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소설을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왔던 부분이 있다. 집이나 건물 안에 들어갔다가 우연치않게 시체를 마주한 주인공 탐정이 그 자리에서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이어질 전개와 상관없이 자문해본다. 왜 탐정은 이런 선택을 하는걸까.
나는 방들을 모두 돌아다녔다. 주방을 살펴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채프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식탁 밑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나온 배설물과 구토물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시체에는 시체 특유의 부동성이 있다. 거의 초자연적인 그 부동성은 거기에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영혼이 없는 육신, 단순한 살과 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를 반듯이 눕힌 다음 맥을 짚어보았다. 조용했다. 모든 것이 죽어 있었다.
……
나는 거실로 돌아가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오래지 않아 도착할 것이다. 경찰은 누군가가 이미 죽었을 때는 절대로 꾸물거리지 않는다.
첫번째 가설, 그냥 빠져나온다한들 어떤 식으로든 알려지게 마련인지라 누명을 쓸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cctv 이전의 시대라도 그냥 현장을 몰래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밖으로 알려지기 마련이므로 괜한 위험을 자초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진범이 처음부터 사전에 그렇게 되기를 계획해놓고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목격자는 언제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두번째, 경찰에 알림으로써 현장을 최대한 빠르게 훼손당하지 않은 채로 보존할 수 있다. 공권력의 힘을 빌려야 하나라도 더 많은 관련 증거를 찾거나 보존할 수 있다. 사립 탐정이 공권력에 비해 열악한 조건에 놓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므로 대부분의 탐정 소설에서 말로는 치고박을지언정 탐정은 경찰과 수시로 연락을 하며 사실상 공조에 가까운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자신이 직접 신고함으로써 결백도 알리고 이런저런 정보도 공유하게 된다면 나쁠 게 없는 선택인 셈이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세번째 가설은 순전한 내 상상이다. 탐정이 탐문하러 가는 곳마다 우연치않게 시체를 마주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번번이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혹시 탐정이 살인자라면? 허를 찔러 역으로 자신이 직접 신고해서 용의선상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같은 일이 여러번 반복되면 그때부터는 경찰도 탐정을 향한 의심을 거둔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렇다면 독자가 읽고있는 그 소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후 그는 계속 탐문을 이어가고 이런저런 역경을 겪은 끝에 살인범을 포함해 공모자 등 일당을 소탕하고 전모를 밝혀내지 않는가. 하지만 한 시기 미국에서 쏟아진 이 탐정 소설들, 정확히는 일인칭 탐정 소설 자체를 의심해봐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소설들은 곰곰히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어쩌면 장르와 무관하게 모든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라는게 그럴지도 모르지만. 도대체 이 탐정들은 지금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건가. 특정 청(독)자를 향해서 말하는건가 아니면 그저 혼자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는 중인가.
시제를 고려하면 이 문제는 더 알쏭달쏭하다. 탐정들은 소설 속 모든 사건 전개가 다 끝난 후 그러니까 사건의 최종 해결 이후의 시점에서 처음부터 일을 되짚어 회고하는 중인가 아니면 현재진행중으로 겪는 일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중인가. 일단 후자가 아님은 원문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 시리즈나 이를 정통으로 계승 및 변주했다고 할 수 있는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 전부 단순 과거형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들은 사건이 최종 해결된 후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서 순행하는 진술 형식임을 보여준다. 실상 내용 전개는 현재 진행형 시점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과거와 현재 시제가 편의에 따라 같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시제보다 한층 중요한건 도대체 이 발화가 누구를 향한 것이냐는 의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이 탐정은 누구를 향해 이렇게 소상히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말하고 있는걸까. 이게 단순 발화가 아니라면 탐정이 쓴 글인걸까. 즉 탐정이 곧 저자인걸까. 일찍이 코넌 도일은 왓슨이 자신이 홈즈와 겪었던 일을 일지처럼 글로 써서 출판을 했고 독자가 읽는 것이 바로 왓슨이 쓴 책이라는 설정으로 이 난점을 돌파해낸 바 있다. 그런데 이 고독한 미국 서부 탐정들의 끝날 줄 모르는 길고 긴 독백은 누구를 향한 걸까. 지금 출판된 이 책을 읽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정한걸까 아니면 그저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독백인걸까. 혹은 독자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존재 자체를 알 수도 없는, 탐정 본인의 눈 앞에 있고 오직 자신만 볼 수 있는 어떤 특정 대화 상대를 앞에 놓고 말하는 중일까.
무의식적인 자기와의 대화냐 아니면 불특정다수인 독자 일반 혹은 특정인이라는 유무형의 청자를 앞에 놓고 하는 발화인지의 구별은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간에 지금 자신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한 거짓 진술을 탐정이 하고 있다면 말이다. 이후 그는 사건의 선후관계, 시간 순서, 인물의 동선, 행적, 그들의 동기등을 잘 짜맞추어 직접 창작한 하나의 서사를 읊는다. 자신의 범죄만은 완벽히 숨긴 채. 그렇다면 이 소설들이 과거 시점으로 쓰인 것도 일견 이해가 된다. 모든 일이 완결된 이후에야 이렇게 조리가 서는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테니까.
너무 말이 많은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버벌 킨트처럼. 이것이야말로 일인칭 탐정소설을 읽을 때 제일 먼저 주의했어야 할 계율인지도 모른다. '못미더운 화자'의 문제에는 예외가 없다. 개인적 동기에 의한 범죄를 저지르고는 그 사건의 가짜 해결까지 직접 해냄으로써 의뢰인으로부터 사건 의뢰비까지 덤으로 청구받는 이중계략. 이런 영악한 탐정이 나오는 소설이 실제로 있었는지 모르겠다.
p.s 1950년대에 쓰인 글이지만 일찌감치 에도가와 란포가 '탐정이 범인'인 소설을 정리해놓았다. 그 글에서 언급된 이런 유형의 소설 목록은 대략 다음과 같다. 르블랑의 <813>, 르루의 <노란 방>, 포의 <네가 범인이다> 이스라엘 쟁월의 <빅 보우 사건> 그리고
"이 트릭은 쟁월, 르루, 르블랑 이후에도영국의 필딩, 미국의 라인하트, 영국의 크리스티, 미국의 퀸 등의 장편과 체스터턴의 단편(2편)에서도 거듭 사용되었다. 일본의 작가 가운데서는 하마오 시로가 한 장편소설의 중심 트릭으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