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문은 1999년 문예춘추 5월호에 전문 게재됐고 그로부터 약 두 달 뒤 저자 에토 준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세키와 그의 시대>(1970~1999), <성숙과 상실>(1967)을 비롯해 읽고 싶은 그의 저서는 많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건 이 책이 유일하다. 분량이 매우 짧긴하나 한 가지 특징(?)이 크게 눈에 띄었는데 바로 날짜와 시간에 관한 유난한 집착이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작업 일지 쓰듯이 상세하게, 특히 그 내용이 플래시백을 포함하는 비선형적 전개일 경우, 각각의 시간의 경과와 순서를 매우 세세하게 명시한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는 전례없는 길이의 평전일 <소세키와 그의 시대>를 쓰면서 들인 습관일수도, 아니면 그저 일관된 그의 글쓰기 방식일 수도 있다. 실제로 사적인 일기이기에 이렇게 썼다고 보기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었다고 볼만한 대목이 여럿 있다. 어쨌든 그렇게 읽다보니 날짜, 시간, 장소 및 행적에 관한 세세한 명기와, 극도로 건조한 문장이 혹시 그의 극우 사상과 연관이 있는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치나 문학 비평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 책에서도 보수적인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경향이 역력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아내를 향한 절절한 애정이 본문 내내 이어지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중심적이면서 동시에 우파적인 상상력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들,

 

"게이코는 무언의 말을 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자신이 행복했노라고. 자기의 진짜 병명을 '고지'해주지 않은 것을 포함하여,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41년 반에 이르는 우리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고. 아니 훌륭했다고.
  나는 그녀의 무언의 말에 대하여 역시 무언으로 되풀이하였다. 고맙다고, 알아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당신의 생명이 다한다 하더라도 내게 의식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기억 속에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거라고.
  그 무언의 대화가 도대체 몇 분, 아니 몇십 분 계속된 것인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대화 속에는 이상하게도 눈물은 없었고, 끝없이 깊은 충족감만 있었다. 게이코의 웃는 얼굴은 변함이 없었고, 나도 나 자신이 미소를 짓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당신의 손이 아직 따뜻할 때>(2000)중에서 88~89


이런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지면에 쓸 수 있다는 것이 에토 준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파적 심성을 이루는 중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당당함, 즉 자기본위적 세계관과 그 대담한 전시가 아닐까. 아내의 입원 후 빨래, 식사, 설거지, 다림질 등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 중 어느 하나도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걸로 보아 그가 이전까지 어떻게 살아왔을지 짐작이 되는데 이를 가감없이 털어놓는 그 당당함이야말로 자연인 에가시라 아츠오와 문예비평가 에토 준이 동일인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자기본위적 경향은 당연히 문장 자체에도 이어진다. 우파 중에는 미시마 유키오처럼 탐미적인 문장가도 있지만 수사가 일절 배제되다시피한 에토 준도 있는 것이다. 문예비평가이자 작가이지만 그가 쓰는 비유들은 문체의 건조함만큼이나 투박하고 직선적이다. 본문에 계속 나오는 '삶과 죽음의 시간' 대 '일상과 실무의 시간'이라는 표현은 마치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을 두고두고 계속 써먹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처럼 고루한 비유의 반복적 사용과 아내를 향한 일편단심의 순애보는 그의 일관된 성격에 관한 증거로 제출될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건 에토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마저 그 일관성을 끝까지 유지하려 했다는 것, 즉 지금까지 유지해 온 자신의 일상과 경력이 흔들리는 조금의 균열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존엄성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려 했다는 점이다. 그 최후의 방법으로서 택한 자살은 그래서 미시마의 그것과는 맥락을 달리한다. 미시마가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고 퍼포먼스로서의 자살을 행했다면 에토는 공적 영역에서의 경력과 그것을 실질적으로 가능케 했던 사적 영역에서의 자연인으로서의 삶이 더이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걸 막기 위한 회피이자 결단이라는, 매우 유구한 형태의 자살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에토의 자살은 우익으로서 살아온 생전의 행적과 상반된 게 아니라 오히려 제 때 제자리에 찍힌 마침표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유작에서 일편단심의 로맨티스트로서 자신을 묘사하고 규정하기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더없이 완벽한 마무리란 말인가.

 

 

사족.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세키와 그의 시대>를 레퍼런스로 하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에토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그 영향력이 어디에서 연원하는지를 3장에서 알 수 있다.

 

사족 2. 사이토 미나코는 <취미는 독서>에서 이 책을 일종의 동시대 '귀족 문학'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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