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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야심가

 

"직장은 곧 정글"이라는 뻔한 비유로부터 이곳 '던더 미플린'의 스크랜튼 지점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곳 풍경은 뭔가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일단 지점장 마이클 스캇을 제외하면 다른 직원들간의 위계서열은 분명히 드러나지않으며 마이클이 전직원을 불러놓고 서서 뭔가를 말할때 다른 직원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앉아도 상관없으며 또 마이클에게 욕을 하거나 더 나아가 뺨을 때릴 수 있을 정도로 직원들이 담대하고 상사에게 '스스럼없다.' 다시말해 마이클 스캇이란 이 남자는 상사치고는 무척 만만해보인다는 것이다. 일단 겉으로는.

하지만 이 자유로운 사무실에서 아무리 '부지점장'(이라고 주장하는) 드와이트가 주접을 떨고 짐이 영리해도 이 곳의 최고결정자는 마이클이고 이곳은 자기 말마따나 그의 제국이다. 도대체 이 남자가 하는 짓들이 고도의 위선인지 아니면 그냥 주책맞고 눈치없는건지는 쉽게 구별되지않는데 이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계속 이들의 일상을 카메라로 찍고있기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니라 누군가가 촬영하고있는 리얼다큐처럼 보이게하고있어서 카메라의 시선은 마치 진짜 다큐인냥 등장인물의 행동을 절묘하게 포착하기도하지만 동시에 감시자가 되어 다시 마이클을 포함한 사무실 전체를 시선의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대화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카메라의 눈치를 보는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불러오는 의외의 긴장감. 즉, 등장인물들의 카메라를 의식한 발언과 실제 벌어지는 행위사이의 불일치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고 때로 그 차이를 판별하기가 어려운 상황의 미묘함이 코미디를 구성하는 두번째 요소이다. 그 때 시청자는 마이클의 이 위선인지 무지인지 모를 행동의 불일치에 쓴웃음을 짓고 그 진의를 의심하게된다.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면서도 농구시합에 끼고싶다는 멕시코계 직원인 오스카에게 야구나 권투경기가 있으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자연스레 내뱉고, 신입사원인 라이언을 즐겁게하겠다면서 팸에게 거짓해고통보를 날리며 급기야 그를 울리고마는 뭐 이런 식이다. 그런 마이클에게는 자신도 똑같은 동료이자 피고용인이면서도 계속 마이클 옆에 붙어 고용인 행세를 하려는 드와이트, 그런 드와이트를 놀려먹는 짐. 마이클이 싫으면서도 어쩔수 없이 그 밑에서 따라가야만하는 팸과 그외 직원들이 있다.

 다큐멘터리적 느낌을 살리기위해 핸드헬드촬영에 극중은 물론이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때조차 음악을 배제함으로써 이 코미디는 낯설면서도 이상한 현실감을 탑재한다. 불친절해보이는 카메라의 급격한 화면전환과 연기가 아니라 실제처럼 보이는 인물들의 표정과 연기는 분명 설정된 드라마라는걸 알면서도 왠지 지금 내 주위에서 보고 들은 얘기인 것같은 기시감을 불러온다. 마이클의 고도의 농간과 그에 대응하는 부하직원들의 소극적 반항과 기지도 결국은 적정한계선을 넘지못하면서 매번 모든 에피소드는 이래저래 백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대개 마이클의 뜻대로 귀결한다. 자신이 부하직원을 사랑하는 최고의 상사라고 자부하는 마이클은 그 명성을 유지하기위해서 자기가 맡기싫은 악역은 드와이트에게 맡기고 미국의 저명한 코미디언들을 입에 올리면서(마이클은 그 계보에 자신의 이름을 끼워넣고싶어하는듯하다.) 그들을 흉내내어 부하직원들을 웃기려한다. 원래 부드러운 파시즘이 더 무서운 법이다.  

인원감축이 예정된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죽었다하고 회사에 매여있는 직원들과 마이클 사이의 우당탕탕 덜컹대는 소동을 보며 낄낄대다가도 종내엔 마이클의 손바닥위에서 굴러가는 사무실을 보면서 '쟤들도 다 똑같구나'하는 씁쓸한 동병상련과  체념으로서의 위안이 이 드라마의 인기요인이 아닐까싶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나마 저렇게라도 친구처럼 대하려 노력하고 웃기려는 상사가 있으니 그것만도 다행인줄 알라며 한마디 쏘아붙일지모르겠다.

덧.1. 그나마 덜 웃긴 에피소드하나. 1시즌 5화에서 결국 주말근무를 하게되어 불만인 직원을 앞에두고 마이클은 직원들 맘을 헤아린다는듯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사고 나부랭이고 내일 나오지마. 쉬라고. 하루 더 나오면 인원감축에서 안전하긴하겠지만. 주말 잘 보내."

2.아직 2시즌 초반밖에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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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내 것인적없는 단어들이 있다. 근면,성실,자본,권력,스타크래프트,여름휴가,당구,클래식,비만등등, 더이상 밝혔다가는 자학증세가 어디까지갈지 장담할 수 없어서 그만둬야겠다. 하여튼 이 단어들의 목록 속에 '고향'도 있다. 이 단어는 나에게 그 어떠한 감정과 기억과 이미지도 제공하지못하는데 세살무렵부터 지금까지 중학생때 이년여를 제외하곤 줄곧 한동네에서, 그것도 삭막하기그지없는 아파트단지에서 거주하고있는 사람에게 고향이란 단어는 그러니까 알래스카 여행이나 비시스와즈나 마찬가지다. 도저히 그게 뭔지 감도 못잡는거다. 고향이요? 서울이에요 라고 말할때마다 오답은 아니지만 정답도 아닌듯한 어색함이 휙하고 지나가는, 그렇다고 억울하다거나 불편하다고 느낀적 역시 한번도 없지만.

그래서 향수병이란게 뭔지도 나는 잘 모른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고향의 공기가 느껴지고 동네입구가 떠오르고 부모와 친구들과 지나간 옛시절이 떠오르는 뭐 그런건가하고 어렴풋 짐작만할뿐인데 군대시절에도 이런걸 느껴본 적은 기억을 더듬더듬해봐도 없는 거 같다. 이럴땐 무심하고 무감각하고 무던한 성격이 좋은건지아닌건지 잘 모르겠다.(그러니까 군대에서는 명령된 프로그램처럼 그냥 무조건 집에만 가고싶다는 강박이 있을뿐 딱히 집이 그립다는 식의 향수는 아닌 것 같다는 말씀. 세상에 집에 안가고싶은 병사가 어디있을까만 무조건적으로 집에 돌아가고싶은 마음과 향수병은 그래도 뭔가 좀 달라야하지않을까.)

타르코프스키는 <노스탤지어>에서 향수병을 지극히 시적인 이미지로 한가득 펼쳐놓았었다. 그곳에선 시간도 다르게 흘러가고 공간은 현실로부터 살짝 떠올라 천천히 부유한다. 이런 시각적이미지를 통해 재현되는 고향이 있다면 역시 가장 대중적인 고향의 기억은 원형의 공간이라는걸거다.

<가든스테이트>를 보고있으면 자연스레 이 영화보다 일년뒤에 나온 <엘리자베스타운>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일단 영화의 대략적 시놉시스만 놓고보면 두영화는 흡사 판박이에 가깝다. 부모의 죽음을 계기로 고향에 돌아온 남자주인공, 객지에서 고생하다 실의에 빠진 이 남자들은 고향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인생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게된다는 얘기. 배우들은 모두 선남선녀에다가 공교롭게 두 영화 모두 잘 선곡된 컴필레이션 ost를 가지고있다는 공통점까지 있다.    

고향. 그곳에가니 잊으려 노력했던 자신의 지난 과거와 치부를 인정하고 타인의 죄도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고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고 가족과 화해하고 덤으로 연인까지 얻다니. 오라! 고향은 좋은 곳이로구나. 그럼 내가 이모양인건 고향이 없어서였던건가? 고향없는 자의 설움은 계속된다. 고향에 돌아간 주인공 앤드류는 그동안 평생 먹어왔던 약도 끊고 옛친구를 만나서 신나게 수다도 떨고 이상한 모험도 하면서 옛시절을 추억하고 그러면서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는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그런가?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고향을 자의대로 상상하고 재구성하고있지는 않을까? 그곳엔 내가 진정 잊고싶었던 어리숙하고 욕심만 많고 능력은 없는데다 촌스럽기가 말도 못하던 내가 있지않았나? 그곳엔 다시는 얼굴 마주보지않으리라 생각하며 떠나왔던 부모와 나를 괴롭혔던 친구 아닌 친구와 내 부끄러운 치부를 모조리 알고있는 첫사랑 그녀가 아직도 살고있지는않은가? 그리고 그곳엔 이제는 기억나지도않을만큼 멀어져버린 젊은 시절의 꿈도. 그것들과 마주하게되기가 싫어서 우리는 쉽사리 고향으로 돌아가지않는다. 그냥 쉽게 명절을 떠올리면 된다. 일년에 두어차례 명절이라 불리는 연례정기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친척이란 이름의 그 사람들. 내가 학교에서 몇등을 하는지, 올해 연봉은 얼만지, 지금 사귀는 사람은 있는지, 결혼은 언제하는지 등등. 뿐만아니다. 그곳에선 꼭 어릴적 내 실수들이 빠지지않고 등장한다. 나하나 우스개가되어 즐거워지는 그곳. 군인들도 안에있을때는 늘 집에만 돌아가면 만사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간인보다 말년병장이 더 편하다는, 현역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실제로도 말이 안되는 이 역설중의 역설도 그러나 역설로서의 일말의 진실을 갖고있다.

가든스테이트와 엘리자베스타운의 주인공들은 모두 조용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중산층 마을을 고향으로 두고있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선량하고 이상하게 그의 옛친구들은 도시로 안떠나고 모두 고향에서 한자리씩하면서 마치 기다리고있었다는듯 웃으며 맞이한다. 게다가 고향에 돌아오니 새 여자친구까지 생긴다. 처음엔 부모와 약간 삐걱대지만 심각한건 아니고 몇마디 대화를 통해 화해한다. 나도 이런 고향하나쯤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언제나 쉴 수 있고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고 다가올 내일을 힘차게 계획하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바로 그런 곳. 지금까지 고향이 없는 남자의 고약한 투정이자 질투였다. 진심이다. <스크럽스>의 그 젊은이가 이런 따뜻한 영화를 만들 줄 몰랐다. 그리고 나이든 카메론 크로우의 <엘리자베스타운>보다는 훨씬 디테일하고 더 공감이가는 귀향기였다. ost 선곡도 훨씬 내 취향이고.

가장 맘에 들었던 장면. 음악과 화면이 멋지게 붙어있다.

 

영화를 처음보고 든 생각은 알레고리에 집착하고있다는 것, 그리고 혹시나 감독이 문학에 조예가 깊지않을까하는 것이었고 확인 결과 아닌게아니라 처음에 소설가로 데뷔를 했었단다. 그러다가 각본가로 영화계에 입문해 결국은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다는 것.

영화는 보는내내 그의 출세작인 <크라잉 게임>을 떠올리게만든다. 대사는 한줄한줄이 세심하게 공들여 쓰여있고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사랑, 그리고 크고 작은 은유와 상징이 계속 이어지고 전체적으로 그것을 둘러싼 알레고리가 떠받치고있다는 점이 그랬다. 아, 그리고 영화의 시작을 오래된 팝송으로 시작한다는 점도.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막 감옥에서 출소한 남자가 예전에 알고지내던 조직의 보스 소개로 흑인 콜걸의 운전사 역할을 하는데 그 여자와 사랑에 빠져서 그 여자의 부탁을 들어주게되고 그 과정에서 조직과 마찰을 빚게된다는. 이 남자는 처음 자기 집 앞에서 아내로부터 문전박대당하는 장면만봐도 안쓰러운데 불같은 성질 뒤에는 의외로 순진하고 정도 많은 그런 사람이다. 자동차 정비공 로이는 조지의 유일한 친구로서 탐정소설을 좋아하는데 어느날 조지에게 소설 한 권을 선물하고 만날때마다 둘은 소설 내용에 대해 잡담을 하는데 이는 점점 더 실제 조지가 겪는 모험을 은유하게된다.

영화의 초반, 조지는 느닷없이 엉뚱한 행동을 한다. 출소후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보스인 모트웰을 찾아가는 자리에서 흰 토끼 한마리를 사서 선물하는 것이다. 자신을 받아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고 당신이 나에게 빚졌다는 사실을 잊지말라는 경고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 토끼에 대한 언급은 한번도 없다가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모트웰이 이 토끼를 안고서 조지와 시몬을 기다리고있다. 가장 친숙한 해석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빌려오는 것인데 거기서처럼 토끼는 이제 앞으로 조지가 잠시동안 겪게될 이상한 세상으로의 초대권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말은 어떤가. 조지가 읽고있는 소설에서 말은 살인범이 현장에 남겨두는 표식이다. 그런데 시몬이 찾아달라고부탁했던 캐시를 시몬과 둘이 만나게해주고나서 조지는 갑자기 흰 말 한마리를 보게되는데 이는 곧 살인이 일어나리라는 암시임과 동시에 결국 이 모든게 한편의 소설이고 이야기, 그러니까 조지의 인생에서 지나가는 그저 한편의 에피소드에 지나지않음을 암시한다.   

난 당신을 사랑하는데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않는가, 일편단심인 조지의 맘을 알면서도 시몬은 그를 끝내 받아들이지못한다. 조지가 모르는 것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의 뒷골목탐험은 한편의 오딧세이, 거기서 그는 결국 변태, 악당, 창녀, 동성애자들이 뒤얽힌 어둠을 경험하고 그 모험의 끝에서 아무것도 얻지못한채 결국 평범한 남자로 되돌아와 딸과 로이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정비공으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잠깐의 여행이고 백일몽인셈. 자신이 알지못했던 어둠의 세계를 배회하다가 끝내 얻지못할 사랑으로 마음아파하다가 끝나버리는.

한번도 서로에게 솔직한적 없던 두사람은 놀이공원에서 우스꽝스런 선글라스를 끼고나서야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토해낸다. 이 장면은 밋밋하게 전개되던 영화에서 방점을 찍는 인상적인 장면인데 기둥을 붙잡고 끙끙대는 호스킨스의 얼굴은 베스트 컷이라 할만하다. 닐 조단의 개성이 두드러진 초기작. 최근 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brave one>개봉을 앞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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