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을 읽다가 "영화관은 겁쟁이가 혼자 울러 가는 곳이라고 다자이 오사무가 썼던가"라는 대목이 나왔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알고 싶어 찾다가 다음의 문장을 보게됐다. 같은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라도 볼까.' 이 말 속에는 역시 무기력한 패배자의 한숨이 숨어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약자의 양식> 중에서)

영화가 약자나 패배자가 선호하는 예술 양식이라니. 평범한 이라면 쓰기 전에 한번은 주저할법한 겸연쩍음같은건 보이지 않는다. 발설하기엔 쑥쓰러운 내밀한 생각을 아무렇지 않은듯 짧은 문장으로 써내는 행위야말로 '약자의 양식'은 아닐지.

-저는 남에게 말도 제대로 못붙일 정도로 심약한 성격으로, 따라서 생활력도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자각한 상태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제가 세상 사람들을 대할 때의 감정은 역시 늘 수줍음이고...

 

-저는 사람을 만나도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나중이 되어서야 그걸 말했어야 하는데, 이렇게도 얘기해 볼걸, 하면서 억울해합니다.

 

-자기 집에 있으면서도 남의 집에 있는 것 같은 시무룩한 기분이던 사람.

 

 

<인간실격> 속 요조의 독백들이다. 

"어느 누구와도 교제한 일이 없다. 어디에도 찾아갈데가 없다."


"두려워하면할수록 그들은 내게 호감을 갖고, 나는 그런 호감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더 겁이 나서 사람들을 멀리하게되는 이 불행한 병적인 성격."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분명 있습니다. 더 이상 상처를 입기전에 어서 빨리 헤어지고 싶어서 예의 광대 짓이라는 연막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 나약함 때문인지몰라도 그는 전쟁 기간동안 돌연 관변 작가가 되어 체제를 옹호하고 미화하며 선전하는듯한 소설과 글을 제법 썼다. 그 중 하나가 결말이 인상적인 여행기 <쓰가루>. 아래와 같은 문장은 두고두고 다자이의 흑역사로 전해질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힘이다. 다른데서 헤메고있다가도 국가에 어려움이 닥치면 아기 새들이 어미에게 모여들듯 모든 것을 버리고 황실로 모여들어 황실을 받들어 모신다. 이것이야말로 국가 정체성의 진수이다. 백성의 신성한 본능이다. 이것이 드러나면 난학이고 뭐고 모든 것이 폭풍우 속 나뭇잎처럼 맥없이 날아가버린다. 실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닌 힘은 놀랍다. 이런 저우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가슴이 뛰었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칠칠치 못하다 싶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전집을 읽으면서 문득 그가 몇번이나 자살을 언급하는지 궁금해졌다. 체크해보니 거의 '수시로' 언급했다. 자살을 늘상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중 실제 시도하는 이는 몇 명이고, 또 그 중 성공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그토록 죽고 싶어했고 실제 수차례 시도했고 최종 성공했으나 그가 가족을 꾸리고 꾸준히 글을 쓰고 발표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속적 성공과 일상적 행복에 대한 갈망 그리고 죽음을 향한 끈질긴 집착, 이 세가지 욕망 사이에 그의 삶이 놓여있었다. 셋 중 어느 하나 놓지못하고 끼어버린 난처한 그 처지로부터 다자이의 문장이 나온다. 

이렇게 볼 때 일본에는 지금 일본, 황실, 정부, 국민 중 어느 요소에 있어서도 당사자 우위와 당사자 책임이라는 근대국가적 원리가 결연되어 있는 듯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으로는 궤변이 횡행하여 제멋대로 타인을 대신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정치적으로는 우익 테러리스트가 제멋대로 황실을 대신하고 재판소와 집행인을 대신하며 폭행을 자행하고 또 일개 재판관이 제멋대로 의회와 정부와 법정을 대신하여 아무렇지도않게 폭언을 해대는 것이다. 게다가 그같은 대리행위를 당한 당사자는 자신의 소관사항이 불법 부당하게 침해당하고 있음에도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를 지키려하기는 커녕 무법자의 등 뒤로 조심스럽게 물러서 있다. 과연 당사자 원칙은 앞으로 일본의 어느 계층에서 가장 빨리 완전하게 확립될 것인가. 황실일까 정부일까 아니면 국민일까. 그 원칙을 자기 안에 확립하는 자만이 미래와 세계적 교류의 담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에 실린 '당사자 우위의 원리' 중에서 151 152


시마나카 사건에 촉발되어 쓰인 이 글에서 후지타 쇼조는 본인과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일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우익들과 그들의 폭력을 제지하지 않는 공권력과 정부, 그리고 권력의 최상층부를 고발하면서 이들의 암묵적인 공모와 합의를 비판한다. 정부로서는 손 안대고 코푼 격이고 자신들이 정의를 실현했다고 믿는 폭력집단은 엄연한 범법행위로부터 면책을 받는다. 무려 반세기전 바다 건너 이웃나라의 일이지만 이것이 온전한 과거의 일이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2루수나 유격수는 병살을 시도하기 전에 1루 주자의 성향을 미리 알아둬야 한다. 내가 1루 주자라면 조심하는게 좋다.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쓰러뜨릴 것이다. 당신을 외야 잔디까지 날려 버릴 것이다.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안하겠지만, 내가 2루로 돌진할 땐 죽일 기세로 달려든다고 보면 된다. 173
......
내가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가장 즐겼던 플레이 다섯 가지 중 하나는 내가 1루 주자로 있을 때 타자가 내야수 쪽으로 느린 땅볼을 때렸을 때다. 그러면 병살을 처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2루수나 유격수를 노리기엔 시간이 충분하다. 난 그들이 겁에 질렸다는걸 알았다. 제자리를 지키면 내가 깔아뭉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마치 크리스마스같은 기분이 들었다. 병살을 방해하는건 내게 선물과도 같았다. 특히나 포수는 2루에서 누군가를 쓰러뜨릴때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 포수는 항상 얻어맞기만 한다. 2루수나 유격수를 치는건 일종의 복수인 셈이다. 174
......
주자가 거칠게 돌진해서, 정상적인 타이밍에 슬라이딩하지않고, 병살 플레이의 구심점이 되는 선수를 쓰러뜨렸다면 별일 아니다. 그런게 야구다. 하지만 주자가 늦게 슬라이딩하면 베이스에 도착했을 때 몸이 땅 위에 있지 않게 된다. 베이스 위로 슬라이딩하거나 -주자에게 위험하다- 혹은 베이스를 지나쳐 슬라이딩하게 된다. 후자를 더러운 슬라이딩이라고 한다. 마치 주자가 내야수를 쓰러뜨리는 모양새가 되는데, 그러면 내야수의 무릎이나 발목이 나갈 수 있다.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175
......
주자의 스파이크도 확인하라. 스파이크가 위와 아래 중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야구 선수가 신는 신발에 달린 철제 징은 살갗을 찢을 수 있다. 주자가 징을 아래로 향한 채로 슬라이딩하면 내야수에게 안전하다. 징이 위를 향하고 있으면 내야수가 부상당할 수 있다. 난 마음에 들지않는 선수 -나와 악연이 있고, 나 자신이나 팀 동료에게 해를 가한 선수- 에겐 징을 든 채로 슬라이딩했지만, 징을 든 채로 슬라이딩할거라면 보복에 대비하는게 좋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은 특히 야구에 잘 적용된다. 176

 

제이슨 켄달 & 리 러지 , <이것이 진짜 메이저리그다>중에서

 

강정호의 부상이 있은 후 얼마 안 되 위 문장을 읽게 됐다. 읽고서 든 생각이라면 첫째, 부상 뒤 현지에서 나온 일부 기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의 의견과 달리 정작 경기장 위에서 뛰는 선수들은 이 글에서 보듯 저런 슬라이딩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심지어 당연하다는 나름의 자명한 논리까지 갖고있다. 하지만 둘째, 저렇게 당당하게 주장하는 한편에는, 자신의 슬라이딩이 정당했음을 심판에게 보여주기 위해 손으로 베이스를 터치하는 주자에서 보듯 어쩌면 저런 플레이에 대해 내심으로는 저어하고 꺼림직하다는 마음 또한 없지는 않은듯 보인다. 전세계에서 수급되는만큼 서로 잘 모르는 낯선 선수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매일 진행되는 세계화된 메이저리그와 다들 학연 지연 등의 선후배 관계로 강하게 얽혀있는 한국간 양국 야구 문화의 차이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온도차의 원인을 일부 제공하겠지만 그보다도 (직접 인용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과 사적으로 막역한 선수라도 자신의 플레이를 방해한다면 가차없이 응징하겠다는 켄달의 멘트에서 보듯 공과 사를 칼같이 나누고 경기를 하는 동안은 철저히 터프하게 경기에 임하는 자세 자체가 우리와는 판이한 수준이고 적어도 내겐 무척 인상이었다. 하여간 본문 내내 켄달은 시종일관 저렇게 친한건 친한거고 게임중엔 그런거 전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있는데 과연 한국 프로 야구에 저런 선수가 얼마나될까 싶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 속 일본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어느 섬나라가 아니라 기호, 그것도 이 책에서 제법 유명한 부분인 황궁이라는 텅 빈 공백을 중심으로 구성된 도쿄의 비유처럼 속이 텅 빈, 마치 기의가 부재하는 기호에 가깝다. 

내가 지금 말하는 도시에는 중요한 역설이 있다. 이 도시에는 중심부가 있지만 그 중심부는 텅 비어있다. 이 도시 전체는 금지된 중립의 공간을 빙 둘러싸고 있다. 이곳은 나뭇잎 뒤에 숨겨져 해자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아무도 본 적이 없는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못하는) 천황이 사는 곳이다. 매일 총알처럼 빠르게 정력적으로 달리는 택시들도 이 원형의 공간은 피해가며,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한 형태인 낮은 용마루 장식은 신성한 '무rien'을 숨기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두 도시 중의 하나가 이렇듯 성벽과 시냇물, 지붕, 나무로 이루어진 불투명한 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있다. 그 중앙부는 권력을 사방으로 퍼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텅 빈 중심부가 도시 전체의 움직임을 유지하기위해 존재하는 사라진 개념에 불과하다. 그래서 주행하는 차들은 끊임없이 돌아가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상상력의 세계도 텅 빈 주제를 따라 돌아가거나 되돌아오면서 둥글게 퍼져나간다. 46-47

 

기호의 제국? 그렇다. 그러나 여기의 기호들은 텅 비어있고 그 의식에는 신이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146

 

아니메나 망가, 영화같은 현대 대중문화가 아닌 가부키, 하이쿠, 인형, 음식등 전통적인 것에 집중하며 바르트는 너무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나머지 사실상 별 의미가 없으며, 낯설게 보는 차원을 넘어 아예 의미가 점점 소멸해가는, 그래서 전혀 다른 사물이 되어가는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일본을 본다. 다시 말해 그의 일본 관찰기는 특정한 시공간의 맥락과 역사에 대한 선행 지식, 그리고 실제적 체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타문화를 관찰할 때 발생하기 쉬운 (우연한) '참신함'(창의성)이나 '엉뚱함'이 새로운 경지를 획득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러한 날것의 상태가 일본요리에서는 수호신과 마찬가지여서 모든 것이 여기에 봉헌된다. 일본요리가 궁극적으로는 먹는 사람 앞에서 항상 조리되는 (스키야키 요리의 기본 특성) 이유는 직접 보는 행위를 통해 영예로운 날 것의 죽음을 신성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33

 

젓가락은 절대로 음식물을 침해하지 않는다. (야채의 경우) 조금씩 해체하거나 (장어같은 생선의 경우) 찔러서 몇조각으로 나눔으로써 원래부터 있던 재료의 균열을 다시 발견한다 (이런 점에서 젓가락은 나이프보다 손가락의 원시적인 기능에 가깝다). 29

 

덴푸라는 윤곽선이 너무 가벼워서 추상적이다. 음식물은 껍데기에 시간만을 지니며 이 시간(더욱이 그 자체는 매우 가냘프다)은 그것을 견고하게 만든다. ... 덴푸라는 단식과 속죄의 의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명상이며 영양적일 뿐만 아니라 (덴푸라가 우리 눈앞에서 조리된다는 의미에서) 눈요기가 되며, 이 요리에 부득이하게 이름을 붙여야한다면 ... 이 요리의 진정한 이름은 특정한 테두리가 없는 , 다시 말해서 텅 빈 기호다. 39

이런 식이라면 사전 지식 습득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다. 사상가만의 번뜩이는 통찰력 혹은 '뭘 모르는' 딜레탕트의 현학 둘 다에 해당하겠지만, 기실 이런 접근은 처음 접하는 타문화가 이국에서 온 관찰자에게 어떻게 체감되는지를 극단적으로 예시하는건지도 모른다. 여행자는 미지의 대상을 이해하려하기보다 그것에 도전하고 심지어 지배하려든다. 역사와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철저히 나의 이해 체계 내에서 대상화하고 주관화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바르트같은 지식인만이 저러는건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편적인 혹은 일반적인 이방인의 경험에 대해 이만큼 명징하게 보여주는 예도 없다.

 

반면 바르트의 이러한 대담한 접근법과 달리 요모타 이누히코는 <우리의 타자가 되는 한국>에서 자기반영성을 의식하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참여관찰하는 민속지 작성자처럼 자신의 관찰자적 위치를 의심하고 주의하는 태도에는 과거 종주국 출신의 지식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고려가 있음은 물론이다.

나 또한 이전의 로치와 플르베르가 수수께끼같은 여성을 매개로 오리엔트를 접했던 것처럼, 이국을 여성형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는 오리엔탈리스트 특유의 지향성을 모르는 사이에 답습한 것일까. 이성을 잃은 이국 여성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내가 서 있는 위치는 도대체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공간인 것일까. 119

 

어쩌면 일본 문화에 대한 완전한 귀속을 주저하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의 시점에서 일체를 바라보기를 꿈꾸는 나의 모습이야말로 실은 매우 오만한 자리에서 긴 말을 늘어놓은게 아닌가하는 일말의 불안이 있다. 311

한국의 반일감정 못지않게 한국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감정이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강했을 70년대 말 한국행을 결심하기까지 그에게도 이국취미의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석사학위 취득 후 낯선 땅에 가보고 싶던 차에 원어민 강사 모집공고를 보고 별다른 고민없이 지원한 이십대 중반의 요모타는 1979년 봄학기에 입국해 1년간 한국에 체류한다. 당연히 1979년 10월 26일 한국이라는 시공간으로부터 그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날 학생들과 무대에 올리기로 예정되어있던 미시마 유키오 원작의 연극 공연은 실패하지만 그 대신 그들과 토론을 하고 화랑, 일본대사관, 파고다 공원 등등을 돌아다닌다. 결국 모든 대학가가 강제휴교를 맞고 불안정한 정국이 계속되면서 (이듬해 5월이 오기 전 귀국한다) 강사 신분이지만 실상은 자신과 동년배의 학생들과 어울리며 그는 한국의 속살을 한층 깊게 들여다보게된다.

위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시기상으로 더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6,70년대보다도 어쩌면 우리에게 더 낯선 80년대 한국의 면면이 외부인의 시선에서 서술되어있다는 가치가 있다. 한국의 80년대란 80년 광주로 시작해 87년 서울에서 종결된, 현재까지 이어지는 6공화국 체제 유산을 포함해 정치사회 지형을 바꾼 중요한 시대적 분기점으로 각인된다. 마치 이후 한국의 90년대가 99년이 아닌 97년 imf로 종결된 것처럼, 그래서 한국의 2000년대가 98년에 이미 시작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불과 최근에 풍속적 유행의 목록으로 소구되기 전까지만해도 정치적 격변과 사건들로만 기억되어왔던 80년대에 대한, 특히 한국인도 잘 몰랐을 문화계 풍경은 자료로서 소중하다. 이를테면 배창호와 최인호가 <황진이> 제작을 앞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미조구치 겐지 영화를 집중적으로 찾아봤다거나(따라서 그 영화가 실패한 것은 똑같이 따라하려했기때문이라고 요모타는 판단한다) 하길종 감독의 부인이 오시마 나기사의 <백주의 살인마>를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루했다'고 폄하했다든지, 김지하의 연극이 올려졌던 신촌을 포함한 서울대, 건국대, 상명대등 당시 대학가의 풍경, 70년대말 한국 대학생들이 무라카미 류를 즐겨 읽었다는 사실, 그리고 위의 하길종, 최인호을 포함하여 윤흥길, 박흥용, 그리고 무엇보다 김소운 시인을 회고하는 흥미로운 세 편의 글이 그렇다 (참고로 그 중 한편의 글에서 김소운은 위에 언급한 당시의 인기금서를 쓴 무라카미 류를 애송이 작가로 분류한다).

 

김치를 두고 "식물에서 느껴지는 에로티시즘일지도 모른다"라고 할 때 그에게도 바르트같은 일면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한국의 가면과 일본의 노우멘 간의 비교나 그의 본령인 영화 관련 글에서는 평론가이기 이전에 비교문학자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현재 한국인들도 거의 기억하지못할 당대에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진 통속 영화에 대해서도 그는 별다른 편견없이 호기심을 동반한 진중한 태도로 바라본다. 물론 이는 비단 영화만이 아닌 그가 사물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이기도하다. 언뜻 보이는 자신의 모국과 그 국민들로부터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상대화하려는 자세는("나는 `우리'라는 말을 통하여 일본이라는 공동체에 귀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회피와 얽매임으로써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319) 스스로 말하듯 비평가로서의 자세이기도 하겠지만 그 기저에 젊은 시절에 경험한 타국을 향한 애정이 깔려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람이 갑자기 좋아질 때는 이런 때이다. 그들의 강한 동료의식, 그리고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 대상이 강력한 권력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않는 강인함. 그것은 스승에 대해 예의를 다하는 행동과는 모순된 것이지만 실은 표리일체의 행동이다. 122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지내는동안 나는 언제부턴가 그런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제 일본에 돌아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언제까지고 이런 광경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마음이 들게하는 매혹이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116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그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애처러울 정도로.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내가 서있는 지반과 그들의 그것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커다란 장벽이 가로놓여있다는 것을 상기시킬 뿐이었다. 315

후기를 보면 저자는 일본의 독자들로부터 한국을 향한 비하와 멸시가 너무 강하며, 정치적으로 각성되고 고양되어있던 시기의 서울에서 통속영화를 소개하는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져있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앞에 말했듯 저자의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로 인한 결과로 봐야 하지않을까. 한마디로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이라는 타자를 향한 존중과 애정이 있음에도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려하지 않으려하고, 이해가 잘 되지않고 의문스러운 대상마저도 의식적으로 품으려 한다. 또한 일본인의 무지함과 무신경함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이것 역시 표나게 드러내지 않으려한다. 이는 어쩌면 '균형'을 맞추어야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양가감정을 감추려는 회피나 우회적 진술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바르트와 요모타를 변별짓는 지점이기도 하다. 즉, 요모타에게 한국이란, 또 타자란 자신(과 자신의 나라)을 낯설게 보도록하고 상대화하게 하는 인지적 도구에 가깝다.   

사람은 자신이 자기동일성이 위태로워지는 지점에 이르게되면 예상도 하지않았던 '타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내게 한국이란 거대한 타자의 집합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저명한 작가이지만 또한 범상치않은 '속류비교문화론'자이기도 하다. 몇 권의 해외체류기에서 그는 시종일관 자국과 본인이 거주하던 서구 각국의 문화를 자유자재로 비교한다. 엄정한 논리나 역사적 계보에 대한 문헌학적 추적, 또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인상비평에 가깝지만 그대신 그는 본인의 주마간산을 유머를 곁들인 단정한 문장으로 풀어낼줄 안다. 국적과 종류에 상관없이 타문화를 대하는 그의 기본적 가정이 있다면 사람은 물론이고 공업 생산품에도 국민성 혹은 그 나라의 특수성이 깃들어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자동차는 각각 그 나라의 문화와 사정을 잘 나타낸다. 다시 말해 이탈리아의 자동차는 지극히 이탈리아적이다. (<먼 북소리>, 376)

 

벤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과연 벤츠에는 어떤 표정이 있다. 그러나 한 종류의 표정 밖에 없는 것이 벤츠의 무서운 점이다. 마치 고르고 13처럼 말이다. 한편 bmw는 절대로 웃지 않으며, 오페르는 무지막지한 철가면이다. 오페르 같은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중국의 판다를 생각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런 점에서 볼 때 이탈리아의 자동차는 정말 위대하다. 표정이 있다고나 할까, 혹시라도 길가에 서서 한쪽 다리를 들고 똥을 누지나 않을까 싶다. 371

 

렌터카 사무실에 가서 열쇠를 받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면, 벌써 몇년전부터 길들인 차 같다는 느낌이 온다. 위화감이라는게 거의 없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성능상으론 더 좋은 차가 있겠지만 이 차에는 일종의 완결성이라고도 할만한 깔끔함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있는듯하다.

  그에 비하면 내가 지금까지 운전해본 결과 요즘 미국차 중에는 이렇다 할 명확한 철학과 존재감이 있는 모델은 발견하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나는 그 차에 분명하게 있는 고유한 이데아 같은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한정된 몇가지 모델만 타본 것 뿐이라 그렇게 명쾌하게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윽고 슬픈 외국어>중, 145)

 

그렇게 생각하면 일본 차에는 독창성이나 철학, 기쁨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본 자동차 메이커가 '세련된 커다란 코롤라'같은 것을, 아래에서 위로 쌓아 올라감에 따라 지금까지는 존재하지않았던 새로운 이데아를 -메르세데스 벤츠적인 이데아에 맞설 이데아를- 조금씩 창조해가고 있는건 아닌가하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건 새로운 가치기준이 차를 운전해도 별 재미없는 일본이라는 토양에서 나온다는게 신기하다면 신기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세상은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점점 지루하고 재미없는 장소가 되어갈 것인가? 아니면 거꾸로 세계가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일본적인 것이 세계적으로 평가받게되는 것인가? 149-150

하루키의 '자동차론'은 이렇게 마침내 문명 비평 혹은 진단으로까지 나아간다. 우치다 타쓰루는 일본인은 세계가 자국(인)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관심이 너무 많은 나머지, 자국문화론(그러니까 '일본(인)론')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민족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하루키의 80년대 여행기도 넓게보자면 이러한 결과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계속 읽고있으면 살짝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었던데는 80년대 내내 그리고 버블이 터지기 전까지 서구로 하여금 위기의식과 경계를 불러일으킬만큼 성장한 일본의 경제력이 있다. 그가 수년간 장기 해외 체류를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유명세나 지명도와 별개로, 천재지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해외로 떠나 세계 곳곳의 토지를 척척 사들이고 투자하던 버블경제 시절의 일본이라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루키의 유럽 및 미국 체류기는 '경제대국'의 패기와 이상적인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는 흥미로운 텍스트로 거듭난다. 따라서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는 9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가 이런 종류의 책쓰기를 그만 두는건 일견 당연한 결과다. 그 대신 90년대에 하루키가 쓴 가장 중요한 비소설 텍스트인 <언더그라운드> 연작은 그 역시 서구라는 타자 관찰기로부터 일종의 자국문화론으로 방향을 전환했음을 보여준다. 호시절동안 가려져있던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이 95년 발생한 두 개의 사건으로 극적으로 드러나게되자 비로소 일본(인)의 정체에 대한 사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사족

1. 요모타의 책에는 (내가 몰랐기에) 흥미진진한 트리비아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예를 들어 도쿄에서 열린 한국영화 연속상영회의 상영작들에 매혹된 오바야시 노부히코가 한국과의 합작을 구상했다거나, 하길종이 수배중인 김지하를 숨겨주었다가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으며, 티비로 중계된 대담에서 오시마 나기사가 '바카야로'라고 외쳐 한국 측이 즉각 거부 반응을 보였고(정확히 무슨 대담이었고 어떤 상황과 내용인지 알고 싶었지만 본문에 주어진 정보가 너무 빈약하다) <족보>가 홍콩에서 객사한 일본인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있다든가 하는 것들.

 

2. '바카야로' 발언의 경위는 <오시마 나기사의 세계>(2003)에 나와 있었다. 80년대 중반 한일 지식인의 현해탄 선상토론에서 나온 발언이었고 한국 방송분에서는 삭제되었으나 신문에서만 보도되었다고 한다. 이장호와의 대담에서 오시마는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부탁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오해를 받아도 할 수 없으나 그 '바가야로'는 당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어떤 사람에 대한 개인 감정이었지 한국인 전체에 대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원래 사람이란 국가나 지역의 구분을 떠나서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불행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칼로 무자르듯 일본 사람은 이렇고 한국 사람은 저렇다 식의 선입관으로 쉽게 단정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모습이 바로 그 토론이 있었던 배 안에서도 보인 것 같았습니다."

더 자세한 당시 상황 설명에 대해서는 여기

유토리 세대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건 2013년에 나온 어느 일본 드라마에서였다('사토리'가 아니다). 승진이나 출세에 대한 욕망은 커녕, 엄한 선배들 밑에서 늘 기죽어있고 시무룩하며 사건 수사에서마저 별다른 의욕이나 열의를 보이지않은 채 자잘한 실수를 저지르는 젊은 형사를 타박하면서 그의 선배들이 낙인찍듯이 이봐 유토리’, ‘저 녀석은 유토리라서 안돼하고 부르는 식이다. 찾아보니 유토리 세대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학습의 수월성보다 전인 교육에 초점을 맞춘 이른바 유토리(여유) 교육정책의 대상자인 2002년부터 2007년까지의 학생 세대, 즉 대략 1987년부터 99년까지의 출생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점차 특정 교육 정책의 대상자를 가리키는걸 넘어 젊은이 일반을 향한 기성세대의 경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변했는데 대체로 리스크가 크고 도전정신이 필요한 일이나 힘든 일을 기피하고, 남들에게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책임보다 권리를 우선시 하거나 매사에 열정적이지 않고 적당히 하자는 사고방식을 가진 가상의 젊은이상을 의미한다고한다. 버블의 끝물이나 이후 잃어버린 10이라 불리는 시기에 태어난 이들을 향한 그 경멸섞인 호칭엔 한 개인이 그가 속한 세대 전체를 대표하기도하고 반대로 그가 속한 세대가 공유하는 집합적 특징을 한 개인이 오롯이 체현하기도 한다는 가정이 응축되어있다.


본디 사회학은 늘 세대보다는 계층이나 계급, 그리고 인종과 젠더등에 더 주의를 기울여왔다. 그것은 세대라는 개념이 사회()적 단위로서 덜 중요하거나 불필요해서기도하겠지만 애초 그것이 가늠하기 꽤 어렵고 난처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만하임은 "이러한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자연법칙적인 규칙성과 더불어 작동하고 존재하는 세대요소는 정신적-사회적 수준에서 가장 정의하기 어렵고 간접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만하임, 2013:94) 학문적 대상으로서의 세대 개념의 난점을 지적했다. 일군의 동일한 개인을 두고 어떤 특징에 따라서는 a세대라고, 또 다른 특징에 의해서는 b세대로 분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계층이나 계급만큼 사회과학적 대상으로서의 객관적 근거나 논리적 정합이 또렷하지 않은 것이다. 만하임에 이어 세대 개념 규정의 난점을 주장하는 어느 학자 역시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특정한 현상은 과연 그 세대 특유의 것인가 아니면 제도의 변화를 반영하는 행동방식의 변화인가? 제도의 변화를 불러온 사건은 특정 연령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가? 거기에서 왜 하나의 세대를 따로 추출해 분류해야하는가? 경제불황이나 전쟁 같은 경험을 특정 세대만이 전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대, 정확히 말해서 세대라기보다는 특정한 코호트의 크기와 규모는 사후에 규정된 결과이기 쉬우며 이는 다시 말해 코호트의 체험이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기억의 맥락을 조직화하고 제도화함으로써 보존된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세대는 종종 하나의 귀속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만하임의 표현대로라면 모호하게 정의된 세대위치에 속한 뒤 집단적으로 경험한 기억이 사후에 귀납되는게 아니라 연역되는 것이다 (렙지우스, 2014). 다시 말해 '세대'란 한 개인의 실존을 구성하는 온갖 수많은 정체성을 추출한 다음 거기에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곱하거나 더하여 사후에 붙인, 말그대로 세대 보다는 코호트를 표시하는 그저 하나의 사회적 사실에 귀납적으로 갖다붙인 별명에 지나지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라는 개념이 유효할 수 있다면 그건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명명법을 택함으로써 호명하는 이들이 그 대상으로부터 무엇을 보았는지, 더 정확히는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데 있을 것이다. 일군의 연령대에 속하는 사람들을 묶어 특정한 이름으로 호명한다는 것은 타자의 정체를 가늠해보고 싶어하는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그러나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다. 특정한 연령대에 속한 이들이 공유하는 생각, 가치관, 행위, 습속등을 통계처리하듯 집산하고 그로부터 공통적인 속성을 추출하여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무척 편의적이긴하지만 결국 호명당하는 이들보다는 호명하는 이들의 욕망이 더 또렷이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학술적 저널보다는 신문이나 잡지 같은 대중매체에서, 또 학계보다는 광고계나 마케팅쪽에서 이러한 속류사회학스러운 개념을 꺼내들며 호들갑을 떠는 장면을 보는 것은 일면 자연스럽다.


'사토리 세대’('유토리'가 아니다), ‘88만원 세대'같은 용어들은 해당하는 일군의 세대들이 처한 불우한 정치경제적 현실과 그에 대한 대응방식을 두고, 각각 이들이 자신들이 처한 궁지를 극복하지못한 채 체념했다고 진단하거나, ‘비참한사회적 사실로서의 상태만을 적시한다. 두가지 모두 공통점은 해당 세대에 속하는 구성원들의 집합적 특징을 그저 그들의 바깥에 위치한 외재적 현실로부터의 강제와 압력에 대한 반응과 수용과정으로 집약하는 것이다. 이름은 쓰는 자에게 달려있고 이름이 곧 전부라는 식의 역시 흔해빠진 유명론을 끌어오지않더라도 어떤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들이 거꾸로 그 이름이 가리키는 추상화된 현실이나 가상으로부터 붙들려버리는 수행적(performative) 발화를 행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덧 가난은 디폴트 세팅 같은 것이 되어버린 탓에 누구나 다 힘들고 어려우니 불우한 세대론에 포박되어버린 나도 같이 절망해야할 것 같고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누가 더 불우한지를 내기하는듯한 절망의 경연 속에서 자학에 빠진다. 젊은이들이 다 나약해빠져서 그렇다는 기성세대의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든 그것이 윗세대가 아랫세대를 착취하는 허위의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라는 사회학적 진단이든 작금의 세대 담론엔 분명히 젊은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타자를 대상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리고 거기엔 그들의 수동성이 온존하기를, 혹은 정반대로 정치적 각성을 통한 급진적 운동으로의 전환을 바라기도하는 양면적 가능성이 모두 잠재할 것이다. 아마 조선일보가 일본과 한국간의 시공간적 맥락의 차이에 의도적으로 무지한 채 담론화하고자했던건 저임금을 받아도, 충분히 누려야할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해도, 자유로운 개인의 의견을 표명하거나 개진할 수 없어도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쯤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던건 아니었을까. 세속의 장삼이사에게 '달관'이란 '세상이란게 원래 그래'같은 식의 체념을 긍정하는 것에 다름 아닐테고 이것이 바로 호명하는 자가 보고자했던 숨은 욕망일 것이다.


세대론에 관한 논의가 번번이 허망하게 공전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것이 특정 세대에 관한 사회과학적 논의가 아닌 서로의 시각차이로 인한 세대간 논쟁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또 그것이 명명하는 자의 욕망이 투사된 타자화된 대상의 상징을 선취하려는 다툼으로 비화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대론에 관한 논쟁을 두고 앞에 말한 잠재하는 양면적 가능성 둘 다를, 아니 차라리 세대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저런 딱지붙이기를 오롯이 거부하고 차라리 그런 딱지들이 어떻게 붙여지고 포장되며 또 수긍하게끔 탈색되어 쓰이고있는지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 거기에 바로 온갖 xx 세대를 만들어내려는 이들의 욕망과 그 대상이 되는 이들 사이의 오도된 대립과 긴장이 있다. 물론 그 대립의 주체는 실제로는 세대가 아니라 계급일 것이다.

 

 

<참고>

카를 만하임 (2013), 세대 문제, 책세상.

미하엘 빌트, 울리케 유라이트 엮음 (2014) 세대란 무엇인가? 한울.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있고, 더 자격있는 사람 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 명백한 범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누구의 자리를 빼앗은 적도 없고, 누구를 구타한 적도 없으며 (그럴 힘이라도 있었겠는가?), 어떤 임무를 받아들인 적도 없고 (맡겨지지도 않았지만), 그 누구의 빵도 훔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에서, 95-97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 증언자의 근원적 궁지를 위와 같이 토로한다.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품위가 아닌 것이 되는 장소, 자신의 존엄과 지존을 잃지 않고 있었다고 스스로 믿었던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부끄러움을 경험" (아감벤, 2012: 91)하게되는 강제수용소 생존자가 과연 가스실로 대변되는 최악을 경험한 사망자를 대신하여 증언을 할만한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있을까. 이 물음에 나름의 대답을 해보려는 아감벤의 시도가 바로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문서고와 증인이다

 

1장은 일반적인 통설, 즉 수용소 체험의 증언 불가능성이라는 담론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살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통념을 반박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가 보기에 아우슈비츠를 '말할 수 없다'거나 '불가해하다'고 말하는 것은 곧 그것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에 다름없다. 즉, "아우슈비츠의 영광에 기여하는 것이다". 증언자는 '증언의 불가능성의 이름으로 증언을 해야한다'(51). 그러나 과연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가? 선언하듯 당위를 설파한 다음 아감벤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그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2장은 아우슈비츠가 불러온 죽음의 격하와 그 상징이자 이 책의 중심 소재인 '무젤만', 즉 '이슬람교도'를 탐색한다. '이슬람교도'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최소한의 인간성마저도 박탈당한 채 인간으로부터 비인간으로 넘어가는 상태에 처해있던, 그래서 살아있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수용자를 의미하는 수용소 내 은어다. '이슬람교도'의 존재는 삶의 존엄이 아닌 죽음의 존엄마저도 찬탈함으로써 마침내 죽음이 격하되는, "삶과 죽음 너머의 실험이 일어난 장소"로서의 아우슈비츠를 증명한다.

 

3장은 그런 '이슬람교도'의 존재를 증언하는 생존자의 '부끄러움', 즉 살아남은 이가 죽은 자로 인하여 느끼는 죄책감과 수치를 비롯한 심적 분열을 돌파해내려는 아감벤의 지적 시도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주된 방법론인 개념이나 단어의 언어학적 기원을 추적하는 한편으로, 법전, 증언 문학 그리고 여타 관련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대체로 이 장에서 그의 논지는 대략 두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첫째, 부끄러움이라는 개념 자체를 인간이 근본적으로 벗어던지는 것이 불가능한 내재적인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부끄러움이란 자기자신으로부터 달아나고싶은 충동에 근거하고있으며 따라서 애초에 불가능한 그 욕망은 곧 우리 존재의 무능력을 확인하는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탈출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존재론적인 상황에 다름없다. 아감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를 타자와의 연관성 속에서 주체성에 관한 논의로 진전시킨다.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타자의 존재를 상정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움이란 주체화와 탈주체화가 … 절대적 공존 속에서 산출되는 과정이다” (161).

 

둘째, 이번에는 언어학적 차원에서 말하기 행위를 통해 발현되는 주체의 지위를 검토한다. 현대 언어학의 이론을 빌려 언어와 담화(행위)를 구분하면서 아감벤은 언표로부터 담화과정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어긋남과 불일치, 그의 표현으로는 '환원불가능한 이접'을 핵심적 논리로서 여러번 반복해서 내세운다. 어떻게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메워지지않는 불일치를 인정하게되면 '불가능성이야말로 증언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194)임을 이해하게된다. 즉 증언이라는 발화 행위 자체에 내재하는 불가능함을 내세워 이를 돌파해내려하는 것이다.

담화-사건의 절대적 현재 속에서는 주체화와 탈주체화가 매순간 일치하므로 살아있는 구체적 개인도 또 언표화의 주체도 완전히 침묵한다. 달리 말하자면 말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언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바로 말하기의 불가능성이 말하기를 장악했음을 –어떻게 그리 했는지는 모르지만- 의미한다. 176

담화라는 순수한 현재 속에서의 언어-사건은 감각과 경험들을 하나의 통합적인 중심에 귀속시키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러한 감각 및 경험과 그것들의 자기 현전(자기 앞에 있음)을 되돌릴 수 없게 분리시킨다. 184
 
따라서 어떤 주체가 처음 의식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앎과 말함의 어긋남이라는 형식을 띤다. 아는 자에게 그것은 말함의 불가능성이라는 쓰라린 경험이고, 말하는 자에게 그것은 그만큼 쓰라린 앎의 불가능성의 경험이다. 185

  

요약하자면 담화 행위 속에서 살아남은 자와 말하는 자도 모두 (일시적으로) 물러나고 언어만이 남게되면서 증언의 자리가 마련된다. ‘불가능한 말하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추상적이고 사변적 논증을 통해서 그는 연거푸 말을 한다는 것은 근본적 불일치를 감당하는 행위임을 역설하면서 증언 행위를 정당화하려고한다. 이는 다음 장에서 아감벤의 주체에 관한 이론으로 한층 발전한다.

 

4장은 푸코의 ‘문서고’ 개념과 증언의 관계를 탐구한다. 아직 말해지지않은 비규정적 대상이 모여있는 장소로서의 문서고는 그런 점에서 담론 및 담화, 그리고 무엇보다 증언 행위에 대한 비유가 된다. 여기서 앞에서 나온 아감벤의 주체화 이론이 한층 심화된다. 그가 보기에 주체는 무규정적 대상으로서 생명을 지닌 존재자와 말하는 존재자 사이의 이접이 빈자리를 드러낸다. 이런 주체의 빈자리와 마찬가지로 증언 역시 말의 가능성과 발생 사이의 우연적 관계로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 말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불가능성을 증언하는 주체성을 요구한다. 이로부터 주체성이란 이렇듯 단순히 살아남은 자가 아닌, 빈자리로서의 주체 즉 증인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증인은 말할 수 없는 자를 위해 말을 할 수 있게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 다음, 이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작자’라는 뜻의 라틴어 어원인 auctor이 추적된다. auctor는 ‘작자’ 외에도 ‘매도인’, 조언하는 자, 설득하는자 그리고 무엇보다 ‘증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있다. 그리고 이를 아감벤은 증인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증거로 삼는다. 'auctor'는 단독으로는 존립할 수 없는 것을 도와 증거능력을 제공한다. 이는 증인에 선행하는 말이나 행위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고 무능력함을 의미하고, 따라서 증언이 그 무능력한 행위를 도와야만, 즉 “증언할 수 없는 자의 증언을 통하고 보완할 때만 진실성과 존재 이유가 있다”. 따라서 생존자와 ‘이슬람교도’는 분리될 수 없다. 오로지 양자의 통일이면서도 차이인 것이 증언을 구성한다 (222). 

 

'이슬람교도'를 그의 주저인 호모 사케르와 연관짓는 것으로 논의가 마무리된다. 아감벤이 보기에 푸코가 최초에 제시한 생명 권력 개념과는 달리 현재의 생명 정치는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으며 그저 '살아남게한다.' 인간성을 상실한 채 그저 목숨이 붙어있을 뿐인 식물인간적 삶, 그의 표현을 빌자면 '벌거벗은 생명'의 극한적 예로서 이슬람 교도는 "절대적인 생명 권력적 실체"(230)이다. 따라서 이슬람 교도처럼 생존과 삶이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 둘간의 불일치로 인해 증언이 가능해진다. 역사의 과정들 속에는 반드시 환원불가능한 이접이 남아있으며 그 이접 속에서 각각 남은 것들이 증언할 수 있는건 증인이 갖는 근원적 불일치를 받아들일 때, 즉 말함의 절대적 불가능성을 승인하는 조건 한에서이며 그렇게될 때 증언은 절대적이고 반박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즉, "증언 주체의 본질적 분열"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상이 이 책의 개괄적 요약이다. 보다시피 그는 말하는 주체의 지위에 관한 추상적 논의에 집중하고있다. 고정적인 무엇인 아닌 인간은 항시 분열적 상태에 처해있으며 그 불안정함과 분열된 상황으로 인해 오히려 말을 하는 자와 생명을 지닌 자 사이에서 증언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증언하는 이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하려는 시도가 기여하는 바는 분명히 있다. 증언하는 자는 그저 죽은 자에게 몸을 빌려주고 말을 대신 전하는 '신들린 육신'이나 기계가 아니다. 비록 그 둘은 애초부터 환원불가능한 이접의 것을 남겨둔 채 조우하지만 그럼에도 증언이라는 행위 속에서 임시적인 하나의 통합된 주체를 이룬다. 주위에 도움을 구하기는 커녕 제대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지도 못한 채 죽어갔던 '이슬람교도'의 존재는 증언자의 증언이 아니었으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그나마 현재까지 성취한 역사적이며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 인류의 반성과 성찰도 가능하지않았을 것이다. 발화가 통합적이고 완결된다는 의미는 바로 이것일테다. 그저 입 밖으로 흘러나온 '언어'가 아니라 어떤 힘을 갖고서 그걸 들은 이들의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내게될 때, 그 말만이 '발화'인 것이다. 

 

논지와 별개로 아감벤의 이러한 추상적인 논증 시도가 얼마나 실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요는 실천적 차원에서의 논쟁을 추상적 층위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서 오는 혼란이다. ‘홀로코스트는 없었다’ 혹은 ‘위안부는 없었다’등의 발언을 둘러싼 논쟁은 구체적인 판단이나 (잠정적) 결론이 세세하게 내려져야하는 사법적 판단이나 학술적 차원에서 행해지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언의 진위여부를 점점 더 검증하기 어려워지고 실제 직접적 행위자나 관련자의 목소리를 듣기가 힘들어짐에따라 그 목적을 이루기가 곤란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아감벤은 살아남은 증언자의 주체(성)를 재규정함으로써 이를 논파해내려는 추상적이고 사변적 논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제 있었던 사실에 관한 동일한 증언도 그 의미와 무게는 조금씩 퇴색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직접적 관련자가 아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힐난에 대해서도 증언자는 매번 어떻게든 스스로 신뢰성을 입증해야하는 힘겨운 부단한 노력을 수반해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증언자 본인의 주체적 지위를 굳건히 정립하는데에만 초점을 맞춘 아감벤의 논증이 과연 어느 정도 실천적 효용을 발하게 될지 대답하기란 쉽지않다. 물론 여기에는 구별되어야하는 두 가지 지점이 혼합되어있다. 증언자와 증언 내용의 사실여부 및 신뢰성을 걸고 넘어지는 '음모론자들'에 대한 항변이 애초 이 책의 목표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감벤이 여기서 하고자하는건 외부로부터의 의심에 찬 시선이 아닌 증언자 스스로가 겪는 수치 및 심적 분열에 대한 일종의 변호에 가깝다. 따라서 이 책이 얼마나 실천적 효용을 갖느냐는 질문은 방향이 잘못된 우문일 수 있으나 두 지점이 또렷이 구분이 되지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발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주체가 도래한다는 주장은 증언자의 지위를 되려 약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지않을까. 차라리 세세하고 구구한 이유와 논리를 찾기보다 증언자의 무결함을 당당하게 선언하는건 어떨까. 인류의 역사를 앞으로 끌고나가는 보편성을 구현하는 체험자로서의 지위는 어떠한 진영논리나 정치공학적 계산 또는 고도의 추상적 사유를 거치기보다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으로 던져지듯 선언되는게 맞는게 아닐까. 수정주의 역사관이라며 '주의'를 자칭하는 그저 반동적이며 퇴행적인 수사에 대해서는 특히 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해를 해본다면 아감벤의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수사는 (반쯤은) 옳고 또 옳다.

 

여하튼 아감벤의 주장이 증언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갖는 중요성을 핵심적으로 간취해내고있음은 분명하다. 부끄러움은 존재에 내재적이며 주체의 윤리적 각성을 일깨워 증언을 비롯한 구체적인 책임의 행위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오히려 필수적이기까지 하므로 증인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죽은 자를 책임지는 일이란 무엇보다 기억의 책무를 행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결단코 변하지않는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빨리 잊으라는 폭력적 강요에 저항해야하는 이유는 단순히 죽은 자를 잊지않고 애도해야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기억하고 증언하는 행위를 통해 남은 자들마저도 ‘이슬람교도’로, 비인간으로 전락하는걸 막고 진정한 인간이라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으며 또 그것만이 “항상 이미 반복되고” 있는 아우슈비츠의 회귀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평전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 

자살전서

마음

판도라의 상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도쿄의 서점 = Tokyo Bookstore Guide

쓰가루

혼자 책 읽는 시간

번역의 탄생

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한낮의 어둠 

잠복 

일본의 검은 안개. 下 


가난을 엄벌하다

모두스 비벤디: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

트랜스크리틱: 칸트와 맑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

역로

청춘의 착란

언더그라운드

호모 인베스투스: 투자하는 인간, 신자유주의와 월스트리트의 인류학

유신

모래그릇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소설. 2 


모래그릇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소설. 1

달리의 고치 : 아리스가와 아리스 미스터리 장편소설

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고베 밥상 : 맛있는 일본 가정 요리

46번째 밀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3 

흰 집의 살인 : 우타노 쇼고 장편소설

푸른 묘점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 미스터리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하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

어두운 여관 : 아리스가와 아리스 미스터리 단편집

호러국가 일본 : 무너져가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스플래터 이매지네이션 

시간의 습속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 미스터리 

이기적 삶의 권유 : 타인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I don't  

10만 분의 1의 우연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 미스터리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독도밀약 = (The) Dokdo secret pact

레오스트라우스 :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동물들의 침묵 : 진보를 비롯한 오늘날의 파괴적 신화에 대하여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 오타쿠, 게임, 라이트노벨 

D의 복합 : 마쓰모토세이초 장편미스터리 

수차관의 살인

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소생이야기 

ZOO : 철창 너머 어둠이 보고 있다 

흑묘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장편소설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빙과


일반의지2.0 : 루소, 프로이트, 구글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정의와 미소

정신사적 고찰 : 붕괴와 전환의 순간들

하루키를 찾아가는 여행 : 파인딩 하루키 여정을 따라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짐승의 길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 미스터리. 上

자살의 역사 : 자발적 죽음 앞의 서양 사회


짐승의 길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 미스터리. 下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 당당한 나를 위한 관계의 심리학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공감과 위로의 심리학 

키신저 재판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 : 마루야마 마사오, 정치학의 기원과 사유의 근원을 읽는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역사의 거울에 비친)세기의 자살자들 


고종석의 문장 : "아름답고 정확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플루트의 골짜기 : 고종석 선집 소설

거짓말의 거짓말

역사인식 논쟁 

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언더그라운드. 2, 약속된 장소에서 

절규성 살인사건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 (A) Problem in deduction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할리우드 장르 : 내러티브 구조와 스튜디오 시스템


스탠리 큐브릭 : 장르의 재발명

신주쿠 상어 : 오사와 아리마사 장편소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동물농장

역사와 반복

개인적인 체험

프라하의 소녀시대

(폰 쇤부르크 씨의)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검은 수첩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나쁜 고양이는 없다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천황의 전쟁 책임: 봉인. 망각과 왜곡. 미화의 역사인식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말레이 철도의 비밀

반대자의 초상

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 : 기자라 이즈미 연작 장편소설 

만년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 커트 보네거트 장편소설

철학 한입

구형의 황야. 상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 미스터리

구형의 황야. 하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 미스터리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김연수 소설

미니마 모랄리아

사랑에 난폭 : 요시다 슈이치 장편소설 

서점은 죽지 않는다 : 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 


좀 더 가까이: 북 숍 + 북 카페 + 서재
청춘의 문장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조지 오웰 평론집

나의 핀란드 여행: 카모메 식당 뒷이야기

교양인의 독서생활: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느 책중독자의고백

라블레의 아이들: 천재들의 식탁

회색인

서유기

고종석의 문장: "자유롭게 행복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레이먼드 챈들러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책등에 베이다, 이로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일본의 검은 안개 상                                                                         

                   
기치조지의 아사히나 군, 나카타 에이이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환상, 존 그레이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 요모타 이누히코
숏컷, 레이몬드 카버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허문영
난민과 국민 사이, 서경식
비트겐슈타인의 추억, 노먼 맬컴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이윽고 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리딩, 크리스토퍼 히친스
감독 오즈 야스지로, 하스미 시게히코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이순애 엮음, 이홍락 옮김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 후지타 쇼조 지음, 최종길 옮김

전향, 쓰루미 슌스케     
도쿄일상산책
신햄릿, 다자이 오사무                                                                        
변증법의 낮잠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생각하는 갈대, 다자이 오사무       
Utopia or Bust, Benjamin Kunkel                                                                

------------------------------------------------------

인터넷 서점이나 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옮겨오고 일부는 기억으로 정리한거라 기본적으로는 시간순으로 정렬되어있으나 그렇지않은 곳도 있다. 데이터 종류에 따라 제목에 저자명이나 부제까지 정확하게 기록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소설이 늘다보니 목록이 확실히 길어졌다. 게다가 다시 읽은 것까지 더하면 더 길어질수도. 올해는 의도적으로 장르소설이나 가벼운 에세이류를 많이 찾아 읽었다. 완독하지않은 책들이 분명히 있는데 완독 여부보다는 무엇에 관심이나 초점을 두고 읽었는지를 훗날 기억하기위한 목록인지라 모조리 다 적어둔다. 어디에 관심이나 중점을 두었는지는 이미 읽을 당시에 분명히 목적을 갖고있었으므로 알고있지만 그래도 시간순으로 정리하니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삶이 바란 적 없음에도 받게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만약 바란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않는다> 88p


자살은 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후이자 최고의 실존적 결단이다. 생의 맨 마지막 순간에 하는 선택이라는 의미에서, 또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 어떻게 반박할 수가 있을까. 또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자살로 죽으면 고통이 끝나는게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한 신으로부터의 징벌이라는 또다른 고난이 시작이 될거라는 종교적 겁박, 또 이 세상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생명체는 인간 외에는 없으며 어떤 논리로도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윤리적 논박도 있을 수 있겠고 너의 삶은 너만의 것이 아니므로 주변인을 생각하라는 감정적 애원도 있을 수 있겠다. 아마도 자살을 감행하려는 이들에게 앞에 두가지는 별다른 설득력을 갖지못할테고 그나마 마지막만이 일말의 고려를 해볼만한 여지를 남기지않을까싶다. 친구, 가족등 주변에 남겨진 이들이 느끼는 슬픔과 심적 고통은 분명 자살을 결코 개인 차원의 문제로만 귀속할 수 없게 한다. 자살의 원인이 유전같은 개인적 기질에 달려있느냐 여부와 더불어 그 행위의 결과까지 고려했을 때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귀속되는냐에 대해서도 전혀 그렇지않으며 그 이후에 미치는 여파를 고려한다면 자살은 온전한 사회적 문제라는 논점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디 자살을 사회 문제로 간주하게하는 관점은 훨씬 더 깊은 연원을 갖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살이야말로 사회라는 개념을 비로소 가능하게하는, 또 사회라는 개념 이후에야 비로소 인지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전까지 군주 권력의 핵심은 생사여탈, 즉 죄인의 생명을 군주가 법이나 행정같은 다른 어떠한 여타 제도나 권위에 기대지않고 직접적으로 취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있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푸코의 표현을 빌면 이른바 '죽음에 우위하는 삶의 권력'이 작동한다. 주권자는 어떻게 죽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타인의 생명을 탈취하고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아 사망률, 질병 예방, 교육, 노후 관리 등이 국가권력이 담당해야할 주요 사업 대상이 되고, 자연히 그에 따라 국민들의 생로병사를 꾸준히 기록하고 관리하고 셈할 필요가 늘어난다. 그 결과가 바로 이른바 '인구'라는 개념의 등장. 이제 권력과 통치의 대상은 '신민'이나 '백성'이 아닌 '인구'라는 개념을 통해 비로소 실증적으로 가시화되게된다.


그리고 이렇게 인구를 통치 대상으로하는 근대 이후로 접어든 이후에야 자살의 문제가  비로소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할 공적인 관심사, 즉 사회 문제 (social question)로 탈바꿈된다. 이전까지 자살은 나약한 개인의 일탈 행위에 불과했지만 '인구'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이제는 주목해야할 집단적 현상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뒤르켕이 19세기 말에 자살을 연구한건 인간이 스스로 삶을 저버리는 일에 유달리 특별한 관심을 두어서라기보다는 단순한 사람들의 집합 그 이상의 개념으로서의 '사회'의 등장을 두고 이 낯선 개념을 추상적으로 인지하고 또한 통계를 이용해 그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으로 실증하고 가시화하려는 지적 시도로 이해해야한다.


이후 현재까지 무수한 사회학자들이 그의 뒤를 이어 자살을 사회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왔으나 그 연구들이 자살 예방을 계획하는 정부에 어떤 학문적 도움을 주었을지언정 그럼에도 개인적 차원에서의 자살이 갖는 난점은 여전하다. 구체적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자살은 그 행위자와 주변 사람 모두에게 현전과 부재의 차원을 관통하는 실존의 문제라는 사실 말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종결지으려는 결단까지 내린 이에게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헤아릴 여유가 남아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고, 만약 그렇다하더라도 자살 시도자가 상상하는 뒤에 남을 이들의 고통의 크기가 자살하려는 결심까지 한 본인이 지금 겪고있는 고통의 그것에 비할 수 있을까. 자살 연구 특히 예방은 그래서 개인의 심정이나 그 변화에 기대서는 별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경제적 지위, 재무 상태, 교제관계, 사상부터 습관까지 개인의 특정기간 동안의 거의 모든 생활상의 변화 일체를 파악함으로써만 실체적 원인을 그나마 헤아릴 수 있을(지없을지도 확실치않으나)텐데 이것도 원리일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상당한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알려진 우울증 증상이 전조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자살 시도의 그 기미를 어떻게 알아채고 저런 전방위적 사전 조사작업을 행한단 말인가. 개인적 (또 철학적) 차원에서 자살이 정당화될 때 사회적 차원에서 이를 논파할 논리의 부족, 또한 임상차원에서의 실제적 예방과 대비의 곤란함은 빈곤과 더불어 여전히 자살이 현대의 사회적 난제로 남게되는 이유이다.


'사회'라는 개념을 가능케하는 척도로 기능하는 집합적 현상으로서의 자살이 아닌, 방황하는 개인들의 실존적 결단으로서의 자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요하다. 삶의 무의미와 덧없음 그리고 고통을 더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음에도 계속 생을 이어가야할까. 도대체 어떤 논리를 동원해야만 그것이 가능할까.


'진실과 의미가 충돌할 때 이기는 쪽은 의미다. 왜 그런지는 답하기 매우 까다롭다. 의미가 대체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 왜 인간은 살아야할 이유가 없이는 살 수가 없는가? 인간이란 삶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숨겨져있다고 믿지않으면 삶을 견딜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삶이 마치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언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렇게도 집요하게 의미를 추구하는 것일까' 존 그레이, <동물들의 침묵>중에서.


이 대목에서 그레이가 하는 말은 아마도 이런 것일테다. 즉, 애초에 삶에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면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추구할 필요가 있을까? 이는 바꾸어 말하면 살아가야 할 목적이나 삶의 의미가 없다고해서 굳이 그것을 포기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이 될 것이다. 이 역설 앞에서 어떻게 대꾸를 할 수 있을까.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갖추어야할 필수적인 제일의 세속 윤리이자 강박이라할 '행복'에 대해서도 그딴거 생각하지도, 얽매이지도 말고 그저 되어가는대로 삶을 만들어가라는 그레이의 또다른 주장과 같이 놓고보자면 특별한 의미따위 없이 그저 던져졌을 뿐인 삶에 '행복'같은 속물적 교리를 갖다붙이지말고 그냥 주어진 사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이쯤되면 부정과 비판을 가장한 보수 반동인지, 아니면 급진적 허무주의인지 헷갈리기 시작하지만 그레이의 언설은 지금 비참한 삶에 허덕이는 이에게 직접적 도움은 되지 않을지라도 더 깊은 차원에서 삶의 태도에 대한 역설적 비의를 발설하고있다. 생은 임의적이다. 삶의 고난과 곤궁은 초월적 존재가 나에게 던져준 딛고 일어서야할 도전 과제가 아니라 임의적인 우연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고해서 지금 내가 겪는 고난이 줄어들지 않는데도 그것이 생을 부지해야할 이유가 될까. 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조심스레 말해보자면 생의 의미없음은 어쨌든 '한번 더'라는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까 삶을 대하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어차피 대단하거나 특별하지않다면 그 가벼움과 우연에 한번 더 몸을 맡겨본다고해서 더 손해볼 일은 없다. 그렇게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며 별다른 무게가 실리지않은 선택들이 쌓이다보면 어느새 삶의 끄트머리에 이르러있을 것이다. 특별히 뭔가를 '완성'했다거나 이뤄낸 것은 없을지몰라도. 그 다음엔? 당연히 죽음이 기다린다. "죽을 수 없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삶의 유한성을 의지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인간은 동물과 구분되어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스스로 끝을 정하는 것보다 그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시험해보는 것이 다른 의미에서 존엄한 결단일지도 모른다. 

올해 읽은 책보다 올해 읽은 문장들을 뽑는게 더 재밌을듯 싶어서. 따로 노트에 적어둔 문장들인데 물론 귀찮아서 그냥 밑줄만 긋고 넘어간 책들이 훨씬 많았다. 대충 세어보니 현재까지 올해 약150여권 정도 읽은듯.


"책은 적게 읽어라. 많이 읽을게 아니다."
다시 말해 책이란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라는 겁니다.

-사사키 아타루

"자신이 다치는게 두려운 사람은 정직하게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이것을 잘 알고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회피자이기 때문이다."


"이론이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론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않는다"

-비트겐슈타인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있었다. 실패, 실패, 또 실패야말로 (과거의 실패와 다가올 실패를 포함한 것이다.) 내가 지닌 가장 깊은 확신이었던 것이다. 


우리 시대에 '정치와 거리를 두는'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며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조지 오웰


관광객이나 유학생이라면 그 이질감이 오히려 신기함의 원천이 되거나 자신의 사회적 뿌리가 지니는 묵직한 갑갑함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감의 원천이 되기도하지만, 망명자는 그렇지않다. 그는 촉각이 듣질않는, 잣대가 다른 그 이문화 속의 모든 장소에서 모든 상황에 대해 늘 실수를 저지르는 것 외에는 살아갈 길이 없는 것이다.

-후지타 쇼조


나는 암과 싸우고 있지 않다. 암이 나와 싸우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뭐냐고?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병세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만이라도 좋다. 그럼 내가 되찾고 싶은 것은? 우리 언어에서 가장 간단한 언어 두개를 가장 아름답게 늘어놓은 것, 말의 자유 freedom of speech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현대 사람들은 모든 이질적인 사상 문화를 여기저기서 유행을 좇아 닥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결과 완전한 무양심에 빠져버렸다. 아침에 톨스토이를 읽는가하면 저녁에 니체를 맞이하고 오늘은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을 애독하는가하면 내일은 후고 폰 호프만슈탈에 탐닉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라드부르흐를 인용하는 마루야마 마사오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있고, 더 자격있는 사람 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프리모 레비


우리는 무언가를 실현해내고 충족하는 것으로 정점을 찍는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지않는다면, 사람들은 살아갈 방법을 더 잘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행복을 간접적으로 추구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예 행복을 추구하지않는게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일지 모른다는 말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삶이 끝나기 전에 삶을 다 살아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의 삶에서는 당신이 무엇을 원하며 당신이 누구인지와 같은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 이미 다 정해져있다. 살아가면서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너무 집착하지말고 그저 되어가는대로 당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존 그레이


무엇을 위해 쓰든 무엇을 쓰든 '쓴다'는 것은 '살아남아 수모를 당하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


이제는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거주가 된다


... 결국 글쓰기 속에서 거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않는다.

-아도르노


결국 소설가는 그 양극 사이에서 항상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는 어떤 시대에나 소설가를 습격하는 의념이다. 하지만 그것을 너무 깊이 끙끙 고민하다보면 글을 쓰지못하는 순간이 닥치고만다.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튼 쓴다'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양극을 영원히 오락가락하는 것이 소설가의 일생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이 세상에서 곧 사라진다 해도 자기만 생각하면 그리 괴로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참 어정뜬 인생이라고만 생각했다. 인생은 어떻게 해야 완결되는 것일까?

-기자라 이즈미


내가 빈의 커피하우스를 증오한 이유는, 거기에서 항상 나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을 마주쳐야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상황을 증오한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문학을 최대한 피한다. 할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을 최대한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빈의 커피하우스 방문을 자제해야만한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제국의 위안부>는 2013년 7월에 출간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전 2010년 4월 쓰였고 2011년 출간된 <언어의 감옥에서: 어느 재일 조선인의 초상>에 수록된 서경식 선생의 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은 이 책에 대해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매우 효과적인 비판을 해내고있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의 전작인 <화해를 위해서>(2005)의 반론으로서 나온 3년 전의 글이 현재진행형의 논란을 겪는 중인 책에 대한 유효한 비판을 하고있다는건 곧 저자인 박유하가 8년이라는 세월을 두고도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있다는 뜻이기도하다. 그리고 그 주장의 거개라는 것은 대개 서경식의 글이 밝히고있듯 일본의 자칭 리버럴리스트라고 하는 이들이 수년 전부터 하고있는 것, 즉 양립하기 쉽지않은 두가지 욕망을 모두 놓치고싶어하지않는 일본 리버럴의 언어적 곡예를 박유하라는 한국의 지식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한국어로 번역해 설파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그래서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들을 인용하고 바로 이어 그로부터 3년 전에 나온 서경식의 글을 반론으로 붙여보겠다.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이 처음부터 <제국의 위안부>를 겨냥한 글이 아닌지라 세세한 맥락은 정확하게 맞지않을 수 있지만 반론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있다는건 분명하다. 직접 두 글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반론이 될 만한 지점을 이보다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징병 자체는 국민으로서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동원한 것이니, 일본 측에서 보자면 한때 '일본 국민'이었던 조선인에게 당시에 국민으로서 부과된 일은 공식적으로는 '보상'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또한 우리가 일본에게 강요당한 한일합방이, 조선인이 '일본국민'이 되겠다는 의사표명을 한 것처럼, 합법처럼 되어버린데에 있다. <제국의 위안부> 231

...

서글픈 사실이지만 그 조약이 '양국합의'의 형태를 띠고있는 한 그 조약에 의거해 이루어진, '법적으로' '일본인'이 되어야했던 조선인으로서의 피해는 보상의 근거는 없다는 말이 된다. ... 당시의 합방이 양국의 조약 체결을 거친 것이었으니 '법적으로'는 유효했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 조약은 국민의 동의를 거치지않은 조약이었다. 그러니 그런 사태를 문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저 '합방조약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을 일본이나 당시에 식민지를 소유한 제국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 당시에 '식민지배'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지않았던 이상 (역으로 강대국끼리의 양해가 '그들만의 법'의 세계였다.), 식민지배하에서 식민지 사람들에게 가한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피해는 '배상'받을 수 없다는 현실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232

 

박유하에 따르면, 당시의 법에 비추어보아 '옳다'는 조약은 가령 불평등 조약이어도 반대해서는 안되는듯하다.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이 과거의 대한제국이 강제당한 조약을 부정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을 '책임의식의 결여'라고 하는 것이다.

... 박유하에게 책임있는 지식인이란, 예를 들면 아무리 반인권적이고 비인도적이어도 국가가 일단 맺은 조약에는 마지막까지 묵묵히 따르는 사람을 말하는듯하다. 이 정도로 국가권력을 기쁘게하고 식민지 지배자나 그 후계자들에게 환영받을만한 레토릭은 없을 것이다.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언어의 감옥에서: 어느 재일 조선인의 초상> 중에서 341

 

당시에는 식민지 지배를 법으로 금지하지않았다"와 같은 이유를 든다. ... 그러나 '당시의 법'이라는 것은 실은 당시 국제사회를 형성하고있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피지배 민족의 주권을 이미 부정한 상태에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 지배를 받은 쪽은 그와 같은 법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배제되어있었다. 325-326

 

 

(2)

하지만 '인신매매'와 연결시킨 이 운동은 '위안부'문제에서 결코 도외시 할 수 없는 '업자'문제를 은폐한 것이었다. ... 여전히 인신매매 자체에 일본군이 관여했다고 인식하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군 등이 업자를 '선정'했다 하더라도 모든 사례가 그렇지는 않았다. 게다가 동원이 '인신매매'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군이 알고도 지시한 것이 아닌 한 설사 방관했다 하더라도 그 묵인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한, '강제연행'이나 '인신매매'의 주체를 '일본군'으로 상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255

 

좁은 의미의 전쟁 책임론이란 전시의 범죄행위가 법을 위반했는가 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런 좁은 의미의 '전쟁 책임'론의 틀만으로는 '위안부'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위안부' 제도는 식민지 지배와 깊이 결합되어있는 성 노예 제도이고 그 진상규명에는 식민지 지배 그 자체의 책임을 묻는 관점이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 이 문제를 전시의 범죄행위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두어두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 '국민주의'에 근거해 식민지 지배 책임을 회피하려는 욕구가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위안부'문제에 대해 많은 일본 국민들은 "포승으로 묶여 강제로 끌고갔는가"라는 말초적인 사실관계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그 강제성을 완벽히 입증할 수 없는 사례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는 전쟁이나 식민지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반성적 인식이 결여되어있기때문이다. 이같은 경향이 우파나 극우파에 의한 부정론이나 역사수정주의에 유리한 심리적 토양을 제공하는 것이다. 325

(3)

일본은 '법적 의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않았지만 '도의적 의무'를 다하려고 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수상이 편지에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로 이해해야한다. 또 그들이 '법적 의무'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실은 '사죄와 보상'을 하고싶지않아서가 아니라 1965년의 한일협정을 통해 '법적 책임'은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84

 

국민이 지출하는 '위무금'은 '도의적 책임'의 범위로 해석되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상금을 지출하면 이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때문이다. 여기서 '도의적'이라는 말은 법적 책임을 부인하기위한 레토릭으로 기능한다. 328

 

 

 

 

(4) 위안부의 가해자성에 대해서

전쟁터에서의 강간의 대상이 된 '적의 여자'와 위안부는 군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가족과 떨어져 전방에 나가있는 군인들을 '부인'처럼 신체적 정신적으로 위무하고 사기를 북돋는 역할, 그것이 위안부들의 원래 역할이었다. 57

 

' 조선인 위안부'는 그렇게 중국이나 인도네시아같은 점령지/전투지의 여성들과 구별되는 존재였다. ... 식민지가 된 조선과 대만의 위안부들은 어디까지나 '준일본인'으로서 제국의 일원이었고 군인들의 전쟁 수행을 돕는 관계였다. 그것이 '조선인 위안부'의 역할이었다. 60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67

 

그러나 피해기억만을 필요로 하는 한 "참 안됐"다고 말하는 연민의 기억은 잊혀질 수 밖에 없다. 73

 

그녀가 일본군을 가해자가 아니라 자신과 똑같이 불행한 '운'을 가진 '피해자'로 보면서 공감과 연민을 표할 수 있는 것도 그녀에게 그런 동지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75

 

'조선인 위안부'란 그렇게 일본의 제국 확장 전쟁을 수행하기위해 동원된 존재이기도했다. 80

 

포주들은 어린 소녀에게 강제로 성노동을 시키고 노동의 대가를 착취하는데에 그치지않고 대부분 가혹한 폭행으로 이들을 다스렸다. 86

 

말하자면 위안부들을 폭행하여 그녀들의 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는 군인들뿐 아니라 포주들이기도 했다. 88

 

이들이 중국인이나 인도네시아인을 부리고 심지어는 인도네시아인을 지휘해 위안소를 운영하기까지 했다는 것은, 조선의 위안부들이 식민지인이 되어 '본토 일본'의 하위 위치에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건 동시에 다른 아시아인들의 상위 위치에 서는 일이기도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 '조선인 위안부'들은 분명 피해자였지만, 그러면서도 '일본 제국' 안에서 '두번째 일본인'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90

 

조선인 위안부들이 현지인들에게는 '적'의 관계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 그건 그들이 일본의 점령지에 나가있었던 결과로 일본과 함께 현지에서 쫓겨 달아나야했던 '준일본인'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인 위안부'가 중국에 있었던 위안부와도, 다른 동남아시아에 있었던 위안부와도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부분이기도하다. 98

 

이들이 '전쟁범인' 즉 전범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된 이유는 이들이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며 '전쟁을 수행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설사 그들이 가혹한 성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라고해도 '제국의 일원'이었던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99

... 이런 과정에서 그녀들에게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많은 나쁜 측면이 드러났다고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상하지않다는 것은 그것이 '악'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틀림없이 '악'이지만 그녀들을 그렇게 만든 구조적인 '악'과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그림을 보고 박유하의 설명을 읽은 뒤에도 내 마음에 처음으로 떠오른 것은 고문 피해자인 네덜란드 변사에 대한 동정은 물론, 인간을 이렇게까지 만든 식민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분이다. 따라서 적어도 내 경우에 한해서 말하자면 '위안부=피해자'라는 인식이 뿌리째 흔들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확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 그러나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것은 설령 피해자에게 가해성이 침투해 있다고해도, 그것 때문에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운용한 자들이 가해책임을 상대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시스템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잔혹한지를 밝히고 더욱 깊이 이해하기위해서라도 이 같은 고찰이 필요한 것이다.

   박유하와 레비가 크게 다른 점은 레비는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자신의 내부를 파헤쳐 그곳에 침투해있는 미세한 가해성까지 도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박유하는 자신이 아니라 '위안부'라는 타자의 가해성을 폭로해보이고있다.

... 그러나 그 (박유하의) 고찰에서 끌어낼 결론은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잔혹함과 책임의 중대함이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을 보강하는 것이 아닐 터이다. 361-364

 

 

(5)

'위안부'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싶다면 기지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그것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화해는 필요하다.314

 

박유하는 어떤 자격으로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일까? '위안부' 피해자, 강제연행된 노동자, 일제에 의한 탄압 피해자, 기타 피해자들이 일본에 식민지 지배 책임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고있다. 이들을 대표할 권리는 한국이라는 국가에도 없다. 한국이라는 국가에 이들의 요구를 대변할 역할이 부여된다면 이는 피해자와 그 뜻을 따르는 국민의 요구에 응하기위해서이고 그런 한에서만 한국이라는 국가가 이들을 대표할 수 있다.

... 박유하라는 인물이 마치 피해자 대표와 같이 '한국'이라는 주어를 사용해 관용과 화해를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 박유하라는 개인은 '우리=한국'이라는 주어를 모호하게 사용하지말고, 자신에게 어떤 의미에서 피해자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어떤 의미에서 피해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지를 가차없이 자문하지않으면 안된다.

.... 하물며 "'용서'는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고설을 펼 자격이 있을리가 없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굳이 고설을 펴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피해경험의 횡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349

 

'공감적 불안정'을 강조하는 박유하에게 그같은 입장에 대한 '공감적 불안정'을 한번이라도 실천할 것을 권하고싶다. 36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