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신의 추천 독서 목록에 P.G 우드하우스를 곧잘 집어넣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분류에 따르자면, 우드하우스 작품의 "어디가 웃기다는건지 알지못하겠다는 길 잃은 영혼들"이자 "불운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버티와 지브스> 연작은 적어도 내 세대에게는 사건을 해결하는 진짜 실력자 조수를 둔 형사 가제트를 떠올리게하는 면이 있었고, 유크리지도, 골프 연작도 크게 웃기거나 한 대목은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몇 해 전에 나온 우드하우스 단편선을 끝까지 다 읽어낸 소감이라면 과거 영국 사회가 얼마나 여유롭고 한가로운 곳이었는가라는 상상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공고한 계급사회였던 20세기 초 영국 내 백인 상층계급의 여유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그래서 저자와 같은 계급 배경을 가진 사람들, 아니면 적어도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이나 진심으로 즐길 수 있을듯한 소설들이었다. 적지않은 '고전'이 그러하듯 점점 쌓여가는 세월의 무게에 눌린 탓에 문학 작품으로서 독서의 재미보다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조금씩 더 높아지면서 점점 낡아가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반 세기동안 계속 쓰는 작가가 있다는 것, 또 그렇게 길게 이어질만큼 독자층이 탄탄했다는 사실은 영국 사회 내부가 계급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얼마나 단단한 경계와 위계의 구분선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케했다. 영국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이 우드하우스를 읽으면서 귀족들의 삶을 상상하고 동경한다는 히친스의 코멘트도 이런 점을 뒷받침한다. 

 

다 큰 백인 남성이 그렇게 여유로운 소설을 평생동안 쓴다는건 저자 본인이 작품만큼이나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보다는 직접 창조한 작품 속 세계가 더 현실적이고 친숙한 그런 행복한 저자였기 때문이었을까. 2차대전 중 프랑스에 마련한 집에 계속 남아있다 나치의 포로가 된 그는 아예 적극 협조해 영어로 자신의 조국을 향해 선전 방송을 진행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영국에서 공공의 적 수준으로 떠올랐고[각주:1]서점에서 하나둘 저서들이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즈음에 돌연 조지 오웰이 <우드하우스를 변호하며>(1945)라는 글을 통해 우드하우스의 평판을 바꾸는데 기여한다. 부역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그의 다른 글들이 그러하듯이 오웰은 참고할만한 지점을 제공한다. 그의 변호 내용의 핵심은 두가지다. 첫째, 우드하우스는 무관심하다못해 아예 당시 정치에는 무지에 가까운 상태였다. 정세 판단은 커녕 그의 내면은 1910년대와 20년대에 언제까지고 머물러 있어서 퍼블릭 스쿨 그리고 하녀, 집사, 정원사, 요리사 등등 여러 종류의 하인을 동반한 귀족 제도 등 그가 포로로 붙잡힌 시점에 이미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 과거 영국 사회에 여전히 붙들려 있었다. 오웰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여전히 "에드워드 시대"를 사는 중이었던 것이다. 히친스 또한 그가 "심각한 발달정지" 상태였으며 그냥 (정신적)"성장을 멈춰버린 것"이라며 오웰의 편에 선다. 둘째, 우드하우스는 표적이 되어 지나치게 비난받았다. 한마디로 그는 희생양이었다. 유럽 침공 전 평화조약 체결을 주장하며 나치에 우호적이었던 지식인들과 언론인 등은 얼마든지 있었고, 히틀러와 뮌헨 조약을 맺었던 챔벌린 정권과 그 동조 세력들은 어쩔 것인가. 그러니까 우드하우스를 마치 일본의 A급 전범 비슷한 취급을 하게 된데는 그가 당시에 이미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저명한 문인이었기에 자신의 몫을 초과한 비난까지도 전부 뒤집어 쓴 면이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기소없이) 풀려난 뒤 미국으로 이주해 시민권을 획득한 우드하우스는 이후 한번도 영국 땅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이같은 오웰의 변호를 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자신을 반쯤 금치산자로 취급하는 이런 태도에 그 스스로도 부응한 것처럼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만년까지 작풍은 한결같이 유지됐고, 과거의 자신을 두고 "바보 중의 상바보"였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드하우스의 사례는 보면 볼수록 변절과 부역이라는 관념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변절'이 기준과 일관성이 깨진 것을 비판하는 함의를 갖는다면 우드하우스는 부역은 했을지 몰라도 변절은 아니지않을까. 변절을 하려면 애초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었어야 할테니 말이다. 이 말이 너무 관대하게 들린다면 바늘 하나 들어갈 자리 없이 꼿꼿한 후지타 쇼조의 '변절'에 대한 정의, 즉 "아무런 권력으로부터의 강제가 없는데도 사적 이익이나 지위 상승이 동기가 되어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돌연 입장을 바꾸는 경우"에는 해당할까. 변절과 부역 그리고 전향의 판단은 이렇듯 당시 정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판단을 요구한다.  

 

아무런 권력으로부터의 강제가 없는데도 사적 이익이나 지위 상승이 동기가 되어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돌연 입장을 바꾸는 경우

출처: https://tweedy.tistory.com/434 [tweedy blog]
아무런 권력으로부터의 강제가 없는데도 사적 이익이나 지위 상승이 동기가 되어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돌연 입장을 바꾸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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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권력으로부터의 강제가 없는데도 사적 이익이나 지위 상승이 동기가 되어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돌연 입장을 바꾸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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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권력으로부터의 강제가 없는데도 사적 이익이나 지위 상승이 동기가 되어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돌연 입장을 바꾸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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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우드하우스의 단편 중 하나는 드론스 클럽 시리즈 중 한 편인 <놀라운 모자 미스터리>(1933)로, 키 차이가 큰 두 커플이 그로 인해 상대가 쓰고있는 모자의 크기를 착각한다는 이야기다. 즉 키 작은 여자친구의 시점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기 때문에 연인의 모자가 지나치게 작아보이는 반면, 처지가 반대인 커플의 경우에는 오히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기 때문에 남자 친구의 모자가 너무 커보인다는 것이다. 정작 원문에는 이런 설명은 전혀 없이 두 남자가 그저 모자를 잘못 만들었다며 투덜대다가 우드하우스의 이야기들이 으레 그렇듯 돌연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알고보면 썰렁한 농담에 불과한 이야기를 귀족들의 여유작작하고 클래시한 도락의 에피소드로 탈바꿈하면서 형용사 '놀라운'을 제목에 붙이는게 바로 우드하우스식 넉살이다. 그런데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사물이 달리보인다는 이 단편은 우드하우스라는 작가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민국가(내지는 네이션)만을 판단 기준으로 보면 우드하우스는 영락없는 부역자에 다름 아니지만 늘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상호호혜적 관계와 엄격한 예절을 교육받는, 그러니까 '신사도'를 중요시하라고 배우는 퍼블릭 스쿨 출신의 나이만 먹은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소년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을 정중하게 대한 이의 요구라면 그것이 설사 적이라 할지라도 응해야한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오웰의 말처럼 그 판단이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수준의) '어리석음' 그 자체라는게 안타깝지만. 자신의 시점에만 함몰된 나머지 상대가 쓴 모자의 크기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연인들처럼 우드하우스도 일면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다들 나치를 피해 중립국이나 미국으로 이주할 때 분별없이 점령 지역에 남아있다가 포로가 된 건 당시 정세를 정말 몰라서 그랬다고, 조국을 향해 모국어로 적을 위한 프로파간다 방송을 한 것도 백번 양보해서 자신과 가족의 인신을 구속받는 가운데 어쩔 수 없었을 여러 상황이 있었을거라고 참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드하우스가 훗날 자신의 과거 행적을 정당화하는 코멘트를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만일 누군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자신의 과거 부역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거기서부터는 어떠한 비판과 비난도 피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건 현실로부터 물러난 것도 회피한 것도 아닌 현실에의 적극적 · 의지적 개입이기 때문이다(이는 아마도 후지타가 '태도바꾸기' 내지는 '기회주의'라 분류한 것에 해당하겠다). 진짜 변절이나 전향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며 한 개인의 생애에서 몇 번이고 전향은 가능하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전향자나 부역자 중 일부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재차 수정해보려는 정신적 투쟁을 이어가는건 그렇게해서라도 과거는 내줄지언정 현재와 미래만은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발현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안해내는 고도의 추상적 사변과 논리가 정작 변절했던 시점보다 더 심도있는 사유와 넓은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과거의 선택을 더 선명하게 부각하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한다. 그런데 우드하우스의 사례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지키거나 버리거나 바꾸거나 할 선택지를 그는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비극이면서 동시에 희극적인 면이 있다. 현실 정치에 몹시도 무지했던 이가 매우 가혹한 정치적 비극을 맞이했기 때문이다(물론 이런 사례는 그만의 것이 아님을, 20세기에 이런 일을 겪은 이들이 허다함은 아는 바 그대로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고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으며, 비정치적인 문학 같은 것도 없다는 오웰의 말이 맞다면 우드하우스야말로 그때 누구보다 가장 정치적이었던게 그가 저지른 오판의 근본적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에 무관심할 때, 정치로부터 멀리 거리를 뒀다고 생각했을 때야말로 어쩌면 정치에 가장 깊숙이 개입하는 순간이자 가장 정치적으로 처신하는 때이며 결과적으로 정치의 한가운데에 빠져드는 순간일지 모른다는 것. 오웰이 이번에도 옳았다.

  1. 우드하우스에게 여전히 매몰찬 21세기의 어느 미국인 서평가에게서도 이런 시선을 볼 수 있다. "독일 강점기 프랑스에서 나치와 손발 맞추던 똥폼 귀족 새끼 P.G 우드하우스의 책도 절대 읽지 않을 것이다. 방화, 수간, 소득세 탈루 등등 세상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들도 많이 있으나 이런 죄는 그 축에 들지 않는다." 다만 이 서평가는 한번 뭔가를 싫어하면 철저하게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양키스와 양키스 팬이 쓴 책도 전부 읽기를 거부할 정도임을 밝혀 두어야겠다. [본문으로]

1941년작인 <도다가의 형제자매들>에는 실제 전시였던 제작 당시의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후반부에 제사를 위해 도쿄로 돌아온 쇼지로가 입고있던 국민복이 그나마 유일한 표식이라고 할까. 오즈로 대표되는 일본의 가족 영화 장르가 전시 체제를 은폐하기 위한 것에서 기원한다는 비판적 코멘트를 오시마 나기사가 한 바 있는데 전시기에 나온 오즈의 연출작 두 편(다른 하나는 42년작 <아버지가 있었다>)도 모르고 보면 이런 점을 알아채기는 쉽지않다.

 

그래서일까. 이 두 편의 플롯은 더 내밀하고 더 내향적이다. 어떤 이는 본작이 내밀한 이야기의 극단이라할 (쇼지로와 세츠코 사이의)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지만 작품 전체를 감상했을 때 느껴지는 실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른바 '오즈적 양식'이 거의 완성된 <만춘>(1949) 이후부터의 작품들과 가장 대비되는 본작의 서사상 특징은 영화의 초반부에 일찌감치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 그러고나면 남겨진 자식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가 없는 딸과 아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오즈 영화에는 어색하고 위화감이 느껴지는 장면이 꼭 있다. 현재의 관객과 작품 사이에 놓인 시공간의 격차에서 비롯한 불감이나 불통, 몰이해일 수 있겠으나 이런 순간들은 거의 항상 있고 여기에 집중하다보면 영화는 부조리극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연기 양식의 차이일수도, 사고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는. 이를테면 본작의 장례식 시퀀스에서 철야하느라 지친거 아니냐며 낮잠이라도 자두라고 세츠코에게 충고하고는 거의 바로 뒤에 다시 주먹밥을, 그것도 크게 만들어오라고 쇼지로가 시키는 장면, 또는 그 바로 뒤에 툇마루에 나가 돌연 "날씨 좋다"라는 관습적 대사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러한 위화감이나 이물감이 감상 전체를 크게 방해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캐릭터를 볼 때마다 몰입으로부터 빠져나오는건 사실이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말한 '교화적 커뮤니케이션'을 불필요하고 있으나마나한 '잉여'라 규정해본다면 거의 모든 작품에 이렇게 돌출하는 말과 행동이 있다는 점에서 잉여는 적어도 오즈 영화에서 엄연한 하나의 주제론적 세부라고 할 수 있을테고, 본작은 아예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잉여'가 인물이자 플롯이고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의 사망 후 짐짝처럼 번거로운 존재가 된 모녀가 그렇고, 다른 형제들의 집을 전전하면서 번번이 거부당한다는 줄거리가 그렇다. 박한 대접을 받던 모녀는 결국 아버지의 사망 후 남은 가족들이 쓸모가 없어 처분하기로한 또다른 잉여인 구게누마의 낡은 별장으로 거처를 옮긴다. 잉여의 인물들이 또다른 잉여의 장소로 옮기는 것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기르던, 그리고 모녀와 함께 데려와야한다는 사실에 형제들이 꺼리던 구관조와 분재 또한 두 모녀와 같은 처지를 상징함은 두말할 것도 없어서 오즈는 이 둘의 정물샷을 빼놓지 않는다.

 

잉여를 엄연한 주제론적 세부라고 한다면 얼핏 불필요해보이는 장면은 그래서 알고보면 전혀 불필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단지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기위해서 또는 시퀀스의 전환 사이 심리적 여유를 두기위한 철저히 기능적인 장면이더라도 온갖 필로우샷으로 넘쳐나는 오즈의 세계에서는 영화의 주제를 집약하는 단 하나의 컷일 수 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방석 위에 놓인 모자들은 일차적으로는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의 성별, 사회적 지위 그리고 외출시 모자가 필수였던 시간적 배경을 가늠케한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모자는, 특히 어떤 모자는, 그러니까 영화의 초반부와 결말 두 번 나오는 쇼지로의 모자는 그 주인에 대해 뭔가를 말하고 있고 위에 삽입된 컷은 그 뭔가를 다시 응축한 단 하나의 컷이 된다. 제자리에 놓인, 제자리에 놓여야 할, 처음부터 그 자리가 정해져있는 물건.

 

제사를 위해 돌아온 쇼지로는 자신이 떠나있던 동안 모녀의 사정을 알게되자 형제들을 하나하나 강하게 추궁하고는 이제부터는 자신이 같이 지내겠다며 두 사람에게 큐슈로 같이 떠나자고 한다. 여기서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갈등도 해결된 셈이지만 잉여로 넘쳐나는 영화답게 제법 짧지않은 에필로그가 붙어있다. 바로 여기에 돌출된 장면이, 동작이 나온다. 쇼지로와 대화를 나눈 후 방에서 나가려던 세츠코가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오빠의 모자를 보고는 주워 벽에 걸어두는 것이다. 얼핏 보면 없어도 그만인, 이후에 복선이나 암시로서 어떠한 기능도 하지않는 장면이다. 그러기에는 곧 영화가 끝난다. 그런데 쇼지로의 모자는 극초반부에도 한번 나온 바 있다. 울고있는 세츠코의 머리 위에 쇼지로가 자신의 모자를 장난스레 씌우는 것이다. 살짝 유머러스한 이 장면은 얼핏 남매간의 우애를, 동생을 향한 오빠의 애틋함을 보여주는듯하다. 그러나 이 장면은 상기한 에필로그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남성용 중절모를 여동생에게 장난스럽게 씌우는 행동이 사진 촬영이라는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쇼지로가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며 아들로서 받는 기대와 역할을 거부함을 함축한다면, 결말부에 모자가 벽에 걸리는 장면은 그러던 그가 이제는 장남을 대체하는 가부장으로서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음을 단적으로 재현한다. 동생에게 떠넘기듯 모자를 씌어주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거부한다는 뜻을 상징적으로 연출하며 도쿄를 훌쩍 떠났던 쇼지로가 뒤늦게나마 모녀를 거부했던 장남의 대체자이자 오빠로서의 권위를 모녀에게 현현하자 잃어버렸던 혹은 새로운 지위를 (되)찾았음을 확인하듯 모자는 동생의 머리로부터, 그리고 바닥으로부터 들어올려져 원래 있었어야할 자리인 벽에 제대로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앞뒤에 두 번 나오는 쇼지로의 모자는 서사를 보충하고 확실히 매조짓는다.

세츠코의 남편감을 논하는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거기에 친구 토키코를 오빠에게 소개하려는 대목까지 있음에도) 굳이 남매간의 근친상간 암시를 읽어내기보다는 쇼지로의 위상 변화를 축약하는 소품의 위치 변화를 통해 서사의 수미상관이 확인된다. 가족의 별리와 해체를 집요하게 반복해온 오즈의 필모에서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지만 달리 보면 가족이 (부분)재결합하는 이야기이기도하다. 전중과 전후 각각 두 작품을 거친 뒤 <만춘>부터 본격화되는 오즈적 형식이 안착하기 이전의 작품들은 이렇게 비교의 재미를 선사한다. 모녀가 형제들 집을 전전한다는 플롯은 노부부가 자식들 집을 떠돌던 <도쿄이야기>를, 결혼이 아닌 이사나 이주로 가족이 해체되는 결말은 <도쿄의 황혼>과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을 상기시킨다. 후반기 작품들에서 주로 딸이 극을 이끌어간다면 여기서는 아들과 딸이 주인공의 역할을 나누어 갖는다. 가족, 정확히는 한 가문이라 할 혈연 공동체가 현대 사회에서 왜 유지되지 못하고 해체되거나 재구성되는가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 이들 중기 작품들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엔 영화 밖 현실에서 실제 진행중이던 전쟁이 없고 가족 바깥의 세상이 없다. 그대신 복원되는 가부장과 그 권위가 있다. 가부장의 죽음과 함께 불길한 엔딩을 보여준 <고하야가와가의 가을>과는 반대이지만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 자식 앞에서 체면을 잃거나(<태어나기는 했지만>) 여성들의 부상과 함께 퇴장하는 아버지 세대를 짓궃은 시선으로까지 바라보던 것과는 제법 다른. 본작이 전중에 나온 것은 그저 우연일까.

동생에게 아내의 정조를 시험해달라고 부탁하는 대목만 보면 마치 다니자키 준이치로나 에도가와 란포처럼 보이지만 <행인>은 음습한 성적 욕망에 매달리는 정신병리의 해부 수준을 넘어 작품이 쓰이던 당대에 새로이 나타난 어떤 풍경을 포착하고 있다. 관찰자이자 화자인 지로가 바라보는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인 그의 형 이치로는 학문에 헌신하느라 평범한 일상은 커녕 한 집에 살고있는 가족 구성원 전체와 불화를 겪는 중이다. 표면적으로 불거지는 사건도 없고 일상은 그런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부모, 아내, 동생 모두 뒤에서 그를 걱정하는 동시에 불편해하는 가운데 특히 형제와 이치로의 아내 세 사람간의 내적 긴장은 내내 팽팽하다. 문제의 핵심은 겉으로 봐서는 존경받는 학자이자 선생인 이치로에게 그래서 정확히 무슨 문제가 생긴건지를 알 수 없다는데 있다. 가족들은 저마다의 눈으로 이치로를 판단하는데 형의 이상 성격에 대해서는 지로도 이미 일찌감치 나름의 가설을 갖고 있다.

 

살아있는 것들로부터 점점 고립되어 책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형을 평소보다 배나 딱하게 여기는 일도 있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형님이 학문 이외의 일에 시간을 쓰는걸 아까워하고 모든 일을 남한테 맡겨둔 채 아무 일에도 손을 대지 않고 화족인 양 행세하는 것이 애초에 잘못이에요. 아무리 연구할 시간이 소중하고 학교 강의가 중요하다고 해도 평생 한곳에서 함께 생활해야 할 자기 아내 아닌가요?"
지로가 보기에 형은 공부를 너무 많이 탓에 성격이 이상해졌다. 그럼 다른 가족의 관점은 어떨까. 손님들 앞에서 느닷없이 들려주는 아버지의 이야기에도 장남에 대한 나름의 진단이 숨어있다. 그 이야기를 요약한즉슨 이십여년 전, 약혼까지 했음에도 이후에 일방적으로 실연당했던 여인이 세월이 그렇게 흐른 지금까지도 자신이 버림받은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는 것인데 같이 이야기를 듣고있던 사람들 중 이치로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자신과 이야기 속 여인이 같은 처지라고 믿기 때문인데 여인의 한마디는 곧 그의 속내이기도하다. 
"다만 양쪽 눈을 멀쩡히 뜨고 있으면서도 남의 마음을 알 수 없는게 가장 괴롭습니다."
 
높은 학식을 쌓았지만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괴로워하는 이치로는 단순히 의처증을 앓는게 아니다. 그가 품은 근심에는 더 깊은 뭔가가 있는데 가족들은 저마다 보고 싶은 것 혹은 볼 수 있는 것만을 볼 뿐 누구도 정확하게 그 근심을 짚어내지 못하거나 모른 척 할 뿐이다. 결국 이 과업을 이뤄내는 이는 이를 알아내기 위해 이치로와 함께 여행을 떠난 그의 친구인데 여행지에서 그가 지로에게 보낸 긴 편지에서야 비로소 그 해답을 유추해볼 수 있는 나름의 단서가 흩어져있다.
형님은 바둑을 두는 것은 물론이고 뭘 하든 다 싫었다고 하네. 동시에 뭔가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고 하네. 그 모순이 이미 형님에게는 고통이었다네.

형님은 책을 읽어도, 사색을 해도, 밥을 먹어도, 산보를 해도 스물네 시간 뭘 해도 거기에 안주할 수 없었다고 하네. 뭘 해도 이런 걸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기분에 쫓기게 된다고 하네."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목적이 되지 못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네"하고 형님은 말했네. ......형님이 괴로워하는 것은 그가 뭘 해도 그게 목적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수단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네. 그냥 불안한거지.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 없는거네. 

형님의 머리는 지나치게 명민하여 자칫하면 자신을 내버려두고 앞으로 가고 싶어하네. 마음의 다른 도구가 그의 이지와 보조를 맞춰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데에 형님의 고통이 있는거네. 인격에서 보면 거기에 빈틈이 있는거지. 인격에서 보자면 거기에 파멸이 숨어있네. 형님을 위해 이 부조화를 슬퍼하는 나는 모든 원인을 지나치게 작동하는 이지의 죄로 돌리면서도 역시 그 이지에 대한 경의를 버릴 수가 없네.

형님 입장에서 보면 반듯한 머리가 곧 흐트러진 마음이네. 그래서 나는 혼란스럽네. 머리는 확실하지만 정신은 어쩌면 좀 이상할지도 모른다, 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신용할 수 없다.

 

그러니까 지성과 감성이 서로 보조를 맞추지 못한 채 한쪽이 너무 비대해진 나머지 조금씩 정신이 분열되어가는 이치로는 근대적 인간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머리'와 '마음'간의 균열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상해져버린 '정신'. 머릿속에 다 집어넣기도 힘들만큼 서구로부터 지식이 쏟아져들어오던 시대, 그 지식을 체득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의 생각이, 사상이 바뀌어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으로 대표되는 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산시로> 속 문장을 빌리자면 '먼 세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정치, 경제, 사상 등 세상 돌아가는 원리와 문물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감각은 둔해져가는 탓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속을 몰라 애를 태운다. 뿐만 아니다. 아는게 많아질수록 모르는게 더 많다는걸 깨달으며 생긴 초조함과 조급함, 불안 때문에 인간에는 더욱 소홀해지고 그렇게 자신으로 인해 인간 관계가 파열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대를 의심하고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부조리를 가한다. 원인 모를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인간의 등장이라는 전환기의 풍경은 메이지 시대 일본이 동시대 서구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동시대 서구 작가들의 장황한 사변적 서술이 아닌 소박한 가족 드라마의 외양을 취한 점은 소세키만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찌보면 지금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을 근대 시기를 살아가던 인간의 내면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정작 장편소설 한 권이 다 끝날 때까지 알게된거라곤 시대에 적응하려다 내파된 인간의 고통이라는 외양뿐이고, 그래서 대체 이치로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또다른 누군가의 또 하나의 잠정적 가설만 남는다. 그래서일까. 이토록 알기 어려운 한 길 사람 마음속에 대한 소세키의 본격적 탐구는 차기작 <마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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