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아내의 정조를 시험해달라고 부탁하는 대목만 보면 마치 다니자키 준이치로나 에도가와 란포처럼 보이지만 <행인>은 음습한 성적 욕망에 매달리는 정신병리의 해부 수준을 넘어 작품이 쓰이던 당대에 새로이 나타난 어떤 풍경을 포착하고 있다. 관찰자이자 화자인 지로가 바라보는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인 그의 형 이치로는 학문에 헌신하느라 평범한 일상은 커녕 한 집에 살고있는 가족 구성원 전체와 불화를 겪는 중이다. 표면적으로 불거지는 사건도 없고 일상은 그런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부모, 아내, 동생 모두 뒤에서 그를 걱정하는 동시에 불편해하는 가운데 특히 형제와 이치로의 아내 세 사람간의 내적 긴장은 내내 팽팽하다. 문제의 핵심은 겉으로 봐서는 존경받는 학자이자 선생인 이치로에게 그래서 정확히 무슨 문제가 생긴건지를 알 수 없다는데 있다. 가족들은 저마다의 눈으로 이치로를 판단하는데 형의 이상 성격에 대해서는 지로도 이미 일찌감치 나름의 가설을 갖고 있다.

 

살아있는 것들로부터 점점 고립되어 책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형을 평소보다 배나 딱하게 여기는 일도 있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형님이 학문 이외의 일에 시간을 쓰는걸 아까워하고 모든 일을 남한테 맡겨둔 채 아무 일에도 손을 대지 않고 화족인 양 행세하는 것이 애초에 잘못이에요. 아무리 연구할 시간이 소중하고 학교 강의가 중요하다고 해도 평생 한곳에서 함께 생활해야 할 자기 아내 아닌가요?"
지로가 보기에 형은 공부를 너무 많이 탓에 성격이 이상해졌다. 그럼 다른 가족의 관점은 어떨까. 손님들 앞에서 느닷없이 들려주는 아버지의 이야기에도 장남에 대한 나름의 진단이 숨어있다. 그 이야기를 요약한즉슨 이십여년 전, 약혼까지 했음에도 이후에 일방적으로 실연당했던 여인이 세월이 그렇게 흐른 지금까지도 자신이 버림받은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는 것인데 같이 이야기를 듣고있던 사람들 중 이치로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자신과 이야기 속 여인이 같은 처지라고 믿기 때문인데 여인의 한마디는 곧 그의 속내이기도하다. 
"다만 양쪽 눈을 멀쩡히 뜨고 있으면서도 남의 마음을 알 수 없는게 가장 괴롭습니다."
 
높은 학식을 쌓았지만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괴로워하는 이치로는 단순히 의처증을 앓는게 아니다. 그가 품은 근심에는 더 깊은 뭔가가 있는데 가족들은 저마다 보고 싶은 것 혹은 볼 수 있는 것만을 볼 뿐 누구도 정확하게 그 근심을 짚어내지 못하거나 모른 척 할 뿐이다. 결국 이 과업을 이뤄내는 이는 이를 알아내기 위해 이치로와 함께 여행을 떠난 그의 친구인데 여행지에서 그가 지로에게 보낸 긴 편지에서야 비로소 그 해답을 유추해볼 수 있는 나름의 단서가 흩어져있다.
형님은 바둑을 두는 것은 물론이고 뭘 하든 다 싫었다고 하네. 동시에 뭔가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고 하네. 그 모순이 이미 형님에게는 고통이었다네.

형님은 책을 읽어도, 사색을 해도, 밥을 먹어도, 산보를 해도 스물네 시간 뭘 해도 거기에 안주할 수 없었다고 하네. 뭘 해도 이런 걸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기분에 쫓기게 된다고 하네."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목적이 되지 못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네"하고 형님은 말했네. ......형님이 괴로워하는 것은 그가 뭘 해도 그게 목적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수단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네. 그냥 불안한거지.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 없는거네. 

형님의 머리는 지나치게 명민하여 자칫하면 자신을 내버려두고 앞으로 가고 싶어하네. 마음의 다른 도구가 그의 이지와 보조를 맞춰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데에 형님의 고통이 있는거네. 인격에서 보면 거기에 빈틈이 있는거지. 인격에서 보자면 거기에 파멸이 숨어있네. 형님을 위해 이 부조화를 슬퍼하는 나는 모든 원인을 지나치게 작동하는 이지의 죄로 돌리면서도 역시 그 이지에 대한 경의를 버릴 수가 없네.

형님 입장에서 보면 반듯한 머리가 곧 흐트러진 마음이네. 그래서 나는 혼란스럽네. 머리는 확실하지만 정신은 어쩌면 좀 이상할지도 모른다, 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신용할 수 없다.

 

그러니까 지성과 감성이 서로 보조를 맞추지 못한 채 한쪽이 너무 비대해진 나머지 조금씩 정신이 분열되어가는 이치로는 근대적 인간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머리'와 '마음'간의 균열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상해져버린 '정신'. 머릿속에 다 집어넣기도 힘들만큼 서구로부터 지식이 쏟아져들어오던 시대, 그 지식을 체득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의 생각이, 사상이 바뀌어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으로 대표되는 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산시로> 속 문장을 빌리자면 '먼 세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정치, 경제, 사상 등 세상 돌아가는 원리와 문물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감각은 둔해져가는 탓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속을 몰라 애를 태운다. 뿐만 아니다. 아는게 많아질수록 모르는게 더 많다는걸 깨달으며 생긴 초조함과 조급함, 불안 때문에 인간에는 더욱 소홀해지고 그렇게 자신으로 인해 인간 관계가 파열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대를 의심하고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부조리를 가한다. 원인 모를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인간의 등장이라는 전환기의 풍경은 메이지 시대 일본이 동시대 서구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동시대 서구 작가들의 장황한 사변적 서술이 아닌 소박한 가족 드라마의 외양을 취한 점은 소세키만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찌보면 지금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을 근대 시기를 살아가던 인간의 내면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정작 장편소설 한 권이 다 끝날 때까지 알게된거라곤 시대에 적응하려다 내파된 인간의 고통이라는 외양뿐이고, 그래서 대체 이치로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또다른 누군가의 또 하나의 잠정적 가설만 남는다. 그래서일까. 이토록 알기 어려운 한 길 사람 마음속에 대한 소세키의 본격적 탐구는 차기작 <마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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