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작인 <도다가의 형제자매들>에는 실제 전시였던 제작 당시의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후반부에 제사를 위해 도쿄로 돌아온 쇼지로가 입고있던 국민복이 그나마 유일한 표식이라고 할까. 오즈로 대표되는 일본의 가족 영화 장르가 전시 체제를 은폐하기 위한 것에서 기원한다는 비판적 코멘트를 오시마 나기사가 한 바 있는데 전시기에 나온 오즈의 연출작 두 편(다른 하나는 42년작 <아버지가 있었다>)도 모르고 보면 이런 점을 알아채기는 쉽지않다.

 

그래서일까. 이 두 편의 플롯은 더 내밀하고 더 내향적이다. 어떤 이는 본작이 내밀한 이야기의 극단이라할 (쇼지로와 세츠코 사이의)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지만 작품 전체를 감상했을 때 느껴지는 실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른바 '오즈적 양식'이 거의 완성된 <만춘>(1949) 이후부터의 작품들과 가장 대비되는 본작의 서사상 특징은 영화의 초반부에 일찌감치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 그러고나면 남겨진 자식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가 없는 딸과 아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오즈 영화에는 어색하고 위화감이 느껴지는 장면이 꼭 있다. 현재의 관객과 작품 사이에 놓인 시공간의 격차에서 비롯한 불감이나 불통, 몰이해일 수 있겠으나 이런 순간들은 거의 항상 있고 여기에 집중하다보면 영화는 부조리극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연기 양식의 차이일수도, 사고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는. 이를테면 본작의 장례식 시퀀스에서 철야하느라 지친거 아니냐며 낮잠이라도 자두라고 세츠코에게 충고하고는 거의 바로 뒤에 다시 주먹밥을, 그것도 크게 만들어오라고 쇼지로가 시키는 장면, 또는 그 바로 뒤에 툇마루에 나가 돌연 "날씨 좋다"라는 관습적 대사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러한 위화감이나 이물감이 감상 전체를 크게 방해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캐릭터를 볼 때마다 몰입으로부터 빠져나오는건 사실이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말한 '교화적 커뮤니케이션'을 불필요하고 있으나마나한 '잉여'라 규정해본다면 거의 모든 작품에 이렇게 돌출하는 말과 행동이 있다는 점에서 잉여는 적어도 오즈 영화에서 엄연한 하나의 주제론적 세부라고 할 수 있을테고, 본작은 아예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잉여'가 인물이자 플롯이고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의 사망 후 짐짝처럼 번거로운 존재가 된 모녀가 그렇고, 다른 형제들의 집을 전전하면서 번번이 거부당한다는 줄거리가 그렇다. 박한 대접을 받던 모녀는 결국 아버지의 사망 후 남은 가족들이 쓸모가 없어 처분하기로한 또다른 잉여인 구게누마의 낡은 별장으로 거처를 옮긴다. 잉여의 인물들이 또다른 잉여의 장소로 옮기는 것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기르던, 그리고 모녀와 함께 데려와야한다는 사실에 형제들이 꺼리던 구관조와 분재 또한 두 모녀와 같은 처지를 상징함은 두말할 것도 없어서 오즈는 이 둘의 정물샷을 빼놓지 않는다.

 

잉여를 엄연한 주제론적 세부라고 한다면 얼핏 불필요해보이는 장면은 그래서 알고보면 전혀 불필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단지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기위해서 또는 시퀀스의 전환 사이 심리적 여유를 두기위한 철저히 기능적인 장면이더라도 온갖 필로우샷으로 넘쳐나는 오즈의 세계에서는 영화의 주제를 집약하는 단 하나의 컷일 수 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방석 위에 놓인 모자들은 일차적으로는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의 성별, 사회적 지위 그리고 외출시 모자가 필수였던 시간적 배경을 가늠케한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모자는, 특히 어떤 모자는, 그러니까 영화의 초반부와 결말 두 번 나오는 쇼지로의 모자는 그 주인에 대해 뭔가를 말하고 있고 위에 삽입된 컷은 그 뭔가를 다시 응축한 단 하나의 컷이 된다. 제자리에 놓인, 제자리에 놓여야 할, 처음부터 그 자리가 정해져있는 물건.

 

제사를 위해 돌아온 쇼지로는 자신이 떠나있던 동안 모녀의 사정을 알게되자 형제들을 하나하나 강하게 추궁하고는 이제부터는 자신이 같이 지내겠다며 두 사람에게 큐슈로 같이 떠나자고 한다. 여기서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갈등도 해결된 셈이지만 잉여로 넘쳐나는 영화답게 제법 짧지않은 에필로그가 붙어있다. 바로 여기에 돌출된 장면이, 동작이 나온다. 쇼지로와 대화를 나눈 후 방에서 나가려던 세츠코가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오빠의 모자를 보고는 주워 벽에 걸어두는 것이다. 얼핏 보면 없어도 그만인, 이후에 복선이나 암시로서 어떠한 기능도 하지않는 장면이다. 그러기에는 곧 영화가 끝난다. 그런데 쇼지로의 모자는 극초반부에도 한번 나온 바 있다. 울고있는 세츠코의 머리 위에 쇼지로가 자신의 모자를 장난스레 씌우는 것이다. 살짝 유머러스한 이 장면은 얼핏 남매간의 우애를, 동생을 향한 오빠의 애틋함을 보여주는듯하다. 그러나 이 장면은 상기한 에필로그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남성용 중절모를 여동생에게 장난스럽게 씌우는 행동이 사진 촬영이라는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쇼지로가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며 아들로서 받는 기대와 역할을 거부함을 함축한다면, 결말부에 모자가 벽에 걸리는 장면은 그러던 그가 이제는 장남을 대체하는 가부장으로서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음을 단적으로 재현한다. 동생에게 떠넘기듯 모자를 씌어주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거부한다는 뜻을 상징적으로 연출하며 도쿄를 훌쩍 떠났던 쇼지로가 뒤늦게나마 모녀를 거부했던 장남의 대체자이자 오빠로서의 권위를 모녀에게 현현하자 잃어버렸던 혹은 새로운 지위를 (되)찾았음을 확인하듯 모자는 동생의 머리로부터, 그리고 바닥으로부터 들어올려져 원래 있었어야할 자리인 벽에 제대로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앞뒤에 두 번 나오는 쇼지로의 모자는 서사를 보충하고 확실히 매조짓는다.

세츠코의 남편감을 논하는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거기에 친구 토키코를 오빠에게 소개하려는 대목까지 있음에도) 굳이 남매간의 근친상간 암시를 읽어내기보다는 쇼지로의 위상 변화를 축약하는 소품의 위치 변화를 통해 서사의 수미상관이 확인된다. 가족의 별리와 해체를 집요하게 반복해온 오즈의 필모에서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지만 달리 보면 가족이 (부분)재결합하는 이야기이기도하다. 전중과 전후 각각 두 작품을 거친 뒤 <만춘>부터 본격화되는 오즈적 형식이 안착하기 이전의 작품들은 이렇게 비교의 재미를 선사한다. 모녀가 형제들 집을 전전한다는 플롯은 노부부가 자식들 집을 떠돌던 <도쿄이야기>를, 결혼이 아닌 이사나 이주로 가족이 해체되는 결말은 <도쿄의 황혼>과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을 상기시킨다. 후반기 작품들에서 주로 딸이 극을 이끌어간다면 여기서는 아들과 딸이 주인공의 역할을 나누어 갖는다. 가족, 정확히는 한 가문이라 할 혈연 공동체가 현대 사회에서 왜 유지되지 못하고 해체되거나 재구성되는가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 이들 중기 작품들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엔 영화 밖 현실에서 실제 진행중이던 전쟁이 없고 가족 바깥의 세상이 없다. 그대신 복원되는 가부장과 그 권위가 있다. 가부장의 죽음과 함께 불길한 엔딩을 보여준 <고하야가와가의 가을>과는 반대이지만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 자식 앞에서 체면을 잃거나(<태어나기는 했지만>) 여성들의 부상과 함께 퇴장하는 아버지 세대를 짓궃은 시선으로까지 바라보던 것과는 제법 다른. 본작이 전중에 나온 것은 그저 우연일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