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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어느 옛 현인은 2인관계에서 3인관계로의 변화가 새로운 두사람이 개입되는 4인관계보다 더 흥미롭다고 말한 적이 있다. 2인관계에서 두사람은 개별성을 유지하지만 독립적인 집단 구조나 의미가 없는 반면 3인관계가 되면 각 개인의 개별성이 위협받을 가능성은 있어도 독립된 집단 구조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정확히 뭔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인간 사회의 출현과 발전을 3인구조의 출현과 그로인한 변동이라는 모티브로 설명하고싶었던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리고 이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두사람 사이에 또다른 한사람이 개입하면 그때부터 집단은 변하기시작한다. 한번쯤 경험해봤겠지만 두사람 사이에 어느 한쪽만 알고있는 새로운 사람이 개입되면 그 관계는 좀 묘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앞의 두사람 중 하나는 전에는 안하던 엉뚱한 말이나 장난을 걸면서 분위기를 바꾸려하고 아예 기존에 있던 상대는 없어진마냥 새 사람과 함께 자기들끼리만 좋다고 떠들기도하고 극단적인 경우 세사람 사이에 어색하디어색한 대화가 겨우겨우 이어지다가 금새 흩어져버린다. 하지만 어떤 식이든지간에 그 관계를 조금만 더 세심히 들여다보기시작하면 새로운 사람이 개입되기전 기존 두사람의 관계가 새롭게 재구성된다는걸 알 수 있다. 자기들로서는 당연하게느꼈던 어떤 행위들도 '신입멤버'의 눈에 의해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면서 다시한번 되돌아보게되고 그동안의 관계를 다시한번 사고하게되는 것이다.

어쨌거나저쨌거나 뭐니뭐니해도 역시 3인관계를 얘기함에 있어 삼각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엔 좀 더 복잡한 시선의 교환과 역학이 작동하게되는데 이 역학의 균형이 조금만 어긋나도 세 꼭지점은 무너지고 세사람 서로가 서로를, 그러니까 전부를 잃어버리는 극단의 경우를 낳기도한다는 점에서 삼각관계는 언제나 매력적이고 그래서 치명적이다.

하지만 삼각관계는 그저 일부의, 서로에게 충실하지못한 욕심많은 자들의 이야기일뿐일까? 난 절대 그렇지않다고본다. 이 세상 연인들은 사실 모두 삼각관계에 놓여있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지못하거나 애써 무시하려한다. 우리둘 사랑은 진실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굳건하다고믿지만 두사람 사이엔 언제나 보이지않는 제삼자가 있어왔으며 지금 이순간에도 마찬가지다. 보이지않으므로 평상시엔 그 삼자를 인식하지못하지만 우리는 늘 그의 시선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신경쓰며 연애한다. 그는 나의 열등감과 컴플렉스를 쉴새없이 자극하고 근원모를 의심과 불안의 뒤엉킴 속에서 난 집요한 스토커로 거듭난다. 그 제삼자들은 늘 그 모습을 달리하며 한시도 나에게 눈을 떼지않고 나를 훔쳐본다. 불안한 직장, 먹어가는 나이, 기울어진 집안, 날이 갈수록 시들해지는 성적 매력이나 하나 둘 늘어나는 신체적 약점 그리고 부모와 친구와 직장동료와 동네사람이라는 타인의 그 집요한 시선들 말이다. 

도저히 리차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나이얼이라는 미지의 남자라는 존재는 수를 놓칠지도모른다는 그의 불안감의 현현이며 그건 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얼은 리차드와 수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상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사람을 붙잡지못할지도모른다는 불안, 내가 갖고있는 문제점, 상대에 대한 미안함 등등 자신의 열등감은 미지의 존재의 우월성으로 전환되어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떡하니 나타나 연인을 괴롭힌다.

그 제3의 존재가 결국은 작가라는 이름의 신이었다는 이전까지의 흐름과는 다소 생뚱맞고 맥빠지는 결말을 제외한다면 <매혹>은 삼각관계를 은유하는 냉소적인 텍스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딱 열권만 뽑으려고한다. 그러고보니 거의 다 딱 1년전 그러니까 2006년1월에 읽은 책들이다. 상병 3개월차였는데 휴가간 동기대신 응급대기하고있던 중이라 시간이 정말 많았다. 웹과도, 또 자질구레한 선후임과의 관계와도 상대적으로 멀어진지라 책내용이 잘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농담>, 밀란 쿤데라

말한마디로 전락해버린 남자. 시대가, 국가가, 이념이 그를 버려도 인간이 그를 구원한다. 마지막 장면!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음모,협잡,배신,질투,시기,폭력,LA의 스모그,백만장자,술,담배,갱스터,팜므파탈,문명비판 이 모든게 이 한 권의 소설에 다 있다. 허장성세의 생경한 비유를 즐길 수만 있다면 최고의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이미 읽었던 소설이지만 갇힌 곳에서 몰래 읽는 <장미의 이름>은 얼마나 짜릿했던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한 음반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나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는 컨셉트 음반처럼 이 책은 컨셉트소설집이라 부를만하다. 수록작에서 책제목을 뽑지않았다는점에서, 또 의도였는지아닌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결국 모든 수록작이 하나를 말하고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 2006년에 읽은 최고의 한국소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이렇게 쉽게 쓰여진 개론서가 또 있을까. 모든 학자, 직업적 글쟁이, 학교 선생님들이 이렇게 글을 썼다면 아마 지금쯤 난 좀 더 똑똑한 사람이 되지않았을까.

 

<나는 왜 불온한가>, 김규항

그의 경향이 맘에 들지않을 순 있어도 이토록 강건한 신념의 유지를 뭐라 할만한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에 얼마나될까?

 

<군주론>, 마키아벨리

그래요, 난 남들이 고전이라 부르는 책은 거의 다 안읽어봤어요. 그러니 쉽게 감동할 수 밖에

 

<괴짜경제학>, 스티븐 래빗

전혀상관없어보이는 두 팩트가 서서히 서로의 꼬리를 물고물더니만 온전한 하나의 가설이 완성된다. 기발한 통찰력, 유쾌한 문장,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즐거운 독서경험

 

<피버피치>, 닉 혼비

번역이 안된 <high fidelity>원서를 읽는데 꼬박 몇달을 보내고난 얼마 뒤 이 책을 읽었다. 워낙에 좋아하는지라 딱히 뭐 따로 할 말은 없음

 

<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탈락된 쟁쟁학 책들이 많았던지라 마지막을 뽑기가 괴로웠다. 그렇게 좋은 책들이 많았다. 하지만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을 마지막으로 정했다. 다시금 영화를 찾아보게만든, 그럼으로써 다시 책으로부터 멀어지게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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