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앨범이 아닌 정규풀렝쓰작업에 셀프타이틀을 붙인다는건 지금까지의 커리어에 한번 매듭을 짓고 신작로를 내겠노라며 원대한 야심을 공표하는 출사표에 가깝다. 이 경우 아닌게아니라 실제로 이전과 구분되는 회심의 역작인 경우가 적지않은데 너무 유명한 몇몇 경우만 들어보더라도 밥 락의 영입을 통해 사운드레코딩에서 혁신을 이뤄냄과 동시에 스래시메탈의 차트 점령이라는 지상 상륙에 성공한 메탈리카의 91년작 "까망이". 그리고 직전까지의 뽀송뽀송한 브릿팝과 결별하고 노이즈 자글자글한 미국인디씬의 공기를 적극 흡수했던 블러의 97년작이 있다. 물론 그중에는 정규앨범 여섯장을 내는동안 단 한번을 제외하고 전부 셀프타이틀을 달아놓고는 메탈리카와 비틀스의 색깔놀이를 적극활용해 파랑이, 녹색이, 빨강이 등등으로 구분하는 위저도 있다.

윌코가 이년만에 내놓은 신작 wilco(the album)은 어떨까. 셀프타이틀이기도하고 아니기도하고 긴가민가 이러쿵저러쿵...

그렇다면  이번 신작도 2002년의 <yhf>처럼 지금까지의 경력과 단절을 이뤄내고 또 한번의 도약을 하고있을까.(중언이긴하지만 <yhf>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다섯장, 아니 세장 안에도 들어갈만하다.)내 첫인상은 '전작보다 왠지 모르게 심심하다'였는데 <sky blue sky>가 단 두 곡을 빼고는 별로였으며(그 두 곡은 타이틀 트랙과impossilble germany였음) 그래서 신작이 더 좋은데 이전보다 훨씬 더 양키냄새가 짙다는 누군가의 코멘트를 듣고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전작을 더 후하게 쳐주는 것도 역시 한 두곡, 더 정확히는 impossible germany때문이었던거 같다. 물리적으로나(곡길이) 감정적 여운으로보나 음반내에서 그 곡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나머지 앨범 전체에 대한 인상까지 결정해버린 것이다.

거칠게 분류를 해보자면 <sky blue sky>가 다소 분방할 정도로 판을 벌려놓은데 반해 <wilco(the album)>은 그 판을 주섬주섬 추스리는 느낌이다. <summer teeth>때도 그랬지만 <yhf>이후로 윌코는 지속적인 비평적 호의 속에서 얼트컨트리라는 카테고리를 완전히 떼어내고 가장 미국적인 락밴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며 몸사리지않고 마음껏 하고싶은걸 하는 축복을 누리고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짐 오루크처럼 적재적소에 필요한 조력자가 있기도했고.)<a ghost is born>에 실렸던 spiders와 <sky blue sky>의 impossible germany를 가장 명징한 예라고 할 수 있을텐데 십오년이상의 세월동안 꾸준히 팬과 비평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불가능한 임무"를 장기수행해오면서 셀프타이틀의 의미를 모를 리없는 윌코는 이번에 오히려 심플하고 밋밋할 수도 있는, 마치 자신들의 밴드 이름만큼이나 간결하고 똑 떨어지는 노래를 만들고싶었던가보다. 여기엔 5분을 넘어가는 노래도 거의 없고,  웬만한 중견밴드의 히트곡 모음집같았던 <summer teeth>를 떠올리게할 정도로 귓가를 맴도는 의외의 "후크송"들도 자리하고있다. 제프 트위디는 여기에 대해 곡작업이 작년 미국대선기간동안 진행되면서 받았던 영향을 애써 부정하지않는다.("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움직였죠. ...만약 선거결과가 달랐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 세상에서 이 노래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을것 같군요." 뉴스위크 인터뷰중에서) 실제로 트위디는 몇년 전에 처음 알게된 이래로 지금까지 쭉 오바마와 연락을 주고받고있다고하는데 오바마와 트위디 둘다 각자의 영역에서 시카고라는 자신의 '지역구'에 보통 이상의 의미를 두고있는 대표적인 시카고 저명인사들로서 서로 격려하는가운데 같이 기운이 상승했나보다. (지난 몇년간의 투어와 경험 속에서 쓰였다고는하지만 사실 윌코 정도되는 규모의 밴드들에게는 전부 해당하는 사항이라고볼때 이런 발언은 사족에 불과하고 그렇다면 이번 음반을 전작들과 구분짓게하는 전반적인 분위기의 원인을 찾으려는 이들은 좀더 수고해야겠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나 케빈 드류(이건 일반적인 품앗이와는 좀 다른 경우지만)에서 보듯 단순히 셀링포인트 홍보나 예우차원이 아닌 알짜배기 품앗이를 해온 파이스트가 4번 트랙인 you&i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특별한 고저강약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 노래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까슬까슬한 트위디의 그것과 큰 무리없이 주거니받거니하고있다. 역시 친화형 보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고해야할까.(내가 파이스트 빠돌이라서만은 아니라는...)

왠지 고급패션지에나 실릴법한 꽤나 우아한 커버를 앞세운 wilco(the album)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민밴드가 있다면 그런 밴드가 담보해야할 보편성이란 뭔지 살짝 보여준다. 아마추어가 섣부른 치기, 근거없는 자신당당함, 요란함으로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형용한다면 어깨에 힘을 뺀 농익은 프로의 무색무취함이야말로 프로뮤지션만이 갖출 수 있는 매력이자 미덕임을 이 음반은 몸소 웅변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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