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뉘앙스를 제거한 의미에서의 인간혐오자. 속된 세상의 비루함에 염증을 느끼는, 아니 그 이전에 그토록 비루한 세상을 만든 인간에 대한 베른하르트의 도저한 혐오와 부정에 독자는 자칫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그의 주된 비판은 인간 일반에서 시작해 그의 조국인 오스트리아로 좁혀지는데 위정자부터 예술가 동료까지 가리지않는다. 일체의 행갈이 없이도 구렁이 담넘듯 소재와 일화를 바꾸어가며 죽음 앞에 직면한 인간만이 가능한 초연함으로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는 인간의 철저한 부정과 자기 혐오와 자기 저주가 이어진다. 일체의 대안이나 한줌의 희망도 없이 쉴 틈 없이 밀어붙이는 이런 태도를 위악으로 몰아붙이기는 손쉬운 일이겠으나 오히려 진정성은 꿋꿋이 제자리를 차지하고있다. 저자가 자신의 고결함이나 꼿꼿함 따위를 드러내려는 것은 물론 아니고. 어떻게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숙명적 패배주의 안에 자신을 포함한 그 어떤 인간은 물론이고 그의 조국도 예외일 수 없는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수 밖에 없다. 철저한 회의와 부정은 대안 제시를 위한 필수 선행 과정이며 애초에 대안 제시는 예술가의 몫은 아닌 법.
 
수술을 받은 후 요양하는 과정에서 쓰인 소설임을 감안한다면 이 소설은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육신에 굴복하지않으려는 강퍅하고 메마른 정신의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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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싶지않은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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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는 그때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상태였다. 그건 내가 그들을 떠났었기 때문이고 - 이것은 사실이다- 아무것도 원하지않았던 것처럼 그들 모두를 원하지 않았기때문이며, 그러면서도 스스로 끝을 내기에는 너무 비겁했기때문이다."


"나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영어와 불어로 된 책과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것을 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여기고있다. 나는 자주 나의 세계가 대체로보아 조약한 종잇장에 불과한 독일어 신문에만 의존해야한다고 가정할 때 그건 어떤 세계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빈의 카페를 증오한 것은 그 안에서 늘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맞닥뜨려야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과 직면하고싶지않다.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위해 가는 카페에서는 더더욱 그러기를 원하지않는다. 그러나 다름아닌 바로 그곳에서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된다. 나는 나 스스로를 못견뎌한다. 그러니 나와 비슷한, 생각에 잠겨 글을 쓰는 한 무리의 사람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듯 나는 늘 내가 없는 곳에, 이제 막 도망쳐나왔던 그곳에 있으려한다. 이 운명적인 상태는 지난 몇년간 더 악화되어 나아지지않았으며, 나는 점점 더 짧은 간격으로 빈으로 달려갔다가 다시 나탈로 되돌아오고 나탈에서 다른 큰 도시, 즉 베니스와 로마로 갔다가 되돌아오고 프라하로 갔다가 되돌아오곤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내가 금방 떠나온 곳과 달려가는 곳 사이, 자동차에 앉아있을때만 행복하다. 오직 자동차 안에서만 그리고 가는 길에서만 나는 행복하다. 나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불행하게 도착하는 사람이다. 내가 도착하는 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도착하면 나는 불행하다. 나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견뎌내지못하고 떠나 온 곳과 가는 곳 사이에 있을때만 행복한 인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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