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라고 쓰는 것만큼 기실 우연하지 않은 것도 없지않을까 싶지만 정말 우연히 지난 밤, 비슷한 절정부를 공유하는 80년대 일본 영화 두 편을 연이어 보았다. 얼마전 타계한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이인들과 함께한 여름>(1988)과 모리타 요시미츠의 <두근두근 죽는다>(1984). 그런데 두 영화 모두 공통적으로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피칠갑을 한다. 전자에서는 알고보니 유령이었던 연인의 피를 뒤집어쓰게 되고 후자에서는 차 안에서 칼로 자결하는 장면이었다. 차이점도 있다. 전자에서는 그러한 절정부를 지나 주인공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반면, 당연히 후자에서는 주인공은 죽고 함께 지냈던 두 사람의 남아있는 모습으로 끝난다. 두 편 모두 피의 양이나 솟구치는 정도가 왠만한 고어물이나 스플래터물에 비견될 수준으로 길고 강렬하게 연출되어 있는데, 특히 전자에서는 해당 장면이 아예 흑백으로 처리되어있는 지경이다.

 

저명한 tv 드라마 작가인 야마다 타이치가 각본을 쓴 전자에서, 마흔이 된 주인공 드라마 작가는(야마다와 직업이 같다) 아사쿠사에 라쿠고를 보러갔다가 어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난 양친의 유령과 재회한 후 그들이 사는 집에 찾아가곤 한다. 재밌는 점은 유령을 만나는 이세계가 지금 살고있는 현실 세계와 구분되어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 즉 이승과 저승간 명확한 경계가 없는 상태라 언제든지 찾아가면 지금 자기 나이대와 비슷한 과거의 부모님을 만나볼 수 있다. 꿈을 꾼다든지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든지, 벽장 뒤로 들어간다든지 타임머신을 탄다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거 젊은 시절의 부모님을 만난다는 이 설정은 살짝 백투더퓨처를 연상시키는데 아닌게 아니라 여기서도 주인공과 유령 엄마간에 묘한 성적 긴장감이 배어있다. 백투더퓨처와 다른 점은 이 유령 부부와 아들이 서로가 부모 자식간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가 일찍 죽은 탓에 아들이 고생을 하며 힘들게 커서 불쌍하다는 대사도 나온다. 그럼에도 모자간에 성적 긴장감이 흐른다는 점은 그래서 특기할만하다. 물론 향후 이 점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지만. 연도상으로 보면 본작이 백투더퓨처보다 일 년 먼저 공개됐다.

 

후자는 최근 인터넷으로 공개된 모리타 요시미츠 연보에 따르면,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으나 지금은 그의 필모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 편이라고 한다. 처음엔 유한 계급이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휴양을 즐기러 떠나는 목적의 별장에서 서번트와 그곳에 찾아온 어느 '고객' 그러니까 자살 예비자와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일거라 짐작하게 된다. 첫 몇 분만 봐도 이러한 설정을 대사에 의해 바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살 예비자치고는 이번에 찾아온 손님의 일상이 이상하다. 새벽마다 일어나 빠짐없이 체력 단련을 하고 습관이나 말과 행동도 조금 이상하다. 영화를 계속 보면 결국 이 남자는 자살이 아니라 오히려 살인을 하러온 거였다. 80년대 화면에서 느껴지는 풍광과 노스탤지어도 좋지만 전체적으로 여유롭고 느릿하면서도 곳곳에서 덜컹거리는 지점이 돌출하다가 그 끝에 이런 분위기가 서로 충돌하는 절정부까지 요즘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블랙 코미디 분위기를 끝까지 정말 마지막 엔딩까지 유지하고 있어서 신선했다. 모리타 요시미츠 영화의 인장이라면 그게 어떤 장르이던간에 이렇게 마가 뜨는 공백과 여백 그리고 그 사이의 돌연한 어색함 같은 것인데 여기서는 충분히 영화의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두 사람 모두 최소 삼십여년 넘게 활동했고, 사망시까지 현역이었으며 2010년대까지 (모리시타는 정확히 2010년대 초까지) 필모그래피를 이어간, 80년대 이후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이었다. 비록 뒤로 갈수록 흥행성은 떨어졌고 대중과의 접점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지만 그 대신 오바야시의 경우 오히려 철저하게 자신의 작가주의를 관철했다. 러닝타임은 무자비하게 길어졌고 전하려는 메시지는 확실했다. 80년대에 연출한 두 사람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당시 최전성기로서 작품을 쏟아내다시피했던 88년의 오바야시는 힘이 넘쳤고 아직 젊은 신인에 가까웠던 84년의 모리시타는 재기가 번뜩였다.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영화를 보는 일은 이런저런 군더더기의 감상을 수반하게 되는 것 같다. 바로 어제, 야마다 타이치의 사망 소식이 최초로 외부에 전해졌다.

 

최종 수정: 231202

1914년 이전에는 대지는 모든 인간의 것이었다. ... 허가도 없었고 비자같은 것도 없었다. ... 내가 1914년 이전에 인도와 미국을 여행했을 때는 여권이 없었고 또 그런 것은 도대체 본 적도 없었다고 들려줄 때면 그들이 신기하다는 듯 놀라는 것을 나는 언제나 재미있어 했다.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중에서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보는 동안 오즈 야스지로가 떠올랐다. 따지고 들자면 가상선의 '파괴' 외에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오즈만큼이나 갈수록 자신만의 엄정한 연출과 형식을 고집한다는 점, 그러나 동시에 두 창작자 간의 결정적인 차이점 또한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1차 대전 발발 전까지의 안정적이었던 유럽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으로 넘쳐나는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부터 웨스 앤더슨은 츠바이크의 이 책처럼 현재 시점에서 향수를 잔뜩 품은 채 과거를 바라보는, 내레이션을 포함한 액자 구조 형식을 줄곧 기본 플롯으로 차용하고 있다. 그래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1985년, 1968년 그리고 1932년까지 3중의 액자구조가 차례차례 문을 열고 닫은 뒤 맨 마지막에 추가된 '현재' 시점에서(그것도 츠바이크의 저서로 짐작되는 독서를 마치는 방식으로) 엔딩을 맺음으로써 총 네 개의 시점이 하나의 전체 이야기로써 완결성을 갖춘다. 하지만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 스탠다드 비율의 흑백 화면의 세계가 아닌 스코프 비율로 보이는 극중극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세상 안에서 오기 가족과 그의 장인 스탠리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 가운데 엔드 크레딧이 올라간다.
 
2차 대전 중에 유럽을 떠나 포화가 피어오르기 이전의 그곳을 회고하며 <어제의 세계>를 썼지만 끝내 마음의 위안을 얻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츠바이크의 염세와 노스탤지어에 웨스 앤더슨은 크게 공감한 듯하다. 최근 십 년 내에 나온 그의 근작들은 동시대로부터는 멀어진 반면, 20세기 초중반을 배경으로한 회고라는 형식(액자 구조 내지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혹은 둘 다)을 공유한다. '현대 사극'이라고나 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크게 멀지 않은 100년 이내의 세계사의 어느 시점을 낭만적인 모험의 무대로 바라보는 그 시선에는 내부의 견고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창의적 작가들의 공적 은둔이라 부를만한 회고 취미와 과거 지향이 있다.

연출자의 과거 지향이라는 취향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커리어 내내 SF만을 만드는 감독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 늘 사극만 찍는, 또는 앤더슨처럼 근과거에 애착을 보이는 연출자가 있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테니까. 정작 근심스러운건 취향이 아니라 앤더슨의 근작들이 점점 활력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라이브 액션 필름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을 마치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활용하는 방식, 즉 콘티를 그대로 옮긴 것처럼 인물들이 동작을 아예 정지하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동반한 상황에서 대사를 처리하는 연기 패턴, 정적인 순간에서의 돌연한 패닝이나 틸트, 실사 영화에서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방식의 차용, 의도적으로 세트임을 숨기지 않는 단순화와 과잉이 한데 뒤섞인 프로덕션 디자인까지 이러한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진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작품 전체에 라이브 액션 필름의 활력과 역동성, 그리고 생생함을 박탈한다.
 
그중 결정적인건 플롯 자체의 활력 없음이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경우 그 직전까지의 전개에서 의도적으로 빠져나온 다음 얼렁뚱땅 급하게 넘기느라 허덕이는 클라이맥스를 보고 있노라면 각본을 미처 완성하지못한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한다. 그래서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최대 위기는 어떻게 해결됐다는걸까. 무대 밖 현실에서 같은 구호를 외치며 각성된 배우들이 그래서 어떻게 연극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완전히 생략한 채 연극과 영화의 본편 모두 '에필로그'로 넘어가버린다. 관객으로서 기만당했다는 느낌마저 줄 정도의 연출이었다. 

오즈의 초기 무성 영화들에서는 카메라가 패닝도 하고 트래킹샷까지 있다. 하지만 '오즈적 양식'이 확립된 49년작 <만춘> 이후부터 카메라는 서서히 느려지더니 급기야 마지막 두 편의 컬러 작품에 이르면 러닝타임 내내 고정되고 인물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대부분의 대사를 한다. 오즈의 만년작들이 이전부터 이어져온 이야기의 반복과 변주임에도 불구하고 더 정갈하고 심플해진 연출이 불러온 '표층'과 '심층' 간의 균형으로부터 기원한 안정감에 의해 몰입을 가능케한다면, 최근의 앤더슨 영화들에서는 오즈를 연상시키듯 형식적으로는 점점 더 완고해보일 정도로 반복적이고 숙련된 장인의 연출과, 딱히 살점을 붙이는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속이 빈 플롯에 기인한 불균형이 갈수록 두드러진다. <프렌치 디스패치>와 <애스터로이드 시티> 모두 사실상 연작 단편을 붙여놓은 옴니버스 방식인 것 또한 앤더슨이 더이상 장편 영화에 어울릴만한 서사보다는 자신의 연출 스타일에 부응하는, 즉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여 전체상을 제시하는 군상화 같은 구조가 수공업적이고 미니멀하면서도 매우 강박적인 디테일이 배치된 프로덕션 디자인에 최적화된 형식임을 확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본작 이후 그는 ott를 통해 일련의 단편들을 한번에 공개했다.
 
연극 무대가 펼쳐지는 극장 밖 세상을 더이상 의식하지 않고 극 안에 영원히 머무는 최근작의 결말은 현실보다 더 큰 가상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자신의 창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두려고 했던 <시넥도키 뉴욕>(2009)의 주인공을 상기시킨다. 이야기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않는 자기 폐쇄의 돔을 선택할 수 있다면, 두 세계를 제시한 다음 주인공에게 최종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는 감독이라면 그는 행복한 창작자일 것이다.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적 상상력이 작동하는 인도, 자신의 안위를 괘념치 않는 용감한 레지스탕스와 기자들이 활동하던, 또는 우아하고 여유넘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들이 있던 유럽(그랜드 부다페스트 포텔(2014); 호텔 슈발리에(2007)), 외계 생명체와 접촉하는 (아마도 뉴멕시코로 추정되는) 미국의 사막 지대까지 로맨티시즘과 노스탤지어가 물씬한 배경에는 동시대에 대한 염세가 배면에 깔려있다. 하지만 이렇게 과거로부터 빠져나오지 않으려하고 현재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 같지만(또는 리얼리즘적 재현에 관심이 없어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작은 출구를 어딘가에 마련해놓지는 않았을까. 알리바이, 안전장치 또는 도주로라고 해야할까.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고집하는 창작자 고유의 형식이 있다면 거기엔 그럴 수 밖에 없는 필연이 있을 것이다. 향후 앤더슨의 차기작을 볼 때면 이 점을 계속 염두에 두게 될 것 같다.

남편은 보았다(1964)

소문으로만 듣던 영화를 드디어 봤다는 점에서 높은 기대치와 그에 상응하는 만족감을 준 올해의 한 편이 되겠다. 마스무라 야스조 영화에서 와카오 아야코는 늘 어떤 위태위태한 경계선 위에서 어떤 처지에 있든지간에 남성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이라는 일관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변연인(1981)

<무간도>로 대표되는 와저(언더커버 스파이)영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일편.  <이지라이더>식 결말이 나름 충격적인데 무간도 1편 이후 한동안 차고 넘쳤던 홍콩산 와저 영화들이 어떤 식으로든 참조하거나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설정과 스토리.

 

사기사(1971)

60년대 말 70년대 초 아직은 곳곳이 남루하고 빈한한 서울 시내 풍경 속에서 주인공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의 무대로 돌연 등장하는 장충체육관과 그 옆 신라 호텔의 전경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지금과는 달리 무채색의 어두침침한 서울 시내 풍경과 전혀 이질감이 없는 그 풍광이. 물론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장충체육관 실내 장면은 스튜디오 촬영이긴했지만. 이렇듯 꽤 오랜 시간 이어졌던 한홍합작 영화의 유구한 계보를 새삼 확인하고 있자니 현재 이루어지는 아시아 영화들의 합작은 훗날 어떻게 보일지 자못 궁금해졌다. 오직 시간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

 

34번가의 바냐 삼촌(1994)

2022년에 본 신작 중 가장 인상깊었던 건 결국 <드라이브 마이 카>인데 <바냐 삼촌>의 리허설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연출과 실재가 얇게 맞물린 설정도 흥미롭지만 어쨌든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를 보는 맛이 있어서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늘 분주한 뉴욕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철거 예정의 낡은 극장에서 바깥 현실과는 상관없이 아지트이기도 대피처같기도 한 실내에서 자기들만의 예술 행위를 펼쳐나간다는 그 설정만으로도 이미 매력적이다.

 

림보(2021)

올해 본 신작 중에서는 가장 야심찬 영화이자 가장 용감한 여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영화다. 야심이라면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착각)했던 시네마 시티 홍콩의 완전히 낯설고 다른 이면을 조명했다는 점. 즉 뒷골목, 쓰레기 하치장, 공장 등 관광객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도시의 뒷공간을 강렬한 흑백 콘트라스트 속 스릴러의 무대로 그것도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주 무대로 탈바꿈함과 동시에 말그대로 '몸을 던졌다'라는 표현 외에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고된 연기를 기꺼이 해낸 여배우의 과감함과 용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당연히 금상장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일찌감치 촬영은 끝났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그로부터 한참 뒤인 2021년에 정식 개봉을 했는데 오히려 그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로 인해 배경이 된 시공간의 의미가 새롭게 거듭나는 결과를 얻었다. 

 

downtown 81(2000)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바스키아, kid creole and the coconuts 그리고 80년대 초반의 뉴욕!

 

매염방(2022)

연기를 노래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았고 과거 출연작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보게 만들었다. 주로 90년대 이전, 더 정확히는 <연지구> 이전 출연작들을 중심으로.

 

unstuck in time (2021)

<타임퀘이크>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 이름을 집어넣는 식으로 저자의 사적인 삶을 작품에 녹여넣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예전에 마이너 출판사에서 이미 한번 출간한 카탈로그들이 메이저 출판사에서 옷을 갈아입는 방식의 재출간이 주를 이룰 뿐, 전에도 안 나왔던 (보니것이 아니라) '보네거트'의 작품들은 여전히 안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슬랩스틱>같은.

 

hello bookstore(2021)

출판 시장과 독서 인구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미국에서조차 팬데믹을 거치면서 기부와 자선에 의해서야 겨우 명맥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독립 서점의 실정을 보자니 맥빠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래도 한 자리에서 그렇게 오래 운영할 수 있었던 데는 운영자의 캐릭터가 한 몫을 하는데, 물건을 파는 자영업자이기 앞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늘 유머를 잃지않는 동네 이웃이 되는게 먼저라는걸 보여주는 실례였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

결코 '예술 영화'로 분류할 수 없는 핍진한 드라마라는 점, 역시나 전성기 이탈리아 영화답게 촬영과 미장센이 교과서적으로 아름답다는 점, 허세가 없는 알랭 들롱의 연기를 거의 처음 본 거 같다는 점. 고전 영화를 찾아봐야 한다는 당위를 찾게해준 또 한 편이 되었다.

 

<베터 콜 사울> 마지막 시즌

이 마지막 시즌으로 인해 이 드라마가 프리퀄만은 아니게 되었지만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이라는 '이데올로기'(그러니까 강요된 엔딩)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보던 관성이 있어서 끝까지 보기는 했으나 브레이킹 배드 이후 전개 그러니까 현재 시점이라 할 흑백의 시퀄 부분은 그 앞까지의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져서 심드렁하게 봤다. 클라이막스를 이미 지나고도 속죄와 사필귀정의 결말을 위해 계속 이어지면서 결국 늘어지고만 에필로그라는 불균형.

 

나르코스 시즌3

오히려 그래서 올해 재밌었던 미드는 뒤늦게 본 나르코스 3시즌. 지난 두 시즌은 솔직히 심드렁하게 보는 정도였으나 오히려 이 3시즌은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잡으려는 자와 숨으려는 자의 숨바꼭질이 두뇌싸움에 의한 자잘한 작전들로 이어지면서 스릴감이 높아진 때문이었다. 다시금 느낀건 미드 시청은 영화와 달리 관람자의 에너지를 비축하고 소모하는 과정의 반복이라는 느낌이어서 쉽사리 도전하기가 힘들어졌다는것.

 

night(2021)

차이밍량은 몇 해 전부터 극영화로부터 조금씩 비주얼 아트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단편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영상시 쪽에 가깝다. 평범해보이는 홍콩의 밤 풍경 위로 우산혁명과 격렬했던 반중시위를 지난 흔적들은 곳곳에 생생히 남아있다. 고정된 채 관조하는 카메라의 시선의 주체는 연출자도 cctv도 아닌 그곳을 떠나지못한 채 떠도는 유령이나 여전히 그곳을 살아가야하는 홍콩인들의 감정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 연작 (1972~1974)

연말에 이 영화들을 쭉 보면서 든 생각은 cgi없이 편집과 촬영, 분장과 특수효과, 스턴트로만 구성한 영화의 연출이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는 정말이지 너무 참신하고 독창적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액션씬의 아이디어라는 점에서는 지금이 6,70년대보다 퇴보한 지점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의문에 대해 '확신'을 갖게됐다.

 

장단각지연(1988)

80년대 홍콩 영화 특유의 왁자지껄함과 들뜬 분위기가 물씬하다. 개인적으로는 87년 88년 이 무렵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코미디물들의 느낌도 사뭇 다르다고 느낀다. 왓차덕에 80년대 중심으로 온갖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홍콩 영화들을 잔뜩 볼 수 있었다.  

 

극도전국지 후도 (1996)

초등학생 킬러, 양성구유, 성기를 무기로 쓰는 여고생 킬러 등 불과 25여년 전 일본에서는 이런 영화가 나왔었다. 창작의 자유는 현실 사회의 정치 환경, 인권, 자유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지점. 지금은 실사화 전문 감독이 되다시피한 미이케의 창작력은 역시 이 시기에 가장 만개했던게 아닐까.

 

대보살고개 3부작

한 편으로 끝난 나카다이 다쓰야의 미완결작이 아닌 이치카와 라이조가 주연한 완결된 삼부작을 봤다. <너의 이름> 삼부작(1953;1954)이나 <푸른 산맥> 연작(이마이 타다시, 1949;1950)에서 보듯 tv 드라마라는 개념이 아직 없거나 생소했을 시절에 나온 기획, 즉 '연속극'으로 나왔어야 할 이야기를 2시간 안쪽의 극장용 장편 영화들의 연작 형식으로 개봉하는 방식이 꽤 많았다는걸 알게 됐고 사실 이는 지금도 일본에서 이어지는 나름의 전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노 라이프 킹(1989)/ 옷 한벌 살까요?(2009)/ 자와자와시모키타자와(2000)

지난 해 두 편에 이어 올해는 이치카와 준의 영화 세 편을 볼 수 있었다. 미완성 유작은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다큐 질감의 화면이 몰입을 방해하긴 하지만 끝까지 완결을 보고 싶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했다. 2000년작은 90년대에 그가 주로 썼던 전개 방식, 즉 확실한 기승전결 없이 여러 인물의 사연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이야기. 89년작은 나름 복잡한 서브텍스트를 가진 원작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절반 정도의 성취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아직까지 보지 못한 이치카와의 극장용 장편은 <다동과 치쿠와>(1998) 한 편이 남은듯.

 

베드룸 윈도우(1987)

히치콕 우수 전공생의 또다른 오마주이자 응용작.

 

무관 (1981)

올해 본 홍콩 영화 중에서 장철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장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 결투 장면의 공간 세팅이 창의적이었음.

 

seven beauties(1975)/ swept away(1974)

리나 베르트뮬러의 영화 두 편을 봤다. 성과 정치를 엮어 난감한 상황이나 딜레마를 풀어가는 코미디 연출이라는 공통점.

아크바 압바스는 97년에 출간한 저서에서 유동, 이동 및 환승의 공간으로, 정주자가 없는 유목민들의 도시로 홍콩을 규정했다. 반환 시점을 아무래도 의식했겠으나 이 주장에는 광동 끄트머리에 자리한 항구 도시에서 살아온 실제 홍콩 거주민들의 역사와 생활을(어쨌든 결과적으로 보자면) 괄호치고 있다. 그곳에는 어떤 이들이 살고 있을까. 학교와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 반환 시점 이후로만 한정하더라도 자본의 집적으로 시시각각 도시 경관이 변해가는 가운데 본토와의 관계로 인해 불안정한 지정학적 변동을 상시적으로 경험해온 그곳에서 말이다.
 
<Septet>은 2020년 칸느에서 최초 공개되었고 이듬해 개봉 예정이었다가 팬데믹의 영향으로 다시 일 년을 기다린 뒤에야 정식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로 80년대 등장해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홍콩영화계를 대표하는 일곱 명의 감독이 참여했다. '홍콩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장소 자체가 소재이자 주제인데 홍콩인의 실감과 감개를 자주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음은 분명해보인다.
 
지난 몇 년간의 시위를 포함해 정치적 맥락에 대한 어떠한 직접적 언급도 없는 대신 홍콩인들의 생활을 다루는 영화의 각 에피소드들은 '노스탤지어'를 공유한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감독 홍금보는 유년 시절 자신이 경험한 경극학교에서의 수련 시절을 재현한다. 같은 시기를 다루고 있는 <칠소복>(1988)의 한 부분을 더 디테일하게 확장한 것처럼 보이는 이 에피소드는 엄한 스승 밑에서 아침부터 혹독한 신체 수련을 하는 어린 학생들의 훈련 과정의 묘사를 통해 홍콩 무협 영화가 어떤 역사와 전통 위에서 전개되었는지를 환기한다. 두번째 에피소드를 연출한 허안화 또한 1961년과 90년대 두 시점을 배경으로 과거 직장 동료를 애틋하게 회상함과 동시에 현재 시점에서 그의 부재를 애상한다. 임영동의 에피소드에서 해외에 거주하다 수 년 만에 홍콩에 돌아온 임달화는 자신이 부재한 동안의 홍콩이 겪어온 경관의 변천에 적응하지 못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9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 원화평의 에피소드에서 원화가 연기하는 할아버지는 손녀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대신 무술을 가르치며 세대 간 소통을 시도한다. 인상적인건 그로부터 다시 3년 뒤 시점의 에필로그인데 관습적인 후일담을 예상했을 관객은 유쾌한 반전을 맞게 된다.  

<septet> 속 홍콩이 멀게는 60년대부터 아직 도래하지 않은 근미래 시점까지 통과하며 따스한 향수와 회고의 대상으로 시작해 로컬리티를 다소 덜어낸 풍자와 비판의 무대가 되며 끝맺었다면, 차이밍량의 19분짜리 단편 <night>는 영화관의 관객이라기보다는 미술관의 관람자가 되어 홍콩이라는 전형적인 근대적 도시 풍경 자체를 마치 하나의 예술품처럼 관조의 대상으로 대하게 한다. 장르간 경계를 허물다못해 장르 개념 자체를 거의 무시하다시피하는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근년의 차이밍량의 단편 프로젝트는 극영화와 다큐, 미디어아트의 경계를 의식조차 하지 않은 것 같은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카메라를 고정한 채 홍콩의 밤거리 이곳저곳을 기록해 연결한 시퀀싱은 지난 수십년간 영화팬들이 보면서 상상하고 꿈꿔온 스크린 속 환상으로서의 홍콩 그리고 우산 시위를 지나고 팬데믹을 견디는 중인 지난 근 몇 년 간의 실제 홍콩과의 간극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그 기간동안 얻은 흔적을 아직도 곳곳에 흉터처럼 새긴 도시의 외관을 건조한 다큐와 비주얼 아트 사이 어딘가에서 전경화한다. 내레이션이나 대화가 전무한 <Night>가 <Septet>보다 더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역설은 당연히 두 작품 간 형식의 차이에 기인한다. 전통적인 리얼리즘 서사가 여전히 기댈 수 밖에 없는 '개연성'이나 '플롯' 같은 개념들이 현실과의 직접적 상관관계를 간접적으로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반면 다큐이면서 미디어아트인,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닌 차이밍량의 작품은 얼핏 보면 스틸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고정된 카메라가 장시간 동안 촬영한 화면을 응시하는동안 미술품을 감상하듯 즉물적이면서 직관적인 동시에 한발 더 나아가 관객(또는 관람자)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상상과 개입을 유도한다. 야간 영업 중인 가게 안 손님과 종업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바닥에 붙어있는 훼손된 전단지 같은 일상적인 장면들은 스크린 밖 현실의 잔여물 같은 이미지로서 스크린 위를 부유한다. 너무 잘 아는 낯익은 장면이기에 오히려 낯설게 보인다면 그건 카메라의 시선 때문이다. 바닥을 내려보는 듯한 시선으로 훼손된 전단을 볼 때, 한쪽 정류장에 서서 반대편 정류장을 비스듬히 바라볼 때, 나지막하게 포착된 현장음까지 더해진 시선은 카메라라는 비인칭의 중간자적 관점보다는 실제 인간의 관찰자적 위치에 더 가깝다. 혹은 그간 숱한 홍콩 영화에서 봐온 그곳의 밤거리를 떠도는 혼령 그것도 아니면 근 몇 년을 지나온 홍콩인의 집단적 무의식이 매개된 편재적 시점이거나. 

두 편의 영화는 동일한 대상에 내재하는 각기 상이한 성격의 노스탤지어를 유발한다. 영화 예술의 결정적인 특수성은 결국 시간으로부터 제한받는 동시에 시간에 도전하고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늘리거나 줄이고 왕복하고 건너뛰는 등 시간을 자재로이 다루는 가운데 감상자는 영화 속 고유의 시간에 통합되거나 분리되면서 감상을 완성한다. <septet>이 몇 십 년간의 긴 시간을 관통하는 도시의 동학을 조감한다면 <night>은 하룻밤이라는 상대적으로 찰나의 시간 동안 지극히 한정된 몇몇의 장소를 지긋이 그러나 고정된 시점에서 집요하게 바라본다. 이 두 편을 통해 한 도시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들여다보면서 도시는 여행자와 이주자가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 공간이고 이동의 공간이며 동시에 정주자의 '거처'임을, 또한 상전벽해의 장소는 한편으로 정지되다시피 고정된 불변의 물리적 공간임을, 자본의 투하와 정치적 격변에 의한 공간의 질적 변형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인간이 펼치는 끈질기게 반복되며 이어지는 삶의 양상으로 인해 결코 자본의 투입과 노동 생산량으로만 계량될 수 없는 유장한 시간을 담지한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시공간임을, 즉 도시는 그 자체로 역사적 대상이자 그 주체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1. The World of Henry Orient(1964)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센트럴 파크와 브라운스톤 건물들을 포함한 크리스마스 시즌의 60년대 뉴욕 풍경을 현재의 디지털로는 불가능한 색감으로 볼 수 있다. 계급도 가정 환경도 상이한 두 소녀가 친구가 되어 센트럴 파크에서 상상 놀이를 즐기다 의도치 않은 스토커가 되어 온 도시를 휘저으며 돌아다닌다. 그러다 이해하기 어려운 냉정한 어른들의 세계를 접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온가족이 즐기는', 즉 어른과 아이 모두 각기 다른 즐길 거리가 있는 진정한 가족 영화. 60년대 노스탤지어와 함께.

 

2.Blast of Silence(1961)

살인을 의뢰받은 킬러는 타겟을 미행하면서 크리스마스 시즌의 뉴욕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다큐멘터리적 접근과 스릴러물의 긴장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의외의 재미를 주는 영화. 저예산 영화는 기발한 아이디어 자체만 남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b무비 답게 비록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장편 영화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있다.

 

3. Black Christmas(1974)

온가족이 모이는 연휴 시즌에는 일부러라도 이런 영화를 봐 줄 필요가 있다. 최초의 슬래셔 무비라는 영화사적 의의와는 별도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보면 더 재밌는 장르물.

올해 eidf에서 본 이 다큐는 1995년 옴진리교 테러 사건의 피해자가 직접 연출한 작품으로, 교단명을 바꾼채 지금도 여전히 운영중인 동일 단체의 간부, 즉 감독에게는 가해자 편에 속한 한 남자와의 짧은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감독 사카하라 아쓰시는 사건 발생 후 삼십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테러의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하고 당시에도 이미 신자였던 아라키 히로시는 자신들이 일으킨 사건의 크기와 영향력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신앙'을 놓지 못한 채 지금도 집단 생활을 하며 단체를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의 여행은 그래서 선뜻 가능할까 싶지만 의외로 담담하게 시작된다. 두 사람은 전형적인 피해자-가해자 관계라기보다는 얼핏보면 오래된 친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카하라가 상대를 비난하거나 힐난하는 식으로 대하지 않고 어떻게든 우호적 관계 속에서 대화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실제로 비슷한 나이대에 같은 지역 출신에 같은 대학(이는 확실치 않다)을 다녔던 공통점도 있는데 고향에 내려가서 서로 공유하는 기억의 접점을 확인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재 처한 각자의 상반된 입장과 삶의 이력으로 인해 역설적 비극성을 재현한다.

 

경계심을 풀게 하는 첫인상을 가진 감독 사카하라는 시종 농담을 섞어가며 아라키와의 거리감을 좁혀가려고 하는데 이러한 그의 대인 접근 방식은 동시에 이 다큐 전체의 영리한 플롯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벼운 농담 사이에 사카하라는 아라키에게 진짜 묻고 싶었던 회심의 질문들을 던진다. 사건 발생 이후 지금껏 계속 품어왔을 질문들, 이를테면 당신들이 벌인 테러의 궁극적 동기는 무엇인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아직껏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했다, 당시의 후유증으로 시력이 약해져 눈도 제대로 뜰 수 없고 여러 ptsd에 가정까지 파탄나버린 나는 그렇다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대화 전략이 영리한 이유는 작품의 전체 플롯 자체가 이 대화 방식과 유사해서, 처음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이하는 여행이라는 설정에서 연상되는 일말의 (말초적) 흥미를 유발하는 것으로 시작해 '호객'에 성공하지만 점점 뒤로 가면 갈수록 내용이 심각해지면서 결국 맨마지막에 이르면 갈등과 긴장이 최정점에 달한 지점에서 바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감의 근원은 결국 감독 사카하라가 아닌 인터뷰이 아라키에게 있다.

 

사카하라가 타인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게하는 인상이라면 길고 마른 체형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관하는 아라키 또한 관객의 선입견을 유발한다. 하지만 사카하라에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영민한 이가 아라키였음을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또렷하게 보여준다. 아라키는 사카하라의 회심의 질문에 번번이 피해가면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화법으로 일관하거나 아니면 사실상 대답을 거부한다. 진실 규명과 우호적인 여론 형성이라는 서로간의 상충하는 목표가 확실한 저널리스트와 인터뷰 대상의 관계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허위성이 포함될 수 밖에 없다는 재닛 맬컴의 주장(<기자와 살인자>, 2009)을 떠올리게 한다.

 

여러 가지 대화를 이어가던 중 아라키는 빛바랜 필통 이야기를 꺼낸다. 요지인즉슨 어릴 때 친구들이 갖고 있던 필통이 너무 부러워서 자신도 구입을 했는데 정작 그 이후부터 왠지 모르게 이전에는 반짝반짝 빛나던 필통이 평범해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속한 단체 혹은 아사하라 쇼코를 향한 양가감정의 우회적인 고백으로 읽힐만한 대목이다. 이렇듯 직접적으로 속내를 토로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유추해내야하는 말을 계속하는 모습에서 명문대 대학원까지 다녔던 아라키의 이지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즉 그의 이런 말들은 유의하며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슷한 얘기는 또 있다. 그는 자신이 옴진리교에 몸담게된 동기 중 하나로 동생이 골육종 진단을 받았던 일을 든다. 다행히 다른 병원에서 또다른 진단을 받고 치료도 잘 되었으나 그 이후부터 정작 자신의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앞의 것보다도 더 잘 짜여진 대본처럼 들린다. 테러 사건으로부터 자그만치 25년의 세월이 지나는동안 아라키는 직접적인 사법적 책임을 면피할 목적은 아니더라도 옴진리교에 투신한 동기를 묻는 질문에 무수한 자문자답을 해봤을 것이다. 의도적이건 그렇지않건, 타인의 책임 추궁에 대비하기 위함이건 아니면 자기자신에 납득하기 위함이건 간에 여러 가지 답변을, 아니 답변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지어봤을테고 동생의 투병기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야기를 지었다'는 말은 그가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한, 그러니까 세뇌나 강압이 아니라 다른 일반 종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존적 고뇌를 종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의에 의해 선택했다는 방어적 변론을 위해 만들어낸 인위적 에피소드 내지는 전략이라는 힐난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합리적으로 이해해보려 애를 쓰기 마련이다. 그저 불운했거나 우연일 뿐이라는 답은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여러 방향에서 그 원인을 생각해보게 마련이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진실이라 굳게 믿기도 한다. 합리적인, 그러니까 언어로 진술할 수 있는, 나를 포함한 타인에게 언어로 진술하고 제시함으로써 설득시킬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설명이 '이야기'이고 서사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자문하고 자성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이야기'라고해서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거나 몰아붙일 수만은 없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대개는 뒤늦게, 때를 놓친 뒤에 찾아오게 마련이므로. 설사 그것이 타인에게 전혀 이해받을 수 없는 나만의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한마디로 시간은 진실의 감가상각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같은 증언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빙성을 더욱 의심받으며 그 가치를 잃어간다. 진실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 자체를 폄하할 수 없음은 당연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진실 규명이 더딜 때 인간은 나름의 대응과 적응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건 흔한 상대주의적 주장들, 그러니까 저마다의 진실'들'이 난립한다는 데 있지 않다. 갈등하는건 진실'들'이 아니라 진실의 크기를 또는 그 실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또는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해 아예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하거나 혹은 못하는, 그리고 심지어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이다. 실체적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을 때 관련된 개인들 각자가 겪는 내적 혼란이란게 어떤 것인지, 이 다큐의 두 인물이 보여주고 있는건 바로 이것이다.

서로 교감을 하는듯 보이다가도 다시금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하며 거리가 멀어지는 패턴의 반복은 극영화에 못지않은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런 패턴의 절정은 단연 본편 전체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한 마지막 기자회견 장면이다. 기자들을 미리 불러놓고서 두 사람은 최초 테러가 발생했던 도쿄의 지하철 역을 직접 찾는다. 거기서 아라키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노회한 정치인의 전형적인 화법, 즉 유감은 표명하지만 사죄는 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다. 초반부에 사카하라에게 했던, 교주가 지금껏 사건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신으로서는 어떤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말을 기자들 앞에서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준비해둔 차를 타고 빠져나와 다시 둘만 남은 상황에서 사카하라가 입을 연다. 아까 뭔가 다른 말이 나올까하고 기대를 했다고. 그러나 그런 그의 기대를 저버린채 아라키는 이번엔 아예 입을 닫는다. 종교나 여타 신념을 배제한 자연인으로서 갖는 심정과 투철한 종교인의 신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듯한 그의 모습은 뭔가를 크게 두려워하거나 또는 모종의 어떤 이유로 인해 진실 규명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나의 신념에 헌신했던 지금까지의 인생을 모조리 부정당하는 것이 두렵지만 동시에 죄의식을 떨치지 못해 괴로워하는 두 양태의 불안정한 공존은 아라키의 야윈 얼굴과 시종일관 불안한 눈빛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여전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이제는 뭘 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듯한 사카하라의 난처한 표정.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조문을 보여주는 오프닝을 통해 비판적 의도를 표명했지만 정작 본편에서 주로 보이는건 법과 자유 같은 추상적 관념보다는(아사하라의 사형과 관련된 뉴스를 빼면 이 작품에서는 국가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이유로 고통받는 개인들의 절절함이었다. 아라키는 입으로만 사과를 말하는 위선자일 수도 있지만 죄의식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해 불안해하는 신경증 환자일 수도 있다. 사카하라 또한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들을 눈 앞에서 보며 복수심에 불타는 인간일 수도 있지만(마지막까지 보면 아라키를 포함한 '알레프'에 대한 사카하라의 태도는 분명하다) 그 이전에 아직껏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피해자이기도 하다. 결국 모든게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온 채 맞이한 엔딩. 살아남은 이들은 여전히 세상과 불화하는 가운데 자기자신과도 계속 싸워야 한다.

도미노(2019)
실패작은 실패작으로서 갖는 위엄과 가치가 있다.

 

pain and glory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 때문에 좋은 영화가 완벽한 영화로 거듭난다.

 

a dandy in aspic(1968)

이후에 앤서니 만 영화를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역시나 내게는 이 유작이 제일 좋다. 냉전시대 에스피오나지물에 워낙 약하긴하지만.

 

영춘각의 풍파(1973)

올해 본 최고의 무협영화.

 

uncut gems

벌려놓은 일을 하나하나 수습해나가는게 아니라 반대로 오히려 판을 더 키우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어서 스스로를 고달프게 만드는 상황들을 빌드업해나가는 각본의 구성이 제일 눈에 들어왔고, 그걸 연기해내는 애덤 샌들러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좋았다.

 

청소년 나타(1992)

소문으로만 듣던 차이밍량의 데뷔작을 봤다. 근삼십년전 이 시절로부터 현재의 그는 얼마나 멀리왔는가.

 

what's up doc?(1972)

올해 본 최고의 액션 영화이자 가장 신나게 본 영화. 확실히 이 시절의 보그다노비치는 뭔가 신기가 있었던 것 같다. 걸작을 연이어 찍어내던.

 

osterman weekend(1983)
-osterman은 주인공이 아니다.
-유럽 출신의 두 배우가 미국인을 연기한다.
-멀티미디어 파놉티콘 시대에 도래한 신경증적 정치스릴러
-러들럼의 소설은 늘 한결같다. 조직의 명령을 받아온 한 개인이 그 조직에 맞서 싸우는데 최종 보스는 늘 상황실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며 마이크로 명령을 내리는 중년 이상의 백인 남자
-아내를 뺏긴 남자와 뺏길 위기에 처한 남자
-결국 그래서 잠시 흔들렸던 공권력은 다시 안전하게 권위를 유지한다.

white heat(1949)

명불허전. 마지막 장면만큼이나 뜨거운 영화였다.


lifeline(1997)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이렇게 안정적으로 연출하다니. 경력의 분기점이라 할 99년 <미션> 이전에 두기봉은 이미 완성된 연출가였던 거였음.

king and country(1963)
조셉 로지 영화를 올해도 몇 편 봤는데 그나마 기억에 남은건 이 작품이었다.

trial of chicago seven
mank

이 두 편의 넷플릭스 영화들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둘 다 미국 대선을 겨냥하여 만든 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개 시점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the ship sails on(1983)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표현에서 보듯 배라는 설정은 어쩔 수 없이 세상(그게 누구의 세상이든지간에) 전체를 은유할 수 밖에 없는데 백년전 상황을 빌려 지금의 유럽을 근심한다.


last letter

첫인상은 일부러 자기 복제처럼 보이게 해놓았는데 뒤로 가면서 보면 스스로 커리어를 결산해보려는 심산이 있었던 것 같다. 동창회 느낌도 나고.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뜬금없이 중간에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가 나와서 뭔가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인용으로 범벅된 영화였다. 뭔가 대단한 걸 보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나중에 인터뷰를 찾아보고서야 아귀가 맞으면서 감독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은 좋은 영화가 뭘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노우에 미쓰하루는 일본 공산당이 결성된 초기에 가입해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중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의 방향성을 두고 갈등한 끝에 결국 탈당 및 제명을 당하게 되고 이후 당원 시절을 그린 소설로 주목을 받는다. 이런 그를 두고 후지타 쇼조는 공산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신념이 탈당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면서 이노우에를 사상적 비전향으로 규정한다. 소수자를 향한 그의 연민과 동료의식을 높게 평가했던 후지타가 하라 가츠오의 다큐멘터리 <전신소설가>(1994)를 봤을지 궁금하다.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90년 1월부터 사망한 93년까지 이노우에의 만년의 행적을 꼼꼼히 기록한 <전신소설가>는 (아마도) 기획 당시에는 의도치 않았을 이노우에의 이면을 조명하면서 화제가 됐다. 이노우에의 자작 연보의 상당 부분이 거짓임을 밝혀낸 것이다. 이는 그의 친인척 및 어린 시절 살았던 마을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일일이 팩트 체크를 한 끝에 얻어낸 결과인데 이를테면 만주에서 출생했다거나, 가난으로 인해 중학교 진학을 지원조차 하지 못했으며 마을의 유곽에서 살았던 조선인 소녀와 로맨스가 있었다는 등의 서술이 전부 허위 및 날조였던 것이다. 알고보니 그는 일본 본토에서 태어났고 중학교 지원은 물론 입학 시험까지 쳤으나 낙방했다가 이듬해 재수 끝에 입학했으며 그가 살았던 지역에 조선인들로만 채워진 유곽같은 것은 없었다.

후지타의 글을 통해 상상되는 이노우에의 이미지와 하라의 다큐에서 재현되는 이노우에는 제법 차이가 있다. 2시간 30여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의 초반 10분만에 이미 이노우에의 캐릭터는 빠르고 직관적으로 구축된다. 90년 1월 자택에서 열린 신년 모임에서 그는 자신이 선배이자 선생으로 모시는 하니야 유타카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 짓을 하던 어느 방문객을 향해 오랫동안 큰 소리로 꾸짖던 끝에 기어이 그 사람이 자리에서 빠져나가게 만든다. 여기서 이노우에의 어투나 표정 그리고 멘트는 일종의 연기처럼 보이는 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끝나고나면 아닌게 아니라 바로 그 다음, 그는 돌연 여장을 한 채 무대 위에 올라 지인들 앞에서 춤을 추며 아예 본격적으로 연기를 한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이어붙인 편집은 당연히 의도적이다. 이노우에라는 사람의 어떤 본질을 포착했다는 판단이 거기에는 있을텐데 '범한 진실보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는게 낫다'는 나중에 삽입되는 이노우에 본인의 발언이 바로 그 본질을, 자기자신에 관한 진실을 은연중에 노출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다른 자신이 있으며 그 다른 자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발언 또한 이를 재차 확증한다. 

영화의 전반과 후반은 각각 이노우에의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를 조명하는 것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공개 강연이나 지인들과의 대화 장면이 주로 전반부를 이룬다면 투병 생활에 초점이 맞춰진 후반부는 그의 사적인 면모에 집중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노우에의 실체가 벗겨지는 것도 여기서부터다. 전반부에는 경력 초기부터 일반인(주로 성인)을 상대로 소설 쓰기 강좌를 계속해 온 이노우에가 자신의 '제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들 중 상당수의 여성들과 불륜에 가까운 관계를 이어왔음이 암시된다. 주위에 늘 자신을 흠모하는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것으로 재현되는 그의 이러한 표상은 소설가가 '선생님' 대접을 받던 한 시절을 환기함과 동시에 후반부에 나올 자연인 이노우에와 대비를 이루면서 그 경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암 진단, 수술과 재활 그리고 재발로 이어지는 투병 생활을 다루는 후반부는 tv에서 흔히 보는 휴먼 다큐처럼 얼핏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한부 판단을 받은 이노우에가 "의사의 말에 설득력이 없다"면서 같은 내용의 말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언변'이 중요함을, 즉 말의 형식과 전달력을 강조하는 장면을 통해 하라가 이 작품에서 추구하는 서사의 일관성이 확인된다. 소설가이자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거짓말쟁이의 본성을 드러내는 이러한 언술은 그렇다면 소설가 이노우에와 시종일관 남들 앞에서 자신을 꾸미려고 노력하는 자연인 이노우에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수 있음을, 따라서 어쩌면 그를 향한 범속한 윤리적 판단을 거부해야하는게 아닌지 관객의 (그 직전까지 이어왔을) 확신을 흔든다. 

 

하라의 전작 <가자 가자 신군>(1987)처럼 이번에도 대상인 이노우에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작품의 신중함이자 특징이다. 이력을 위조한 이노우에를 비판할 의도가 있었다면 그 부분에 지금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할 뿐 아니라 그 지점에서 영화가 끝났어야 했다. 진실을 확실히 규명한다는 목적 하에 이노우에를 향해 연출자인 하라가 직접 질문하는 장면도 들어갔어야 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과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본편에는 그러한 대목은 없다. 본편에서는 오히려 그 이후의 전개가 더 중요하다. 질문은 커녕 일체의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 없이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그저 관찰자로서 이노우에를 바라보기만 한다. 오쿠자키 켄조가 마치 극영화의 주인공처럼 강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목표와 신념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다. 현실판 돈키호테 같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가 다음 장면에서 무슨 행동을 할지 관객은 (상대적으로) 쉽게 예측할 수 있고 그렇기에 관객은 각자의 입장에서 그를 수용 또는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신소설가>의 이노우에는 오쿠자키만큼 영화의 전면에 굳건히 구축된 하나의 캐릭터로서 입체화되지 못한다. 이는 우선 이노우에가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오쿠자키보다 훨씬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행동하는 영웅보다는 고뇌하며 독백하는 지식인 캐릭터에 가깝다. 따라서 연출자와 대상 간의 긴장과 갈등 역시 이 작품에서 더 암묵적이며 복선화되어 있다. 진짜와 가짜, 소설가와 혁명가, 견결한 신념을 갖춘 거짓말쟁이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하라 가즈오는 그것이 일도양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자신의 입장을 침착하지만 또렷이 표명한다. 이노우에의 발언 바로 뒤에 이어지는 지인들의 증언은 반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첨언에 가까워 보인다. 이노우에의 진술을 바로 부정하거나 뒤집는 이노우에의 형제, 친척, 마을 사람들의 어투는 결코 비난조나 규탄이 아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노우에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건 다 아는거 아니었냐는 식의, 그를 진정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이들만이 가능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어떤 이는 이노우에가 어릴 적부터 '거짓말쟁이 밋짱'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짓말에 능했기에 허위로 연보를 썼다한들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증언의 절정은 후반부에 이노우에의 아내보다도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세토우치 자쿠초가 이노우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변호처럼 들리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이 모든 사태의 본질을 요약한 한마디이기도 하다. 하라의 입장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영화의 핵심이 허위 서술 비판과 사실 관계 규명이 아니라면, 이마저도 이 다큐의 서사를 완성하는 일부분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라면 그 서사란, 그러니까 이 다큐의 주제는 뭘까. 


이노우에의 거짓이 하나둘 밝혀짐에 따라 하라 본인이 느꼈을 혼란을 풀어가는 것으로 촬영과 편집의 중심이 옮겨갔을 것임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밝혀질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과거를 윤색한 이노우에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걸까. 지금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이노우에라는 이 모순적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궁금증 끝에 하라가 얻은 잠정적 결론은, 본인이 거짓말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히 자작연보를 썼을 것이라는 어느 인터뷰이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이노우에가 만일 누군가를 속이려 했다면 그 대상은 자신의 독자가 아니라 젊은 시절 공산주의 사상에 헌신하다가 철회한 후 소설 쓰기에 전념한 끝에 무언가를 완성하려 했던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의 삶 그 자체를 또 하나의 완결된 소설 같은 것으로 만들고자하는 이노우에가 그렇게 한 쪽에 있다면 그 맞은 편에는 거기에 도전하면서 마찬가지로 자신이 본, 자신만의 이노우에 미쓰하루라는 또다른 텍스트를 새로이 써나가는 하라 가츠오가 있다. 이 두 명의 예술가간의 조용한 대결과 긴장이 본편을 관통한다. 

 

1990년 자택에서 열린 정월의 모임에서 이노우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씩씩한 청년같은 위세와 풍모로 시종 좌중을 압도한다. 3년 뒤 같은 자리에서, 장기간 투병중인 그는 수척하고 말수도 줄었으며 차분하다. 여생이 길지 않음을 직감하고 있는 그에게 초대한 손님을 내쫓던 3년 전의 강단과 패기는 온데간데 없다. 한 때 헌신했던 당과 사상을 포기했을 때 그에겐 당적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긴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대개의 전향자라면 자신과 가족의 안위 또는 안락함이 보장된 미래 같은 것이었을 테지만 이노우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듯하다. 어떠한 사상이나 주의도 품을 수 없는 휴머니즘 또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음으로써 더 자유로워지는 문학이라는 야심이었을까. 적당히 윤색한 과거를 통과해 소설가로서의 현재를 써나가고 있던 이노우에의 삶은 '전향'을 논하기 이전에 그 자체가 하나의 '창작'이었고 그 창작은 후지타가 말한 '정신의 비전향'으로 인해 가능했다. 삶 그 자체를 한 편의 소설로 만들려했던 '전신소설가'가 바로 거기에 있다. 죽음을 코 앞에 두었던 93년 1월의 이노우에는 자신의 '유작'에 만족했을까.

1941년작인 <도다가의 형제자매들>에는 실제 전시였던 제작 당시의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후반부에 제사를 위해 도쿄로 돌아온 쇼지로가 입고있던 국민복이 그나마 유일한 표식이라고 할까. 오즈로 대표되는 일본의 가족 영화 장르가 전시 체제를 은폐하기 위한 것에서 기원한다는 비판적 코멘트를 오시마 나기사가 한 바 있는데 전시기에 나온 오즈의 연출작 두 편(다른 하나는 42년작 <아버지가 있었다>)도 모르고 보면 이런 점을 알아채기는 쉽지않다.

 

그래서일까. 이 두 편의 플롯은 더 내밀하고 더 내향적이다. 어떤 이는 본작이 내밀한 이야기의 극단이라할 (쇼지로와 세츠코 사이의)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지만 작품 전체를 감상했을 때 느껴지는 실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른바 '오즈적 양식'이 거의 완성된 <만춘>(1949) 이후부터의 작품들과 가장 대비되는 본작의 서사상 특징은 영화의 초반부에 일찌감치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 그러고나면 남겨진 자식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가 없는 딸과 아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오즈 영화에는 어색하고 위화감이 느껴지는 장면이 꼭 있다. 현재의 관객과 작품 사이에 놓인 시공간의 격차에서 비롯한 불감이나 불통, 몰이해일 수 있겠으나 이런 순간들은 거의 항상 있고 여기에 집중하다보면 영화는 부조리극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연기 양식의 차이일수도, 사고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는. 이를테면 본작의 장례식 시퀀스에서 철야하느라 지친거 아니냐며 낮잠이라도 자두라고 세츠코에게 충고하고는 거의 바로 뒤에 다시 주먹밥을, 그것도 크게 만들어오라고 쇼지로가 시키는 장면, 또는 그 바로 뒤에 툇마루에 나가 돌연 "날씨 좋다"라는 관습적 대사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러한 위화감이나 이물감이 감상 전체를 크게 방해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캐릭터를 볼 때마다 몰입으로부터 빠져나오는건 사실이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말한 '교화적 커뮤니케이션'을 불필요하고 있으나마나한 '잉여'라 규정해본다면 거의 모든 작품에 이렇게 돌출하는 말과 행동이 있다는 점에서 잉여는 적어도 오즈 영화에서 엄연한 하나의 주제론적 세부라고 할 수 있을테고, 본작은 아예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잉여'가 인물이자 플롯이고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의 사망 후 짐짝처럼 번거로운 존재가 된 모녀가 그렇고, 다른 형제들의 집을 전전하면서 번번이 거부당한다는 줄거리가 그렇다. 박한 대접을 받던 모녀는 결국 아버지의 사망 후 남은 가족들이 쓸모가 없어 처분하기로한 또다른 잉여인 구게누마의 낡은 별장으로 거처를 옮긴다. 잉여의 인물들이 또다른 잉여의 장소로 옮기는 것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기르던, 그리고 모녀와 함께 데려와야한다는 사실에 형제들이 꺼리던 구관조와 분재 또한 두 모녀와 같은 처지를 상징함은 두말할 것도 없어서 오즈는 이 둘의 정물샷을 빼놓지 않는다.

 

잉여를 엄연한 주제론적 세부라고 한다면 얼핏 불필요해보이는 장면은 그래서 알고보면 전혀 불필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단지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기위해서 또는 시퀀스의 전환 사이 심리적 여유를 두기위한 철저히 기능적인 장면이더라도 온갖 필로우샷으로 넘쳐나는 오즈의 세계에서는 영화의 주제를 집약하는 단 하나의 컷일 수 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방석 위에 놓인 모자들은 일차적으로는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의 성별, 사회적 지위 그리고 외출시 모자가 필수였던 시간적 배경을 가늠케한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모자는, 특히 어떤 모자는, 그러니까 영화의 초반부와 결말 두 번 나오는 쇼지로의 모자는 그 주인에 대해 뭔가를 말하고 있고 위에 삽입된 컷은 그 뭔가를 다시 응축한 단 하나의 컷이 된다. 제자리에 놓인, 제자리에 놓여야 할, 처음부터 그 자리가 정해져있는 물건.

 

제사를 위해 돌아온 쇼지로는 자신이 떠나있던 동안 모녀의 사정을 알게되자 형제들을 하나하나 강하게 추궁하고는 이제부터는 자신이 같이 지내겠다며 두 사람에게 큐슈로 같이 떠나자고 한다. 여기서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갈등도 해결된 셈이지만 잉여로 넘쳐나는 영화답게 제법 짧지않은 에필로그가 붙어있다. 바로 여기에 돌출된 장면이, 동작이 나온다. 쇼지로와 대화를 나눈 후 방에서 나가려던 세츠코가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오빠의 모자를 보고는 주워 벽에 걸어두는 것이다. 얼핏 보면 없어도 그만인, 이후에 복선이나 암시로서 어떠한 기능도 하지않는 장면이다. 그러기에는 곧 영화가 끝난다. 그런데 쇼지로의 모자는 극초반부에도 한번 나온 바 있다. 울고있는 세츠코의 머리 위에 쇼지로가 자신의 모자를 장난스레 씌우는 것이다. 살짝 유머러스한 이 장면은 얼핏 남매간의 우애를, 동생을 향한 오빠의 애틋함을 보여주는듯하다. 그러나 이 장면은 상기한 에필로그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남성용 중절모를 여동생에게 장난스럽게 씌우는 행동이 사진 촬영이라는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쇼지로가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며 아들로서 받는 기대와 역할을 거부함을 함축한다면, 결말부에 모자가 벽에 걸리는 장면은 그러던 그가 이제는 장남을 대체하는 가부장으로서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음을 단적으로 재현한다. 동생에게 떠넘기듯 모자를 씌어주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거부한다는 뜻을 상징적으로 연출하며 도쿄를 훌쩍 떠났던 쇼지로가 뒤늦게나마 모녀를 거부했던 장남의 대체자이자 오빠로서의 권위를 모녀에게 현현하자 잃어버렸던 혹은 새로운 지위를 (되)찾았음을 확인하듯 모자는 동생의 머리로부터, 그리고 바닥으로부터 들어올려져 원래 있었어야할 자리인 벽에 제대로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앞뒤에 두 번 나오는 쇼지로의 모자는 서사를 보충하고 확실히 매조짓는다.

세츠코의 남편감을 논하는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거기에 친구 토키코를 오빠에게 소개하려는 대목까지 있음에도) 굳이 남매간의 근친상간 암시를 읽어내기보다는 쇼지로의 위상 변화를 축약하는 소품의 위치 변화를 통해 서사의 수미상관이 확인된다. 가족의 별리와 해체를 집요하게 반복해온 오즈의 필모에서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지만 달리 보면 가족이 (부분)재결합하는 이야기이기도하다. 전중과 전후 각각 두 작품을 거친 뒤 <만춘>부터 본격화되는 오즈적 형식이 안착하기 이전의 작품들은 이렇게 비교의 재미를 선사한다. 모녀가 형제들 집을 전전한다는 플롯은 노부부가 자식들 집을 떠돌던 <도쿄이야기>를, 결혼이 아닌 이사나 이주로 가족이 해체되는 결말은 <도쿄의 황혼>과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을 상기시킨다. 후반기 작품들에서 주로 딸이 극을 이끌어간다면 여기서는 아들과 딸이 주인공의 역할을 나누어 갖는다. 가족, 정확히는 한 가문이라 할 혈연 공동체가 현대 사회에서 왜 유지되지 못하고 해체되거나 재구성되는가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 이들 중기 작품들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엔 영화 밖 현실에서 실제 진행중이던 전쟁이 없고 가족 바깥의 세상이 없다. 그대신 복원되는 가부장과 그 권위가 있다. 가부장의 죽음과 함께 불길한 엔딩을 보여준 <고하야가와가의 가을>과는 반대이지만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 자식 앞에서 체면을 잃거나(<태어나기는 했지만>) 여성들의 부상과 함께 퇴장하는 아버지 세대를 짓궃은 시선으로까지 바라보던 것과는 제법 다른. 본작이 전중에 나온 것은 그저 우연일까.

영화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여 bfi가 의뢰한 자국 영화사 다큐멘터리의 일본편(1994)을 연출한 오시마 나기사는 지금도 서구에서 여전히 통용되는 몇몇 감독 중심의 일본영화사 개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본편 내내 관철한다. 작가의 창의성을 억압하려는 체제와 제도에 대항한 응전으로서의 일본 영화사 전개가 그것으로 이는 더 크게 보면 일본 근현대사를 비판적으로 투영하는 매체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감독론이나 일본(영화)적 특수성보다는 제작방식, 즉 온전한 창의성 발현을 위한 독립 제작 방식이 매우 일찍부터 일본 영화계에 있었음을 내세움으로써 몇몇 거대 스튜디오 중심의 주류 일본영화사 또한 기각한다. 이미 서구에 널리 알려진 거장 감독들의 이름은 구로사와 정도를 빼고는 직접 언급되지 않으며 대신 그가 주목해온 당대의 젊은 작가군의 이름들이 수시로 출몰한다.

 

36년 2.26사태 하루 전 감독협회가 설립된 일화에서 알 수 있듯 늘 체제로부터의 종속 시도와 영향력 아래 있었던 일본 영화는 전시 체제가 본격화된 이후 강화된 검열과 탄압을 피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서 개인과 가족 생활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오시마는 오즈 작품들의 화면을 삽입하고는 이어 오즈가 각본을 썼던 샐러리맨 영화 <끝없는 전진>을 두고 '자멸을 향한 끝없는 전진'이라 쏘아붙이기를 주저않는다. 고질라 등의 특촬물 역시도 전시 영화를 만들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쌓여 나오게 됐다는 코멘트까지 오시마의 이러한 전복적 관점은 주류적 시각에서의 일본영화사 이해의 협소함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

 

자국 영화사를 개관함과 동시에 자신의 감독 이력을 회고하는 오시마는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인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여자들의 동산>(1954)을 보고서 비로소 감독이 되겠다는 확신을 했노라고 고백한다. 60년 안보조약 사태를 통과하면서 일본의 전근대성 및 봉건성으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하기 위해 선택한 쇼치쿠 퇴사와 창조사 설립 이후의 독립 제작 방식은 다른 젊고 유능한 감독들로 하여금 이 대열에 합류하게한다. 요시다 기주, 데라야마 슈지, 하니 스스무, 오가와 신스케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ATG같은 제도도 이 즈음에 포함된다) 그의 관점에서는 핑크 영화나 로망 포르노 또한 자본과 체제로부터 해방되기위한 일련의 뉴웨이브 흐름 안에 위치한다.

 

하지만 72년 연합적군 사건 이후 학생운동이 퇴조하고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야쿠자 영화, 그리고 가족과 고향으로 회귀하는 야마다 요지의 보수적인 가족 영화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런 가운데 <감각의 제국>을 둘러싼 스캔들과 무죄 선고로 체제에 균열을 내는데 성공했던 오시마는 지나친 자국 중심적 가치관을 비판하기 위해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기획했노라고 말한다. 60년대 내내 본인이 자이니치에게 집중했듯이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점점 많아지는 현실을 반영해 외국인의 시각으로 일본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뜻에서 향후 일본 영화가 일본적인 것에서 벗어난 순수한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는 마지막 멘트와 함께 다큐는 끝을 맺는다. 

 

60년대에 일본 사회를 가열차게 비판한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오시마는 이렇듯 가장 코스모폴리턴적인 필름메이커이기도 했다. 폐쇄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일본 사회를 환멸했던 그에게 영화는 예술이면서 (적어도 60년대까지는 분명히) 정치였고 해방의 도구였다. 그런 점에서 70년대 후반부터 그의 작품 활동의 간격이 길어진 이유는 (길었던 소송과 건강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자신의 작품들이 비판의 도구로서 무력해졌다는 회의보다는 오히려 소기의 목표를 일부 달성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자신이 홀로 짊어져야했던 소재와 주제들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젊은 감독들이 저마다의 스타일과 방식으로 각자 펼쳐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빠르고 힘찬 내레이션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낙관적 어조는 <맥스 내 사랑>(1986) 이후 장편을 내놓지 않은지 벌써 수 년이 되어가는 90년대 중반 시점에서도 그가 여전히 영화에 기대를 걸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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