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외국어간의 관계가 그러하듯 영어와 한국어도 의미의 일대일 대응은 불성립한다. 단적으로만 보더라도 'make'나 'get' 'have'에서 보듯 '일어일의'한 경우는 드물고 이가 맞지않는 파편 조각처럼 의미의 외연은 물론, 범주와 층위가 맞지 않거나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또는 이미 뜻을 안다고 착각하다가 저지르는 의도치않은 오역은 불성실하다는 점에서 직업 윤리 위배이고, 그래서 혹시나 하는 경계심에 편 사전에서 그 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숙어와 합성어, 속어, 유행어, 유명하지 않은 은어, 고어를 그리고 영영사전에서 한 열 세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뜻이 발견되기도한다. 그런 점에서 번역을 할 때는 차라리 내가 해당 외국어를 완전히 모른다고 가정하고 일일이 사전을 찾으면서 옮기는 것만이 역설적으로 착오를 줄이는 (이론상)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명사도 마찬가지다. 한글로 표기한 '에세이'는 '수필'이자 '잡문'이고 때로는 '칼럼'의 갈래이자 다시 이 모두를 포함하는 '산문' 전체를 통칭하는 외래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어 'essay'는 결코 '손 가는 대로(隨筆)' 쓰는 글도, '잡스러운(雜文)' 글도 아니다. 'essay'는 형식이 다양한 글이지 무형식의 글이 아니므로. 차라리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거나 모두에 해당한다고 하는 편이 옳다. 즉 한국어 용법상의 '에세이'가 포함하는 외연이 넓은 나머지 언어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인플레이션 진행중인 화폐가 그러하듯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언어의 실질적 값어치도 하락한다.

 

영어권, 적어도 대학에서 'essay'는 정식 논문에 비하면 한창 짧지만 그만큼 한정된 주제를 깊게 다루는 학술문의 한 갈래다. 학술문으로서 갖추어야할 성실하고 양심적인 레퍼런스 작성과 표절 회피는 최소 요건, 즉 기본 사항일 뿐이고 여기에 세심한 선행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논지 개진 그리고 간결하지만 명징한 논증 과정이 서술되어야 훌륭한(또는 읽을만한) '에세이'가 된다. 그렇다면 이같은 학계의 관습, 그리고 잡지나 저널, 신문 같은 언론을 포함한 광의의 '문학'계에서의 용법까지 고려해볼 때 에세이의 '비평문'으로의 분류야말로 의미의 스펙트럼상 중간값에 위치하며 동시에 가장 범용하지 않을까. 비평의 언어와 표현의 언어 사이에서 흔들린다면서 비평과 창작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가운데 두 장르에 전부 걸친 글을 썼던 바르트, 그리고 에세이는 에세이의 규칙을 창조하는 게임이라는 마이클 햄버거의 주장도 (메타) 비평으로서의 에세이의 윤곽을 그리는데 도움을 준다. 그중에서도, 어떤 결론도 내지 않은 채 그저 문서고 이곳저곳을 뒤져 찾아낸 문헌들을 떠돌아다니며 참조하는 것이 비평이라는 아감벤의 말이야말로 비평으로서의 에세이를 규정할 때 늘 참고할만하다. "모든 정통한 연구와 마찬가지로 비평 역시 연구 대상의 정체를 밝히는 대신 대상의 접근 불가능성을 규명하는 데 주력한다". 결론이 없는 글이란 점은 언제봐도 좋다. 형식으로서의 에세이의 징표일테니까. 대상의 명확한 정체를 저자가 명시하지 않아도 독자가 그 임무를 이어받아 상상 속에서 계속 이어 쓰는 글, 이것이 에세이의 정체가 아닐까. 

 

'隨筆'이라는 명칭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했지만 글쓰기의 장르로서 외래어 '에세이'에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각종 외국어와 외래어가 대량으로 수입되던 근대 이후일거라 짐작되는데, 그렇게 '에세이'의 도입 이후부터 '수필'은 본격적으로 다종다양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에세이'는 '수필'에 대응하는 외래어가 아니다. '수필'의 번역어가 아닌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수필'을 포함할 수는 있어도 환원될 수 없는, 외연이 넓어질지언정 그 전부를 포함한 총체는 될 수 없는 엄연히 독자적인 영역인 것이다. 수필의 정의와 분류에 관해서는 이미 분분한 논의가 나왔고 지금도 출판이 계속되는 한 그 변천은 진행중이다. 그러니 세세한 국문학적 검토는 차치하고, 우선 작금의 출판 동향으로만 본다면 저자의 '신변잡기'를 다룬 글을 '에세이'로 칭하는 경향은 분명히 있는 듯하다. 실제 일본(어)에서 어떻게 분류 및 표기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무라카미 아사히도 시리즈와 언더그라운드 연작처럼 서로 상반된 형식과 내용의 논픽션을 모두 '산문' 내지 '에세이'라 하는듯하고, 비슷하게 국내에서는 주로 문단 바깥에 종사하는 공인이나 유명 인사가 자신의 직업 세계나 (사)생활상의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생각 또는 특정한 견해나 주장을 주로 일인칭으로 풀어낸 글을 "(충격) '수기'", '에세이' '산문' 등으로 지칭한다. 한마디로 '미셀러니'는 넘쳐나는데 반해 '에세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에세이'와 '미셀러니'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생긴 언어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에세이는 진지하지 않은, 가벼운,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써볼 수 있는 시험적인(실험적이지는 않은) 문학 양식으로 통용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에세이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작은 결점도 쉽게 양해받지 못하고 진입 조건을 통과함과 동시에 양질을 보장할 때 비로소 에세이로서의 지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온당한 지위가 먼저 주어질 때 그에 걸맞은 질이 담보될 수는 없을까.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대신 진지한 사유와 장황한 사변, 쇄말적 흥미와 사적 고민, 그리고 비판적 논평과 자기반영적 성찰이 담긴 논픽션이야말로 '에세이'의 자격을 얻는 게 아닐까. 그러기 위해 요구되는 선행 조건은 한 가지다. 읽을만한 좋은 에세이들이 먼저 소개되는 것.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의 첫 챕터를 읽으면서 느낀 아쉬움이 바로 이것이었다. 처음 시작하자마자 말그대로 쏟아내듯이 던져지는 많은 에세이의 태반이 국내에는 미번역이었기 때문이다. 읽을만한 '본연의' 에세이가 소개되고 읽히면 'essay'가 아닌 '에세이'의 지위가 변화할테고, 그런 글을 읽은 한국어 사용자들의 '에세이'도 나올 것이다. 바로 내가 그랬다. 딜런이 쓴 일련의 에세이에 관한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저런 글을 한번쯤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으니까. 

 

교양이란 앎의 자기 갱신이라는 우치다 타츠루의 정의를 빌리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고착화된 스타일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자기 갱신하는 산문, 그것이 에세이다. 거기에 지속적으로 달라지려 애쓰는 저자의 노력과 수고까지도. 그래서 에세이는 단일한 대문자 'Essay'가 아니라 에세이'들'이 있을 뿐이다. 열 명의 저자가 서로 다른 열 개의 에세이 형식을 고안해내는 자유로움이야말로 에세이의 최고 장점이 아닐까. 팩트와 세세한 숫자보다는 과감한 비약과 담대한 상상과 그럴싸한 과장으로 채워진, 논리의 연쇄를 따르는 바쁜 잰걸음보다는 직관과 즉흥성을 따라 훌훌 유유히 날아가는 그런 글. 

 

그런 점에서 수필은 '청한(淸閑)의 문학'이라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말은 반만 맞다. 형식적으로 느슨하고 내용적으로 사물을 관조하는 유유자적한 은둔자의 글쓰기일 수도 있지만 감성과 이지가 엮여들고 논리와 객관이 직관 및 주관과 교차하는 가운데 각성과 환기를 촉발하는, 세속에 들어앉은 명민한 관찰자의 글쓰기도 에세이라는, 역시 또 하나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정의를 보태본다.

<미국에 대한 음모>는 20세기 미국에 대한 훌륭한 내용을 지니고, 주장을 훌륭하게 펼치는 섬뜩한 글이긴 하지만 그것이 소설의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책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자꾸만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인데, 그것도 재밌고 포스트모던한 방식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낯설고, 약간 산만한 방식이다. 아시겠지만, <미국에 대한 음모>는 1940년 대선에서 파시즘에 동조하는 찰스 린드버그가 승리한 뒤 미국에 일어난 일을 다루는데, 책의 내용 대부분이 정확히 그 일에 관한 것이다. 서사를 끌고 가는 것은 대체 역사이다 보니, 그 결과 우리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 책은 린드버그가 1940년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고 믿으라고 하고, 우리에게 이것이 우리 역사의 일부인 세상에 살아보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반유태주의 횡포와 그에 잇따르는 폭동, 라구아디아 시장이 맡은 영웅적인 역할, 린드버그가 맞게 되는 운명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내용을 몰라서, 알고 싶기 때문에 계속해서 읽어나가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의 편안한 자연주의를 거스르는 식으로 작용하는 불편한 강박이다. 가령 ... 이 문장이 하는 일은 오로지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상상하라는 강요를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왜 그 정보를 다시 상기시키는 것일까?
... 해리스는 대체역사소설에서는 자신이 대체역사를 상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역사의식도 상상해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다시 말해, 대체역사는 배경에 속하고, 우리가 일어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파편적으로, 모호하게 주어지는 사이, 작가는 스릴러 플롯을 진행시킨다. 로스는 '만약 이랬다면'하는 가정 자체를 핵심으로 삼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음모>를 읽고 있으면 긴 논문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고 만다.
닉 혼비,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 읽기>(2009) 중에서

논문 같은 느낌을 준다한들 독서의 재미나 즐거움과는 무관하다고(특히 필립 로스 정도 되는 작가에게는 더욱더) 눙치는 한마디를 남겨놓기는 했지만 여기서 혼비가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하다. 대체역사소설의 재미는 기발한 설정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설정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플롯(책 제목의 '음모'에 해당하는 원래 단어)을 포함한 서사에 있다는 것이다.
 
'문예' 소설(혼비가 일컬은 'literary fiction'에 대한 국역본 상의 번역어)보다 장르 소설에 애착이 있어서(혹은 매제인 로버트 해리스에게 더 우호적이어서) 그런걸까. 번역본상 본문만 오백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로스의 <미국을 노린 음모>에서 사건이나 플롯이 없고 설정과 배경만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혼비의 분류를 따르자면 이 소설의 대체 역사 설정은 잘 알려져있듯 린드버그가 1940년 대선에서 루스벨트의 3선을 저지하고 승리한다는 것이고, 플롯 또는 기본 줄거리는 린드버그가 히틀러와 협력을 함으로써 미국이 2차 대전에 뛰어드는 대신 자국 내 유대인 탄압을 서서히 전개하면서 유럽에서 벌어지던 '최종 해결책'을 미국에서도 진행하려하는 가운데 그 구체적 사례로서 유년기의 필립 로스가 바라본 자기 가족의 상상된 수난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실제 가족과 친인척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당연히 현실과는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로스의 아버지 허먼은 실제로 뉴저지의 보험 중개인이었고 이 소설에서도 같은 직업으로 나오지만 이 평행 세계에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그런 식인 것이다. 다음의 짧은 구절이 이 소설의 향후 전개를 요약한다. 

내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무너지는 것을 본 후 다시는 예전과 같은 유년기로 돌아가지 못했다. 집에 있던 어머니는 이제 하네스에서 일하느라 하루종일 집을 비울테고 항상 곁에 있던 형은 방과후 린드버그를 위해 일하러 갈 예정이었다. 워싱턴 DC의 간이식당에서 그 어설픈 반유대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도전적으로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감당할 힘이 없었는지 버려진 아기 같기도 하고 아주 고통스러운 어른 같기도 한 모습으로 입을 크게 벌린 채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린드버그의 당선이 내게 명백히 예고해준 대로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걷잡을 수 없이 펼쳐지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무자비한 미래가 나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지만 우리 학생들은 그것을 '역사'로서 공부했다. 당대의 예기치 못한 모든 일이 종이 위에 필연적인 일로 기록되면 무해한 역사가 된다. 역사학은 예기치 못한 미래의 공포를 드러내지 못하고, 그러는 사이 재난은 서사시가 된다. 163p

 
대체역사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한번쯤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대체 어쨌다는거지? 이런 평행 세계를 통해 뭘 주장하는걸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높은 성의 사내>도, 로스의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가상의 미국 유대인 가족 수난사를 왜 쓴걸까. 순전히 장르적인 내지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같은 답은 빼자. 그런 소설을 쓴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가혹한 평가이겠지만 적어도 내게 필립 로스의 소설이 장르물인 적은 없었다. 대체역사소설인 것보다도 실제 자신과 자기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일인칭 소설이라는 점이 무척 특이했다. 미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에 균열을 낸 아들 부시 정권 하에서 느낀 심리적 위기감이 이 작품의 집필을 추동한 큰 동력이라는 짐작을 해보는데, 이라크에 개전하기 전부터 이미 그리고 정권 내내 타종교와 타인종, 타문화에 대한 적대감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부시 정권을 가상의 미국사를 통해 은유하고 비판하려한건 아닐까. 외국 영토에서 적국과 전쟁을 치렀던 실제 역사를 역지사지해 자신이 속해있는(당연히 잘 아는) 집단 구성원을 주인공으로 자국민이 자국 영토 내에서 자기 나라 정부로부터 핍박받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지금 결코 남의 집에 불이 난 게 아님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현실 정치의 맥락과는 무관해보이지만 정치 일반에 연관된 또다른 집필 동기 가설도 있다. 바로 음모론이라는 음모 내지는 음모론에 대한 음모가 그것이다. 음모론이란 대체 뭘까. 개연성이 부족한, 개연성을 충족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일련의 음험한 네거티브 서사라고 음모를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은 각양각색의 음모론이 피어날 충분한 조건이 갖춰졌던 2차 대전 시점을 배경으로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선동이자 전략으로서 쓰이는 현실 묘사와 이에 대한 비판, 그러니까 음모론이라는 이름의 음모, 또는 음모론을 이용한 음모라는 메타 음모론에 관한 풍자가 된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FBI가 찾아와 앨빈 형에 대해 조사했고, 우리 가족과 내게 위협적으로 던진 그 악의 없는 질문들을 다른 시장 사람들에게 던졌다. 그들은 이번에는 앨빈 형이 자칭 반역자이며 그 자신처럼 반미국적인 반항심을 가진 자들과 함께 린드버그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암시를 던지고 떠났다. 244

FDR가 직접 연단에 나서자 장내는 기쁨과 놀라움에 들썩였다. 
...
"여기 우리의 조국에서 반민주세력이 파시즘 미국을 위해 크비슬링의 청사진을 감추고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 그리고 미합중국의 권리장전에 보장된 인간 자유의 위대한 비상을 억누르려는 음모,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유럽의 피정복 민족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그런 독재정권의 절대권력으로 대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 우리의 자유를 억누르기 위해 은밀히 손을 잡근 그자들에게 미국은 어떤 위협에 직면하거나 어떤 위협에 부딪혀도 우리 선조들이 우리를 위해 미합중국 헌법에 새겨놓은 자유의 보증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시켜야 합니다." 250 251 

"...히틀러주의자들의 미국을 노린 음모는 반드시 멈춰야 하고, 그 음모를 멈출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바로 뉴욕 시민 여러분입니다! 1942년 11월 3일 화요일, 자유를 사랑하는 이 위대한 도시의 시민인 여러분의 투표권입니다!" 361

독일 국영 라디오방송국은 ... 찰스 A. 린드버그의 납치는 '유대인의 이익'을 위한 공모 세력에 의해 자행되었음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 그 음모는 전쟁광 루즈벨트가 주도하고 그의 유대인 재무장관인 모겐소, ....  프랭크퍼터, ... 바루크가 공모했으며 ... 유대인 주지사이자 금융업자인 리먼이 함께 음모를 실행중이며 ... 426

동트기 직전 랍비 라이오넬 벤겔스도르프는 "미국을 노린 유대인 공모의 주모자 중 한 명"이라는 혐의로 FBI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434  

린드버그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양 편 모두 상대를 비난하기 위한 수사학적 전략으로서 '음모'를 꺼내든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공모를 획책한 이적 세력으로 적시하는 가운데 이러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가 평범한 국민이자 개인에게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필립 로스 소설답게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로스답지 않게 돌연 진짜 음모의 실체가 (다소 허무하게) 밝혀지면서 갈등이 종료되고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 언저리를 읽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면 혼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건지 이해되면서 비로소 그의 지적에 일부 동의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적 수사를 가지고 상대를 낙인찍고 그 반대급부로서 자신을 보호하고 부흥하면서 지지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음모'라는 언표가 쓰이는 방식에 대한 묘사는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부터 약 십 년 뒤에 등장하는 매카시즘에 대한 예언적 경고처럼(사실은 미래로부터 건너온 경고)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매카시즘이야말로 미국사에 기록된 음모론 서사의 정점일테니 말이다.

한편, 자신이 속한 민족을 수난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피해자이자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일은 그다지 진지한 작가의 미덕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로스는 자기 연민에 빠진걸까. 하지만 그렇게 몰아붙이기엔 이 소설과 동시에 번역 출간된 로스의 산문집 <왜 쓰는가>에 수록된 여러 편의 에세이와 인터뷰에서 확인되듯 로스는 경력 초기부터 꽤나 오랫동안 "유대인 혐오자"라는 공동체 내부로부터의 비판을 받아왔다. 본작에서 미국 유대인 전체는 동질적인 집단 피해자로 그려지지 않으며 오히려 주요 갈등은 그들 내부의 대립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블린 이모와 벤겔스도르프 부부에 의해 뉴저지 유대인 공동체도 린드버그 지지와 반대파로 나뉘고 일부는 최종 해결책에 대한 공포로 인해 캐나다로 향하는 등 극심한 혼란에 휩싸인다. 이러한 공동체의 분열이야말로 어떤 위기 상황에서든 실제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적 면모이며,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전시 상황에서 음모론이 만들어지는 원인이자 음모론의 횡행으로 인해 파생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에서 피해자로 누가(어느 집단이) 설정됐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최고 권력에 의해 제기되는 음모론 같은 정치적 수사와 선동의 파급력과 거기에 저항하는 개인들의 노력을(그것이 얼마나 무력한지 또한 저자의 집필 의도나 목적, 메시지와는 무관할 것이다) 핍진하게 그림으로써 집필 시점의 현실에 강렬히 저항하는 것, 이 소설의 텍스트 안과 밖에서 목표하는 바는 여기에 있지않을까.
 
그런 점에서 소설가 로스의 역량이 발하는 대목이 바로 음모의 전모가 일지(log) 형식으로 밝혀진 뒤에 나오는 마지막 에피소드다. 필립의 아랫집에 살았던 셀던과 관련된, 기존의 로스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감동을 전하는 이 결말부에 이르면 휴머니티의 복원이라는 문학 예술의 무구한 노력을 이어가는 그의 공력에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권력에 짓밟혀 무력하게만 보이던 개인들이 연대하며 공동체를 결속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훗날의 매카시즘을 비롯한 음모론과 자의적 권력을 극복하고 버텨온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이 어디에 있는지 담담하지만 또렷이 묘사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논증이나 팸플릿, 에세이가 아닌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는 소설가가 갖춰야할 양대 조건이 소재나 설정상의 참신한 아이디어(발상)와 서사 전개, 즉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이라면 본작이 '음모론'에 대한 알레고리를 포함해 전자만을 충족한다는 것이 혼비의 관점이겠으나 이 결말부만으로도 후자는 충분히 성취되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음모가 피어나고, 음모가 판치는 곳에서 인간성이 빛을 발한다.

NHK의 수신료는 학업이나 업무 등으로 '현장'에 갈 시간이 없는 이들을 대신해 우리가 그 '현장'을 찾고 그곳에서 조사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기부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NHK의 방송은 "너희에게 취재비를 맡길 테니, 권력을 제대로 감시해서 부조리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격려하는 분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시민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들어지는 NHK 방송이야말로 국가 권력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가장 건전한 방송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서경식 다시 읽기 2』(2023)중에서 390pp

 

누아르 센터에는 버블 인뎀니티라고 불리는 매상이 높은 탄산수 매장 외에도 테라스용 가구 아웃렛 매장 라운지 굿 바이, 향수와 화장품을 파는 몰 티즈 플래컨, 뉴욕 스타일의 델리 레이디 앤 더 록스가 있었다. 522p

역주(譯註)가 각주 형식으로 촘촘히 박혀있는 본서에서 어쩐 일인지 여기엔 각주가 없는데 사실 위 문장은 실재하는 미국 영화 제목을 이용한 언어유희다. 'Bubble Indemnity'는 제임스 M. 케인 원작, 빌리 와일더 연출의 Double Indemnity(1944), 'Lounge Good Buy'는 레이먼드 챈들러 원작, 로버트 알트먼 연출의 Long Goodbye(1973), 'Mall Tease Flacon'은 대쉴 해밋 원작, 존 휴스턴 연출의 Maltese Falcon(1941), 'The Lady 'n' the Lox'는 역시 챈들러 원작, 로버트 몽고메리 연출의 Lady in the Lake(1947)를 가지고 부린 말장난이다. 모두 대표적인 하드보일드 소설이자 이를 원작으로 한 느와르 영화들.

 

"저 바보 자식은 80년대의 뽀빠이 도일이 되고 싶은가봐."
......
(주) 349. Popeye Doyle. 실제 뉴욕 마약강력반 형사를 소재로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영화.

'뽀빠이 도일'은 윌리엄 프리드킨의 <프렌치 커넥션>(1971)의 주인공 형사의 닉네임이고, 이 영화의 인기를 바탕으로 만들려던 tv 드라마 시리즈의 파일럿 에피소드가 86년에 나온 텔레비전 영화다. 하지만 결국 이 한 편을 끝으로 시리즈는 제작되지 않았다. 71년작에서 도일의 상사 역으로도 나왔던 실제 경찰 출신 배우가 이 캐릭터의 원형이라고 한다. '큰 인기를 끌었'다면 파일럿으로 끝나지 않고 시리즈가 제작되지 않았을까.

작가가 글을 쓰는 동안 익명성을 유지하고 세상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에게 두번째로 소중한 가치일 것 같습니다. 이게 저의 불온한 생각입니다. -J.D. 샐린저, <프래니와 주이> 표지에서, 1961 

은둔은 곧 도피일까.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일까. 스토커, 채권자, 가족, 친구 같은 구체적인 개인부터 직장, 사회, 군대, 공권력 같은 유무형의 공동체 그리고 여기에 결부된 의무와 책임 또는 심원한 내적 고뇌와 이를 촉발한 자의식이나 자아 즉 자기자신으로부터의 도피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은둔자마다 결단의 이유와 방식은 제각각일테고 그로부터 얻는 것도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은둔자는 역설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은둔자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J.D 샐린저다. 애초엔 꽤나 실용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샐린저의 세속으로부터의 도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교에 기반한 점점 더 심원한 의미를 가진 운둔으로 바뀌어갔다. 사후 출간된 슬라웬스키의 전기에 따르면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구축하려는 목적 하에 행한 뉴햄프셔주로의 이주 이후, 출판 과정을 포함한 대인 관계에서 경험한 몇 번의 배신과 실망 그리고 결정적으로 종교적 각성이 서로를 강화하면서 점점 더 노골적인 혐인 증세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유추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훨씬 이전부터 샐린저는 개인 정보 및 사실 관계를 타인에게 고의적으로 누락하거나 왜곡했다. 자신의 모계에 관해서 한번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이는 결국 그의 사망 후 슬라웬스키가 직접 해냈다) 입영 서류에는 완전히 거짓 이력을 써넣을만큼 일찍부터 자신의 사적 정보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금욕적 은둔자' 내지는 '미학적 은둔자'로 불렸을만큼 샐린저의 은둔은 그 자체가 분명한 라이프 스타일이었고 그 결과 역설적이게도 그를 직접 만나겠다고 찾아온 방문객으로 인해 되려 은둔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 펼쳐짐으로써 '금욕적'이거나 '미학적'이기 이전에 너무나 전형적인, '가장 보통의' 미국식 유명인사의 삶에 가까웠다고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넓디넓은 미국 영토에서 은둔할 장소를 찾기는 쉬울지 몰라도 그렇게 은둔한다는 사실 자체가 타인의 주목을 끌고, 거기에 더해 그 넓은 땅을 전부 커버할만큼 촘촘하게 깔려있는 미디어와 대중 문화 탓에 미국에서 유명인의 은둔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구경거리이자 상품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은둔 사실이 그가 쓴 작품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유명하다면 그러한 도착에서 얻는 건 다름 아닌 진정한 은둔 같은건 불가능하다는 역설적 깨달음이 아닐까. 실제로 자신의 익명성을 지키려고하면 할수록 샐린저의 의도와는 반대로 일이 흘러갔다. 전기 출판을 막기 위해 고소를 함으로써 법원에 출석해 직접 모습을 드러내야 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은둔자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방문객과 언론의 지속적 관심은 사망할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아직은 소설이 전국민의 일반적인 오락거리였던 시절에 매우 논쟁적인 작품을 쓰고는 이후 줄곧 은둔한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어 정작 작품 한 줄 읽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유명인사가 되는 상황은 대중에게 진정으로 강하게 소구되는 대상은 예술이 아니라 여전히 실제의 삶이며 그래서 예술은 영원히 삶의 미진한 대체재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헛헛한 깨달음을 전한다.  

 

샐린저를 보면서 은둔의 두 종류 또는 진정한 은둔이 성립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가정해봤다. 타인의 관심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은둔이 있다면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예비 작업으로서의 은둔, 그러니까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서, 즉 독립적 태도 및 준비를 위한 진지 구축으로서의 은둔이 다른 한 편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은둔은 샐린저에서 보듯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짐으로써 완성된다. 만일 전자만 은둔에 해당한다면 공권력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범죄자의 도피나 도주와 다를 바가 없고, 후자만 은둔이라면 굳이 물리적으로 격리되지 않더라도 가능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목적과 그로부터 수반된 행위가 결락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둘이 결합될 때 진짜 은둔이 시작되는 것이다. 1963년 절필 후 본격적으로 은둔에 들어간 이래 행한 몇 안되는 인터뷰에서 샐린저는 글쓰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혼자만 즐기는 글쓰기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세상에 나서지 않고 혼자 틀어박혀 있을 때 가장 하던 일을 즐겁게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장애물도 방해도 없이.

 

은둔이 결국 자유를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말일텐데 창작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은둔은 아무리 보더라도 익명이 되는 것 밖에 없다.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도구 내지는 방법으로서의 익명은 상기한 은둔의 조건 두 가지도 당연히 충족한다. 그렇다면 상상해본다. 사망시까지 가장 멀게는 오십 년 가까이 발표되지 않은 채 샐린저의 책상 서랍 속에 들어있었을 미발표 원고들을. 수익 배분이 명시된 계약서도, 채워야 하는 최소한의 분량도, 도덕이나 윤리 내지는 금기로 통칭되는 온갖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강요된 플롯이나 결말이 없을 원고들을.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통해 생계를 잇고 수익을 얻는다는 건 어쨌든 가명을 정할지언정 원칙적으로 익명을 포기하는 일이고 일정 정도(이상)의 자유의 포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익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세상 어떤 예술가도 자유롭지 않으며 그래서 '해방으로서의 예술'이란 명제는 영구적 목표이자 끝내 닿지 못할 이상향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한 쪽 발목이 묶인 불리한 조건에 처한 자신이 벌인 사투의 흔적 그 자체가 예술의 본질인게 아닐까.

글을 길게 쓸 줄 안다는건 분명히 능력이다. 이를테면 2000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경선 취재기인 <기운 내, 심바 안티 후보의 트레일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자신이 왜 이토록 길고 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또다시 그렇게 긴 서문을 써낸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처럼 말이다.

아래의 글이 무엇이고 원래 어디에 실렸는지 언급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서광증 환자의 증상이라면 이런게 아닐까. 첫째, 별거 아닌 것에 '호들갑' 떨기.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촬영분에서 원하는 지점을 찾기 위해 패스트포워딩을 하는 과정에서 아날로그 테입과 달리 픽셀이 깨지는 화면을 묘사한 다음 대목을 보라. 뭉그러진 픽셀이 빚어내는 이미지 묘사는 월리스를 유사 현상학자처럼 보이게 한다.

같은 식으로 바보 같아 보일거라 예상할 수 있지만 CNN의 테이프와 편집기는 디지털이기에 FF를 한들 여덟 장의 거대한 성조기 앞에 선 매케인의 어깨 위 모습은 빨라져 바보처럼 변하지 않고 작고 다양한 디지털 상자와 네모로 일종의 '폭발'을 한다. 이 조각들은 격렬한 FF 속도로 뒤죽박죽 섞이고 부풀고 물러나고 휘돌고 스스로를 재정돈하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이미지는 사상 최악의 마약 경험에서 볼법한 것으로, 고속 화면에서는 루빅큐브 관상의 네모와 상자가 날아다니고 형태를 바꾸고 이따금 인간 얼굴이 되기 직전까지 가지만 얼굴로 낙착되지는 않는다.

 

둘째, 반복하기. 이전까지 미번역된 에세이 중에 번역자가 골라낸 선집임에도 불구하고 본서에 실린 글들에 꾸준히 반복되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냉소(주의)'다. 사물이나 인간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거나 개입하지 않고 거리를 둔 채 무관심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냉소'에 월리스는 본문 내내 부정적이다. '냉소적'이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가치 판단의 대상에 대해 월리스가 선택한 가장 범용성이 높은 최적의 단어처럼 보인다. 미국 정치판에서 야망있는 신인보다는 현직과 그들을 후원하는 '골수 지지자'라고 불리는 기득권 엘리트들에게 유리한 구도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결국 현실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소 때문이며, 식자층의 텔레비전 비평이 지루하고 한심한 이유도 그들이 결국 갈라서지도 않을 배우자를 계속 비난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임해야 할 비평 대상인 텔레비전에 대해 마냥 냉소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존 매케인을 향한 월리스의 호감의 핵심에는 매케인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진정성이 냉소와 정반대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글의 절정이라 할 후반부의 듀런 모자 에피소드에서 월리스가 매케인을 향해 내보이는 감정의 흐름을 보라.

 

약물과 TV 그리고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 고백한) 섹스 중독자였던 월리스에게는 냉소야말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내지 가치관의 대척점에 있었을 것이다. 한 대상에 몰입하여 자신의 전존재를 헌신하는, 현대 사회의 가장 역설적인 적극적 주체가 중독자일테니까. 그렇다면 월리스 본인은 어디에 열중하고 어디에 냉소적인가.

 

1990년에 발표한 책 제목과 동명의 글에는 패기가 흘러넘친다. 충분히 더 짧고 더 명료하게 쓸 수 있었을 대목들에서 보이는 현학적인 단어 선택과 마침표가 잘 보이지 않는 긴 문장은 월리스가 훗날 쓴 에세이들과도 변별되는 상이한 스타일을 갖고있다. 이처럼 날서고 명민했던 월리스가 만일 지금까지 생존했다면 현재의 유튜브와 스트리밍 문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개진했을지 궁금해졌는데 몇몇 대목에서 엿보이는 통찰력은 글이 발표된 지 삼십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

길더는 ... 선택할 것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자신이 선택하는 ...... 유사 경험하는? 꿈꾸는 것에 대한 통제권이 엄청나게 많아져 TC 문화가 구원받으리라 예언한다.
선택이 확장되는 것만으로 우리가 텔레비전에 대한 구속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이다. 103

컨텐츠 대홍수 시대에 시청자는 과연 더 주체적이 됐을까. 낙관론에 기댄 기술 예찬론의 공허함을 지적하는 월리스의 혜안은 ott가 차려놓은 컨텐츠로 선택이 한정될 수 밖에 없는 작금의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한다. '선택할 것이 엄청나게 많아진' 끝에 마침내 마주한 것은 냉소주의 그 자체로서 이는 월리스식 디스토피아의 최종점이 된다. 모든 가치를 조롱한 끝에, 수동적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그냥 멍하게 받아들이는 반反 반란자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자의식을 멀리하고 진부함을 경외의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서광증 환자의 마지막 증상은 긴 글의 끝자락에 자리한 모호함이다. 제시된 증거와 증언에 대한 판단 과정의 상세한 설명이 주를 이루는 판결문이나 전개한 논증에 기반해 결론에 도달하는 귀납식의 논문 등과는 달리 월리스의 에세이에는 자신이 관찰한 처음보는 낯선 풍경들, 이를테면 테니스 토너먼트 대회 방식의 복잡다단함, 미국식 자본주의의 전시장이 되어버린 지역 축제, 빡빡한 스케줄과 첨단 미디어의 경쟁이 되어버린 대선 경선을 세필화 그리듯 묘사하지만 잔뜩 늘어놓고는 제대로 그러모으지 못한다는 인상을 자주 남긴다. 그의 글이 그토록 긴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고도의 회피 내지는 의식적인 판단 보류라는 의심. 독자가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정보를 현란하고 빠른 필치로 눈 앞에 그려보이듯 묘사하지만 그래서 대체 이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데서 보이는 첫인상은 두려움이 아닌 불안이다. 지나치게 긴 글을 쓰는건 할 말이 너무 많거나 아니면 전무해서일 수 있다. <기운 내>가 어떻게 끝났던가. 매케인을 진짜로 만들어주는 상자는 결국 잠겨있고 그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으며 유권자인 우리는 다만 '깨어있도록 노력'해야할 뿐이다. 즉 선거 국면에서 유권자가 후보의 진정성을 알기란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그러기위한 노력이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이다. 2000년 당시 시점의 최첨단 전자 기기들을 동원한 언론사간 치열한 보도 경쟁이나 쉴 틈이 없다시피한 경선 캠페인 스케줄에 관한 서술은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선거 캠페인의 이면을 조명하는데는 성공하지만 그렇게 긴 글이 다다른 종착점에서 저 한마디로 끝남으로써 글의 모양새가 마치 위태롭게 선 역 피라미드처럼 되어버린 탓에 그 앞까지의 전개를 장황하기만한 빌드업처럼 보이게 한다.

 

진지함은 그에 상응하는 형식을 요구할까. 글의 내용이 길이를 규정할까. 문학의 세계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쉽게 규정할 수 없다. 한 편 한 편이 길지는 않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산문이 낯설다면 그건 그의 유려한 완곡어법이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철학자가 그렇지는 않지만 푸코의 글은 특히 저서가 아닌 강의록의 경우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비교적 분명하고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청사진 아래 어느 위치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수시로 독자와 청자에게 확인시키며 정의와 분류, 비교와 대조, 비유 그리고 예시를 끊임없이 제시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철학자의 글은 기본 개념을 선행 학습하더라도 그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논리철학논고>의 가시만 발라놓은 것처럼 극단적일만치 짧은 문장들은 그 자체의 내재적 논리에 따라 착착 연결되어 그 유명한 마지막 명제이자 결론으로 치닫지만 텍스트 외부에 있는 독자와의 소통은 거의 염두에 두지 않기에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설과 논쟁을 낳는다. 그러니까 저자마다 각자의 문체, 즉 스타일이 있고 거기에 적응하는데는 일정 정도의 시간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방대한 사료와 문헌을 바탕으로 했기에 자연히 길 수밖에 없는 역사책을 읽기 어려운건 난문 때문이 아니라 볼륨에 겁먹는 심리적 장벽 그러니까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다. 긴 글에는 길 수밖에 없는 저마다의 필연성 또는 그럴만한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픽션/논픽션의 갈래가 아닌 광의의) 문학에서는 어느 것 하나 이거다라고 규정하기가 불가능하다. 무수한 반례들이 쉴 새 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니까. 그래서 말하고 싶은건 이거다. 때로는 글의 길이가 곧 스타일일 수도 있다는 것.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저자의 사적인 정보나 일상 묘사가 거의 안 보인다는 점에서 신변잡기류의 미셀러니도 '사소설'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본격적인 평론이나 비평도 아닌 글의 형식이 이미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 글의 그 '끼어있는' 성격을 예증한다. 본격 평론으로 분류하기에는 핍진한 묘사, 대화체, 1인칭 관찰자 시점 등은 기본적으로 '문학적'인 반면, 관찰하는 사건이나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거나 함의를 읽어내는 통찰은 일급 비평가의 그것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미국의 유명 월간지에서 그나마 자주 볼 수 있는 일인칭 관찰자 시점의 탐사 보도류, 그러니까 '미국식 저널리즘'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 어쨌건 쉽사리 어떤 한 장르에 속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펼쳐나가는 형식이야말로 그 통찰을 가능케하는 원인이며 그 자유로운 형식의 핵심에 바로 어마어마한 길이가 있다. 동시대 텔레비전 문화(그것도 지금 시점에서보면 '소박한' 1990년대 TV 문화다. 과연 2022년에 레거시 미디어라는 TV를 비평하려면 또는 ott를 포함해 가정에서 즐기는 홈 미디어 문화 전체를 월리스가 비평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페이지가 요구될까) 비평이 그토록 많은 페이지를 필요로하는 일일까. 충분히 과잉이고 '선을 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가 필연적이라면 어떨까. 그렇게 본다면 모호함이나 어중간함 또한 긴 글이 야기한 어떤 파생 효과에 가깝다. (만약 그런게 있다면) '저자의 의도'나 '전하고픈 메시지'는 긴 글 속 어딘가에 영리하게 숨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명의 첫번째 에세이 <에 우부니스 플루람>에서 월리스의 의도는 20세기말 미국 문학이 동시대 텔레비전 쇼와 어떻게 닮아가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는 것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순응하게 만드는 미디어를 비판하면서 '불승인'의 위험을, 경악과 비명의 감수를 요청한다. 앞에서 그토록 길게 전개한 비교와 대조 및 구체적 예시와 설명이 없었다면 이 마지막 주장은 다소 뜬금없고 허황하게 들렸을 것이다. 

 

독자를 얻는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길게 쓰는건 분명히 능력이다. 투입한 노동량에 비해 최종 추출량이 적은 광물(이나 육류)처럼 귀한 소량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떠오르는 생각을 표현할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아 있어야 할 자리에 배치한 문장을 한 자 한 자 써나가는 과정은 길고 지루하며, 때로는 쓰고 나서도 확신을 갖기 어렵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분명히 노동에 가깝다(대개의 경우, 그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하지만 저자들이 그 과정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 또한 분명하다. 때로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그런 글쓰기를 시도하는 저자들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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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자유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이면서도 낯선가. 실패할 자유란 곧 실패할 권리라는 말이겠지만 권리를 챙기겠다며 일부러 실패하는 사람은 없을테고 그렇다면 이는 실패해도 무방한 자유, 즉 실패해도 다시 주어지는 기회의 보장을 뜻하는 걸텐데 작금의 자본주의 하에서 낭만적으로 들리기는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틀릴 자유'란 것도 있을까. 즉, '틀리는 실패를 저지르고도 계속 주어지는 기회'라는 것도 있을까. 『다케우치 요시미: 어느 방법의 전기』를 읽으면서 든 의문이다. 연이은 '말실수'와 '예측 실패'에도 불구하고 공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다케우치 요시미에 대해 저자 츠루미 슌스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기서 다케우치의 예언은 예견이나 예측이라는 성격에서 벗어난 '예언자'의 예언이다. 그 어긋남은 대동아전쟁에 대해서도 전후 일본의 고도 성장에 대해서도 다케우치의 발언을 따라다녔다. 79p

대동아전쟁의 예측에 실패했으니 전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길을 택하지 앟았다. 전후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과정을 예측하는데 실패했으나 그 실패를 인정하며 중국에 대해 평론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169p

듣는 이의 기분과 인격을 거스르지 않아야하고, 온갖 특수성과 상대성을 존중하느라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늘 의식해야하는 현 시점에서 한 번의 필화 때문에 두 번째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줄어드는건 문필가 또한 다른 직업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패전 후 일본의 논단이 지금보다 덜 각박했을지 몰라도 더 낭만적일 것도 없으리라 가정한다면 다케우치가 그럼에도 공적 지면상에서 '계속 말할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데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츠루미는 다음과 같이 다케우치를 인정한다.

만년의 평론집에 <예견과 착오>라는 제목을 단 것은 자신의 예측이 대동아전쟁에 대해서도, 중국혁명 이후에 대해서도 불충분했다는 자기 인정을 포함한다. ... 자신의 예측이 얼마나 빗나갔는지를, 매번 현재 위치에서 측정하고 인식하기를 거듭한다. ... 이를 일러 나는 '실수의 힘' 혹은 '실패의 힘'이라 부르고자 한다. 그 판단을 떠받치는 냉정과 용기의 조합에 나는 감동한다. 195p

 

한 사람의 일생을 시간 순서대로가 아닌 특정한 소주제에 맞춰, 그마저도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일간지 컬럼 분량의 소주제 하에 쓰인 글들이 묶인 낯선 '전기'의 형식은 다케우치가 썼던 어느 글의 제목을 차용한 이 책 어느 방법의 전기』야말로 '어느 전기의 방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방법이 이렇다면 '태도'는 어떨까. 다케우치를 바라보는 츠루미의 시선은 상기 인용에서 보듯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며 그 핵심엔 '쩡짜'라는 개념에 비추어 글과 삶에서 펼쳤던 다케우치의 분투에 대한 인정이 있다. 고통스럽지만 현실의 고뇌와 시련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감수하고 대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쩡짜'(이 책에서는 '저항'의 뜻으로 번역 및 소개하고 있다)는 보다시피 엄밀한 사회과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문학적인 접근인데, 인물의 명암을 모두 조명함으로써 객관성을 담보해야 하는 전기라는 형식에서 츠루미가 행한 이런 접근법이 옳으냐를 논하기 이전에 이미 전기의 대상인 다케우치의 평론부터가 문학인의 입장에서 행한, 문학적 시각에 의한 전중 및 전후 일본 사회 비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다케우치의 그토록 연이은 '예측 실패'와 '착오'의 원인도 현실 비판에 요구되는 객관적 시각과 엄정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결여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쩡짜'는 그러한 결여를 상쇄하고 보충할만한 개념이 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곧 이 책에 대한 판단의 핵심에 자리한다.

 

우선, 다케우치가 대동아전쟁을 긍정한 것을 넘어 거의 선동에 가까운 '선언'을 하게된 데는 중국문학자로서 어쩌면 피하기 어려웠을 중국 편향이 있었다고 쓰루미는 설명한다. 

강하고 풍족한 미국에는 양보하면서 약하고 궁핍한 중국은 거세게 밀어붙여 이권을 취한다는 다이쇼 이래 일본국의 행보가 줄곧 혐오스러웠는데, 마침내 일본이 미국, 영국, 네덜란드에 맞서겠다는 자세를 확실히 표명했기에 일거에 지지의 입장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112p

중요한건 다케우치가 전후가 되자 <대동아전쟁과 우리의 결의>를 마치 쓴 적 없었던 것처럼 사장하거나 철회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스스로 직접 상기했다는데 있다. 이 점이 다케우치를 바라보는 츠루미의 관점 및 태도를 결정짓게 되는데 다케우치가 그렇게 한 이유에 대해 "이 전쟁에서 국민이 자진해서 싸웠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자기검증이라고 츠루미는 일차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자기검증의 차원을 넘어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의 언어가 가진 한계를 돌파하려는 다케우치와 츠루미의 사상적 분투가 있다고 이 책의 부록에서 쑨거는 해설한다. '정확-착오'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한 '순백의 장소'는 현실에서 부재하고 그래서 현실의 우리에게 쥐어진 건 명확하지 않은, '응보가 없는' 복합적 선 뿐이다. 다케우치가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고뇌와 몸부림, 바로 그 쩡짜를 츠루미 또한 다케우치를 읽어가면서 행했음을 쑨거는 인정하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올바름'의 기준 자체를 의심하는 다케우치의 (사상적) 자세이자 윤리의 준거틀은 그러나 일본의 과거 식민지의 독자인 나로 하여금 일견 주의하게 한다. 다케우치가 말한 '의심을 의심함으로써 얻는 믿음'을 따라 또 한번 의심하면서 계속 읽어보자. 

 

'국민문학론'과 함께 전후에 다케우치가 제창한 주요 주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이다. 실재하는 지리적 대상이 아닌 하나의 개념으로서 '아시아'를 규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서구로부터 침략당하고 이에 저항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질문은 바로 여기서 제기된다. '아시아 해방을 위해 연대한다'는 대의까지는 동의한다하더라도 왜 현실에서 그 방식이 그 아시아를 상대로 한 식민주의와 침략전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침묵하거나 모른척 하기는 다케우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해방과 연대를 위한 인접 아시아 국가의 강제합병과 침략이라는 모순을 모른 척 하기는 평전을 쓰는 츠루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부록으로 실린 역자와 쑨거의 글이 이 딜레마를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나 두 편의 우수리들은 공통적으로 다케우치와 츠루미 두 사람을 'acknowledgement' 하는 것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연대의 한 방편이었다는 생각은 어쩌면 일본 내 진보적 지식인 진영 내에서조차 분명한 하나의 지류로 존재하는 듯하고 다케우치 요시미는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발견되는 사조의 한 갈래에 속하는걸까. 이러한 논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가.

애당초 ‘침략’과 ‘연대’를 구체적 상황 속에서 구별할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
조선 문제를 보더라도 결과는 분명 ‘일한병합’이라는 완전침략으로 끝났지만 그 과정은 간단치 않다. 러시아나 청국의 ‘침략’에 함께 맞선다는 일면도 ‘사상’으로서는 없었다고 할 수 없다.<일본의 아시아주의>(1963),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2: 내재하는 아시아』 중에서 298p

그러나 아무리 에누리하더라도 그것이 아시아 나라들의 연대(침략을 수단으로 삼건 삼지 않건 간에)를 지향했다는 공통점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ibid, 302p)

전후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1963년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침략과 연대를 구분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계속되는데 대해 분노하기에 앞서 어쩌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위의 문장을 보면서 들었다. 침략을 수단으로 써서(라도) 연대한다는 논리가 전전 전중 전후를 관통하며 이토록 오래되었다면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국가의 독자로서 생길 수 밖에 없는 감정을 넘어(어쩌면 더욱 더) 그 연원과 성립 과정 및 변천을 유심히 살펴봐야하는게 아닐까. 이들은 정말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러한 도착된 논리의 전후 버전이자 잠정적 결정판이 바로 다케우치식 아시아주의가 아닐까.

“전쟁에 패하면 아시아의 식민지는 해방될 수 없다는 천황제파시즘의 슬로건을 나름대로 믿고 있었다. 또한 전쟁 희생자의 죽음도 무의미해지리라고 생각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 <다카무라 고타로>, 『어느 방법의 전기』 중에서 145p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의 근대화는 몹시 눈부신 대목이 있습니다. 뒤처지고 식민지로 전락한 동양의 여러 나라에 해방운동을 촉진하기도 했지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1961),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2: 내재하는 아시아』 중에서 40p 

 

아시아를 침략할 때 제국주의 일본 국가의 의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가공, 재구성 및 자기 식으로 변주해서 받아들인 일본 국민들이 있으며 그들을 일률적으로 군국주의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고 츠루미도 말을 보탠다. 이렇듯 '아시아 해방' '아시아와의 연대' '아시아주의' 등을 주워올리는 이러한 이상주의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여기에 조선과 대만 식민지 사정이 시야에서 배제되어 있음은 한결같다. 바로 이 불구의 이상주의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을 이해하려 할 때 염두에 둬야할 또 한 가지는 아닐까.

 

서구로부터의 독립과 해방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으로 유추해보건대 전형적인 민족주의자처럼 보이는 다케우치 요시미가 동시에 아시아주의라는 연대의 꿈을 버리지 않은 것, 즉 유럽적 근대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아시아주의라는 '미완의 꿈'을 희구했던 것은 일본제국주의를 지도한 이들 및 그들이 벌인 일과 묘하게 굴절되어 겹쳐보인다. 작금의 포스트 글로벌 시대에서 서구와 대립하며 아시아가 연대해야 할 당위가 있을까. 있다면 그 명분은 뭘까. 지난 몇 년 간 팬데믹을 거치면서 국민국가가 당차게 돌아왔다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그 이전에 있었던 브렉시트에서 보듯 세계는 블록화되는 가운데 동시에 잘게 분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과 서가 대항하면서 역사가 발전했다는 제국주의 시절의 사관은 아직도 아시아주의라는 미완의 꿈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2

애초에 이 글은 츠루미 슌스케가 쓴 평전의 서평을 목표로 했기에 다케우치 자체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피하려 했으나 읽으면서 본서만으로는 애초의 의도를 충족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국내에 번역된 다케우치 선집 두 권을 같이 참조했다. 그 결과 다케우치가 그토록 예측 실패와 말실수를 거듭한건 츠루미가 주장하듯 과거의 실패로부터 미래의 가능성과 단초를, 실마리와 유산을 길어올리는데는 기여했을지는 모르나 그 이전에 거의 모든 구설이 그러하듯 발화자 본인의 식견과 비전이 짧은 것이 그 실패와 말실수의 직접적 원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전후에 일관되게 비판한 '근대주의'는 곧 다케우치가 협량한 민족주의자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게 하며 자기자신의 과실을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는 사상가이기 이전에 글쟁이로서의 책임감(혹은 윤리라고 해야할까)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이를테면 다음 대목을 보자.

대동아전쟁은 세계사를 다시 썼다고 일컬어진다. 나는 그 말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믿고 있다. 대동아전쟁은 근대를 부정하고 근대문화를 부정하고, 그 부정의 끝 간 데서 새로운 세계와 세계문화를 자기형성해가는 역사의 창조활동이다.
<《 중국문학》 폐간과 나>(1943),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1:고뇌하는 일본』 중 75p
인용하면서도 느끼는 바지만 1941년부터 1942년의 지적 분위기를 지금 복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 개전을 예찬한 일은 “지적 전율”이기는커녕 지적 혼란이자 지성의 완전한 방기가 아니었을까. 도대체 어찌하여 그런 일이 지식인 사이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났던가. 그 사정을 설명하기란 정말이지 어렵다. <근대의 초극>(1959) 중에서 (ibid, 131p)

서로 다른 두 편의 글에서 따온 인용이다. 16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두 문장 간의 태세 전환을 어떻게 봐야할까. "그 사정을 설명하기란 정말이지 어려"울까. 우선 본인의 사정부터 하나씩 설명하면 되는게 아닐까. 전자를 모른 척하는 후자의 인용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의아하기만 했다. "1941년부터 1942년"이 아닌 그 이듬해인 1943년에 발표한 글이라 미처 깜빡 잊은걸까.

나는 대동아문화가 자기보전문화를 초극할 때에만 구축된다고 믿는다. 우리 일본은 관념으로는 이미 대동아지역의 근대적 식민지배를 부정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것이 한없이 옳다고 믿는다. 식민지배의 부정은 자기보존욕의 포기다. 개체가 다른 개체를 수탈하여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가 스스로를 부정하여 다른 개체를 품는다는 입장을 자기 안에서 생산해내는 일이다. 수탈이 아닌 나눔으로 세계를 그려야 한다.
<《 중국문학》 폐간과 나>(1943)중에서 (ibid ,71p)

식민지배가 한창이던 1943년에 발표한 글에 나오는 "우리 일본은 .... 이미 대동아지역의 근대적 식민지배를 부정하지 않았던가"라는 이 문장은 대체 무슨 뜻일까? 자기기만이 아니라면 이런 문장은 아예 처음부터 조선을 시야에 넣지 않아야만 쓸 수 있을 것이다. 위 인용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으로 궁금하다.  

'근대의 초극'이라는 문제는 아무래도 전쟁의 재해석 내지 재평가와 함께 다뤄져야함을 (......)
가메이는 ... 중국(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침략전쟁만을 떼어내 그 측면 혹은 그 부분만 책임지자고 말한다. 이 점만큼은 나도 가메이의 사고방식을 지지하고 싶다. 대동아전쟁은 식민지 침략전쟁인 동시에 제국주의에 대한 전쟁이기도 했다.
<근대의 초극>(1959)중에서 (ibid, 141p)
아시아에서 지도권을 주장한다는 것과 서구근대를 ‘초극’한다는 국민적 사명, 그 속에 내재된 원리적 배리가 이 책에서는 ‘일본은 서구’라는 관점의 조작을 거쳐 단순명쾌하게 전자만 살려내고 후자를 버리는 형태로 해결되었다. … 일본은 애초 아시아가 아니었다고 이들 신문명개화론자는 주장한다. (ibid, 182-183p)

대중국 전쟁은 침략전쟁이지만 대미국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기에 둘을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아시아에서의 지도권 행사와 서구근대를 초극한다는 사명이 과연 '원리적 배리'일까. 일본은 아시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는 후쿠자와 유키치만이 아니었고 실제로도 역사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일부의 '주장'만이 아니었다. 서구근대의 초극이 아시아 지도권 행사를 위한 허울뿐인 명분이었던 현실은 어느새 잊혀지고 그 원리만은 존중해야한다는, 전후이기에 나올법한 논리는 그러나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관점의 조작을 거쳐 한 쪽만 살려낸 게 아니라, 일본의 아시아 지도권 행사가 곧 '아시아'가 서구근대를 초극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고 서구근대를 초극한다는 목표는 다시 일본이 아시아를 이끌어야한다는 명분을 떠받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즉 이 둘은 '상호보완적'이었지 '원리적 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혹시 그럼에도 여전히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했던 '의도'는 인정해야하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다면 국제관계에서 (선한) 의도를 따지는 일만큼 무용한 일도 없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개인도 아닌 국가공동체를 의인화해 '의도'를, 그것도 겉으로 드러난 결과와 전혀 상반된, 그래서 검증하기 더욱 어려운 상대의 의도를 굳이 애써 호의적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는 어디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의도와 관련하여 다음 인용을 보자.

 

"이것(「대동아전쟁과 우리의 결의」)을 다케우치 씨는 전후에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 시기 다케우치 씨가 써냈던 내용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동아해방을 기치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도 일본이 식민화하고 있는 조선과 타이완을 해방해야 합니다. (……)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향해 국가를 밀고 나가면 일본 국가는 부서집니다. 부서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까지가 다케우치 씨의 목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케우치 씨라는 사람은 정말이지 파멸적 인간입니다. (......)
국가의 목적도 국가가 사라지는 데 있습니다. 대동아전쟁은 그 계기인 셈입니다. 그렇게 읽는다면, 다케우치 요시미가 전후에도 그 글을, <중국문학>을 통한 그 선언을 왜 철회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츠루미 슌스케, 「진보를 의심하는 방법」, 츠루미 슌스케·카가미 미츠유키 편, 『무근의 내셔널리즘을 넘어 - 다케우치 요시미를 재고한다』, 2007) (ibid 213-214p) (굵은 표시는 인용자)

안타깝게도 이 인용문의 출처인 『무근의 내셔널리즘을 넘어 - 다케우치 요시미를 재고한다』라는 책은 한국어 출간이 되어있지 않기에 저 인용문이 확인할 수 있는 전부다. 따라서 맥락에 유의하며 읽어야하는데 '그 시기'는 현재 주어진 저 인용문만으로 봤을 때는 전후와 전중 어느 쪽으로도 읽히는게 가능한데 아무래도 전중에 더 가까운 듯하다. 그러니까 전중에 '대동아해방'의 기치를 내세운 글을 썼기 때문에, 즉 그러한 뜻을 이미 전중에 밝혔기 때문에 대동아전쟁을 찬양한 <대동아전쟁과 우리의 결의>를 전후에도 철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그래서 "조선과 타이완을 해방해야한다"는 당위의 표현이 다케우치의 것인지 아니면 저 인용문을 쓴 츠루미의 것인지 판단이 쉽지 않다. 과연 다케우치 요시미는 전중에 조선과 타이완의 해방을 희구했을까. 전후에 조선의 강제병합을 비판한 문장은 제법 있지만 전중에도 저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케우치가 조선에 관해 쓴 글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며 그것도 다 전후에 나왔는데 그 중 한 편은 중국에 들어가기 위해 들른 조선에서 옛 친구들과 조우한 사적인 회고담이다. 강제병합을 안타까워하고 비판한 것도, 일본인에게 '조선어 학습'을 권하고, 조선인 친구와의 회억을 언급한 것도 모두 전후였지 전중이나 전전이 아니었다. 아시아주의를 구상하고 아시아 해방을 한창 논할 때는 언급이 없(거나 드물)지만 향수의 감정이 물씬한 사적 회고에서야 겨우 등장하는 것이 조선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케우치의 진심 혹은 진의를 의심케한 결정적인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이용구의 유복자 이석규에게는 다이토 구니오大東國男라는 일본 이름이 있다. 아마도 ‘대동국大東國’을 기념하려는 것일 게다. 그는 <이용구의 생애>(1960, 時事新書)라는 책을 냈는데, 이는 오늘날 조선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거꾸러뜨린 안중근은 애국자로 칭송되지만 부친 이용구는 매국노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게 부당하다 여겨 그 오명을 씻겠다는 동기로 쓴 것이다. 정치적 판단의 실패는 실패로 인정하더라도 이용구의 오명을 씻는 연대의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으리라. <일본의 아시아주의>(1963),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2: 내재하는 아시아』 중에서 337p

이용구의 오명을 씻는 정도의 일을 무려 '연대의 책임' 이라고까지 한다면 그런 연대는 두 손 들어 거부해야한다. 연대를 상호대등한 주체간의, 공동의 목표 아래 행해지는 자발적인 상호협력 및 부조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과연 조선과 일본은 연대했는가. 조선에 대한 다케우치의 인식의 수준이 이 정도였기 때문에 아시아 해방을 그렇게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이 아시아의 일부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주창하는 논자마다 저마다의 '아시아주의'를 논한다는 다케우치의 말에 본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아시아주의는 본인의 의도에 상관없이 강성한 팽창적 민족주의자들의 명분으로 쓰이거나 쓰일 가능성이 크며, 거기엔 너른 눈으로 상상한 균질적인 하나의 인지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때로는 비가시적일정도로 차등하고 불균질하며 전세계적으로 보면 서양에 비해 상대적인 약자로서의 아시아라는 가상이 있을 뿐이다.

 

 

 

3

자신이 일단 선택하고 그 선택을 공표한 뒤 언제까지고 그 선택은 옳았다는 판단을 고집하며 자기 예언의 무오류를 가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이 그를 출중한 사상가로 만들었다. 『어느 방법의 전기』중에서 124p
국민이 침략 전쟁으로 향하는 시기, 그 동향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자를 비난해선 안되겠지만, 자신은 그 길이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굳이 나라와 함께 걷는다. (ibid 137) (굵은 표시는 인용자)

츠루미가 쓴 본서 속 인용문의 문맥을 확인하기 위해 참조한 선집 두 권을 읽으면서 다케우치 요시미가 과연 '출중한 사상가'인지 그 명성에 의문이 든 것은 사실이다. 그의 '실수'와 '실패'에 대해 츠루미가 지나치게 우호적으로 평가하는게 아닌가라는 의심에 대해서는 외국인 독자와 자국인 독자의 시각이 충분히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실수와 실패에서 길어올린 지혜라는 이 전기의 핵심에 대해서조차도 위의 두번째 인용문에 이르자 의심은 더 굳어졌다.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굳이 나라와 함께 걷는" 것도 사상적 유연함일까. 아니 그 이전에 물어야 할 질문, 다케우치는 "그 길이 잘못되었음"을 과연 알았을까. 사후의 지혜가 아닌 당시, 즉 전중의 시점에서 말이다. 그런데 정작 상기한 두번째 인용문은 선집이 아닌 전기에서 발췌한, 즉 다케우치가 아닌 츠루미가 쓴 문장이다.

 

본서는 실패로부터 유산을, 현재로부터 미래를 위한 단초와 실마리를 길어올린다는 다케우치의 방법론, 이른바 '실패의 힘'을 상찬하는데 처음부터 초점이 맞추어진 나머지 평전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균형 잡기에 실패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평전'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1959년 근대의 초극, 1941년 대동아전쟁과 우리의 결의, 1961년 주창한 근대문학론이 논단 내에서 어떻게 논의되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실패'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더욱 상세하게 그려졌어야 했다. 매우 짧게 언급하고 지나간 문화대혁명과 일본 고도성장에 관한 예측 실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다케우치의 이력과 지적 성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선행 지식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 책이 츠루미라는 또 한 명의(즉 1/n로서) 저명한 지식인의 시점에서 본 주관적인 인물론이나 논평으로서의 가치를 갖는지 몰라도 공과를 모두 참조한 끝에 인물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전기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적이 불친절하고 불완전할 것이다(이는 모든 전기와 평전에 해당하겠지만).


전기의 대상이 생애 과정에서 맞이하게 된 사건들에 뛰어든 전개 과정, 그 행위 혹은 선택의 결과 그리고 일정 시간 이후 행해진 이에 대한 '평가'라는 세 요소가 전부 갖추어질 때 평전은 성립한다. 또한 '평전'의 '평'이란 전기를 쓰고 있는 저자의 평만이 아니라 당대에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세간의 평가, 이 책처럼 지식인인 경우 학계나 언론, 그리고 이른바 '논단'이라는 사상계에서의 평가가 어떠했는지를 소개해야 그 사건이 당대에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고, 훗날 전기를 쓰는 현재 시점에서 저자의 평가가 여기에 덧붙여질 때 그 시차로부터 발생하는 대조와 비교를 통해 독자 또한 자신만의 관점을, 즉 '평'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에는 본서의 분량이 너무 작고 단출한 것이 지금까지 언급한 단점들을 야기한 결정적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유럽적 근대를 단호히 거부하는 다케우치의 반反 근대주의 논법은 다분히 민족주의의 성향이 강하고 '국민문학론' 역시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 일본 지식인의 글에서 접하는 '해방으로서의 민족주의'란 언표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국가의 독자 입장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게한다. 우익적 아시아주의를 비판하기 이전에 '아시아주의' 자체를 상상하는 것에 내재한 한계를 직시하기란 어려운 일일까. 해방을 갈망하는 식민지 사정에는 눈 감은 채 서구로부터의 해방을 제창하고, 유럽적 근대를 거부하는데에서 전후를 헤쳐나갈 단초를 얻는 그러한 아시아주의는 메이지유신 이전, 장기 쇄국상황이었던 일본을 떠올리게한다. 일본은 늘 아시아의 적이었지 단 한번도 아시아의 일원이었던 적이 없다며 비판한 이가 있었다. 제목부터 그러한 비판의 근거로 쓰이기에 충분해보이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주도하는 팽창적 아시아주의의 진술로서 읽힐 수 있는데 이러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아시아주의가 여전히 미완의 꿈으로 남아있는한, 강성한 팽창주의의 이면에서 또 한번 애써 아시아의 패자(覇者)와 동반자를 나누고 분리하는 논법을 구사하는 지식인이나 사상가가 등장하지는 않을까. 역사의 반복은 사건의 반복이 아니라 구조의 반복이라던 누군가의 말은 그래서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흥분과 불안을 동시에 야기한다.

1. 믹스셋, 믹스테입, 플레이리스트 등의 최대 장점은 일일이 선곡할 필요가 없고 흐름도 끊기지 않은 채 감상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데 있다. 무엇보다 그런 실용적 측면 말고도 개별 곡들이 같은 무대 위에서, 그러니까 신곡과 구곡, 장르 등의 구분 없이 동등한 감상(내지는 평가)의 기회를 받는다는 것이 최대 장점인 것 같다. 숨은 곡의 재발견이란 것도 같은 말일텐데 그 뮤지션이 누구인지(남성인지 여성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등), 언제 나온 노래인지, 어느 나라 곡인지, 어떤 장르인지 같은 정보와 그에 수반된 일체의 선입견이 없이, '무지의 베일'을 가린 상황에서 리스닝의 기회를 얻는다. 처음 듣는 믹스셋의 수록곡은 대개가 태반이 모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발견의 즐거움과 더불어 생활의 배경 음악이 늘어남으로써 얻는 만족감이 크다. 산책을 하거나 단순 작업을 할 때는 그래서 새로운 믹스셋과 익숙한 믹스셋을 반반의 비율로 듣는다. 그래서, 어쨌건간에 직접 만들어본 믹스셋중 하나.

 

 

2.

옛 기억이 하나 떠오릅니다. 데뷔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베테랑 편집자에게 "평론은 같은 판매 부수의 소설에 비해 열 배 정도 영향력이 있답니다. 열심히 하길 바랍니다."라는 격려의 말을 들었습니다.

일본이 특이하긴하다고 느낀 대목. 상황이 이래서인지 아즈마 히로키는 신인 평론가를 데뷔('등단'이 아니라) 시키기 위한 비평 컨테스트를 주최하고 그 특전으로 자신이 발간하는 잡지에 지면을 내준다. 동인지를 통해 데뷔하는 아마추어 평론가의 숫자도 많고 그중에서 프로가 되는 예도 많다고 하니 확실히 평론이 '읽히는' 사회라는건데 이런 풍토는 어떻게 가능한걸까.

연휴에 채널을 돌리다 어떤 영화를 후반부쯤부터 보게 됐다. 그 중 한 대목. 유배중인 정약용은 자신과 같은 처지인 형 약전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책과 먹을 멀리하라는 당부를 전한다. 자연히 글을 쓰고 싶어질테니 말이다. 각혈을 하면서도 계속 글을 쓰던 그를 보며 그의 유배 생활을 돕던 아낙은 "제발 글 좀 그만쓰라"고 사정을 하지만 약전은 기어이 책상 머리 앞에서 붓을 손에 쥔 채 죽는다. 얼마나 전기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맞을 것이다. 직접 관찰을 통해 얻은 지식을 기록하는 일에 그토록 열중했던 이유는 뭘까. 그간 갈망해온 세상을 개벽하는 일에 관한 것도, 유배당한 처지에 울분을 호소하는 것도, 평생동안 궁구한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것도 아닌 자연과 사물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얻은 지식을 분류하고 체계화하는데 그처럼 진을 쏟은 이유는 뭐였을까. 아마도 그렇게 써낸 것이 쓰지 않은 저 모든 것들의 대체재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렇게라도 뭔가 쓰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한마디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그 자체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글이 무엇이었든지간에.
 
그러나 결국 글쓰기는 죽음이다. 오컬트한 미신도, 살인의 도구라는 장르물의 설정 놀음도 아니다. 말그대로 글쓰기는 곧 죽음이다. 가장 수명이 짧은 직업군 중 하나가 기자와 소설가, 시인같은 글쟁이라는게 만국공통임은 주지의 사실이건만 그럼에도 쓰는 사람은 쓰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글을 쓰다가, 아니 글만 쓰다가 붓을 손에 쥐고 죽기도 한다. 그걸 저주라 볼지 숙명이라 볼지는 관점의 차이일테지만.

 

이런 점들을 살펴볼 때마다 언제나 내게 당혹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문인들의 끔찍스러운 끈기다. 글쓰기라는 악덕은 너무나 고약해서 어떤 약도 듣지 않는다. 이 악덕에 빠진 자들은 글쓰기의 즐거움이 사라진 지 오래여도, 심지어 켈러가 말했듯 나날이 바보천치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중년의 위기가 찾아와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만큼 절박한 바람이 없는 때에도 그 악덕을 계속해서 실천한다. 루소는 생피에르섬의 피난처에서 영원히 계속되는 상념을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죽을 때까지 쓰고 또 썼다. 뫼리케 또한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게 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자기 소설을 고치고 또 고쳤다. 켈러는 문학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바치기 위해 쉰여섯의 나이에 공직에서 사임하기까지 했다. 발저는 스스로를 이른바 금치산자로 만듦으로서써만 비로소 글쓰기의 강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그는 발저가 문학을 완전히 등졌음에도 여전히 조끼 호주머니 속에 몽당연필 한 개와 별도로 잘라 낸 메모지들을 늘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자주 적어넣곤 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발저는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끼면 마치 나쁜 짓이나 심지어는 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언제나 부리나케 메모장을 주머니에 다시 감췄다고 베를레는 덧붙였다. 아무래도 작가들에게 글쓰기라는 것은 아무리 지긋지긋하고 답이 없는 일 같아 보여도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둘 수는 없는 그런 일인 것 같다. 글쓰는 주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내놓을 수 있는 근거란 아무것도 없으며, 따르는 보상 또한 적다.

 
『전원에 머문 날들』(2021)에서 제발트는 불운한 재주로서의 글쓰기 운명을 짊어진 작가들이 세속을 피해 자연으로, 전원으로 파고들었던 한 시절을 다루고 있다. 실재인지 허구인지 모호한 그의 소설 속 등장 인물들처럼 그 자신 또한 염세적인 한 명의 작가로서 공감하는, 무작정 뭐라도 써야만하는 그 글쓰기 욕망에 대해 이번에도 제발트는 예의 긴 혼잣말하듯 행갈이 없이 글을 밀고 나간다. 보상이 전무한, 시간이 흘러도 타인에게 겨우 몇 줄 읽힐까 말까한, 공감이나 이해는 커녕 타박이나 안 받으면 다행인 그러한 글쓰기를 말하는 작가는 또 있다.

애초에 나는 왜 노트를 쓰는 걸까? 이런 모든 면에서 자기를 속이는 건 쉬운 일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은 특히 강박적이고, 이 같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길이 없으며, 쓸모라고는 강박이 스스로 정당화할 때 그렇듯 우연적이고 부차적인 것 뿐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은 요람에서 싹트거나 아예 싹트지 않는다. 비록 나는 다섯 살 때부터 글쓰기의 강박을 느꼈지만 아무리 봐도 내 딸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 자기만의 노트를 쓰는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부류로, 외롭게 만사에 저항하며 재배치하는 사람이다. 불안한 투덜이, 분명 태어날 때부터 어떤 상실의 예감에 감염된 아이들이다.
조앤 디디온, <노트 쓰기: 과거의 나와 화해할 이유> 중에서,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2021) 189pp

 
자기 자신을 닮은, 그래서 피하려고 해도 그렇게 쓸 수 밖에 없는 글쓰기.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이런 글쓰기에 어떤 실제적 효용이 있는건 아닐까. 그래서 쓸 수 밖에 없는게 아닐까. 그럼 그 효용은 뭘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나는 글쓰기라는 매우 거대한 의무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이런 의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의무감이 당신에게 고지되고 알려지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매일 그렇게 하듯이 작은 분량이라도 글쓰기를 하지 않았을 때 우리가 큰 불안이나 큰 긴장을 느낀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에 우리가 자신에게 부과한 이 작은 분량을 쓰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실존에 대한 일종의 사면을 행하게 됩니다. 이 사면은 하루의 행복에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행복한 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글쓰기에 달려 있으며 약간은 다른 어떤 것, 곧 실존의 행복입니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이고, 매우 수수께끼 같은 일인데, 바로 다음과 같은 면에서 그렇습니다. 이다지도 허무하고 허구적이며 나르시시즘적이고 자신을 향해 침잠하는 이 몸짓, 다만 아침나절을 할애해 탁자에 앉아 빈 종이 몇 장을 채우는 이 몸짓은 어떻게 하루의 나머지 시간에 대한 축복이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직업, 허기, 욕망, 사랑, 성, 노동과 같은 사물의 실재가 아침나절 동안 또는 하루 중 어느 때인가 글쓰기를 했다고 해서, 변형될 수 있는 것일까요? 자, 이것이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일입니다. 어떤 경우든, 내게는 이런 일이야말로 내가 글쓰기의 의무를 느끼게 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

이것은 당신이 보다시피 즐거움이란 없는 의무지만, 결국 의무로부터의 도피가 당신을 더 큰 불안에 빠뜨리고 법의 위반이 당신을 더 큰 불안정과 방황에 빠뜨릴 때, 이 법에 복종하는 것은 사실은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요? ... 이러한 의무에 복종한다는 것, 의심의 여지 없이 나르시시즘적이며, 당신을 짓누르며 사방에서 당신을 압도하는 이 법에 복종한다는 것, 이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의 즐거움입니다.  
......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에는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이는 물론 내게 글쓰기가 매우 피곤하고 어려우며, 또 불안을 몰고 오는 일임을 의미합니다. 나는 늘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물론 나는 무한히 어긋나고, 실패합니다.

미셸 푸코, 『상당한 위험』(2021) 중에서
인터넷상의 '확산'이나 '염상' 혹은 '리벤지 포르노'나 개인 정보 폭로 같은 일들은, '자기 표출 거리'가 없는데 그 도구와 '억압'은 존재하기 때문에 상습화된다. 말할 것이 없는데도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억압화된 욕망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상의 '자기 표출'은 지극히 직접적인 감정의 토로가 될 수 밖에 없다. '감동'이나 '혐오' 즉 '눈물난다'나 '혐XX'(이 'XX'에는 '중국' 요즘이라면 심지어 '오키나와'도 들어가곤한다) 등과 같이 너무나도 척수반사적인 감정 토로가 파블로프의 개만큼이나 인터넷상에 언어화되어 있다. '감정'의 표출에 논거나 묘사 따위는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쓰카 에이지, <감정화하는 사회> 중에서, 78p

어쩌면 모든 갈등은 저 간단한 이유에서 기인하는 지도. 딱히 할 말이 없는데 말을 하라고 판('플랫폼')은 깔려 있는 상황. 그래서 저마다 뭐라도 한마디 보태려 안달이 나있는, 그래서 불특정한 타인의 말과 새된 목소리를 싫어도 계속 듣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 결과적으로 판을 깔아준 이들(이른바 '플랫폼 사업자')의 배가 불려지는 동안 그 안에서는 글과 말이 끝도 없이 소모되는 난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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