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기밀당안(1993)
새해 벽두부터 이렇게 막나가는, 일부러 갈데까지 가보겠다는 야심으로 무장한 악취미의 영화를 봤다. 노약자는 보호된다는 일반적 기대를 완전히 뒤집어 일부러 잔인하게 어린 아이를 죽이고, 죽고난 뒤의 장면을 보여주는.
혈세홍화정(1990)
미리 탄환을 몰래 빼놓은 줄도 모르고 그 빈 총을 겨눴다가 기만 당했음을 확인하고 곧바로 사망하는 장면은 3년 뒤에 나온 <칼리토>가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의식을 했을까 아닐까.
다동과 치쿠와(1998)
이치카와 준 감독의 전작 관람을 완료했다. 전작들과는 물론이고 전체 필모에서도 단연 튀는 작품임은 확실하다.
도쿄남매(1995)
이번에 다시 보면서 생각해본 건 맨마지막 장면에 관한 것이었다. 세속을 등진 듯한 격조한 집을 벗어나겠다는 오빠의 그 선택에 대하여.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1995)
배용균 감독 작품 두 편. 유튜브 덕에 보게 됐는데 후자의 경우, 당시의 동시대 세계 예술영화의 자장 안에 오롯이 위치지어지는 일편이었다.
메모리(2023)/선다운(2021)
미첼 프랑코 감독의 영화 두 편. 전자를 먼저 본 뒤에 감독에 흥미가 생겨 후자를 찾아봤는데 훨씬 인상깊었다.
마테이 사건(1972)/살바토레 줄리아노(1960)
프란체스코 로시 영화 두 편. 주연 배우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의지해 끌고가는 서사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낮은 목소리3: 숨결(1999)
어느 책에서 위안부 할머니와 청각장애인 딸의 대화 장면에 관한 설명을 보고서 찾아봤는데, 직접 보니 단연 가장 인상깊은 대목이자 하이라이트였다.
cloud(2024)
구로사와 기요시의 본작에서의 목표는 일본 영화에서 총격전을 한번 제대로 연출해보겠다는 야심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예의 그렇듯'정상'으로부터 살짝 빗겨난 낯선 줄거리 전개 속에서 펼쳐지는 총격전은 어색하기만하다. 가레스 에반스의 havoc(2025)이 같은 목적 하에서 '과잉'의 슛아웃을 보여줬다면 본작에서는 기능부전의 억압된, 억눌린, 제한된 총격전이 펼쳐진다. 카타르시스나 흥분이 전무한 냉정하고 무감한 총격전.
requiem for heavyweight(1962)
젤소미나의 영혼을 가진 잠파노의 이야기라고 할까. 앤소니 퀸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이것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하다. 무려 로드 설링이 각본을 썼지만 의외의 반전 같은 예상된 기대와는 거리가 먼 정통적인 진중한 드라마. 무엇보다 재키 글리슨과 미키 루니의 연기가 퀸에 못지않아서 영화를 튼튼하게 떠받친다.
독설변호사(2023)
역대급 흥행을 기록한 본작의 홍콩 내 흥행은 법치주의라는 명분과 현실 간의 간극을 반영하는 걸까. 아니면 액션과 코미디라는 홍콩 영화의 양대 기둥을 버리고, 법정극이 수반하는 밀도 높은 각본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의지하는 진중한 정극 드라마의 수요를 증명하는건 아닐까.
mad fate(2023)
유내해와 위가휘 각본의 고질이라면 떡밥 수습이 안된다는 수준을 넘어선 모순과 공백 내지는 설정 오류 같은 것들 그리고 이 모든 걸 그럼에도 넘어가게 하는 꽤나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모호하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줄거리인데 본작에서도 여전하다. 분주히 뛰어다니며 뭔가를 열심히 하는데 딱히 그걸 이치에 맞게 설명하기는 뭔가 어려운, 그렇지만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하는 흡입력이 유지된다.
죽어도 좋은 경험(1990)
제작 당시에는 결국 미개봉이었다는데 삼십년도 더 지나 화질 복원과 함께 개봉하게 됐다. 삼십오 년 전 서울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큰 반면, 정작 교환 살인이라는 플롯은 후반으로 가면 지리멸렬하게 늘어진다.
찬란한 내일로(2023)
공산주의를 향한 갈구와 미약한 희망
베이징 워터멜론(1989)
노스탤지어와 선의가 물씬한 '착한' 영화.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친구를 향한 그리움을 극 형식을 파괴하는 시도까지 하면서 나타나는 대목에서 새로운 시도를 결코 주저하지 않는 오바야시 특유의 대담함과 그 용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폴 디렉터스 컷(2006/2025)
처음 본거라 최초 개봉판과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으나 다소 작위적인 줄거리나 플롯 때문에 심드렁했지만 미장센의 탁월함은 듣던대로였다.
물 안에서/수유천/탑/우리의 하루
<우리의 하루>가 근작 중에는 가장 공감되는 작품이었다면 <탑>은 가장 인상깊었다.
Tales from the Darkside(1990)
아서 코난 도일과 스티븐 킹의 원작을 둔 앞의 두 에피소드와 달리 오리지널 각본인 마지막 에피소드는 정작 우리에게도 익숙한 설녀 전설 내지는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를 살짝 로컬라이징만 한 수준이라 이 각본을 어떻게 쓴건지 그 사정이 알고 싶어졌다.
달글리시(2021~2024)
결국 올해의 드라마는 이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달글리시 시리즈가 (내가 알기로는) 단 한 편인지라 매 에피소드를 쫓아가며 챙겨봤다. 아주 정석적인 후던잇 플롯이고 매 에피소드마다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반전도 인상적이었다. 그외 올해 본 시리즈의 어너러블 멘션은 다음과 같다. 더 스튜디오, 핫스팟, 번화, 더 피트, 보쉬, 언내추럴(2018), 젠틀맨.
독립시대(1994)/마작(1996)
양덕창의 영화 두 편을 꽤 오랜만에 다시 봤다. <독립시대>는 현대 대만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 묘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너무 고전적이고 익숙한 이야기. 반대로 <마작>이야말로 90년대 동시대 자본주의와 그 영향에 대한 감독의 관점이 들어갔다 할 수 있는데 마지막에 한 가닥 희망을 남겨놓는 듯한 엔딩이 살짝 불균형적이고 불안한 듯해서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만천과해(2023)
<인비저블 게스트>의 대만판 각색인데 반전이 너무나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게 치명적 단점이라 하겠다.
Dead in a week or your money back(2018)
아마도 2024년 말부터 해서 여러번 돌려본 영화 중 한 편일듯 하다. 이유를 딱히 설명을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저렇게 방황하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여전히 강하게 끌린다.
유령작가(2010)
클레어 데더러의 책을 읽다가 언급이 되길래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2025년 다시 본 이 영화는 한국인 입장에서 무척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를 찾아서(2025)
언제나 한 발 이상 앞서가는 감독답게 헤어조크는(이 작품의 연출자는 아니다) ai가 작성한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에 '출연'한다. 올해 본 가장 괴이한 영화.
니아짱(1958)
가장 이마무라스럽지 않은, 마치 고용감독이 아닌가 싶은 영화였다. 서경식은 자신의 유년기 시절 개봉했던, '자이니치'가 주요 배역으로 나왔던 두 편의 영화로 <큐폴라가 있는 마을>과 이 작품을 언급하면서 그닥 만족스럽지 않은 딱 그정도의 영화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자이니치가 주인공인데도 민족 문제는 일절 언급되지 않고 그저 일본 사회를 구성하는 최하층민으로서만 재현된다. 주인공이 딱히 자이니치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갈등의 본질은 그대로인 채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음에도 급작스럽게 봉합해버리고 끝내는 결말의 납득이 어렵다.
혈매귀(1988)
픽픽 죽어나가더니만 주인공 한 명 남고 다른 모든 주요 출연진이 전부 사망한다.
배를 엮다
2024년 nhk판 드라마를 봤는데 꽤 흥미롭다. 원작을 읽었지만 기억이 거의 없고 영화판과 비교해보자면,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는데 그 바뀐 지점들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일단 그 비교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우선 주인공이 마지메가 아니라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원작에 없던 신입 여자 직원으로 바꾸었고 자잘하게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향후 이야기 전개, 그리고 배역간 관계가 거의 다 바뀌어있다. 시간적 배경도 원작처럼 90년대가 아닌 동시대로 바뀌어서 e북과 종이책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같은 것들도 삽입되어있다.
양조위의 감옥풍운(1997)/ 애니멀 팩토리(2000)/ brown bunny(2003)
이 세 편은 올해 본 깜짝의 수확이라 하겠다. 브라운 버니는 문제의 그 '장면'을 빼고보면 내 눈엔 충분히 잘 만든 영화였는데 로드 무비 장르의 외로움과 쓸쓸함, 상실감을 제대로 구현해냈다. 무신경한 국내 개봉 제목인 <양조위의 감옥풍운>은 영어제목이 <china midnight express>인데 그만큼 가혹한 투옥 환경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또다른 감옥 영화인 애니멀 팩토리는 그 리얼리즘적 접근이 주류 할리우드 영화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첫번째 키스(2025)
중반부까지는 익숙한 타임트래블, 타임슬립, 슬립스트림 등등으로 불리는 그 장르 공식을 따라가긴하는데, 왜 가장 쉬운 해결책을 놓고 어려운 길을 가는걸까 의아했으나 결국 후반부에서의 진짜 의도했던 멜로 내지는 로맨스에 의한 감동을 끌어내기 위한 설정이었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 의아함에 대해 더 말해보자면 <러브레터>(1995)에서 서로 다른 동명의 두 사람 중에서 A로 시작은 했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가면 그 중심이 B로 이동하듯이 이 영화도 그래서 중반부까지의 칸나와 후반부의 칸나는 사실상 다른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그럼 중반부까지의 칸나는 대체 어디로(어떻게) 간(된)거야라는 의문은 불문에 부쳐진다. 그 외 다른 설정오류도 있겠으나 이 부분이 가장 내게는 의아했다. 어쨌든 시간여행물은 이러한 패러독스 문제를 피해가지 못하는듯.
퍼스트 카우(2019)/마스터마인드(2025)
켈리 라이카트 영화 두 편. 연말에 본 영화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억에 확실히 각인되는데 이 작품들도 그래서 그런가 왠지 영화 자체가 연말에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얼마 뒤에 나이브스 아웃 3편으로 조쉬 오코너의 연기를 연이어 보게 된 셈이다.
초콜릿 고마워(2000)/사기(1997)
샤브롤 영화 두 편. 아무래도 샤브롤은 스릴러라기보다는 심리 연출에, 더 정확히는 심리 중에서도 '악의'를 드러내고 가시화하는데 탁월한 연출가인 것 같다.
coup de chance(2023)
무대가 파리일 필요가 없는 걸 넘어 오히려 뉴욕이어야 잘 어울리긴 하겠는데 그래도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가도 영화 자체가 <매치 포인트>의 재탕 느낌이 강하다.
men from the gutter(1983)
강력한 폭력 묘사로 플롯의 단순함을 극복한다. 러닝 타임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전혀 접점이나 연결점이 없는 별개의 두 사건을 한 수사팀이 담당한다는 설정아래 진행되는데 어쨌든 그러거나 말거나 앞에 말한대로 위력적인 고어한 폭력 묘사로 줄거리의 단순함과 식상함을 정면 돌파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