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와 글쓰기는 궁극적으로 정력의 문제이다. 스스로 의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우울한 인간들은 자신이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파괴적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우울한 사람이 일하는 스타일은 몰입, 완전한 집중이다.", 벤야민에 대해 수전 손택이 쓴 <토성의 영향 아래>중에서.

1.<해석에 반대한다>가 주로 60년대에 나온 그녀의 글을 수록하고있다면 <우울한 열정>은 70년대의 글들을 묶어놓고있다. 우울함이라는 벤야민의 개인적 기질을 그의 작업과 연관시키고있는 <토성의 영향 아래>도 신선하고 좋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한 가장 중요한 글은 <매혹적인 파시즘>일 것이다. 야금야금 주도면밀하게 파고들어가는 정치한 분석은 처음 <해석에 반대한다>를 읽었을때처럼 계속해서 밑줄을 긋고 곱씹어서 읽도록 만들었다. 지배와 종속의 관계, 미에 대한 맹목적 추구, 지도자에 대한 우상숭배, 육체에 대한 찬양과 그 반대편에 자리한 지성에 대한 혐오등 파시즘 미학의 내용들을 명쾌하게 정리하고있으며 그것이 여전히 관통하고있는 우리의 현실을 비판한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위에 언급한 것들이 결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란걸 알 수 있지않나. 또한 비판과 분석을 하려면 정확한 타격점과 확실한 증거, 논리적 정합성이라는 무기를 갖춰야함을, 너무나 당연하지만(동시에 그렇지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다시 재확인하게된다.

2.유진 조레츠키의 <우리는 왜 싸우는가>(2005)를 보았다. 이런 다큐를 보고있으면 과연 역사가 진보하고있는지를 되묻지않을 수 없다. 저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권력수뇌부와 위정자들은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모른다는 역설적 위안과 함께 한심함과 답답함도 동시에 밀려온다. 정말 그런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알고싶다면http://imdb.com/title/tt0436971/


내일까지 마쳐야하는 레포트때문에 약간 어이없는 현장조사를 마치고 돌아와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밤, ebs에서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봤다. 60년대 체코에서 나온, 그러니까 원작소설이 나오고얼마되지않아서 나왔을 영화. 루드빅도, 헬레나도, 파벨도 다들 너무 못생겨서 도저히 몰입이 안되는 영화였다. 천하의 바람둥이 루드빅이 대머리에 배나온 중년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헬레나같은 콧대높은 인텔리 여성이 넘어간단말인가.(그런데 영화속 헬레나도, 파벨도 모두 그리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가 아닌지라 마찬가지) 어쨌거나 영화는 80분남짓한 시간동안 소설의 내용을 얼추 다 담아놓았다. 과거와 현재가, 기억과 사실이 계속 맞물리며 간략하고 빠르게 넘어가고있었는데 그 어색하고 어지간히 궁핍해보이는 화면속에는 프라하의 어떤 풍광도 제대로 들어있지않았고 인물간의 치열한 관계도 밋밋하게만 보였다. 차라리 한시간뒤에 kbs에서 시작한 트리플엑스 속 프라하가 훨씬 더 멋있었다. 모터보트가 카펠교를 향해 달리는 액션 무대로서의 프라하는 여전히 생뚱맞긴하지만 프라하 관광청으로서는 <농담>속 프라하보다는 이 할리웃블록버스터 속의 프라하를 더 좋아할 것이다.

이미 몇번이나 읽은 소설이었건만 영화속 마가레타의 행동은 여전히 짜증나고 불쾌했다. 이 세상 모든 걸 문자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고지식함은 한 남자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었건만 그녀는 단 한번도 후회하지않는다. 굳이 밝히지않더라도 그녀는 물론 그녀가 속해있던 당을 대변하는 역할일테고 이는 곧 공산주의에대한 쿤데라의 반감 그 자체였으리라.

언제어디서나 타인에게 교조적인 사람은 그 자체로 역겹기짝이없고 그 도그마를 곧이곧대로 아무런 성찰없이 받아들이는 인간은 더 끔찍하다. 제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도 당이 포기하라면 포기하는 인간에게 과연 희망이 있을까? 그리고 그런 당원들로 가득했을 당 수뇌부는 그러한 자신들의 꼭두각시를 보며 속으로 얼마나 웃고있었을까?

40년도 훌쩍 지난 아시아의 좁아터진 조그만 나라에서도 여전히 이런 도그마의 망령에 붙들린 넋나간 영혼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있다. 자신이 머릿속으로만 알고있고 한번도 몸으로 겪어보지않은 체험과 사실과 지식을 장신구처럼 걸치고는 거들먹거리고 자랑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선동하고 억압한다. 도대체 자기들이 지금 뭘 하고있는지조차 알지못하는 그들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들은 함부로 말하고 겁없이 행동하며 책임을 져야할때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이런 세상에서 침묵이 결코 비겁한 수단이나 회피라고 나는 생각하지않는다. 흘러넘치는 말이 무섭고 뱀처럼 또아리를 트는 말이 무섭고 어디로 날아갈지모르는 말이 무섭고...  하여간 말이 많은 곳에서 괜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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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스트 마우스의 커버로만 채워진 선킬문, 일명 '문성길 밴드'의 두번째 앨범중에서.

엘리엇과 제프와는 다른 이유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나의 페이버릿, 마크 코즐렉은 여전히 이 앨범에서도 산산이 가루를 내어 원곡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는 리메이크를 하고있다.

레드하우스페인터스 시절과 달리 갈수록 유머러스해지고있는걸보면 이 사람은 갑자기 자기 가슴에 칼꽂을 일은 없겠구나싶으면서도 그러다보니 레드하우스페인터스 이름으로 신곡을 듣기가 힘든건아닌가싶어 아쉽기도하고. 그러고보니 페인터스 앨범 안나온지가 6년이 넘었군.

덧,군대있을적 스펀지를 보다가 갑자기 '미국 록밴드중에는 권투선수 김득구를 노래한 밴드도 있다'며 소개되어 뜨악했던 적이 있었다. 제보자는 이걸로 정말 지식개발금을 타려고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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