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의 사망 후 만들어진 거슬리는 사운드로 악명높은 메탈리카의 마스터피스가 (음반이 품고있는) 사회정치적인 불만이 여전히 고통스러운 30주년에 기념 처방을 크게 받았다.


 …And Justice for All (이하 <저스티스>)는 가장 거대한 메탈밴드의 베스트 앨범이다. 당신이 <Master of Puppets>를 꼽으리란걸 알지만 눈을 감은 정의의 여신을 줄에 묶고 저울에 올려놓아봤다. <저스티스>가 이긴다. 보컬 제임스 헷필드와 드러머 라스 울리히의 송라이팅은 이 음반에서 가장 복잡하고 지독한데 그들의 초기 스래시가 가지고 있던 단출한 학생밴드스러운 매력을 벗어던지고 압박감이 (스래시보다) 덜한 하드락 경향을 회피하면서도 그 초기 시절의 힘을 유지하고 있다. 이용, 남용, 경험 그리고 키스 문으로 하여금 비싼 자동차를 수영장으로 몰고가게할만큼 충분한 맥주와 예거마이스터가 헷필드의 높고 날카로운 외침을 뭔가 더 꽉차고 더 강력하게 조율했다. 훗날 그 특유의 시가를 씹는듯한 샤우팅 없이 말이다. 가사는 사람들의 힘을 빼앗아 반격할 수 없게끔 끌어내리는 관료 질서에 대한 기초적인 묘사로 이루어져있고, 사운드는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강도에 있어서는 거의 인더스트리얼에 가깝다. 톱니모양의 강철 한 조각이 당신을 깎아내고는 그 상처에 허무주의를 심어놓는다. 아, 그리고 아마 당신은 이런 말을 들을 것이다. 베이스 소리가 안 들린다고.

30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링된 <저스티스>는 여러 포맷으로 재발매 됐다. 보너스반이 수록된 3장짜리 디스크부터 6장의 LP, 4장의 DVD, 11장의 CD로 구성된 괴물 같은 디럭스반이 있는데 사진과 라이너노트가 들어간 하드커버 책도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프린트, 패치들이 충분히 채워져있어서 크리스마스 양말을 채우기에 잘 어울리게 되어있다. 30년 후 <저스티스>는 그 시끄러웠던 논쟁만큼 사랑받는 유일한 메탈리카 음반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나머지 음반들은 조금씩 그 균형이 맞지않는다). 1986년 버스사고로 원년 베이시스트인 클리프 버튼이 사망한 후, 밴드는 그 대체자로 제이슨 뉴스테드를 영입한다. 그와 투어를 돌면서 밴드는 함께 커버 EP를 녹음해 그가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그리고는… 제이슨이 최초로 함께한 정규작인 <저스티스>의 믹싱 과정에서 그를 완전히 묻어버렸다. 그 결과는 800만장 이상을 팔아치운 앨범 중에서는 가장 귀에 거슬리는 사운드를 가진 음반이 되었다. 이건 마치 녹음된 군중 소리나 가짜 방 같은 소리를 집어넣는 대신에 이명을 미리 실어놓은 격이다.

최종 믹스에서의 뉴스테드의 (베이스 사운드) 부재는, 변명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쉽다. 몇가지 요소는 악의가 없다. 세 명의 원년 멤버와 신입은 서로의 연주 스타일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고 그것이 뉴스테드로 하여금 그의 베이스라인 대부분을 그저 헷필드의 리듬 기타를 따라가게 만들었다. 헷필드 스스로는 낮고 분쇄하는듯한 사운드를 목표로 하면서, 뉴스테드가 채워넣었어야할 베이스 음역 대부분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이 디럭스 세트에 담겨있는 여러 프로듀서, 믹서, 엔지니어들의 장황한 라이너노트를 읽어보면 좀더 직접적이고 덜 듣기좋은 설명을 암시하고 있다. 베이스가 거기에 없었던 이유는 밴드가, 직접적으로 울리히와 헷필드가 그 자리에 뉴스테드가 있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입’을 향한 이러한 지나친 텃세부리기가 오랜 기간 계속된 것이 훗날 뉴스테드의 밴드 탈퇴를 야기한걸까? 그것은 암묵적인 형태의 부정이자, 스튜디오 안의 대체자를 지워버림으로써 버튼의 죽음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처리해버린걸까? (아니면) 본인이 다루는 악기의 사운드에 대한 자신만의 비전이 너무 구체적이고 요구하는게 많은 나머지 그에 응해 도와주려했던 이들이 여전히 두려워하며 말할 정도로 밴드 내 가장 지배자적 성격을 가진 울리히에 의한 그저 권력 과시일 뿐일까? 그 답은 “이들 전부를 합친 것 그 이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들리지 않게 되버린 뉴스테드의 작업물을 만들기위한 열정 때문에 이 이야기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가 된 프로듀서 플레밍 라스무센과, 울리히의 명령을 따른 것을 후회한다고 했던 믹서 스티브 톰슨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모두들 지금은 그 결과물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뉴스테드도 “’그것(이 앨범의 사운드)이 어땠어야 하는가’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결과물로 나왔고 무엇이 세상의 주목을 끌어냈는가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리이슈에 관여한 모든 이들에게 큰 공을 인정하면서 말하자면, 이것은 과거를 다시 쓰려고 시도했던 스타워즈 스페셜 에디션이 아니다. 어쩌면 스냅과 팝과 몇 개의 레이어가 더 들렸을 수는 있겠지만 이것은 복원판도, 수정판도 아니다. ‘엔터 샌드맨’보다는 같은 시기에 나온 미니스트리의 ‘스티그마타’에 더 가까운 <저스티스>의 공격적이고 미친듯한 사운드를 만든 모든 것은 지난 삼십년간 그대로 남아있다 (만일 베이스 소리가 더 듣고 싶다면 그 가려움은 유튜브가 긁어줄 수 있다). 제이슨 스스로 정의가 행해졌다고 느끼는 현 시점에서 리마스터 버전이 <제이슨을 위한 정의>(베이스 소리를 복원한 버전)가 아니라는 점이 더 많은 분노를 모으기는 어렵다.

<저스티스>는 목을 부러뜨리는 속도로 시작하고 끝난다. 오프닝 트랙인 “Blackened”는 <마스터 오프 퍼펫츠>에서의 “Battery”가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풀 스피드로 치고나가는 것 말이다. 이 곡은 핵 절멸과 전지구적 멸종에 관한 명상으로서 몇 번의 비틀기를 동반한다면 점점 나빠지는 우리 시대의 기후 위기에도 적용될 수도 있다. “Fire is the outcome of hypocrisy… Color our world blackened,” 헷필드는 자신이 내뱉은 단어를 또다른 퍼커션의 일부인 것처럼 샤우팅한다. 보수주의로 밀어넣는 부모들을 향한 헷필드의 “undying spite”에 관한 장광설인 마지막 곡 “Dyer’s Eve”는 “Blackened”못지않게 묵시록적이다. 이제는 나 자신을 포함한 한 사람의 부모로서 가장 최악의 공포, 즉 내 자식이 “당신이 늘 알고 있었던 지옥”으로 끌려가는 그 공포가 메아리친다.

저런 양 끝 지점 사이에 위치한 노래들은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고 길며(거의 모든 곡이 6분을 넘어간다) 테크닉적으로는 헷필드, 울리히, 기타리스트 커크 해밋 모두 그들의 사회정치적 강조점을 만들기위해 (테크닉을) 이용하고 있다. 정치적 히스테리아의 희생자에 관한 노래인 “The Shortest Straw”의 리프는 마치 군중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시도처럼 스피드가 가장 빠르다. 더 느리고 거의 슬러지한 사운드인 “Harvester of Sorrow”는 그 첫번째 가사를 반영한다. “My life suffocates”. 반순응주의의 찬가인 “Eye of Beholder”의 호전적인 훅은 저 멀리서부터 점점 페이드인으로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마치 무장한 호위대가 접근하듯이. 스튜디오 바깥에서 벌어지는 밴드의 질펀한 파티를 묘사하는 거의 보기드문 유머가 담긴 “The Frayed Ends of Sanity”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ohh-WEE-ohh, YOOO-ohh” 부분을 따와 집어넣었다. LL Cool J는 이 노트를 따야만한다.

<저스티스>의 중심에는 당연히, 사지가 절단된 참전용사에 관한 거의 8분에 가까운 “One”이 있다. 패닉 발작 같은 사운드의 해밋의 기타 솔로와 헨드릭스 스타일의 “Machine Gun” 자극이 있는 마지막 부분에서 폭발하기 전부터 이 곡은 확장된 퓨즈처럼 불꽃이 튄다. 달튼 트럼보의 반전 소설 <Johnny Got His Gun>의 영화 버전에서 가져온 괴로운 장면과 밴드의 흑백화면을 진지하게 엮어서 만든 거의 타협하지 않는 뮤직비디오 덕분에, 이 곡은 밴드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고 MTV와는 그 어떠한 공통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수없이 방송되었다. 다시 들어보니, 얼마나 적은 시간과 친숙함이 그 임팩트를 무디게 했는지 놀라웠다. 시작할 때의 완고한 네 개의 음으로 된 훅부터 그 후반부의 총격 폭발까지 모든 구성요소들은 하나의 실험 도구처럼 움직인다. 심지어 사지, 눈, 귀, 목소리 다 없는 껍데기뿐인 한 사내의 “life in hell”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당신은 안으로 끌려들어가 노래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12개의 다른 타임 시그니처를 동반한 거의 10분에 달하는 긴 타이틀 트랙은 동일한 테크닉을 수차례 쓰고 있다. 미국 사법 시스템의 불공정함에 관한 가사는 힘차게 절망을 전달한다. “Hammer of justice crushes you,” 헷필드는 코러스 부분 앞에서 역설한다. “Nothing can save us/Justice is lost/Justice is raped/Justice is gone.” 그러나 이들은 김렛에 취한 눈을 한 목격자의 비관적 예언과 멀지 않다. 헷필드는 이 공포스러운 기계의 배 한가운데 붙들려 있고 기계도 점점 그를 빨아들이고 있다. 코러스와 노래 자체는 “Find it so grim, so true, so real.”라고 결론짓는다. 헷필드는 자신은 이 공포에 환각되지 않았으며 이는 실제 벌어진 일이라면서 마치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것처럼 마지막 단어를 뱉어낸다. 이러한 인간적인 터치는 그렇지 않았다면 둔감하고 말았을 음악에 연약함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공기를, 기계 같은 믹스에서는 들을 수 없는 어떤 질적인 것을 선사한다.

그런 점에서 “To Live Is to Die”은 <저스티스>의 로제타석이다. 멜랑콜리한 현악기를 기타가 흉내내는 길고 느릿느릿하게 진행되는 연주곡인 이 곡을, 밴드는 고인이 된 베이시스트에게 헌정하면서 장엄한 슬픔을 예술적으로 분출한다. 버튼 그 자신은(독일 작가 파울 게르하르트나 존 부어맨의 아더왕 영화인 엑스칼리버의 도움으로) 짧은 문단을 바탕으로 한 가사를 육성으로 제공한다. 밴드가 이제껏 그리고 그 이후 녹음한 그 어떤 곡보다 어둡다. “When a man lies, he murders some part of the world,” 헷필드는 버튼의 목소리 너머로 읊조린다. “These are the pale deaths which men miscall their lives. All this I cannot bear to witness any longer. Cannot the Kingdom of Salvation take me home?” “One”에서 코러스는 “Hold my breath as I wish for death”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메탈리카는 사후에 버튼의 죽음의 소원을 발표함으로써 고인이 된 자신들의 친구를 추모한다. 이 앨범은 <블랙 앨범>은 아니지만 그 정신은 그 앨범만큼이나 어둡다.

메탈리카의 작업물에서 악마가 제시되고 버튼의 죽음으로 인한 커다란 암묵적 트라우마가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연주를 계속 했다. 헷필드의 리프 실험, 작곡 세션, 데모 레코딩 그리고 많은 커버를 담고 있는 B-side와 더불어 이 디럭스 세트는 여섯개의 콘서트(와 세 개의 자투리들도)를 수록하고 있다. 이들은 그들이 근자에 겪은 비극을 과거로 갈아내려는 메탈리카의 결단을, 라이너 노트 인터뷰는 이 음반에서 반복되는 테마를, 그리고 로스 핼핀과 다른 이들이 찍은 수백장에 달하는 생생한 사진이 담긴 책도 하나의 가시적인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실황녹음은 이미 이전에 발매된 89년 시애틀부터 델라웨어의 작은 락클럽인 스톤 벌룬(울리히는 그 공연에서 그들이 모든 주에서 그렇게 공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에서의 공연까지 실려있다. 비록 사운드 퀄리티는 천차만별이고 어떤 건 그저 <저스티스> 한 곡 밖에 없지만, 이들은 그룹이 현실적으로 커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어떤 밴드도 무대에서 날려버릴 수 있었다. 새미 헤이거는 자신이 쓴 에세이에서 실제로 몬스터즈 오브 락 투어에서 메탈리카를 따라다니던 때의 압박감을 회고하고 있는데 이때 불쌍한 도켄은 해체되었다.

<저스티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재 시점에 대해 독창적인 선견지명을 보여주었다고 말하는건 이 음반이 가진 힘을 저렴하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메탈리카는 미래를 예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변에서 본 것을 묘사했다. 그것이 그들을 세계의 지배자로 만든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저스티스>가 처음 나왔을 때 그러했듯이 지금도 그렇게 들린다면 그건 오직 이 앨범의 가치를 증명할 뿐이다. 그리고 이 음반의 음향적 시그니처가 주는 충격(사라진 베이스 소리)을 완화한다거나 더 귀가 즐겁도록 다듬기를 거부함으로써 이번 리이슈는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이 가사뿐 아니라 시간으로부터의 시험도 견뎌낸다는 것을 정확하게 함의하고 있다. 모든 악몽의 기록에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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