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글을 쓰는 동안 익명성을 유지하고 세상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에게 두번째로 소중한 가치일 것 같습니다. 이게 저의 불온한 생각입니다. -J.D. 샐린저, <프래니와 주이> 표지에서, 1961 

은둔은 곧 도피일까.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일까. 스토커, 채권자, 가족, 친구 같은 구체적인 개인부터 직장, 사회, 군대, 공권력 같은 유무형의 공동체 그리고 여기에 결부된 의무와 책임 또는 심원한 내적 고뇌와 이를 촉발한 자의식이나 자아 즉 자기자신으로부터의 도피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은둔자마다 결단의 이유와 방식은 제각각일테고 그로부터 얻는 것도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은둔자는 역설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은둔자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J.D 샐린저다. 애초엔 꽤나 실용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샐린저의 세속으로부터의 도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교에 기반한 점점 더 심원한 의미를 가진 운둔으로 바뀌어갔다. 사후 출간된 슬라웬스키의 전기에 따르면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구축하려는 목적 하에 행한 뉴햄프셔주로의 이주 이후, 출판 과정을 포함한 대인 관계에서 경험한 몇 번의 배신과 실망 그리고 결정적으로 종교적 각성이 서로를 강화하면서 점점 더 노골적인 혐인 증세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유추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훨씬 이전부터 샐린저는 개인 정보 및 사실 관계를 타인에게 고의적으로 누락하거나 왜곡했다. 자신의 모계에 관해서 한번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이는 결국 그의 사망 후 슬라웬스키가 직접 해냈다) 입영 서류에는 완전히 거짓 이력을 써넣을만큼 일찍부터 자신의 사적 정보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금욕적 은둔자' 내지는 '미학적 은둔자'로 불렸을만큼 샐린저의 은둔은 그 자체가 분명한 라이프 스타일이었고 그 결과 역설적이게도 그를 직접 만나겠다고 찾아온 방문객으로 인해 되려 은둔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 펼쳐짐으로써 '금욕적'이거나 '미학적'이기 이전에 너무나 전형적인, '가장 보통의' 미국식 유명인사의 삶에 가까웠다고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넓디넓은 미국 영토에서 은둔할 장소를 찾기는 쉬울지 몰라도 그렇게 은둔한다는 사실 자체가 타인의 주목을 끌고, 거기에 더해 그 넓은 땅을 전부 커버할만큼 촘촘하게 깔려있는 미디어와 대중 문화 탓에 미국에서 유명인의 은둔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구경거리이자 상품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은둔 사실이 그가 쓴 작품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유명하다면 그러한 도착에서 얻는 건 다름 아닌 진정한 은둔 같은건 불가능하다는 역설적 깨달음이 아닐까. 실제로 자신의 익명성을 지키려고하면 할수록 샐린저의 의도와는 반대로 일이 흘러갔다. 전기 출판을 막기 위해 고소를 함으로써 법원에 출석해 직접 모습을 드러내야 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은둔자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방문객과 언론의 지속적 관심은 사망할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아직은 소설이 전국민의 일반적인 오락거리였던 시절에 매우 논쟁적인 작품을 쓰고는 이후 줄곧 은둔한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어 정작 작품 한 줄 읽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유명인사가 되는 상황은 대중에게 진정으로 강하게 소구되는 대상은 예술이 아니라 여전히 실제의 삶이며 그래서 예술은 영원히 삶의 미진한 대체재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헛헛한 깨달음을 전한다.  

 

샐린저를 보면서 은둔의 두 종류 또는 진정한 은둔이 성립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가정해봤다. 타인의 관심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은둔이 있다면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예비 작업으로서의 은둔, 그러니까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서, 즉 독립적 태도 및 준비를 위한 진지 구축으로서의 은둔이 다른 한 편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은둔은 샐린저에서 보듯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짐으로써 완성된다. 만일 전자만 은둔에 해당한다면 공권력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범죄자의 도피나 도주와 다를 바가 없고, 후자만 은둔이라면 굳이 물리적으로 격리되지 않더라도 가능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목적과 그로부터 수반된 행위가 결락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둘이 결합될 때 진짜 은둔이 시작되는 것이다. 1963년 절필 후 본격적으로 은둔에 들어간 이래 행한 몇 안되는 인터뷰에서 샐린저는 글쓰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혼자만 즐기는 글쓰기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세상에 나서지 않고 혼자 틀어박혀 있을 때 가장 하던 일을 즐겁게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장애물도 방해도 없이.

 

은둔이 결국 자유를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말일텐데 창작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은둔은 아무리 보더라도 익명이 되는 것 밖에 없다.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도구 내지는 방법으로서의 익명은 상기한 은둔의 조건 두 가지도 당연히 충족한다. 그렇다면 상상해본다. 사망시까지 가장 멀게는 오십 년 가까이 발표되지 않은 채 샐린저의 책상 서랍 속에 들어있었을 미발표 원고들을. 수익 배분이 명시된 계약서도, 채워야 하는 최소한의 분량도, 도덕이나 윤리 내지는 금기로 통칭되는 온갖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강요된 플롯이나 결말이 없을 원고들을.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통해 생계를 잇고 수익을 얻는다는 건 어쨌든 가명을 정할지언정 원칙적으로 익명을 포기하는 일이고 일정 정도(이상)의 자유의 포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익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세상 어떤 예술가도 자유롭지 않으며 그래서 '해방으로서의 예술'이란 명제는 영구적 목표이자 끝내 닿지 못할 이상향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한 쪽 발목이 묶인 불리한 조건에 처한 자신이 벌인 사투의 흔적 그 자체가 예술의 본질인게 아닐까.

남편은 보았다(1964)

소문으로만 듣던 영화를 드디어 봤다는 점에서 높은 기대치와 그에 상응하는 만족감을 준 올해의 한 편이 되겠다. 마스무라 야스조 영화에서 와카오 아야코는 늘 어떤 위태위태한 경계선 위에서 어떤 처지에 있든지간에 남성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이라는 일관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변연인(1981)

<무간도>로 대표되는 와저(언더커버 스파이)영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일편.  <이지라이더>식 결말이 나름 충격적인데 무간도 1편 이후 한동안 차고 넘쳤던 홍콩산 와저 영화들이 어떤 식으로든 참조하거나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설정과 스토리.

 

사기사(1971)

60년대 말 70년대 초 아직은 곳곳이 남루하고 빈한한 서울 시내 풍경 속에서 주인공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의 무대로 돌연 등장하는 장충체육관과 그 옆 신라 호텔의 전경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지금과는 달리 무채색의 어두침침한 서울 시내 풍경과 전혀 이질감이 없는 그 풍광이. 물론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장충체육관 실내 장면은 스튜디오 촬영이긴했지만. 이렇듯 꽤 오랜 시간 이어졌던 한홍합작 영화의 유구한 계보를 새삼 확인하고 있자니 현재 이루어지는 아시아 영화들의 합작은 훗날 어떻게 보일지 자못 궁금해졌다. 오직 시간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

 

34번가의 바냐 삼촌(1994)

2022년에 본 신작 중 가장 인상깊었던 건 결국 <드라이브 마이 카>인데 <바냐 삼촌>의 리허설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연출과 실재가 얇게 맞물린 설정도 흥미롭지만 어쨌든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를 보는 맛이 있어서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늘 분주한 뉴욕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철거 예정의 낡은 극장에서 바깥 현실과는 상관없이 아지트이기도 대피처같기도 한 실내에서 자기들만의 예술 행위를 펼쳐나간다는 그 설정만으로도 이미 매력적이다.

 

림보(2021)

올해 본 신작 중에서는 가장 야심찬 영화이자 가장 용감한 여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영화다. 야심이라면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착각)했던 시네마 시티 홍콩의 완전히 낯설고 다른 이면을 조명했다는 점. 즉 뒷골목, 쓰레기 하치장, 공장 등 관광객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도시의 뒷공간을 강렬한 흑백 콘트라스트 속 스릴러의 무대로 그것도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주 무대로 탈바꿈함과 동시에 말그대로 '몸을 던졌다'라는 표현 외에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고된 연기를 기꺼이 해낸 여배우의 과감함과 용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당연히 금상장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일찌감치 촬영은 끝났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그로부터 한참 뒤인 2021년에 정식 개봉을 했는데 오히려 그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로 인해 배경이 된 시공간의 의미가 새롭게 거듭나는 결과를 얻었다. 

 

downtown 81(2000)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바스키아, kid creole and the coconuts 그리고 80년대 초반의 뉴욕!

 

매염방(2022)

연기를 노래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았고 과거 출연작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보게 만들었다. 주로 90년대 이전, 더 정확히는 <연지구> 이전 출연작들을 중심으로.

 

unstuck in time (2021)

<타임퀘이크>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 이름을 집어넣는 식으로 저자의 사적인 삶을 작품에 녹여넣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예전에 마이너 출판사에서 이미 한번 출간한 카탈로그들이 메이저 출판사에서 옷을 갈아입는 방식의 재출간이 주를 이룰 뿐, 전에도 안 나왔던 (보니것이 아니라) '보네거트'의 작품들은 여전히 안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슬랩스틱>같은.

 

hello bookstore(2021)

출판 시장과 독서 인구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미국에서조차 팬데믹을 거치면서 기부와 자선에 의해서야 겨우 명맥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독립 서점의 실정을 보자니 맥빠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래도 한 자리에서 그렇게 오래 운영할 수 있었던 데는 운영자의 캐릭터가 한 몫을 하는데, 물건을 파는 자영업자이기 앞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늘 유머를 잃지않는 동네 이웃이 되는게 먼저라는걸 보여주는 실례였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

결코 '예술 영화'로 분류할 수 없는 핍진한 드라마라는 점, 역시나 전성기 이탈리아 영화답게 촬영과 미장센이 교과서적으로 아름답다는 점, 허세가 없는 알랭 들롱의 연기를 거의 처음 본 거 같다는 점. 고전 영화를 찾아봐야 한다는 당위를 찾게해준 또 한 편이 되었다.

 

<베터 콜 사울> 마지막 시즌

이 마지막 시즌으로 인해 이 드라마가 프리퀄만은 아니게 되었지만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이라는 '이데올로기'(그러니까 강요된 엔딩)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보던 관성이 있어서 끝까지 보기는 했으나 브레이킹 배드 이후 전개 그러니까 현재 시점이라 할 흑백의 시퀄 부분은 그 앞까지의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져서 심드렁하게 봤다. 클라이막스를 이미 지나고도 속죄와 사필귀정의 결말을 위해 계속 이어지면서 결국 늘어지고만 에필로그라는 불균형.

 

나르코스 시즌3

오히려 그래서 올해 재밌었던 미드는 뒤늦게 본 나르코스 3시즌. 지난 두 시즌은 솔직히 심드렁하게 보는 정도였으나 오히려 이 3시즌은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잡으려는 자와 숨으려는 자의 숨바꼭질이 두뇌싸움에 의한 자잘한 작전들로 이어지면서 스릴감이 높아진 때문이었다. 다시금 느낀건 미드 시청은 영화와 달리 관람자의 에너지를 비축하고 소모하는 과정의 반복이라는 느낌이어서 쉽사리 도전하기가 힘들어졌다는것.

 

night(2021)

차이밍량은 몇 해 전부터 극영화로부터 조금씩 비주얼 아트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단편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영상시 쪽에 가깝다. 평범해보이는 홍콩의 밤 풍경 위로 우산혁명과 격렬했던 반중시위를 지난 흔적들은 곳곳에 생생히 남아있다. 고정된 채 관조하는 카메라의 시선의 주체는 연출자도 cctv도 아닌 그곳을 떠나지못한 채 떠도는 유령이나 여전히 그곳을 살아가야하는 홍콩인들의 감정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 연작 (1972~1974)

연말에 이 영화들을 쭉 보면서 든 생각은 cgi없이 편집과 촬영, 분장과 특수효과, 스턴트로만 구성한 영화의 연출이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는 정말이지 너무 참신하고 독창적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액션씬의 아이디어라는 점에서는 지금이 6,70년대보다 퇴보한 지점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의문에 대해 '확신'을 갖게됐다.

 

장단각지연(1988)

80년대 홍콩 영화 특유의 왁자지껄함과 들뜬 분위기가 물씬하다. 개인적으로는 87년 88년 이 무렵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코미디물들의 느낌도 사뭇 다르다고 느낀다. 왓차덕에 80년대 중심으로 온갖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홍콩 영화들을 잔뜩 볼 수 있었다.  

 

극도전국지 후도 (1996)

초등학생 킬러, 양성구유, 성기를 무기로 쓰는 여고생 킬러 등 불과 25여년 전 일본에서는 이런 영화가 나왔었다. 창작의 자유는 현실 사회의 정치 환경, 인권, 자유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지점. 지금은 실사화 전문 감독이 되다시피한 미이케의 창작력은 역시 이 시기에 가장 만개했던게 아닐까.

 

대보살고개 3부작

한 편으로 끝난 나카다이 다쓰야의 미완결작이 아닌 이치카와 라이조가 주연한 완결된 삼부작을 봤다. <너의 이름> 삼부작(1953;1954)이나 <푸른 산맥> 연작(이마이 타다시, 1949;1950)에서 보듯 tv 드라마라는 개념이 아직 없거나 생소했을 시절에 나온 기획, 즉 '연속극'으로 나왔어야 할 이야기를 2시간 안쪽의 극장용 장편 영화들의 연작 형식으로 개봉하는 방식이 꽤 많았다는걸 알게 됐고 사실 이는 지금도 일본에서 이어지는 나름의 전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노 라이프 킹(1989)/ 옷 한벌 살까요?(2009)/ 자와자와시모키타자와(2000)

지난 해 두 편에 이어 올해는 이치카와 준의 영화 세 편을 볼 수 있었다. 미완성 유작은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다큐 질감의 화면이 몰입을 방해하긴 하지만 끝까지 완결을 보고 싶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했다. 2000년작은 90년대에 그가 주로 썼던 전개 방식, 즉 확실한 기승전결 없이 여러 인물의 사연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이야기. 89년작은 나름 복잡한 서브텍스트를 가진 원작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절반 정도의 성취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아직까지 보지 못한 이치카와의 극장용 장편은 <다동과 치쿠와>(1998) 한 편이 남은듯.

 

베드룸 윈도우(1987)

히치콕 우수 전공생의 또다른 오마주이자 응용작.

 

무관 (1981)

올해 본 홍콩 영화 중에서 장철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장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 결투 장면의 공간 세팅이 창의적이었음.

 

seven beauties(1975)/ swept away(1974)

리나 베르트뮬러의 영화 두 편을 봤다. 성과 정치를 엮어 난감한 상황이나 딜레마를 풀어가는 코미디 연출이라는 공통점.

아크바 압바스는 97년에 출간한 저서에서 유동, 이동 및 환승의 공간으로, 정주자가 없는 유목민들의 도시로 홍콩을 규정했다. 반환 시점을 아무래도 의식했겠으나 이 주장에는 광동 끄트머리에 자리한 항구 도시에서 살아온 실제 홍콩 거주민들의 역사와 생활을(어쨌든 결과적으로 보자면) 괄호치고 있다. 그곳에는 어떤 이들이 살고 있을까. 학교와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 반환 시점 이후로만 한정하더라도 자본의 집적으로 시시각각 도시 경관이 변해가는 가운데 본토와의 관계로 인해 불안정한 지정학적 변동을 상시적으로 경험해온 그곳에서 말이다.
 
<Septet>은 2020년 칸느에서 최초 공개되었고 이듬해 개봉 예정이었다가 팬데믹의 영향으로 다시 일 년을 기다린 뒤에야 정식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로 80년대 등장해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홍콩영화계를 대표하는 일곱 명의 감독이 참여했다. '홍콩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장소 자체가 소재이자 주제인데 홍콩인의 실감과 감개를 자주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음은 분명해보인다.
 
지난 몇 년간의 시위를 포함해 정치적 맥락에 대한 어떠한 직접적 언급도 없는 대신 홍콩인들의 생활을 다루는 영화의 각 에피소드들은 '노스탤지어'를 공유한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감독 홍금보는 유년 시절 자신이 경험한 경극학교에서의 수련 시절을 재현한다. 같은 시기를 다루고 있는 <칠소복>(1988)의 한 부분을 더 디테일하게 확장한 것처럼 보이는 이 에피소드는 엄한 스승 밑에서 아침부터 혹독한 신체 수련을 하는 어린 학생들의 훈련 과정의 묘사를 통해 홍콩 무협 영화가 어떤 역사와 전통 위에서 전개되었는지를 환기한다. 두번째 에피소드를 연출한 허안화 또한 1961년과 90년대 두 시점을 배경으로 과거 직장 동료를 애틋하게 회상함과 동시에 현재 시점에서 그의 부재를 애상한다. 임영동의 에피소드에서 해외에 거주하다 수 년 만에 홍콩에 돌아온 임달화는 자신이 부재한 동안의 홍콩이 겪어온 경관의 변천에 적응하지 못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9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 원화평의 에피소드에서 원화가 연기하는 할아버지는 손녀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대신 무술을 가르치며 세대 간 소통을 시도한다. 인상적인건 그로부터 다시 3년 뒤 시점의 에필로그인데 관습적인 후일담을 예상했을 관객은 유쾌한 반전을 맞게 된다.  

<septet> 속 홍콩이 멀게는 60년대부터 아직 도래하지 않은 근미래 시점까지 통과하며 따스한 향수와 회고의 대상으로 시작해 로컬리티를 다소 덜어낸 풍자와 비판의 무대가 되며 끝맺었다면, 차이밍량의 19분짜리 단편 <night>는 영화관의 관객이라기보다는 미술관의 관람자가 되어 홍콩이라는 전형적인 근대적 도시 풍경 자체를 마치 하나의 예술품처럼 관조의 대상으로 대하게 한다. 장르간 경계를 허물다못해 장르 개념 자체를 거의 무시하다시피하는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근년의 차이밍량의 단편 프로젝트는 극영화와 다큐, 미디어아트의 경계를 의식조차 하지 않은 것 같은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카메라를 고정한 채 홍콩의 밤거리 이곳저곳을 기록해 연결한 시퀀싱은 지난 수십년간 영화팬들이 보면서 상상하고 꿈꿔온 스크린 속 환상으로서의 홍콩 그리고 우산 시위를 지나고 팬데믹을 견디는 중인 지난 근 몇 년 간의 실제 홍콩과의 간극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그 기간동안 얻은 흔적을 아직도 곳곳에 흉터처럼 새긴 도시의 외관을 건조한 다큐와 비주얼 아트 사이 어딘가에서 전경화한다. 내레이션이나 대화가 전무한 <Night>가 <Septet>보다 더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역설은 당연히 두 작품 간 형식의 차이에 기인한다. 전통적인 리얼리즘 서사가 여전히 기댈 수 밖에 없는 '개연성'이나 '플롯' 같은 개념들이 현실과의 직접적 상관관계를 간접적으로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반면 다큐이면서 미디어아트인,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닌 차이밍량의 작품은 얼핏 보면 스틸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고정된 카메라가 장시간 동안 촬영한 화면을 응시하는동안 미술품을 감상하듯 즉물적이면서 직관적인 동시에 한발 더 나아가 관객(또는 관람자)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상상과 개입을 유도한다. 야간 영업 중인 가게 안 손님과 종업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바닥에 붙어있는 훼손된 전단지 같은 일상적인 장면들은 스크린 밖 현실의 잔여물 같은 이미지로서 스크린 위를 부유한다. 너무 잘 아는 낯익은 장면이기에 오히려 낯설게 보인다면 그건 카메라의 시선 때문이다. 바닥을 내려보는 듯한 시선으로 훼손된 전단을 볼 때, 한쪽 정류장에 서서 반대편 정류장을 비스듬히 바라볼 때, 나지막하게 포착된 현장음까지 더해진 시선은 카메라라는 비인칭의 중간자적 관점보다는 실제 인간의 관찰자적 위치에 더 가깝다. 혹은 그간 숱한 홍콩 영화에서 봐온 그곳의 밤거리를 떠도는 혼령 그것도 아니면 근 몇 년을 지나온 홍콩인의 집단적 무의식이 매개된 편재적 시점이거나. 

두 편의 영화는 동일한 대상에 내재하는 각기 상이한 성격의 노스탤지어를 유발한다. 영화 예술의 결정적인 특수성은 결국 시간으로부터 제한받는 동시에 시간에 도전하고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늘리거나 줄이고 왕복하고 건너뛰는 등 시간을 자재로이 다루는 가운데 감상자는 영화 속 고유의 시간에 통합되거나 분리되면서 감상을 완성한다. <septet>이 몇 십 년간의 긴 시간을 관통하는 도시의 동학을 조감한다면 <night>은 하룻밤이라는 상대적으로 찰나의 시간 동안 지극히 한정된 몇몇의 장소를 지긋이 그러나 고정된 시점에서 집요하게 바라본다. 이 두 편을 통해 한 도시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들여다보면서 도시는 여행자와 이주자가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 공간이고 이동의 공간이며 동시에 정주자의 '거처'임을, 또한 상전벽해의 장소는 한편으로 정지되다시피 고정된 불변의 물리적 공간임을, 자본의 투하와 정치적 격변에 의한 공간의 질적 변형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인간이 펼치는 끈질기게 반복되며 이어지는 삶의 양상으로 인해 결코 자본의 투입과 노동 생산량으로만 계량될 수 없는 유장한 시간을 담지한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시공간임을, 즉 도시는 그 자체로 역사적 대상이자 그 주체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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