 치밀한 세계관을 설정하거나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재미를 위해 이 소설을 쓴 건 아닌듯하다.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휘어나갔을지를 외삽하거나, 혹은 속류 대체역사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밀리터리 매니아처럼 지엽적이거나 도착적 관심보다는 그저 내가 안다고 믿었던 세상의 실재성 그 자체를 뒤흔드는데서 오는 즐거움과 충격에 독자보다도 그 스스로가 더 깊게 빠져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 딕이 집필할 당시의 현실 정치에 대한 암시나 코멘터리, 혹은 풍자가 있을까.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재미는 그런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풍부하고 상세한 설정 같은 것 없이도 이 소설은 얼마든지 그 배경을 1차 대전으로, 남북전쟁으로, 독립전쟁 등으로 쉽게 바꿔 쓰는게 가능하다. 대략적이고 거시적인 설정만 정해놓은 다음 그 안에 접점이 별로 없는 여러 인물의 에피소드들을 병렬로 늘어놓다가 결국 맨마지막에 알고보니 이게 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가짜 세상이었구나하면서 뒤집어버리는 썰렁한 반전에 이 소설의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즐길 것은 스토리텔러의 특권 그 자체에 있는 듯하다. 고전을 쓴 대문호들처럼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지도, 판타지 소설가들처럼 장구한 세계를 창조하지도 않았지만 그 대신 딕은 인물들이 뛰노는 무대를, 그리고 자신이 쓰고 있는 글 자체를 자꾸 뒤집어 엎는다. 자신이 만들어놓고는 곧바로 다시 그것을 부수어버리는데서 오는, 창조주만이 독점하고 있을 쾌감과 재미에 그는 '중독'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남이 만든 물건을 중개하고 판매할 뿐인 칠던은 이렇다할 결말도 없이 흐지부지 본문에서 사라진 반면 가짜일지언정 두 손으로 직접 뭔가를 만드는 프랭크에게는 다시 작업대 앞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결말로 주어진다. 가짜 골동품을 만드는 창작자라니, 너무 직접적이긴하다. 그에 반해 정작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아벤젠은 알고보니 주역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아니 맡겼다기보다는 그저 타자 기계에 지나지않은 또 한마리의 나비였을 뿐이다. '높은 성의 사내'라는 별명과 함께 은둔한다는 소문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사실은 평지에서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하고 있었듯이 아벤젠에게는 진실된 것이 거의 없다. 이렇듯 창조주로서의 창작자만이 갖는 쾌락은 또한 등장인물들에게 저마다 딕 본인의 서로 다른 페르소나를 각기 부여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점차 인지적 각성을 겪는 다고미와 인물들 중 거의 유일하게나마 마지막에 통찰력을 보여준 줄리아나는 당연하다. 그러나 역시 다른 세 인물과는 별다른 연결점이 없고 비중도 작으며 거기에 묵묵히 다시 작업대 앞에 서는 심심하고 쉬이 잊힐법한 결말을 맞는 프랭크야말로 또 한 명의 진정한 창작자로서 딕의 그림자가 제일 넓게 드리워져있다. 아침이 되면 오늘 주어진 일을 시작하는 노동자의 루틴을 유지하는 그런 창작자의 그림자가.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스스로 비틀고 뒤트는 고약한 재미에 푹 빠져있다한들 완전히 부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한가지 확실한, 바로 그것을 딕은 찾고 있었던게 아닐까.

 

프랭크는 코트를 의자 위에 걸쳐 두고 절반쯤 완성한 은제품들을 들고 작업대로 향했다. 굴대에 연마용 양모를 끼우고 모터를 켰다. 프랭크는 연마기에 연마제를 바르고 안구보호용 마스크를 착용하고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제품들을 차례로 연마기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일단 토론중인 주제에 관심이 생기면 다른 일은 전부 잊어버린 채 전적으로 그 문제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이었다. 한번은 모럴 사이언스 클럽의 모임이 끝난 뒤 마이클 울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빠른 속도로 달리는 미군 트럭이 그들 옆을 바짝 붙어 지나갔고 그 바람에 울프의 가운이 휘하고 들렸다. "저놈의 트럭들, 빨리도 달리는군"하고 울프가 투덜거렸다. 그런데 트럭이 그렇게 가까이 지나갔다는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비트겐슈타인은 울프의 말이 모럴 사이언스 클럽의 발표에 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하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말이 이 문제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는걸"    

<비트겐슈타인은 왜> 50 51p

"전후의 잣대를 전전의 사상에 들이밀 수 없다는 무의미함이었다. 그리고 서구로부터 온 빛으로는 일본 내부의 실감을 비출 수 없다는 무의미함이기도 했다.

 

다자이는 수문이 열렸는데도 자신의 수위를 유지한다. 자기 아닌 것에 영향받지 않는다. 전후라는 시대적 추세로 전전 사상의 가치를 재단하지 않는다.

 

카또오는 여기서 자유주의사관에도 혁신파에도 없는 논점을 제시한 것이다. 전전은 전후로 잴 수 없다." 422

 

가토 노리히로의 <패전후론>에서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위와 같이 말한 이가 있다. 그러면서 그 저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역사주체논쟁을 두고 내가 지금 어떻게 발언하든지 당시 그 논쟁에 참여했던 논자들이 꺼낸 발언의 무게감에는 못 미친다. 그것은 아무리 당시의 텍스트를 섭렵해본들 그 논쟁이 벌어진 시기의 사회적 긴장감은 결코 내가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물음은 되돌아온다. 나는 무엇에 근거해 그 논쟁에 진입할 수 있는가. 425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는 이런 주장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일찍이 다카하시 데쓰야가 이 논점에 대해서 나름의 답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사후적 판단을 '사건이 끝난 후에 생겨난 지혜'라고 배척한다면 어떤 '재심'도 불가능하게 된다. 모든 '재심'은 사후적이고 원래 모든 심판은 '사후적'이다. ... 통상적인 모든 재판은 '사후적'이다. ... '판단'은 어떤 경우에도 사건에 대해 시간적으로 늦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역사에서의 심판이 사후적이라는 점은 심판의 본질 구조에 속하며 오히려 이 점은 심판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절대성이나 초월성과 결부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로부터 역사를 다시 심판하는 일이야말로 역사의 재심일 것이다."    <역사수정주의>중에서

 

사후적 판단을 배척한다면 재심을 포함한 어떠한 사법 재판도, 그리고 역사 서술도 불가능하다. 지식인이 갖기 쉬운 회의주의적 경향, 섣부른 판단에 대한 저어와 주저함 그리고 당시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하고 존중하려는 태도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결국 아무것도 하지않게 하는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퇴행적 논리가 되기 쉽다. 치열한 토론과 논전을 주고받으면서 쟁점을 더욱 분명히 규정하고 그에 대해 각자의 근거와 논리가 대립한 끝에 잠정적 판단에 이르는 일 자체를 이제는 더이상 지식인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걸까.

 

무엇보다 저자에게 묻고싶다. '전전은 전후로 잴 수 없다'는 주장이 정말 자유주의사관에도 혁신파에도 없는 논점인가. 그 시절에는 제국주의가 국제 사회의 일반적 원칙, 통상적으로 '국제법'에 가까웠기에 지금의 전후민주주의 입장에서 과거 제국주의 시기의 과오를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자유주의사관을 포함한 일본 우익의 단골 레퍼토리가 아니었던가. '그때는 모든 선진 국가가 식민지를 경영했고 더 많은 식민지를 얻기위해 전쟁을 벌였고 전장의 군인을 위한 성적위락시설을 운영했으며' 등등의 판에 박힌 레퍼토리들.

 

가토가 마련했다는 외부도 내부도 아닌 공백지대에 마련했다는 '자기의 자리'는 도대체 뭘까. 그게 겨우 사후판단불가라는 깨우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무나 앙상하다.



출처: https://tweedy.tistory.com/409 [tweedy blog]

"전후의 잣대를 전전의 사상에 들이밀 수 없다는 무의미함이었다. 그리고 서구로부터 온 빛으로는 일본 내부의 실감을 비출 수 없다는 무의미함이기도 했다.

 

다자이는 수문이 열렸는데도 자신의 수위를 유지한다. 자기 아닌 것에 영향받지 않는다. 전후라는 시대적 추세로 전전 사상의 가치를 재단하지 않는다.

 

카또오는 여기서 자유주의사관에도 혁신파에도 없는 논점을 제시한 것이다. 전전은 전후로 잴 수 없다." 422

 

가토 노리히로의 <패전후론>에서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위와 같이 말한 이가 있다. 그러면서 그 저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역사주체논쟁을 두고 내가 지금 어떻게 발언하든지 당시 그 논쟁에 참여했던 논자들이 꺼낸 발언의 무게감에는 못 미친다. 그것은 아무리 당시의 텍스트를 섭렵해본들 그 논쟁이 벌어진 시기의 사회적 긴장감은 결코 내가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물음은 되돌아온다. 나는 무엇에 근거해 그 논쟁에 진입할 수 있는가. 425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는 이런 주장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일찍이 다카하시 데쓰야가 이 논점에 대해서 나름의 답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사후적 판단을 '사건이 끝난 후에 생겨난 지혜'라고 배척한다면 어떤 '재심'도 불가능하게 된다. 모든 '재심'은 사후적이고 원래 모든 심판은 '사후적'이다. ... 통상적인 모든 재판은 '사후적'이다. ... '판단'은 어떤 경우에도 사건에 대해 시간적으로 늦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역사에서의 심판이 사후적이라는 점은 심판의 본질 구조에 속하며 오히려 이 점은 심판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절대성이나 초월성과 결부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로부터 역사를 다시 심판하는 일이야말로 역사의 재심일 것이다."    <역사수정주의>중에서

 

사후적 판단을 배척한다면 재심을 포함한 어떠한 사법 재판도, 그리고 역사 서술도 불가능하다. 지식인이 갖기 쉬운 회의주의적 경향, 섣부른 판단에 대한 저어와 주저함 그리고 당시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하고 존중하려는 태도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결국 아무것도 하지않게 하는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퇴행적 논리가 되기 쉽다. 치열한 토론과 논전을 주고받으면서 쟁점을 더욱 분명히 규정하고 그에 대해 각자의 근거와 논리가 대립한 끝에 잠정적 판단에 이르는 일 자체를 이제는 더이상 지식인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걸까.

 

무엇보다 저자에게 묻고싶다. '전전은 전후로 잴 수 없다'는 주장이 정말 자유주의사관에도 혁신파에도 없는 논점인가. 그 시절에는 제국주의가 국제 사회의 일반적 원칙, 통상적으로 '국제법'에 가까웠기에 지금의 전후민주주의 입장에서 과거 제국주의 시기의 과오를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자유주의사관을 포함한 일본 우익의 단골 레퍼토리가 아니었던가. '그때는 모든 선진 국가가 식민지를 경영했고 더 많은 식민지를 얻기위해 전쟁을 벌였고 전장의 군인을 위한 성적위락시설을 운영했으며' 등등의 판에 박힌 레퍼토리들.

 

가토가 마련했다는 외부도 내부도 아닌 공백지대에 마련했다는 '자기의 자리'는 도대체 뭘까. 그게 겨우 사후판단불가라는 깨우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무나 앙상하다.



출처: https://tweedy.tistory.com/409 [tweedy blog]

"전후의 잣대를 전전의 사상에 들이밀 수 없다는 무의미함이었다. 그리고 서구로부터 온 빛으로는 일본 내부의 실감을 비출 수 없다는 무의미함이기도 했다."

"다자이는 수문이 열렸는데도 자신의 수위를 유지한다. 자기 아닌 것에 영향받지 않는다. 전후라는 시대적 추세로 전전 사상의 가치를 재단하지 않는다."

"카또오는 여기서 자유주의사관에도 혁신파에도 없는 논점을 제시한 것이다. 전전은 전후로 잴 수 없다."


가토 노리히로의 <패전후론>에서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위와 같이 말한 이가 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역사주체논쟁을 두고 내가 지금 어떻게 발언하든지 당시 그 논쟁에 참여했던 논자들이 꺼낸 발언의 무게감에는 못 미친다. 그것은 아무리 당시의 텍스트를 섭렵해본들 그 논쟁이 벌어진 시기의 사회적 긴장감은 결코 내가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물음은 되돌아온다. 나는 무엇에 근거해 그 논쟁에 진입할 수 있는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이런 주장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가토를 일관되게 비판한 다카하시 데쓰야가 이 논점에 대해 이미 나름의 답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사후적 판단을 '사건이 끝난 후에 생겨난 지혜'라고 배척한다면 어떤 '재심'도 불가능하게 된다. 모든 '재심'은 사후적이고 원래 모든 심판은 '사후적'이다. ... 통상적인 모든 재판은 '사후적'이다. ... '판단'은 어떤 경우에도 사건에 대해 시간적으로 늦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역사에서의 심판이 사후적이라는 점은 심판의 본질 구조에 속하며 오히려 이 점은 심판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절대성이나 초월성과 결부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로부터 역사를 다시 심판하는 일이야말로 역사의 재심일 것이다.    <역사/수정주의>중에서


사후적 판단을 배척한다면 재심을 포함한 어떠한 사법 재판도, 그리고 역사 서술도 불가능하다. 지식인이 갖기 쉬운 회의주의적 경향, 섣부른 판단에 대한 저어와 주저함 그리고 당시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하고 존중하려는 태도는 그 의도와 달리 아무것도 하지않게 하는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퇴행적 논리로 변질되기 쉽다. 토론과 논전을 주고받으면서 쟁점을 더욱 분명히 규정하고 그에 대해 각자의 근거와 논리를 대립한 끝에 옳고 그름을 가르는 잠정적 판단에 이르는 일 자체를 언제부터인가 더이상 지식인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걸까.

다른 무엇보다 '전전은 전후로 잴 수 없다'는 주장이 정말 자유주의사관에도 혁신파에도 없는 논점인가. '그 시절에는 제국주의가 국제 사회의 일반적 원칙이자 통상적인 '국제법'에 가까웠기에 지금의 전후민주주의 입장에서 과거 제국주의 시기의 과오를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자유주의사관을 포함한 일본 우익의 단골 레퍼토리가 아니었던가. '그때는 모든 선진 국가가 식민지를 경영했고 더 많은 식민지를 얻기위해 전쟁을 벌였고 전장의 군인을 위한 성적위락시설을 운영했으며' 등등의 판에 박힌 레퍼토리들.

가토가 말하는 외부도 내부도 아닌 공백지대에 마련했다는 '자기의 자리'란 도대체 뭘까. 주변국으로부터의 사죄 요구라는 외부의 목소리도,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며 폐쇄적 국민주의를 고양하려는 내부의 목소리도 모두 거부하겠다는 그의 주장으로부터 누군가는 또다른 생산적 논의가 시작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본 것 같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깨달음이 고작 사후판단불가라면 이는 너무 앙상하다. 영원한 불가지로 남는 총체적 진실의 절대성이라는 명제는 진실을 탐구하려는 인간과 인간의 노력을 한없이 왜소하게 만들뿐 아니라 더 나아가 진실을 감추는데까지 기여할 수 있다. 어떤 논쟁에 진입하기위한 조건이라는게 있다면, 완전한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제한적 상황과 한계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행해지는 노력을 기꺼이 인정한다는 상호간의 동의가 아닐까. 

"천황의 발병 이후 영국의 두 대중지가 선정적인 표현으로 천황의 전쟁책임을 규탄했던 것에 대해 일본 외무성이 해당 신문만이 아니라 영국정부에게까지 항의를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때 외무성의 대응은 국제적인 실소를 자아냈었다. 대중지의 논설에 대해 어떤 권한과 책임도 갖지 못한 영국정부에 대해 항의한 것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 중대한 착오는 대중지의 선정적인 표현이 일본인을 매멸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천황의 전쟁책임에 관한 그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점이다. 만일 어느 대중지의 논설을 사실무근의 매욕이라고 한다면 천황에게 전쟁책임이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일부러 중심점을 애매하게 만들어 정서적인 반응을 하게 되면 그것은 사실상 영국 대중지의 비판이 정확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된다. 긁어 부스럼만들기란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킨다. 정부는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해 모른다는 시늉을 하려고 이 정도의 추태를 부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정부의 행동은 일본인은 정서적이라 이성적인 사고가 나오지 않는다는, 구미에 강하게 남아있는 예의 스테레오타입을 보강시켜줄 뿐이다."

 

사카이 나오키, <사산되는 일본어, 일본인>, 165p

탐정 소설을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왔던 부분이 있다. 집이나 건물 안에 들어갔다가 우연치않게 시체를 마주한 주인공 탐정이 그 자리에서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이어질 전개와 상관없이 자문해본다. 왜 탐정은 이런 선택을 하는걸까.

 

나는 방들을 모두 돌아다녔다. 주방을 살펴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채프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식탁 밑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나온 배설물과 구토물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시체에는 시체 특유의 부동성이 있다. 거의 초자연적인 그 부동성은 거기에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영혼이 없는 육신, 단순한 살과 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를 반듯이 눕힌 다음 맥을 짚어보았다. 조용했다. 모든 것이 죽어 있었다.
……
나는 거실로 돌아가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오래지 않아 도착할 것이다. 경찰은 누군가가 이미 죽었을 때는 절대로 꾸물거리지 않는다.

 

 

첫번째 가설, 그냥 빠져나온다한들 어떤 식으로든 사실은 알려지게 마련인지라 누명을 쓸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cctv 이전의 시대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냥 현장을 몰래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밖으로 알려지기 마련이므로 괜한 위험을 자초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진범이 처음부터 사전에 그렇게 되기를 계획해놓고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목격자는 언제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두번째, 경찰에 알림으로써 현장을 최대한 빠르게 훼손당하지 않은 채로 보존할 수 있다. 공권력의 힘을 빌려야 하나라도 더 많은 관련 증거를 찾거나 보존할 수 있다. 사립 탐정이 공권력에 비해 열악한 조건에 놓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므로 대부분의 탐정 소설에서 말로는 치고박을지언정 탐정은 경찰과 수시로 연락을 하며 사실상 공조에 가까운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자신이 직접 신고함으로써 결백도 알리고 이런저런 정보도 공유하게 된다면 나쁠 게 없는 선택인 셈이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세번째 가설은 순전한 내 상상이다. 탐정이 탐문하러 가는 곳마다 우연치않게 시체를 마주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번번이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혹시 탐정이 살인자라면? 허를 찔러 역으로 자신이 직접 신고해서 용의선상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같은 일이 여러번 반복되면 그때부터는 경찰도 탐정을 향한 의심을 거둔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렇다면 독자가 읽고있는 그 소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후 그는 계속 탐문을 이어가고 이런저런 역경을 겪은 끝에 살인범을 포함해 공모자 등 일당을 소탕하고 전모를 밝혀내지 않는가. 하지만 한 시기 미국에서 쏟아진 이 탐정 소설들, 정확히는 일인칭 탐정 소설 자체를 의심해봐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소설들은 곰곰히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어쩌면 장르와 무관하게 모든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라는게 그럴지도 모르지만. 도대체 이 탐정들은 지금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건가. 특정 청(독)자를 향해서 말하는건가 아니면 그저 혼자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는 중인가.

 

시제를 고려하면 이 문제는 더 알쏭달쏭하다. 탐정들은 소설 속 모든 사건 전개가 다 끝난 후 그러니까 사건의 최종 해결 이후의 시점에서 처음부터 일을 되짚어 회고하는 중인가 아니면 현재진행중으로 겪는 일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중인가. 일단 후자가 아님은 원문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 시리즈나 이를 정통으로 계승 및 변주했다고 할 수 있는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 전부 단순 과거형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들은 사건이 최종 해결된  후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간 다음부터 순행하는 진술 형식임을 보여준다. 실상 내용 전개는 현재 진행형 시점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과거와 현재 시제가 편의에 따라 같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시제보다 한층 중요한건 도대체 이 발화가 누구를 향한 것이냐는 의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이 탐정은 누구를 향해 이렇게 소상히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말하고 있는걸까. 이게 단순 발화가 아니라면 탐정이 쓴 글인걸까. 즉 탐정이 곧 작가인걸까. 일찍이 코넌 도일은 왓슨이 자신이 홈즈와 겪었던 일을 일지처럼 글로 써서 출판을 했고 독자가 읽는 것이 바로 왓슨이 쓴 책이라는 설정으로 이 난점을 돌파해낸 바 있다. 그런데 이 고독한 미국 서부 탐정들의 끝날 줄 모르는 길고 긴 독백은 누구를 향한 걸까. 지금 출판된 이 책을 읽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정한걸까 아니면 그저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독백인걸까. 혹은 독자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존재 자체를 알 수도 없는, 탐정 본인의 눈 앞에 있고 오직 자신만 볼 수 있는 어떤 특정 대화 상대를 앞에 놓고 말하는 중일까.

 

무의식적인 자기와의 대화냐 아니면 불특정다수인 독자 일반 혹은 특정인이라는 유무형의 청자를 앞에 놓고 하는 발화인지의 구별은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간에 지금 자신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한 거짓 진술을 탐정이 하고 있다면 말이다. 이후 그는 사건의 선후관계, 시간 순서, 인물의 동선, 행적, 그들의 동기등을 잘 짜맞추어 직접 창작한 하나의 서사를 읊는다. 자신의 범죄만은 완벽히 숨긴 채. 그렇다면 이 소설들이 과거 시점으로 쓰인 것도 일견 이해가 된다. 모든 일이 완결된 이후에야 이렇게 조리가 서는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테니까.

 

너무 말이 많은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버벌 킨트처럼. 이것이야말로 일인칭 탐정소설을 읽을 때 제일 먼저 주의했어야 할 계율인지도 모른다. '못미더운 화자'의 문제에는 예외가 없다. 개인적 동기에 의한 범죄를 저지르고는 그 사건의 가짜 해결까지 직접 해냄으로써 의뢰인으로부터 사건 의뢰비까지 덤으로 청구받는 이중계략. 이런 영악한 탐정이 나오는 소설이 실제로 있었는지 모르겠다.

 

p.s 1950년대에 쓰인 글이지만 일찌감치 에도가와 란포가 '탐정이 범인'인 소설을 정리해놓았다. 그 글에서 언급된 이런 유형의 소설 목록은 대략 다음과 같다. 르블랑의 <813>, 르루의 <노란 방>, 포의 <네가 범인이다> 이스라엘 쟁월의 <빅 보우 사건> 그리고

"이 트릭은 쟁월, 르루, 르블랑 이후에도영국의 필딩, 미국의 라인하트, 영국의 크리스티, 미국의 퀸 등의 장편과 체스터턴의 단편(2편)에서도 거듭 사용되었다. 일본의 작가 가운데서는 하마오 시로가 한 장편소설의 중심 트릭으로 사용했다."

처음 하루키를 읽은건 군시절이었다. <무라카미 아사히도>로 대표되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이 곁들여진 80년대 에세이들의 세 권짜리 편집본이었다. 입대 후 반 년만에 처음으로 손에 잡은 책이었던지라 한 장 한 장 거의 흡수하듯이 읽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내용뿐만 아니라 책을 읽던 주말 오후 내무반 정경과 분위기까지도 어렴풋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고 원서에 맞추어 편집된 개정판을 들여놓고도 여전히 이 책들도 갖고 있다.

 

지금까지도 장편과 단편을 포함한 대부분의 하루키 소설을 읽지 않았고 가끔 어쩌다 집어든 것들도 전부 실망스러웠지만(하루키와는 정반대 스타일의 소설과 작가를 좋아한다) 그 첫기억의 강렬함 때문인지 지금도 그의 자칭 '에세이', 정확히 말하면 산문(또는 '잡문')을 꼬박꼬박 챙겨읽는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고 일반적이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왜 그럴까. 그가 쓴 수많은 산문 중에서도 유독 80년대 에세이들을 주기적으로 다시 뒤적이는건 다른 무엇보다 바로 그 물씬한 80년대 분위기 때문이다. 윗대가리가 바뀌었을뿐인 '신군부' 정권 하에서 여전히 온갖 권위주의와 그로 인한 부조리로부터 좀체 헤어나오지 못하던 한국의 80년대가 아니라 플라자 합의로 대표되는 유례가 없는 경제 호황으로 인해 물질적으로나 여유롭던 일본의 80년대 말이다. 경험해보지도 못한 80년대 일본을 그리워한다니 이게 말이 되나. 지금보다 한참 젊었던 재기 넘치는 30대의 하루키, 거기에 21세기인 지금보다도 더 여유롭고 윤택했던 버블 시기의 일본, 여기에 그때까지 나온 친숙하기 짝이 없는 온갖 영화와 대중 음악의 고유명사들까지 합쳐지면 노스탤지어가 물씬하다. 그렇다. 경험해보지도 않은 80년대 일본을 그리워하는게 가능하다. 너무 친숙하니까. 반면 한국의 80년대는 어떤가. 군부독재 타도가 시민 사회 공동의 목표였던 엄혹한 그 시절 한국에서 시시껍절한 대중 영화와 펄프 소설과 팝음악의 고유명사들을 나열하면서 하나마나한 썰렁한 농담같은 글을 쓰는 작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 시절에 유년기를 통과한 사람으로서 어렴풋한 기억에 따르자면, 한없이 진지한 나머지 지금보면 80년대보다 훨씬 이전인듯한 '낡은' 느낌의 리얼리즘이 지배하던 80년대 한국 (대중) 문화계보다는 친숙한 고유명사와 트리비아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하루키의 산문에서 오히려 친구와 대화하는듯한 반가움과 공감(그리고 때로는 약간의 반감)을 느낀다. '아, 그리운 80년대' 같은 장탄식과 함께 잠재해있던 퇴행의 욕구가 고개를 들며 숨통을 틔우는 느낌을 솔직히 부정하지 못하겠다.

 

이들 '에세이' 속 하루키가 묘사하는 80년대, 정확히 말하자면 80년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잔뜩 들어차는 것이다. 칙칙한 내무반 안에서 전투복을 입고 이 책들을 읽던 시절보다는 오히려 전역 후 거듭 읽을수록 이런 마음은 더 강해졌다. 인터넷은 커녕 pc도 보편화되기 이전, 스마트폰은 커녕 개인 휴대폰도 보급되기 이전, 음악을 들으려면 라디오를 틀거나 레코드 가게로 발품을 팔아야하고 영화를 보려면 극장은 못가도 최소한 비디오 가게는 직접 찾아가야하던 시절, 다 큰 성인 남성 하루키가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 사소한 것들에 관해, 그러니까 이사에 대해, 두부를 먹는 방법에 대해, 자꾸 잃어버리는 지하철 표에 대해, 그리고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왜 최악인지에 대해 주절주절 몇 주씩이나 계속 떠드는걸 보면서 저렇게 사소한 것에 열중하는, (내가 보기에) 하루키 문학의 본령인 의식주의 영위에 집중하는 그 라이프스타일을, 그렇게 사소한 일에서 작은 행복을 찾느라 시정에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듯 보이는 그런 삶의 양식을 강렬하게 갈구했다. 아무리봐도 퇴행의 욕망이나 감각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가 쓴 글이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하지만 국경과 언어 장벽을 떠나 공감하면서도 이것이 80년대 일본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이었기에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점 또한 읽을 때마다 분명하게 재확인한다. '일억총중류'가 온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딱히 궁핍함은 거의 보이지않는, 설사 물질적으로 (상대적으로) 부족할지언정 심리적으로 여유로운, 글에서마저 한껏 느껴지는 그 시대 일본의 공기는 우울과 공황을 마치 감기처럼 달고다니며 만인이 불안에 떠는 지금의 저성장시대에 재현하기 어렵다. 지금 일본에서도 이런 식의 잡문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드물지 않을까. 작금의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가 쓸 수 있는 '잡스러운' 문장이란 무라카미 아사히도 같은 평범한 일상 속 사소하디 사소한 쇄말적 재미로의 탐닉보다는 기어이 어디론가 실제로 멀리 떠나, 그러니까 말그대로 일상으로부터 '도피' 내지 '대피'를 해야 쓸 수 있는 여행기나 '감상기' 또는 집단 테라피를 대체하는듯한 현실 '회피' 목적의 '힐링 에세이류'정도 밖에 남지 않은게 아닐까.

 

누가 봐도 이제는 노년의 작가 하루키가 요즘 쓰는 잡문이 80년대와 달리 고민 상담, 직업 경력이나 유년기에 대한 회고, 아니면 남들 다 하듯이 외국 여행기를 쓰는 것으로 바뀐건 그가 누군가를 상대로 인생에 대해 충고하거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만한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시대의 흐름을 순리대로 따른 결과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일단 젊었고, 제대로 된 장편을 쓰겠다며 전업 작가가 될만큼 패기만만했고, 아무렇지않게 이런저런 소소하지만 확실한 즐거움을 늘어놓던 30대의 재기 넘치던 하루키와 이룰거 다 이루고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입에 오르내리는 70대의 '대작가' 하루키에게 요구되는 작가로서의 기대치(현실 사회에 대한 코멘트나 실천 활동같은)뿐 아니라, 두 시기의 사회적 공기도 판이해져버린 것이다. 지금의 독자가 80년대처럼 당대 미국에서 가장 최첨단에 서있는 작가나 소설, 대중 음악이나 유행이 무엇인지를 현지 언론의 기사 내용과 함께 소개하는 작가의 글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지의 대중문화를 즐길 수 있는 현 시점에서는 그때만큼 화제를 모으기 어려울 것이다. 인기작가의 취향이나 심미안은 늘 관심의 대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말이다. 그러기엔 이미 그 자신이 가장 트렌디한 대중 문화 셀럽이다. 또한 80년대처럼 엔고의 수혜를 입을 수 없는 지금 시점에서는 주기적으로 해외를 드나들며 넓힌 견문을 쓰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이렇듯 몇 십년 간격을 둔 서로 다른 두 시점의 상이한 상황이 상이한 스타일의 산문을 쓰게하는 것이다.

 

근년의 하루키는 산문에서도 꽤 진지하다. '대작가'의 경륜으로부터 뭔가 하나라도 얻으려는 지금 독자들의 열망이 그전까지는 좀처럼 하지않던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세세한 '부연'에 가까운 대담, 거의 침묵하다시피했던 유년 시절과 부모에 대한 회고, 또는 인생 선배로서의 상담 같은 글을 낳게한걸까. 어쨌건 그렇다보니 역설적이게도 요즘의 하루키의 '잡문'은 대부분 80년대 했던 말의 동어반복이거나 눈에 띄게 회고적이거나 그도 아니면 지나치게 '올바르거나' '맞는' 말만 하면서 점잖을 빼는 탓에 읽는 재미가 없다. 결국 다시 80년대 산문집을 집어드는 또다른 이유다. 베버를 연상시키는 거창한 제목을 달거나(<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그동안은 철저히 무시하거나 침묵해온 사안들에 대해 간접적이거나 우회적이나마 어떤 '해명' 내지 '설명'을 하거나(<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그 전까지 거의 침묵하다시피했던 유년 시절과 부친에 대한 회고(<고양이를 버리다>)를 보면 아무래도 생물학적 나이를 고려했을 때 그동안 손놓고 있던 일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직접 정리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최근 또 한번 80년대 산문집을 읽으면서 이 글들이 젊은 하루키가 소설을 쓰는 와중에 행한 마냥 소일거리는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늘 그렇듯 그의 말을 곧이 들으면 안된다). 어쩌면 그동안 이 책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던건 아닐까. 그는 산문을 일종의 가면처럼 생각했던건 아닐까. 그러니까 이 글들을 통해 하루키는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게 아닐까. 나와는 달리 소설로 먼저 그를 접했을 대부분의 독자들이 궁금해할법한 저자의 이미지를 두고 하나의 일관된 혹은 정반대로 종잡기 어려운 작가상을 완성하려고 했던건 아닐까. 사회에 무관심한 채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한다는, 정치나 세상사에는 거리를 둔 다 큰 소년 같은 이미지는 (그에게 유독 혹독하다는) 일본 문단과 비평가가 만든걸까, 독자가 만든걸까 아니면 작가 본인이 직접 만든걸까. 국내에 출간된 적 없는 영화평이나 서평같은 다른 80년대 저작과 잡지 기사들의 목록까지 들여다보고있자니 든 의심이다. 작가가 젊었던만큼 시대도 그에 걸맞은 활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

 

시대가 변하고 작가도 독자도 변한다. 타인을 비판하거나 정치 관련 소재를 피하다보면 자연히 남을 수 밖에 없는 자기 주변의 일상을 스케치하면서 교훈이나 깨달음, 지혜는 커녕 사소하고 썰렁하고 딱히 메시지랄게 없는 산문을 쓰던 소설가는 세월이 흐르자 '벽 앞의 달걀' 같은 알듯모를듯한 얘기를 할 정도로 처세에 꽤나 민감해졌고, 킥킥대며 그 글을 탐독하던 젊은 독자도 이제는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드는 그런 일상을 보내며 시니컬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작가가 라디오에서 추억과 함께 옛날 팝송이나 오래된 레코드를 소개하듯 독자인 나 또한 최신작보다는 과거에 나온 책과 영화를 찾아보면서 과거로, 조금이라도 더 먼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야말로 나이를 먹어간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니면 뭘까. 이런 심정을 아이러니한 역설로 한번 더 꼬았던 우디 앨런의 농담에 너무 공감한 나머지 <미드나잇 인 파리>를 처음봤을 때 내 가슴 한 켠은 저릿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80년대 에세이들을 가끔씩 꺼내 읽게 될 것이다. 그나마 책 몇 권(그리고 몇 편의 영화와 그보다는 많은 음악)으로 이 절절하고도 헛된 바람을 다스릴 수 있다는게 다행스럽기도하고 또 끔찍하기도 하다. 앞으로 내게 남아있을 아직은 만만치 않은 세월을 헤아려본다면.

 

사족. 그래서 최근에 다시 읽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대목.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나 <영일소품>을 두고 하는 말일까.

문단이며 출판업계, 세금, 대출금 등 신경 쓸 일도 많고 소설가도 옛날처럼 한가로이 뜰에 앉아 참새떼를 바라보며 "벌써 봄이로군"하고 주절거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최종 수정: 2023년 3월

남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글쟁이는 얼마나 '흥분'하는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구절.

"이즈음 나는 일본 '쇼와' 시대의 사건이 '메이지' 시대의 사건과 대응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동안 1930년대에 일어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그와 같은 관점에서 일본 근대사에 관해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 70쪽의 연표에 제시한 것처럼 사건까지 이 정도로 평행하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로부터 나는 역사의 반복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와 반복』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60년 내지는 120년을 주기로 역사가 반복된다면서 메이지와 다이쇼를 합친 기간의 역사가 쇼와에서 재연된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은 사실 합치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디어의 발상과 이를 풀어나가는 전개 때문에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근대일본의 담론공간이라는 가설,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고유명이 갖는 의미의 차이에 대한 설명 등은 흥미로웠고 딱히 코멘트할 역량도 없지만, 가라타니마저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떤 강고한 사고의 단면에 대해서는 한번 확인하고 싶다.

그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근대일본의 담론공간'이란 각각 국권과 민권, 아시아와 서양을 축으로 사분할한 관점에 의한 근대 이후 일본의 역사 이해를 가리킨다. 여기서 그의 문제의식은 패전 이후 일본이 담론장의 좌반부 전체 그러니까 아시아와 관련한 담론을 아예 "잘라내버"렸다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의식 아래'에 놓"았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아시아라는 대상은 메이지 유신 이후 줄곧 일본에게는 단순히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아시아에 대한 연대감'도 있었으나 러일전쟁 이후부터 그 연대감을 상실하면서 아시아주의는 결국 제국주의와 합쳐졌는데 그 결과가 패전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이후부터는 의도적으로 아시아를 잘라내버린 채 담론장을 형성해왔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일찍이 이런 류의 주장은 가라타니가 인용하고있듯이 다케우치 요시미가 기가 막힌 문장으로 전한 바 있다.

 

"대동아 전쟁의 침략적 측면은 아무리 강변해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침략을 증오한 나머지 침략이라는 형태를 통해 나타난 아시아적 연대감까지 부정하는 것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흘려보내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그렇게 되면 일본인들은 끝까지 목적에 대한 상실감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약점과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방어기제가 다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의도와 결과의 분리,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지지 않을 수 있는 양립적 태도의 견지 같은 것 말이다. 이를 좀더 정교하게 마치 하나의 사상처럼 개념화한 것이 바로 '이중성격'이다. 복고와 유신, 존왕과 양이, 쇄국과 개국, 국수와 개화, 동양과 서양의 이항대립을 두고 어디를 택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이 대립을 해결할지의 문제가 메이지 이래 줄곧 일본의 궁극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아포리아'이며 아시아를 향한 일본의 자칭 우호적인 연대감 같은 태도와 그들이 실제 벌인 일, 즉 전쟁에도 이런 이중성격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자 동시에 '대동아 전쟁', 즉 서양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이 우익의 레퍼토리를 전쟁의 '이중성격'이라며 처음 언급한 곳은 전시 기간에 열렸던 '근대의 초극' 간담회인데(72p), 가토 슈이치가 전쟁 이전부터 행해진 일본의 식민지배를 시야에 넣지 않은 채 '15년 전쟁'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듯 가라타니 고진도 이 이중성격을 선뜻 인정한다. 혹자는 이것이 가라타니의 주장이 아니라 다케우치 요시미를 비롯해 그가 인용하는 문헌의 저자들의 것이라 반박할 수도 있겠으나 가라타니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이중성의 '해부는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그것들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을 긍정하고 다른 한편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72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을 주창했다. 그것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효시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이고가 주장한 것은 서양열강에 의한 식민지화를 피하기 위해서 조선이 개국하고 근대화하도록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트로츠키나 게바라가 각각 유럽이나 중남미 나라들의 혁명없이 그들의 혁명이 존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과 닮아있다. 혁명수출이야말로 혁명의 방위였다. 메이지 시대에 아시아의 나라들을 서양열강의 제국주의 지배에서 해방하는 것 즉 메이지유신을 수출하는 것은 그대로 일본 자신의 방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즉 국권에 대항하는 자유민권,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아시아주의의 상징으로서 말이다. 75

자국의 식민지화를 피하겠다고 타국을 '개국'하도록 강하게 압박한다는, 자국의 방위를 위해 타국을 '해방'시킨다는 발상에서, 또 식민지화를 혁명에 비유하면서 '개국'과 '해방'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자의적으로 끌어쓰는데 별다른 모순이나 부조리를 느끼지 않는데서 가라타니의 '이중성격'도 보이는듯하다. 아시아의 해방과 연대를 일본은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이런 주장을 거듭 볼 때면 다음과 같이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와 전쟁을 벌이기 훨씬 전부터 인접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행한 식민지배를 가라타니는 모르는 걸까. 그럴리는 절대 없다. 그럼 왜 모른척 하는걸까. 아시아 식민지배라는 사실과 아시아 해방이라는 명분간의 모순에 대해 그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괜한 트집이라고 할 수 없다. 아예 가라타니는 반복되는 역사를 보면서 가치판단을 배제한 무심한 예언자의 어투로 제국주의를 역사의 필연이라 유추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제국주의는 네이션=스테이트의 무의식이자 반복강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션=스테이트는 그 자신을 부정하고 '제국'으로 향하려는 동기를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네이션=스테이트 그 자체의 반복강박이다. 40

네이션=스테이트에 선행한 '제국'의 틀이 다른 형태로 부활한다. 44

근대의 네이션=스테이트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국민이나 영토를 이어받고 있다. 그때문에 국민국가를 넘어서려는 운동은 절대주의국가를 넘어 어떤 의미에서 구세계제국의 원리를 회복하는 것을 지향하게 된다. 실제로는 그것은 네이션=스테이트의 연장으로서의 제국주의이다. 59 

 

이를 향후 재연(반복)될지 모를 제국주의에 의한 전면전을 경계하고 근심하는 표현이라고 보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그보다는 합리화나 변명에 더 가까운게 아닐까. 담론공간의 좌반부, 즉 아시아주의의 부활을 바라는듯한 뉘앙스까지 보노라면 아찔하다. 그 바람을 한마디로 요약한 '자기구제'라는 표현을 독자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 단어를 보면서 잠깐동안 '역사가 정말 반복하는걸까'라고 자문해봤다. 그러나 곧 '역사의 반복'이라는 이 아이디어 자체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계시적 주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과거를 합리화하고 미래를 선취하기위한 자기충족적 발화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네이션=스테이트가 있기 전에 그 선행으로서 제국주의가 있어야하고 그렇게 태어난 네이션=스테이트가 다시 제국주의로 회귀한다는 이 반복의 논리는 긴 시간을 판돈으로 건 내기다. 맞는지 틀리는지 단시간내에 증명하기 어려운, 그래서 점쟁이나 할 법한 그런 내기.

그의 주장대로 역사가 반복된다면 그 '아시아주의'는 또 다시 제국주의와 결합하는 '반복'을 행하는게 아닌가. '아시아주의'가 진정 제국주의의 반대말일까.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던게 아닐까. 질문은 이어진다. 제국주의의 도래는 필연인가. '필연'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목적론적 사고에는 제국주의를 가능케하는 지정학적 조건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 수반되어 있을까. 담론공간의 좌반부를 회복한다는 자기구제가 아시아주의의 부활이라면 그 주체는 일본인가. 즉 가라타니가 말하는 '아시아주의'는 이번에도 아시아 전체가 아닌 일본에 의한 일본의 아시아주의인가.

이렇게 거대한 인식의 간극을 매번 확인할 때마다 '과거사 청산'이나 '역사의 화해'같은 야심찬 어젠다들이 한낱 구호나 캠페인 이상은 될 수 없겠다는 우울한 예상을 피할 수 없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관계)을 모르는게 아님에도 저러한 현실 인식과 주장을 한다면 여기엔 현실과 사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모종의 함의가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견해와 입장과 태도를 '의견'이 아닌 '진실'로 확신할 때 거기에 대화와 토론이 개입할 여지는 줄어든다. 언젠가부터 '팩트체크'라는 단어가 제법 친숙해졌지만 팩트(fact)는 아무리 모아본들 진실(truth)이 아니며 진실이 되기위해서는 다른 무엇이 더해져야 한다. 진실이란 아마도 여러 팩트들간의 관계로부터 형성되는 구조와 맥락에 대한 이해 속에서 도출될테고, 바로 그 맥락을 이해하려는 '믿음', '해석', '주관' 등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그 무엇이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일텐데 '전체화' 혹은 '총체화'의 성질이 그렇듯이 이는 부분과 전체, 구성요소와 완성품의 관계가 처음부터 아니었음을 점점 더 절절하게 깨닫는다. 저마다의 '진실'이 대립할 때 한쪽이 다른 쪽을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진실'이나 '진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므로. 그런 점에서, 반복되는 것은 역사라는 개념이 아니라 역사를 생성하는 힘과 주체와 주관임을, 저자의 의도와는 다소 무관하고 엉뚱한 결론이지만 이 책에서 얻은 내 나름의 '진실'이라 하겠다.

가라타니 고진은 연호 사용으로 인해 서력을 사용하는 외부와의 관계를 망각했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메이지 20년대와 30년대가 서양의 '세기말'이었다거나 다이쇼 시대와 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이 동시대였다는 것을 미처 연계해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착각이 의도된 것이라며 정곡을 찌른 이가 있다. '장기' 쇼와를 비판한 <'쇼와'란 무엇인가: 원호 비판>(1979)에서 후지타 쇼조'전후 30년'이 아니라 '쇼와 50년'이라 명명하는건 그저 일본인에게만 의미있는, 따라서 일본 바깥 세계와의 공명이나 연대 그리고 책임을 망각하는 일임을 암시하며 글을 시작한다. 

 

 

이처럼 현재의 역사적 위치를 측정하는 시간의 척도를 어떻게 선택할지는 보편적인 진실을 존중하는가 아니면 거부하는가 혹은 다시 은폐하는가에 관련되는 근본적인 정신 태도의 문제다.

                                                                                      <'쇼와'란 무엇인가: 원호 비판>(『정신사적 고찰』 중 165p)

 

 

후지타가 보기에 쇼와가 50년 이상이나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히로히토가 단죄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전 시점에 일본이 할 수 있었던 세가지 선택 즉 천황제 폐지, 그 차선으로서의 히로히토의 폐위, 그리고 그마저도 안됐을 경우 마지막으로 최소한 연호라도 교체를 해야했으나 이 선택지를 전부 거부함으로써 쇼와가 50년 이상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까지 연호란 유의미한 정치적 변화나 정치적 사태를 국가가 인지하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시간을 분절해내는 엄연한 정치적 행위였기때문에 천황의 생몰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바뀌어온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존재"였다. 메이지 직전의 연호들, 즉 '분카', '분세이', '덴포', '고카', '가에이', '안세이'를 거치는 동안 단 두 명의 천황이 재위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는 자명하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연호는 "사태에 대응하는" 그러니까 "세계의 사태와 주술적으로 '교감'하는 독자적 정치 기능"을 잃고 일세일원, 그러니까 그저 천황의 생몰을 구분하는 무기적 신호로 변질되고만다. 그 결과 생전에 천황의 시호가 내려지지 않음에도 그의 사망에 의해서만 바뀌는 연호가 사실상의 시호처럼 쓰이게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쇼와라는 시대는 혼란스러운 시간 감각을 소구하게 되었다. 전전과 전중, 전후를 관통하는 일본 역사상 가장 긴 시간을 점유하는 연호가 됨에 따라 그 사용자간에 모호한 시간 감각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누군가 '그리운 쇼와'라고 말할 때 그것이 아시아 각지에 식민지를 만들고 전쟁을 벌이던 전전과 전중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경제부흥으로 인해 물질적으로 여유롭던 전후를 말하는지 단번에 파악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시대 구분이라는 연호의 일차적 기능에 있어서 이는 분명 실패다.

 

그렇다면 후지타가 비판한 쇼와가 아닌 헤이세이는 어떨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됨으로써 냉전이 끝나고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 본격화된 1989년에 시작함으로써 헤이세이는 나름 세계사와 연동하는 지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는 버블 경제가 막을 내리고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 장기 경제침체를 앞둔 직전의 시점이기도 하다. 또한 냉전이 끝남과 동시에 거대 담론에 가려져있던 소수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직접 발언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일본제국주의의의 희생자인 위안부의 실명 증언이 처음 나왔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서 역사수정주의와 우경화가 30년 내내 이어져온 시기이기도 하다. 이를 떠받치기위한 더욱 강고한 일본의 대미종속과 개헌 시도 등이 병행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두 번의 대지진과 옴진리교같은 테러 또한 있었다. 헤이세이(平成)라는 기표가 뜻하는 바가 별로 이뤄지지않은 시대였던 셈이다.

 

쇼와처럼 연호를 교체했어야 마땅할 정치적 과실이 아키히토에게 없는지 몰라도 유신 이후 최초의 생전 퇴위가 상징천황으로서 그 상징마저도 짊어지기 버거워 내린 선택이라면 이는 후지타가 말한 자기 정재성이나 사태에 대한 대응의 결과라 판단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징 천황이라는 지위를 고려해, 퇴위를 아베 정권에 대한 나름의 수동적 저항이라 보는 논평도 가능은 하겠으나 지나친 상상력과 의미 부여에 가깝다. 지금 아키히토의 퇴위를 둘러싼 일본 내외의 담론이 허황하게 보이는 면도 여기에 있다. 1월1일로 날짜가 바뀐다고 해서 당장 개인의 삶의 실질이 격변하지는 않음에도 신년에 맞춰 새로이 각오를 다지듯이 새 연호를 맞는 일본 국민들의 심정에 미치는 감회는 실재하고 존중해야하지만 실권 없는 상징일 뿐인 인간의 교체와 그에 맞추어 정확한 기의를 알 수 없는 기표만 바뀐 또다른 상징 기호의 교체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담으려는 일 자체가 넌센스같아 보이는건, 새 연호의 한자 선택과 풀이, 나루히토에 대한 인물평, 향후의 정국 전망 등 지금의 관행적 보도 속에 정작 뭔가 빠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생전 퇴위로 인해 연호가 그저 천황의 생몰을 표시하는 기호가 됐다는 후지타의 비판은 이제 철회되었다. 그러나 이를 기회로 연호를 계속 써야하는지, 연호가 과연 필요하긴한지, 그리고 더 나아가 천황제 존속 여부 같은 더 근원적인 논의에 대한 소식은 듣기 힘들었다. 아베는 이번에도 기민하게 개입하여 자신의 정치적 과실을 얻는데만 주력하는 듯한데 연호 교체를 개헌과 어떻게든 연계지으려는 그의 발언은 후지타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연호의 새로운 쓸모를 보여주는듯하다. 이전까지는 사물이나 사태에 대응해 연호가 바뀌어왔다면 아베는 거꾸로 새로운 연호 교체에 맞추어 정치적 사태를 도모하려 하기 때문이다. 실권자가 상징만을 가진 자를 농락하는 양상이랄까.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는 개인들의 감개와 무관하게 권력이 왜 그렇게 "시간에 대한 지명권"을 행사하려하는지, "'시간'의 국가적 영유"를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는 지금이야말로 적기가 아닐 수 없다. 천황기관설 논쟁, 국체명징운동, 2.26사건, '성단'이라는 표현, '패전'과 '항복'이라는 표현이 없는 종전조칙, '인간 선언' 그리고 그 선언을 하고도 지속적으로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했던 히로히토까지 이 모두는 민주주의 체제보다 위에 놓인 천황제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키히토가 아무리 반전과 평화를 지향해도 정작 집권세력이 그를 방패막이 삼아 자신들의 우경화를 밀어붙일 수 있던 것도 실재하는 인간으로서의 천황과 무관한 천황제가 있기에 가능했다(링크).

 

어쩌면 훗날 역사는 나루히토의 인품이나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레이와를 개헌에 의해 평화 헌법이 폐지된 시대로, 아시아의 비극이 재연된 시대로 기억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새 연호의 한자에 관한 뜻풀이와 의미에 대한 해석보다는 새로운 연호를 맞은 일본이 과연 폐쇄적인 시간이 아닌 외부 세계와 연계된 보편적 역사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근심하고 고민해야 할 시점에 더 가깝다. 매일 사용하는 사이에 자명하게 되어버리는 "인습의 근본적 성질을 성찰의 울타리 밖에" 두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닉슨 하원의원은 미국에서 잘 성장한 이민자의 아들이자 미국인 자본가에 의해 아들처럼 여겨지며 하버드에도 입학할 수 있었던 사람이 왜 미국 경제 체제에 불만을 갖는지 물었다. 
  내가 한 대답은 온전히 나의 것은 아니었다. 나에겐 그 무엇도 온전한 나의 것이 없다. 나는 나의 영웅이었던 케네스 휘슬러가 아주 오래 전 같은 종류의 질문에 대해 했던 대답을 되풀이했다. 휘슬러는 폭력 혐의로 기소된 시위자들에 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판사는 그에게 흥미를 느꼈고, 명망가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은 그같은 사람이 왜 노동 계급에 헌신했는지 물었다. 
  내가 휘슬러로부터 훔쳐 닉슨에게 했던 대답은 이랬다. "왜냐구요? 산상수훈을 따른거죠. 의원님"
  녹음된 레코드가 끝났음을 알았을 때 파티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정중한 박수가 나왔다. 
  굿바이. 
                                                                                                                       -월터 F 스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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