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신의 추천 독서 목록에 P.G 우드하우스를 곧잘 집어넣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분류에 따르자면, 우드하우스 작품의 "어디가 웃기다는건지 알지못하겠다는 길 잃은 영혼들"이자 "불운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버티와 지브스> 연작은 적어도 내 세대에게는 사건을 해결하는 진짜 실력자 조수를 둔 형사 가제트를 떠올리게하는 면이 있었고, 유크리지도, 골프 연작도 크게 웃기거나 한 대목은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몇 해 전에 나온 우드하우스 단편선을 끝까지 다 읽어낸 소감이라면 과거 영국 사회가 얼마나 여유롭고 한가로운 곳이었는가라는 상상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공고한 계급사회였던 20세기 초 영국 내 백인 상층계급의 여유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그래서 저자와 같은 계급 배경을 가진 사람들, 아니면 적어도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이나 진심으로 즐길 수 있을듯한 소설들이었다. 적지않은 '고전'이 그러하듯 점점 쌓여가는 세월의 무게에 눌린 탓에 문학 작품으로서 독서의 재미보다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조금씩 더 높아지면서 점점 낡아가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반 세기동안 계속 쓰는 작가가 있다는 것, 또 그렇게 길게 이어질만큼 독자층이 탄탄했다는 사실은 영국 사회 내부가 계급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얼마나 단단한 경계와 위계의 구분선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케했다. 영국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이 우드하우스를 읽으면서 귀족들의 삶을 상상하고 동경한다는 히친스의 코멘트도 이런 점을 뒷받침한다.
다 큰 백인 남성이 그렇게 여유로운 소설을 평생동안 쓴다는건 저자 본인이 작품만큼이나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보다는 직접 창조한 작품 속 세계가 더 현실적이고 친숙한 그런 행복한 저자였기 때문이었을까. 2차대전 중 프랑스에 마련한 집에 계속 남아있다 나치의 포로가 된 그는 아예 적극 협조해 영어로 자신의 조국을 향해 선전 방송을 진행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영국에서 공공의 적 수준으로 떠올랐고서점에서 하나둘 저서들이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즈음에 돌연 조지 오웰이 <우드하우스를 변호하며>(1945)라는 글을 통해 우드하우스의 평판을 바꾸는데 기여한다. 부역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그의 다른 글들이 그러하듯이 오웰은 참고할만한 지점을 제공한다. 그의 변호 내용의 핵심은 두가지다. 첫째, 우드하우스는 무관심하다못해 아예 당시 정치에는 무지에 가까운 상태였다. 정세 판단은 커녕 그의 내면은 1910년대와 20년대에 언제까지고 머물러 있어서 퍼블릭 스쿨 그리고 하녀, 집사, 정원사, 요리사 등등 여러 종류의 하인을 동반한 귀족 제도 등 그가 포로로 붙잡힌 시점에 이미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 과거 영국 사회에 여전히 붙들려 있었다. 오웰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여전히 "에드워드 시대"를 사는 중이었던 것이다. 히친스 또한 그가 "심각한 발달정지" 상태였으며 그냥 (정신적)"성장을 멈춰버린 것"이라며 오웰의 편에 선다. 둘째, 우드하우스는 표적이 되어 지나치게 비난받았다. 한마디로 그는 희생양이었다. 유럽 침공 전 평화조약 체결을 주장하며 나치에 우호적이었던 지식인들과 언론인 등은 얼마든지 있었고, 히틀러와 뮌헨 조약을 맺었던 챔벌린 정권과 그 동조 세력들은 어쩔 것인가. 그러니까 우드하우스를 마치 일본의 A급 전범 비슷한 취급을 하게 된데는 그가 당시에 이미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저명한 문인이었기에 자신의 몫을 초과한 비난까지도 전부 뒤집어 쓴 면이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기소없이) 풀려난 뒤 미국으로 이주해 시민권을 획득한 우드하우스는 이후 한번도 영국 땅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1
이같은 오웰의 변호를 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자신을 반쯤 금치산자로 취급하는 이런 태도에 그 스스로도 부응한 것처럼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만년까지 작풍은 한결같이 유지됐고, 과거의 자신을 두고 "바보 중의 상바보"였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드하우스의 사례는 보면 볼수록 변절과 부역이라는 관념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변절'이 기준과 일관성이 깨진 것을 비판하는 함의를 갖는다면 우드하우스는 부역은 했을지 몰라도 변절은 아니지않을까. 변절을 하려면 애초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었어야 할테니 말이다. 이 말이 너무 관대하게 들린다면 바늘 하나 들어갈 자리 없이 꼿꼿한 후지타 쇼조의 '변절'에 대한 정의, 즉 "아무런 권력으로부터의 강제가 없는데도 사적 이익이나 지위 상승이 동기가 되어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돌연 입장을 바꾸는 경우"에는 해당할까. 변절과 부역 그리고 전향의 판단은 이렇듯 당시 정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판단을 요구한다.
출처: https://tweedy.tistory.com/434 [tweedy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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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우드하우스의 단편 중 하나는 드론스 클럽 시리즈 중 한 편인 <놀라운 모자 미스터리>(1933)로, 키 차이가 큰 두 커플이 그로 인해 상대가 쓰고있는 모자의 크기를 착각한다는 이야기다. 즉 키 작은 여자친구의 시점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기 때문에 연인의 모자가 지나치게 작아보이는 반면, 처지가 반대인 커플의 경우에는 오히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기 때문에 남자 친구의 모자가 너무 커보인다는 것이다. 정작 원문에는 이런 설명은 전혀 없이 두 남자가 그저 모자를 잘못 만들었다며 투덜대다가 우드하우스의 이야기들이 으레 그렇듯 돌연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알고보면 썰렁한 농담에 불과한 이야기를 귀족들의 여유작작하고 클래시한 도락의 에피소드로 탈바꿈하면서 형용사 '놀라운'을 제목에 붙이는게 바로 우드하우스식 넉살이다. 그런데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사물이 달리보인다는 이 단편은 우드하우스라는 작가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민국가(내지는 네이션)만을 판단 기준으로 보면 우드하우스는 영락없는 부역자에 다름 아니지만 늘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상호호혜적 관계와 엄격한 예절을 교육받는, 그러니까 '신사도'를 중요시하라고 배우는 퍼블릭 스쿨 출신의 나이만 먹은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소년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을 정중하게 대한 이의 요구라면 그것이 설사 적이라 할지라도 응해야한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오웰의 말처럼 그 판단이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수준의) '어리석음' 그 자체라는게 안타깝지만. 자신의 시점에만 함몰된 나머지 상대가 쓴 모자의 크기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연인들처럼 우드하우스도 일면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다들 나치를 피해 중립국이나 미국으로 이주할 때 분별없이 점령 지역에 남아있다가 포로가 된 건 당시 정세를 정말 몰라서 그랬다고, 조국을 향해 모국어로 적을 위한 프로파간다 방송을 한 것도 백번 양보해서 자신과 가족의 인신을 구속받는 가운데 어쩔 수 없었을 여러 상황이 있었을거라고 참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드하우스가 훗날 자신의 과거 행적을 정당화하는 코멘트를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만일 누군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자신의 과거 부역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거기서부터는 어떠한 비판과 비난도 피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건 현실로부터 물러난 것도 회피한 것도 아닌 현실에의 적극적 · 의지적 개입이기 때문이다(이는 아마도 후지타가 '태도바꾸기' 내지는 '기회주의'라 분류한 것에 해당하겠다). 진짜 변절이나 전향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며 한 개인의 생애에서 몇 번이고 전향은 가능하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전향자나 부역자 중 일부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재차 수정해보려는 정신적 투쟁을 이어가는건 그렇게해서라도 과거는 내줄지언정 현재와 미래만은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발현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안해내는 고도의 추상적 사변과 논리가 정작 변절했던 시점보다 더 심도있는 사유와 넓은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과거의 선택을 더 선명하게 부각하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한다. 그런데 우드하우스의 사례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지키거나 버리거나 바꾸거나 할 선택지를 그는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비극이면서 동시에 희극적인 면이 있다. 현실 정치에 몹시도 무지했던 이가 매우 가혹한 정치적 비극을 맞이했기 때문이다(물론 이런 사례는 그만의 것이 아님을, 20세기에 이런 일을 겪은 이들이 허다함은 아는 바 그대로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고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으며, 비정치적인 문학 같은 것도 없다는 오웰의 말이 맞다면 우드하우스야말로 그때 누구보다 가장 정치적이었던게 그가 저지른 오판의 근본적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에 무관심할 때, 정치로부터 멀리 거리를 뒀다고 생각했을 때야말로 어쩌면 정치에 가장 깊숙이 개입하는 순간이자 가장 정치적으로 처신하는 때이며 결과적으로 정치의 한가운데에 빠져드는 순간일지 모른다는 것. 오웰이 이번에도 옳았다.
- 우드하우스에게 여전히 매몰찬 21세기의 어느 미국인 서평가에게서도 이런 시선을 볼 수 있다. "독일 강점기 프랑스에서 나치와 손발 맞추던 똥폼 귀족 새끼 P.G 우드하우스의 책도 절대 읽지 않을 것이다. 방화, 수간, 소득세 탈루 등등 세상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들도 많이 있으나 이런 죄는 그 축에 들지 않는다." 다만 이 서평가는 한번 뭔가를 싫어하면 철저하게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양키스와 양키스 팬이 쓴 책도 전부 읽기를 거부할 정도임을 밝혀 두어야겠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