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 무리의 의견을, 대중과 미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이 들었을 때 뿐이다. 나이 든 사람은 이제 가까이 다가온 죽음과 더불어 혼자이며, 죽음에는 눈도 귀도 없으며, 그러니 죽음한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이제 마음 내키는대로 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 <삶은 다른 곳에> 중
여생이 길지 않기에 일체의 위선도 가식도 없이 마냥 솔직할 수 있다는건 장점일까 아닐까. <진짜와 가짜>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공동환상론>같은 주저들이 번역되지 않은 국내에서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지명도는 일정 정도 신화화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2차 문헌을 주로 통할 수 밖에 없는 현재 상황에서 요시모토에 온전히 한 장을 할애한 오구마 에이지의 <민주와 애국>은 그런 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오구마가 검토하는 학자나 비평가, 작가들 중에서 드물게 아니 거의 유일하게 부정적 평가를 받는 이가 바로 요시모토라는 점에서 이는 또다른 선입견을 낳을 위험이 있긴 하지만 <진짜와 가짜>를 오구마의 책보다 먼저 읽은 입장에서는 요시모토에 대한 그의 비평이 그다지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한마디로 <진짜와 가짜>에서 요시모토는 ‘지나치게 솔직하다’. 나이가 그쯤되면 이미 쌓은 명성과 무관하게 거리낄게 없게 되는걸까. 국가, 종교 등 모든 공적인 것을 거부한다는 오구마의 평가대로 만년에 내놓은 이 책에서도 요시모토는 생의 마지막 공적 발언일 수 있다는걸 의식이라도 한듯 전방위적으로, 마치 자기검열에서 해방된 것처럼,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보기를 포기한듯한 단견과 요설을 마치 현자의 지혜인양 늘어놓는다.
잘난 체하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중국도 피차일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상대도 하고 이쪽도 하는 측면이 있어서 일방적이 아니라는 점이 있습니다.
중국은 당시 서유럽 국가에 많은 조계를 만들게 해놓고 왜 일본에만 침략이다, 침략이다, 하고 비판하느냐고 하면, 중국은 또 반박할 이유를 생각해야만 해서 서로 끝이 없을 겁니다.
모든 각료를 데리고 참배하면 공적인 일일지 모르지만 혼자 참배하는 것은 사적인 일이라, 개인의 자유다, 주위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 일이 아니라는 것이 정당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전쟁을 아는 세대라서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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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쌍방이 서로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라서 일본인은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일로 송구하게 여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96 97
지금도 식민지 출신자가 일본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규탄하는 사람은 많습니다만, 사실은 어땠을까요. 분명히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평등하게 대해준 사람도 많았을 텐데 그런 말만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 저의 실감입니다. 224
그런데 어리광이 심한 것의 이점 가운데 하나로, 일본의 여성이 얌전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 여성은 외국인과 결혼할까 말까 할 때도 어지간히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남편 나라로 가서 가정생활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본 여성은 그런 것에 겁이 많은 경향이 있겠지요. 그것은 어리광이라고 하면 어리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68
만약 진보적인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정당의 주인이 된 시점에서 대표 후보로서 자신과 대립한 사람을 여봐란 듯이 음지에 놓아두는 방식을 쓰는 법입니다. 사민당이나 공산당이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오자와 씨는 다나카 가쿠에이로부터 배운 정치 방식이 몸에 배었겠지요. ... 이제 오자와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좀더 포용력이 있었다는 인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보수적인 방식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보스 정치가 되기도 하는 점입니다. 108 109
열 길 물 속은 알지언정 알 수 없는게 한 길 사람 속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까마득하고 흐릿한건 결국 내 마음 속 한 길이다. 죽음이 멀지 않은 시점에서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겠다는 마음으로 저런 말(사망 몇 해 전에 나온 이 책은 구술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솔직함'이라기보다는 지적, 윤리적 태만(혹은 퇴행) 혹은 위선으로부터 벗어나려다 되려 위악으로 바뀐 것에 더 가까워보인다. 이렇게 되면 진솔함보다는 되려 진정성을 의심받기 쉽다. 처음 읽었을 때는 사후에 남을 자신의 명성과 평판마저 다 내려둔건가 싶었지만 그렇게 후대에 전해질 정도의 명성과 위신이 있기에 오히려 이런 발언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하다. 늘 그런건 아니겠지만 이미 축적해놓은 상징 자본이 크면 클수록 감수해야할 리스크가 적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말하는 '상징자본'에는 그간의 성취와 그에 수반되는 명성과 위신 뿐 아니라 연령도 포함된다. 한 인간의 생산성이 정점에 이른 뒤, 특히 은퇴 이후 시점부터는 연령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발언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공적 담론상의 의미도 줄어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익의 반대편이라는 뜻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리버럴'이라는 단어로 통칭해버리기에는 일본의 자유주의 진영 지식인들의 스펙트럼이 드넓고 그 개개인들의 입장이 실로 다양함을 깨달음과 동시에 번역본 텍스트(그것도 한 권)만 봐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배경 지식과 맥락(이를테면 요시모토가 견지해온 현실 정치에 대한 입장 등)을 놓치고있다는 확신도 다시금 강하게 든다. 일찍부터 '사상가'라고 불리면서 원로 대우를 받아온 이가 저런 사고를 하는 상황에서 일본 내 진보나 개혁 세력이 느낄 피로와 부담감이 어떨지도 살짝 알 것 같고. 그의 다른 책들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