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뉘앙스를 제거한 의미에서의 인간혐오자. 속된 세상의 비루함에 염증을 느끼는, 아니 그 이전에 그토록 비루한 세상을 만든 인간에 대한 베른하르트의 도저한 혐오와 부정에 독자는 자칫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그의 주된 비판은 인간 일반에서 시작해 그의 조국인 오스트리아로 좁혀지는데 위정자부터 예술가 동료까지 가리지않는다. 일체의 행갈이 없이도 구렁이 담넘듯 소재와 일화를 바꾸어가며 죽음 앞에 직면한 인간만이 가능한 초연함으로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는 인간의 철저한 부정과 자기 혐오와 자기 저주가 이어진다. 일체의 대안이나 한줌의 희망도 없이 쉴 틈 없이 밀어붙이는 이런 태도를 위악으로 몰아붙이기는 손쉬운 일이겠으나 오히려 진정성은 꿋꿋이 제자리를 차지하고있다. 저자가 자신의 고결함이나 꼿꼿함 따위를 드러내려는 것은 물론 아니고. 어떻게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숙명적 패배주의 안에 자신을 포함한 그 어떤 인간은 물론이고 그의 조국도 예외일 수 없는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수 밖에 없다. 철저한 회의와 부정은 대안 제시를 위한 필수 선행 과정이며 애초에 대안 제시는 예술가의 몫은 아닌 법.
 
수술을 받은 후 요양하는 과정에서 쓰인 소설임을 감안한다면 이 소설은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육신에 굴복하지않으려는 강퍅하고 메마른 정신의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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