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의 사망 후 만들어진 거슬리는 사운드로 악명높은 메탈리카의 마스터피스가 (음반이 품고있는) 사회정치적인 불만이 여전히 고통스러운 30주년에 기념 처방을 크게 받았다.


 …And Justice for All (이하 <저스티스>)는 가장 거대한 메탈밴드의 베스트 앨범이다. 당신이 <Master of Puppets>를 꼽으리란걸 알지만 눈을 감은 정의의 여신을 줄에 묶고 저울에 올려놓아봤다. <저스티스>가 이긴다. 보컬 제임스 헷필드와 드러머 라스 울리히의 송라이팅은 이 음반에서 가장 복잡하고 지독한데 그들의 초기 스래시가 가지고 있던 단출한 학생밴드스러운 매력을 벗어던지고 압박감이 (스래시보다) 덜한 하드락 경향을 회피하면서도 그 초기 시절의 힘을 유지하고 있다. 이용, 남용, 경험 그리고 키스 문으로 하여금 비싼 자동차를 수영장으로 몰고가게할만큼 충분한 맥주와 예거마이스터가 헷필드의 높고 날카로운 외침을 뭔가 더 꽉차고 더 강력하게 조율했다. 훗날 그 특유의 시가를 씹는듯한 샤우팅 없이 말이다. 가사는 사람들의 힘을 빼앗아 반격할 수 없게끔 끌어내리는 관료 질서에 대한 기초적인 묘사로 이루어져있고, 사운드는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강도에 있어서는 거의 인더스트리얼에 가깝다. 톱니모양의 강철 한 조각이 당신을 깎아내고는 그 상처에 허무주의를 심어놓는다. 아, 그리고 아마 당신은 이런 말을 들을 것이다. 베이스 소리가 안 들린다고.

30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링된 <저스티스>는 여러 포맷으로 재발매 됐다. 보너스반이 수록된 3장짜리 디스크부터 6장의 LP, 4장의 DVD, 11장의 CD로 구성된 괴물 같은 디럭스반이 있는데 사진과 라이너노트가 들어간 하드커버 책도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프린트, 패치들이 충분히 채워져있어서 크리스마스 양말을 채우기에 잘 어울리게 되어있다. 30년 후 <저스티스>는 그 시끄러웠던 논쟁만큼 사랑받는 유일한 메탈리카 음반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나머지 음반들은 조금씩 그 균형이 맞지않는다). 1986년 버스사고로 원년 베이시스트인 클리프 버튼이 사망한 후, 밴드는 그 대체자로 제이슨 뉴스테드를 영입한다. 그와 투어를 돌면서 밴드는 함께 커버 EP를 녹음해 그가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그리고는… 제이슨이 최초로 함께한 정규작인 <저스티스>의 믹싱 과정에서 그를 완전히 묻어버렸다. 그 결과는 800만장 이상을 팔아치운 앨범 중에서는 가장 귀에 거슬리는 사운드를 가진 음반이 되었다. 이건 마치 녹음된 군중 소리나 가짜 방 같은 소리를 집어넣는 대신에 이명을 미리 실어놓은 격이다.

최종 믹스에서의 뉴스테드의 (베이스 사운드) 부재는, 변명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쉽다. 몇가지 요소는 악의가 없다. 세 명의 원년 멤버와 신입은 서로의 연주 스타일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고 그것이 뉴스테드로 하여금 그의 베이스라인 대부분을 그저 헷필드의 리듬 기타를 따라가게 만들었다. 헷필드 스스로는 낮고 분쇄하는듯한 사운드를 목표로 하면서, 뉴스테드가 채워넣었어야할 베이스 음역 대부분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이 디럭스 세트에 담겨있는 여러 프로듀서, 믹서, 엔지니어들의 장황한 라이너노트를 읽어보면 좀더 직접적이고 덜 듣기좋은 설명을 암시하고 있다. 베이스가 거기에 없었던 이유는 밴드가, 직접적으로 울리히와 헷필드가 그 자리에 뉴스테드가 있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입’을 향한 이러한 지나친 텃세부리기가 오랜 기간 계속된 것이 훗날 뉴스테드의 밴드 탈퇴를 야기한걸까? 그것은 암묵적인 형태의 부정이자, 스튜디오 안의 대체자를 지워버림으로써 버튼의 죽음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처리해버린걸까? (아니면) 본인이 다루는 악기의 사운드에 대한 자신만의 비전이 너무 구체적이고 요구하는게 많은 나머지 그에 응해 도와주려했던 이들이 여전히 두려워하며 말할 정도로 밴드 내 가장 지배자적 성격을 가진 울리히에 의한 그저 권력 과시일 뿐일까? 그 답은 “이들 전부를 합친 것 그 이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들리지 않게 되버린 뉴스테드의 작업물을 만들기위한 열정 때문에 이 이야기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가 된 프로듀서 플레밍 라스무센과, 울리히의 명령을 따른 것을 후회한다고 했던 믹서 스티브 톰슨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모두들 지금은 그 결과물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뉴스테드도 “’그것(이 앨범의 사운드)이 어땠어야 하는가’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결과물로 나왔고 무엇이 세상의 주목을 끌어냈는가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리이슈에 관여한 모든 이들에게 큰 공을 인정하면서 말하자면, 이것은 과거를 다시 쓰려고 시도했던 스타워즈 스페셜 에디션이 아니다. 어쩌면 스냅과 팝과 몇 개의 레이어가 더 들렸을 수는 있겠지만 이것은 복원판도, 수정판도 아니다. ‘엔터 샌드맨’보다는 같은 시기에 나온 미니스트리의 ‘스티그마타’에 더 가까운 <저스티스>의 공격적이고 미친듯한 사운드를 만든 모든 것은 지난 삼십년간 그대로 남아있다 (만일 베이스 소리가 더 듣고 싶다면 그 가려움은 유튜브가 긁어줄 수 있다). 제이슨 스스로 정의가 행해졌다고 느끼는 현 시점에서 리마스터 버전이 <제이슨을 위한 정의>(베이스 소리를 복원한 버전)가 아니라는 점이 더 많은 분노를 모으기는 어렵다.

<저스티스>는 목을 부러뜨리는 속도로 시작하고 끝난다. 오프닝 트랙인 “Blackened”는 <마스터 오프 퍼펫츠>에서의 “Battery”가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풀 스피드로 치고나가는 것 말이다. 이 곡은 핵 절멸과 전지구적 멸종에 관한 명상으로서 몇 번의 비틀기를 동반한다면 점점 나빠지는 우리 시대의 기후 위기에도 적용될 수도 있다. “Fire is the outcome of hypocrisy… Color our world blackened,” 헷필드는 자신이 내뱉은 단어를 또다른 퍼커션의 일부인 것처럼 샤우팅한다. 보수주의로 밀어넣는 부모들을 향한 헷필드의 “undying spite”에 관한 장광설인 마지막 곡 “Dyer’s Eve”는 “Blackened”못지않게 묵시록적이다. 이제는 나 자신을 포함한 한 사람의 부모로서 가장 최악의 공포, 즉 내 자식이 “당신이 늘 알고 있었던 지옥”으로 끌려가는 그 공포가 메아리친다.

저런 양 끝 지점 사이에 위치한 노래들은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고 길며(거의 모든 곡이 6분을 넘어간다) 테크닉적으로는 헷필드, 울리히, 기타리스트 커크 해밋 모두 그들의 사회정치적 강조점을 만들기위해 (테크닉을) 이용하고 있다. 정치적 히스테리아의 희생자에 관한 노래인 “The Shortest Straw”의 리프는 마치 군중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시도처럼 스피드가 가장 빠르다. 더 느리고 거의 슬러지한 사운드인 “Harvester of Sorrow”는 그 첫번째 가사를 반영한다. “My life suffocates”. 반순응주의의 찬가인 “Eye of Beholder”의 호전적인 훅은 저 멀리서부터 점점 페이드인으로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마치 무장한 호위대가 접근하듯이. 스튜디오 바깥에서 벌어지는 밴드의 질펀한 파티를 묘사하는 거의 보기드문 유머가 담긴 “The Frayed Ends of Sanity”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ohh-WEE-ohh, YOOO-ohh” 부분을 따와 집어넣었다. LL Cool J는 이 노트를 따야만한다.

<저스티스>의 중심에는 당연히, 사지가 절단된 참전용사에 관한 거의 8분에 가까운 “One”이 있다. 패닉 발작 같은 사운드의 해밋의 기타 솔로와 헨드릭스 스타일의 “Machine Gun” 자극이 있는 마지막 부분에서 폭발하기 전부터 이 곡은 확장된 퓨즈처럼 불꽃이 튄다. 달튼 트럼보의 반전 소설 <Johnny Got His Gun>의 영화 버전에서 가져온 괴로운 장면과 밴드의 흑백화면을 진지하게 엮어서 만든 거의 타협하지 않는 뮤직비디오 덕분에, 이 곡은 밴드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고 MTV와는 그 어떠한 공통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수없이 방송되었다. 다시 들어보니, 얼마나 적은 시간과 친숙함이 그 임팩트를 무디게 했는지 놀라웠다. 시작할 때의 완고한 네 개의 음으로 된 훅부터 그 후반부의 총격 폭발까지 모든 구성요소들은 하나의 실험 도구처럼 움직인다. 심지어 사지, 눈, 귀, 목소리 다 없는 껍데기뿐인 한 사내의 “life in hell”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당신은 안으로 끌려들어가 노래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12개의 다른 타임 시그니처를 동반한 거의 10분에 달하는 긴 타이틀 트랙은 동일한 테크닉을 수차례 쓰고 있다. 미국 사법 시스템의 불공정함에 관한 가사는 힘차게 절망을 전달한다. “Hammer of justice crushes you,” 헷필드는 코러스 부분 앞에서 역설한다. “Nothing can save us/Justice is lost/Justice is raped/Justice is gone.” 그러나 이들은 김렛에 취한 눈을 한 목격자의 비관적 예언과 멀지 않다. 헷필드는 이 공포스러운 기계의 배 한가운데 붙들려 있고 기계도 점점 그를 빨아들이고 있다. 코러스와 노래 자체는 “Find it so grim, so true, so real.”라고 결론짓는다. 헷필드는 자신은 이 공포에 환각되지 않았으며 이는 실제 벌어진 일이라면서 마치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것처럼 마지막 단어를 뱉어낸다. 이러한 인간적인 터치는 그렇지 않았다면 둔감하고 말았을 음악에 연약함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공기를, 기계 같은 믹스에서는 들을 수 없는 어떤 질적인 것을 선사한다.

그런 점에서 “To Live Is to Die”은 <저스티스>의 로제타석이다. 멜랑콜리한 현악기를 기타가 흉내내는 길고 느릿느릿하게 진행되는 연주곡인 이 곡을, 밴드는 고인이 된 베이시스트에게 헌정하면서 장엄한 슬픔을 예술적으로 분출한다. 버튼 그 자신은(독일 작가 파울 게르하르트나 존 부어맨의 아더왕 영화인 엑스칼리버의 도움으로) 짧은 문단을 바탕으로 한 가사를 육성으로 제공한다. 밴드가 이제껏 그리고 그 이후 녹음한 그 어떤 곡보다 어둡다. “When a man lies, he murders some part of the world,” 헷필드는 버튼의 목소리 너머로 읊조린다. “These are the pale deaths which men miscall their lives. All this I cannot bear to witness any longer. Cannot the Kingdom of Salvation take me home?” “One”에서 코러스는 “Hold my breath as I wish for death”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메탈리카는 사후에 버튼의 죽음의 소원을 발표함으로써 고인이 된 자신들의 친구를 추모한다. 이 앨범은 <블랙 앨범>은 아니지만 그 정신은 그 앨범만큼이나 어둡다.

메탈리카의 작업물에서 악마가 제시되고 버튼의 죽음으로 인한 커다란 암묵적 트라우마가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연주를 계속 했다. 헷필드의 리프 실험, 작곡 세션, 데모 레코딩 그리고 많은 커버를 담고 있는 B-side와 더불어 이 디럭스 세트는 여섯개의 콘서트(와 세 개의 자투리들도)를 수록하고 있다. 이들은 그들이 근자에 겪은 비극을 과거로 갈아내려는 메탈리카의 결단을, 라이너 노트 인터뷰는 이 음반에서 반복되는 테마를, 그리고 로스 핼핀과 다른 이들이 찍은 수백장에 달하는 생생한 사진이 담긴 책도 하나의 가시적인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실황녹음은 이미 이전에 발매된 89년 시애틀부터 델라웨어의 작은 락클럽인 스톤 벌룬(울리히는 그 공연에서 그들이 모든 주에서 그렇게 공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에서의 공연까지 실려있다. 비록 사운드 퀄리티는 천차만별이고 어떤 건 그저 <저스티스> 한 곡 밖에 없지만, 이들은 그룹이 현실적으로 커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어떤 밴드도 무대에서 날려버릴 수 있었다. 새미 헤이거는 자신이 쓴 에세이에서 실제로 몬스터즈 오브 락 투어에서 메탈리카를 따라다니던 때의 압박감을 회고하고 있는데 이때 불쌍한 도켄은 해체되었다.

<저스티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재 시점에 대해 독창적인 선견지명을 보여주었다고 말하는건 이 음반이 가진 힘을 저렴하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메탈리카는 미래를 예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변에서 본 것을 묘사했다. 그것이 그들을 세계의 지배자로 만든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저스티스>가 처음 나왔을 때 그러했듯이 지금도 그렇게 들린다면 그건 오직 이 앨범의 가치를 증명할 뿐이다. 그리고 이 음반의 음향적 시그니처가 주는 충격(사라진 베이스 소리)을 완화한다거나 더 귀가 즐겁도록 다듬기를 거부함으로써 이번 리이슈는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이 가사뿐 아니라 시간으로부터의 시험도 견뎌낸다는 것을 정확하게 함의하고 있다. 모든 악몽의 기록에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기념비적인 원투펀치를 통해 메탈리카는 스래시메탈의 청사진을 제시했고 그 첫 두장의 음반으로 스래시 장르에 세계관을 부여했다. 디럭스 셋으로 나온 리이슈는 다양한 얼터네이트 믹스, 데모 그리고 라이브 실황을 담고 있다.

장광설 없이 어떤 음반들은 음악의 방향을 심원하게 바꿔놓은 탓에 그 음반들이 나오기 이전의 세상이 어땠는지 상상을 어렵게 한다. 메탈리카의 83년 데뷔작 kill'em all은 단출하게 시작한 스래시메탈이고 이후부터 지구상에 활동하던 다른 모든 스피드 혹은 극단적 경향의 메탈밴드들의 템플릿을 세워버렸다. 물론 kill'em all 발매 당시 이미 결성되어있었던 개척자들 즉 슬레이어와 엑소더스 그리고 앤스랙스와 보이보드를 언급할 수도, 심지어 그 밴드들이 메탈리카와 동일한 템포와 공격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80년대 초반 메탈언더그라운드는 어쨌든 다들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더 빠르고 헤비한 그리고 무엇보다 모터헤드, 베놈, 머시풀페이트 등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스래시메탈 1기의 주요 참여자들은 kill'em all이 그들이 찾고있던 사운드의 기틀을 제시했음을 스스럼없이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한번 메탈리카가 그 흐름에 올라타자 다른 모두가 따라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음반을 다시 들어보면 라몬스의 첫 석장의 음반을 다시 듣는 것 같다. 즉 이 음악은 당신이 지금 살고있는 세상을 만들었지만 그 이후 많은 다른 아티스트들은 이후 그 강도에 몇가지 층위를 더했을 뿐이다. 그 시기 그 음악들이 어찌나 혁명적이었던지 그 센세이션을 다시 재창조할 길은 없다. 오늘날의 기술로 시퀀싱한 사운드는 더 날카롭고, 쏟아지는 리프들은 직선적 스래시보다는 전통적인 메이든/프리스트 류에 더 가깝다. 그러나 물론 whiplash나 metal militia처럼 징징대는 리프가 노래를 밀고나가는 순간들도 있다. 여기가 메탈리카의 목적 감각이 빛나는 순간이고 그들이 어째서 데뷔하자마자 장르를 정의해버린 힘이 될 수 있었는지 깨닫게 한다.

여기서 클래식 락 팬들에게 레드제플린의 첫번째 앨범이 그러했던 것처럼 메탈헤드들에게 메탈리카의 이번 재발매 음반이 "강요된 청취"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kill'em all의 오리지날 프레싱은 오래됐는지는 몰라도 뭉개진 믹스같은 이유로 곤란하거나 하지는 않은듯하다. 리마스터링을 통해 눈에 띄게 발전된 부분도 딱히 있거나 하지 않다. 따라서 당신이 이 박스셋을 갖고 있다면 음질의 개선은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가지고 있지 않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봐라. 본 음반에 더해진 몇시간짜리 미발매 음원에 비싼 돈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까? 입문자 그리고 심지어 충성스러운 팬들에게도 그 대답은 불행히도 어쩌면 아니오다. 모든 엑스트라 음원들은 끌리기는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 실황이 실려있는 몇 개의 공연 음원들, 데모 그리고 초기 믹스, jump in the fire와 whiplash 싱글(두 곡 모두 b면에는 동일한 두 라이브를 담고있지만 불필요하다) 그리고 드러머이자 밴드의 대변인격인 라스 울리히의 1시간 이상 분량의 긴 인터뷰가 실려있다. 밴드의 악명높은 다큐인 some kind of monster가 당신으로 하여금 1시간 이상 울리히가 하는 말을 듣는걸 주저하게 했을 수 있겠지만 그의 q&a는 실제로 밴드의 초창기 시절을 상당히 조명하고 있다.

비록 러프 믹스의 퀄리티가 천차만별이긴하지만 더 풍성하게 발전된 곡들은 원작에 대한 놀랍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motorbreath나 hit the lights같은 클래식들은 실제로 소리가 더 풍성해졌고, 기름지고 활기가 생겼다. 이렇게 더 유기적인 형식을 갖출수록 음악에 숨통이 트였다. 명백히 시간이라는 관습적 지혜는 이 음반의 사운드가 대중이 소비하기에는 지나치게 날 것이라는 의견을 지배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오늘날 밴드들은 이렇게 루즈하고 의도적으로 거친 소리를 얻기위해 애쓰고 있다. 지금 우리는 마침내 아마도 마지막일 kill'em all 믹스를 보게 됐다. 이전까지의 버전은 너무 (소리가) 제한돼 있었는데 이는 리마스터링된 버전이 당시로서는 아직 나온 적 없던 프로덕션상의 접근법을 요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새로운 마스터링 작업은 메인 믹스를 특별히 잘 뽑아내지 못했다. 모든 악기에 적용된 대부분의 리버브는 꽉 조이고 자연스럽지않은 퀄리티만을 노출한다. 앨범 내내 보컬과 스네어 소리는 크게 도드라진다. (예를 들어 the four horsemen에서 pestilence라고 제임스 헷필드라고 외칠 때) 에코의 잔향은 돌연 닫혀버린다. 만약 이 앨범을 조악한 카세트나 차 안에서 혹은 시끄러운 환경에서 들어본다면, 아마 절대로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뭉쳐지고 닫힌 리버브는 이 음반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되었다.

라이브 음원의 경우, 이를 가리켜 "부틀렉 음질"이라 부르는건 관대한 표현일 것이다. 매번 똑같은 바로 그 노래들을 몇번이나 연거푸 담아놓음으로써 매우 빨리 낡게 된다는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마도 팬들이 동경하게 될 한가지는 바로 밴드의 차기작인 84년작 ride the lightning 수록곡들의 초기 공연이 갖는 역사적 가치이다. 예를 들어 84년 1월 연주한 "fight fire with fire"는 섬세하고 랜디 로즈로부터 영향받은듯한 클래시컬한 이 곡의 기타 인트로가 실제로 연주되는 순간을 담고있다(훗날 라이브에서는 이 인트로를 모두 쳐낸 연주를 하고 있다). 방 안에서 공연실황을 듣는 재미는 분명 짜릿하겠지만(보스턴에서 강도를 당한 후 앤스랙스의 장비를 대여해 연주했던 일에 대해 헷필드는 관객들에게 유머를 섞어 설명한다) 과거 음원을 듣는 것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고고학적 행위에 더 가깝다. 물론 이는 재밌고 헷필드가 "어서, 망할 pa(음향시설)보다 더 크게 소리치라구"라고 소리칠 때 실제 그 광경을 머리속에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리듬기타인 헷필드와 리드 기타리스트인 해밋 두사람간의 협주를 식별하기가 어렵다. 밴드의 오리지널 멤버 두 명의 역동적인 기타 연주를 들으려면 이보다는 차라리 더 유용할 no life til leather의 완전 초기 데모를 들어보는게 나을텐데 이를 연주한 이는 당시 그들의 동료였던 스래시 설계자이자 훗날 메가데스의 리더인 데이브 머스테인이다(해밋은 메탈리카의 첫 다섯장의 음반들에서만 리드기타를 연주했다).

kill'em all의 막 나가는 가사는 모터헤드의 떠돌아다니는 해적들의 정서를 버릇없는 미국 아이들을 위해 업데이트했다. 예를 들어 헤드뱅잉의 송가인 whiplash의 "The show is through, the metal's gone / It's time to hit the road / Another town, another gig / Again we will explode"같은 가사에서 보듯이 말이다. L.A 헤어(hair) 메탈과 주류 팝음악을 향한 증오로부터 동력을 얻은 탓에 과거라면 절대로 꿈꾸지 않았을 것들을 8년 후에 밴드는 기꺼이 껴안을 수 있었다. '세상에 대항하는 바로 우리'라는 멘탈리티를 공유하는 전세계의 메탈헤즈들을 위한 단합의 트럼펫 소리를 울리면서 kill'em all은 세상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물론 오늘날 그 앨범이 갖고있는 젊은이들의 피해망상은 어리석고 미숙해 보인다.

사실 그러한 태도가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지만 1984년 메탈리카가 ride the lightning을 내놓았을 때 젊은이들의 그 순진함은 뒤로 많이 밀렸다. 그렇다. 만화책과 던전 앤 드래곤 류의 판타지를 향한 해밋과 베이시스트 고(故) 클리프 버튼의 매혹은 the call of ktulu에서 머리를 들고있다. 그러나 ride the lightning에서 밴드는 더이상 거리의 갱이 아니라 쉽사리 해결되지않는 인생이라는 현실에 대항할 방패로서 그들의 사나운 사운드를 이용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젊은 남성성과 조우한다.

ride the lightning은 사형, 죽음, 자살 그리고 핵 절멸을 다루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러한 일련의 관심사들은 메탈 음악의 표준적인 단어들이 될 수 있다. 음악적으로 이 앨범은 스래시가 프로그레시브 메탈과 교차하는 지점을 재현하고 있다. 더욱이 기술, 구조, 기량 그리고 야망도 커지고 있다. 넓어진 시각과 뮤지션으로서의 상승한 기량과의 조합은 메탈이라는 장르 전체를 얼빠진 사춘기적 표현으로부터 하나의 예술형식으로 각인했다. 이는 생각하는 성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고 이들이 (청소년이라는)기본적인 인구학적 집단으로부터 벗어난지 한참 후에도 이들을 (지속적인) 리스너로서 유지하게했다. 즉, ride the lightning은 메탈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발전해나간 한 순간이다. 이 앨범 이후 스래시메탈은 끝없이 향상하는 기술적 역량을 경쟁하는 경주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비록 이렇게 장르의 아이콘이 되고 이미 멀티플래티넘을 기록한 음반이 심지어 디럭스한 리패키징으로 다시 나온 적이 있었던가? 이번에 새롭게 확장된 버전은 더 많은 라이브 쇼(1985년 캐슬 도닝턴 Castle Donington 출연분), 데모, 러프믹스, 그리고 이번에는 클리프 버튼과 커크 해밋이 출연한 오디오 인터뷰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kill'em all을 뛰어 넘는다. 비록 라이브 레코딩의 질은 많이 쳐줘도 얼룩덜룩하다. 예를 들어 1985년 3월에 연주한 fight fire with fire은 원래 음정으로부터 이탈한다. 빈틈없이 딱 맞아 돌아가는 매력넘치는 연주와 창고 안에 그냥 처박혀있어야할 난처한 재난 사이에 괜찮은 부분도 있긴하다. 그런데 이 컬렉션 전체는 너무 자주 후자에 기댄다. 심지어 때로는 메탈리카 특유의 강력한 라이브가 진행되는 부분에서조차 음질은 더 개선됐어야 하는 상태로 너무 많이 남아있다. 이 시기 이후에 나온 더 나은 음질의 레코딩이 존재한다면 그걸 입수한다음 대체해서 발매했어야 했다고 청취자들이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 두 음반이 미친 수치화할 수 없는 임팩트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들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들기 위한 명분 하나 갖는다고해서 누가 다치는 것도 아니다. 강박적인 전작주의자나 컬렉터들은 이 박스셋에 코를 박고서 많은걸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수많은 이들에게는 그저 데모와 러프믹스일 뿐이고 이 박스셋은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고 있다. 바이닐, cd 그리고 울트라 디럭스 세트간의 내용물 차이를 탐구하는 일이 짜증나고 혼란스럽다는건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이 두 음반이 나왔던 중요한 시기동안에 라이브 공연을 통한 메탈리카의 발전상의 궤적을 쫓는 일을 즐기는 헌신적인 팬일지라도 여기서는 실망하기 십상이고, 차라리 이 박스셋 대신 유튜브를 접속해보라는 충고를 들을 것이다.

 

원문 주소

https://pitchfork.com/reviews/albums/21755-kill-em-allride-the-lightning/

2012년에 들은 것 중 기억나는 노래들이다. 최악의 해였던지라 음악을 (못들었다기보다) 안들었다. 이게 거의 모든 2012년에 들은 노래들이었는지도. 기억도 잘 안나. 

 

山下達郎, misty mauve

이영훈, 하품

星野源, ばらばら

richard hawley, don't stare at the sun

xavier jamaux & alex gopher, time quest

soundgarden, bones of birds

kirinji, 若葉の頃や

 

2012년은 야마시타 타츠로를 알게된게 가장 큰 소득. 이 곡은 야마시타 작곡,편곡 및 프로듀스, 부인인 타케우치 마리야 작사로 스즈키 마사유키가 88년 (혹은 91년?)발표됐는데 2002년 야마시타의 미발표곡 모음집인 rarities에 본인이 직접 부른 버전으로 다시 실려있다. 미디엄 템포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곡. 91년 발표라고해도 그렇지만 88년 발표면 더 놀라운 편곡 센스. 야마시타가 그의 음악 인생 내내 가닿으려했던 미국 AOR팝, 일본식 표현으로는 이른바 '시티팝'에 대한 입문으로서 꽤 적합한 곡. '하품'은 올해 가장 좋게 들었던 두 앨범 중 하나에서 가장 좋게 들었던 곡 중 하나. 2012년 내내 적극적인 레퍼런스의 대상으로 호출됐던게 1990년대 대중문화인데 이 곡은 '90년대 가요', 개인적으로는 그중 90년대 초반 가요의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앨범 중 이곡만 유일하게 밴드 편성으로 되어있다.  

 

 

역시 올해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 모 영화에 삽입된걸 계기로 최근 나온 솔로 앨범 두 장을 다 찾아들었다. 알고보니 쿠도 칸쿠로 드라마에 꾸준히 조연으로 나오는 쿠도칸 사단 중 하나. 공교롭게 올해 일드를 보기 시작하면서, 또 쿠도칸 드라마를 주로 보면서 얼굴을 익히게됐다. 멜로디는 유유히 나긋나긋 흘러가는데 그 안에 박힌 가사는 꽤 쓸쓸하다. 사실 그 영화에 삽입되었을때도 그런 느낌이긴했어. 리차드 홀리는 그냥 믿고 듣는거다. 이건 분명 2012년에 나온 노래, 올드팝이 아님. 정보서의 신작 <motorway>의 엔딩 크레딧 삽입곡. 이제는 milkyway 전속 작곡가같은 xavier jamaux은 올해도 두기봉의 <탈명금>과 이 영화의 ost를 맡았다. 앞의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alex gopher와 함께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택했는데 앞서 <문작>ost를 워낙 좋게들어서 기대를 많이했으나 이 곡을 제외하면 그렇게 귀에 들어오는 곡이 많지는 않았다. 크리스 코넬 목소리도 예전 같지않고 딱 들어오는 인상적인 리프 같은 것도 없고 누군가 말마따나 '사운드가든을 흉내내는 사운드가든' 같지만 하여튼 그 중에서 유일하게나마 전성기때 분위기가 나오는 곡. 若葉の頃や는 원래 하타케야마 미유키가 부른 곡인데 최근 나온 songbook 앨범에 자기들이 다시 부른 버전이 실려있다. (앨범 자체가 자기들이 다른 이들에게 준 노래들의 컴필과 그 곡들의 셀프 리메이크로 이루어져있다.) 나로선 리메이크 버전의 쓸쓸함이 원곡보다 더 좋았다. 

생각나는대로 올려보는 2011년에 나온 즐겨듣던 노래들. 더 추가될 수도 있고. 이런게있었구나하고 기억하는 차원에서
빌어먹게 추운 요즘 날씨에 딱. 11월에 나온 정규 풀렝쓰보다 이 ep가 전반적으로 더 완성도가 좋은듯


세계 어딘가의 지명들을 곡명으로 하고있다는 것이 특이했던.



딱히 뭐라고 규정하기 힘든, 정말 뭔지 잘 모르겠지만 멋지다. 유행은 20년주기라더니 하여간 요즘 80년대 레트로가 유행이긴한가보다.


사실 아직도 난 작년부터 영국 팝음악계를 휩쓸다시피한 제임스 블레이크를 위시한 덥스텝의 열풍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겠고 따라가지도 못한다. 게다가 이 곡이 결코 성공적인 리메이크라고 보지도 않는다. 그냥 이건 그러니까 보르헤스의 어느 단편소설 식으로 말하자면 멜로디가 같고 가사도 같지만 그냥 완전히 다른 노래다. 그래도 어쨌든 2011년하면 이 곡이 떠오르는건 부정할 수가 없어서.


아무리 좋은 음악도 항상 듣기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든 음악은 감상을 위한 저만의 최적의 시간대와 (어쩌면) 장소가 있을 것이다. 톰 웨이츠를 즐겨듣기는 하지만 아무 때나 듣지는 않는다. 특히나 그의 음악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감상이 아닌 음악? 써놓고보니 말이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올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특히 논문 제출 후 잠시 유럽을 떠돌던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건 메이트의 전작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자신의 솔로작을 내놓았다. 메이트를 들으면서 그가 정말 하고싶은게 뭐였을지 약간 미심쩍어하며 심증만 갖던 물음이 이 앨범을 통해 확증되었다고나할까.




내가 이래서 윌코를 안좋아할 수가 없다.



92년 wfmu라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부른 버전이다. 일명 "원곡을 찜쪄먹는 제프 버클리 리메이크" 중 하나로서 내게는 엘튼 존의 70년대 작들을 모조리 찾아듣게 만든 곡이다. <grace>를 내기 2년 전, 서서히 대학가와 클럽에서 라이브로 이름을 알려가던 중에 출연하게된 이 방송에서 제프는 훗날 라이브에서 보여준 호기로운 여유와는 반대로 멘트를 약간은 부담스러워하면서 별다른 텀없이 노래를 이어나간다.

대개의 요절 아티스트들이 그렇듯 적지않은 부틀렉들이 나왔고 나는 그 중에서도 이 곡과 (일본 라디오에서 불렀다고 알고있는) lover you should've come over를 가장 아낀다. 더이상 새노래를 들을 수 없기에 어떻게해서든 라이브 음원을 찾고있고 그렇다보니 다 익숙한 셋리스트이지만 계속 듣다보면 어디서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지, 연주시간은 어디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가사는 틀리지않는지 등등을 챙기게되고 자연히 새롭게 들릴 수 밖에 없다.

엘튼 존의 원곡이 담고있는 사연을 굳이 상기하지않더라도 제프의 이 버전은 충분히 처연하고도 남는다. 12월이 온통 시끄럽고 들떠있는 반면 바로 그 전달인 11월은 참으로 대조적인데 그런 11월스러운 분위기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느껴진다. 사실은 닉 드레이크의 주기에 맞춰 그의 노래를 포스팅하려했지만 하다보니 자연히 이 곡에 손이 갈 수 밖에 없던 이유다. 
데뷔앨범이 아닌 정규풀렝쓰작업에 셀프타이틀을 붙인다는건 지금까지의 커리어에 한번 매듭을 짓고 신작로를 내겠노라며 원대한 야심을 공표하는 출사표에 가깝다. 이 경우 아닌게아니라 실제로 이전과 구분되는 회심의 역작인 경우가 적지않은데 너무 유명한 몇몇 경우만 들어보더라도 밥 락의 영입을 통해 사운드레코딩에서 혁신을 이뤄냄과 동시에 스래시메탈의 차트 점령이라는 지상 상륙에 성공한 메탈리카의 91년작 "까망이". 그리고 직전까지의 뽀송뽀송한 브릿팝과 결별하고 노이즈 자글자글한 미국인디씬의 공기를 적극 흡수했던 블러의 97년작이 있다. 물론 그중에는 정규앨범 여섯장을 내는동안 단 한번을 제외하고 전부 셀프타이틀을 달아놓고는 메탈리카와 비틀스의 색깔놀이를 적극활용해 파랑이, 녹색이, 빨강이 등등으로 구분하는 위저도 있다.

윌코가 이년만에 내놓은 신작 wilco(the album)은 어떨까. 셀프타이틀이기도하고 아니기도하고 긴가민가 이러쿵저러쿵...

그렇다면  이번 신작도 2002년의 <yhf>처럼 지금까지의 경력과 단절을 이뤄내고 또 한번의 도약을 하고있을까.(중언이긴하지만 <yhf>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다섯장, 아니 세장 안에도 들어갈만하다.)내 첫인상은 '전작보다 왠지 모르게 심심하다'였는데 <sky blue sky>가 단 두 곡을 빼고는 별로였으며(그 두 곡은 타이틀 트랙과impossilble germany였음) 그래서 신작이 더 좋은데 이전보다 훨씬 더 양키냄새가 짙다는 누군가의 코멘트를 듣고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전작을 더 후하게 쳐주는 것도 역시 한 두곡, 더 정확히는 impossible germany때문이었던거 같다. 물리적으로나(곡길이) 감정적 여운으로보나 음반내에서 그 곡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나머지 앨범 전체에 대한 인상까지 결정해버린 것이다.

거칠게 분류를 해보자면 <sky blue sky>가 다소 분방할 정도로 판을 벌려놓은데 반해 <wilco(the album)>은 그 판을 주섬주섬 추스리는 느낌이다. <summer teeth>때도 그랬지만 <yhf>이후로 윌코는 지속적인 비평적 호의 속에서 얼트컨트리라는 카테고리를 완전히 떼어내고 가장 미국적인 락밴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며 몸사리지않고 마음껏 하고싶은걸 하는 축복을 누리고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짐 오루크처럼 적재적소에 필요한 조력자가 있기도했고.)<a ghost is born>에 실렸던 spiders와 <sky blue sky>의 impossible germany를 가장 명징한 예라고 할 수 있을텐데 십오년이상의 세월동안 꾸준히 팬과 비평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불가능한 임무"를 장기수행해오면서 셀프타이틀의 의미를 모를 리없는 윌코는 이번에 오히려 심플하고 밋밋할 수도 있는, 마치 자신들의 밴드 이름만큼이나 간결하고 똑 떨어지는 노래를 만들고싶었던가보다. 여기엔 5분을 넘어가는 노래도 거의 없고,  웬만한 중견밴드의 히트곡 모음집같았던 <summer teeth>를 떠올리게할 정도로 귓가를 맴도는 의외의 "후크송"들도 자리하고있다. 제프 트위디는 여기에 대해 곡작업이 작년 미국대선기간동안 진행되면서 받았던 영향을 애써 부정하지않는다.("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움직였죠. ...만약 선거결과가 달랐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 세상에서 이 노래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을것 같군요." 뉴스위크 인터뷰중에서) 실제로 트위디는 몇년 전에 처음 알게된 이래로 지금까지 쭉 오바마와 연락을 주고받고있다고하는데 오바마와 트위디 둘다 각자의 영역에서 시카고라는 자신의 '지역구'에 보통 이상의 의미를 두고있는 대표적인 시카고 저명인사들로서 서로 격려하는가운데 같이 기운이 상승했나보다. (지난 몇년간의 투어와 경험 속에서 쓰였다고는하지만 사실 윌코 정도되는 규모의 밴드들에게는 전부 해당하는 사항이라고볼때 이런 발언은 사족에 불과하고 그렇다면 이번 음반을 전작들과 구분짓게하는 전반적인 분위기의 원인을 찾으려는 이들은 좀더 수고해야겠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나 케빈 드류(이건 일반적인 품앗이와는 좀 다른 경우지만)에서 보듯 단순히 셀링포인트 홍보나 예우차원이 아닌 알짜배기 품앗이를 해온 파이스트가 4번 트랙인 you&i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특별한 고저강약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 노래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까슬까슬한 트위디의 그것과 큰 무리없이 주거니받거니하고있다. 역시 친화형 보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고해야할까.(내가 파이스트 빠돌이라서만은 아니라는...)

왠지 고급패션지에나 실릴법한 꽤나 우아한 커버를 앞세운 wilco(the album)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민밴드가 있다면 그런 밴드가 담보해야할 보편성이란 뭔지 살짝 보여준다. 아마추어가 섣부른 치기, 근거없는 자신당당함, 요란함으로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형용한다면 어깨에 힘을 뺀 농익은 프로의 무색무취함이야말로 프로뮤지션만이 갖출 수 있는 매력이자 미덕임을 이 음반은 몸소 웅변하고있다. 



그가 사랑했던 paris, 이렇게 생생한 그의 얼굴.
토요일 오후 <라이브앳시네>와 이 곡만 줄창 돌려듣고있었다.

while this town is busy sleeping
all the noise has died away
i walk the streets to stop my weeping
‘cause she'll never change her ways

don't fool yourself
she was heartache from the moment that you met her
my heart feels so still
as i try to find the will to forget her somehow
oh i think i've forgotten her now

her love is a rose pale and dying
dropping her petals and men unknown
all full of wine the world before her
was sober with no place to go

don't fool yourself
she was heartache from the moment that you met her
my heart is frozen still
cause i try to find the will to forget her somehow
she's somewhere out there now

(guitar solo)

oh my tears are falling down as i try to forget
her love was a joke from the day that we met
all of the words all of the men
all of my pain when i think back to when
remember her hair as it shone in the sun
the smell of the bed when i knew what she'd done
tell yourself over and over you wont ever need her again

But don't fool yourself
she was heartache from the moment that you met her
oh my heart is frozen still
as i try to find the will to forget her somehow
she's out there somewhere now

oh
she was heartache from the day that i first met her
my heart is frozen still
as i try to find the will to forget you somehow
cause i know you're somewhere out there right now
간만에 <hunky dory>를 듣다가 생각나서 유튜브를 찾아봤더니만 이런 대박 영상이 있을줄이야.
아래 곡들을 연이어 들으면서 새삼 느낀건데 보사노바를 포함한 브라질리언 뮤직의 느낌을 만들어내는데는 악기나 연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포르투기스의 발음과 어감이 꽤 큰 것 같다. 시우 호르헤는 초저음의 목소리때문에 그 어감이 확연히 도드라지고.



호르헤의 리메이크 중에서는 이 곡이 가장 좋다. 어찌보면 원곡보다 살짝 더 낫다는.




보다시피 이건 영화 속 장면의 다른 테이크인데 위의 life on mars나 이거나 내가 갖고있는 국내판 dvd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아오, 결국 답은 크라이테리언판이란 말인가. 웨스 앤더슨과 노아 바움백의 코멘터리가 있는게 어디냐며 좋아했건만.



이건 2005년작 cru의 첫곡. 이 음반에서는 4번을 좋아하는데 유튜브에는 없다. 무엇보다 이 클립에는 흘렙닮은 윌렘 데포와 '그 분'이 나오신다는거.

오늘 피폭을 들어가보니 디자인이 바뀌었다. 내가 파폭으로 브라우저를 바꾸게된게 순전히 (어제까지의) 피폭이 익스플로러상에서는 제대로 보이지않기때문이었는데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아서 사실상은 익스플로러로 다시 돌아간 상태였다. 그러다 요 며칠 파폭을 제대로 써보려고 이것저것 설정을 만지고있었는데 혹시나 싶어 새로 바뀐 디자인을 ie로 보니 이제는 또 안깨지고 똑같이 보인다. 헉. 그러나 이제는 ie상에서만 제대로 돌아가는 사이트를 전부 ie tab 설정에 넣더라도 파폭을 메인으로 쓰려 노력하는중.(피폭, 파폭, 비슷한 것이 은근히 헷갈리네.)

피폭에서 평소 흥미롭게 보고있는 것이 바로 guest list인데 이번엔 스튜어트 스테이플스가 여기에 응했다. 뮤지션들의 취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코너인데 비록 그것이 대외용이라고 할지라도 역시 예술하는 사람들인지라 하나같이 다들 재미있다. 그 중에서 한 대목.

마지막으로 읽은 좋은 책
The Damned Utd by David Peace.
"70년대 노팅엄에서 자라면서 브라이언 클러프는 우리 지역의(그리고 국가적인)영웅이었다. 축구선수로서의 경력은 초기 부상으로 인해 잔인하게도 짧게 끝났고, 이후에는 독립자의 길을 걸었지만 매우 입심이 대단했던 성공적인 감독이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작은 팀인 노팅엄 포레스트를 2년 연속 유럽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결코 작은 업적이 아니었고 노팅엄에겐 좋은 시절이었다. 70년대에 그는 44일동안 지역에서 최고로 저주받은 팀의 감독으로 지명되는 위기를 맞았다. 바로 리즈 유나이티드다. 전임 감독으로부터 이어받은 그는 팀의 모든 것을 혐오했다. 이 책은 그 44일에 대해 일지 형식으로 적은 가상의 책이다. 어둡고 심리적인데 공차는 남자들에 관한 건 별로 없다."

70년대에 이 팀이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요즘 이 팀의 굴욕을 알고있는 2000년대 이후의 축구팬이라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저주 축에도 못낀다고 코웃음 칠테지. 찾아보니 지금 리즈는 3부리그인 football league 1에서 7위에 머물러있다. 아 정말, 리즈 유나이티드 운영진이 지금 한국에서 자신들이 인터넷 유머이자 속어의 대상으로 쓰이고있다는걸 알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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