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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으로 침잠하는 여행. 어쩌면 쿄지는 세이코를 죽인 직후 본인도 보스로부터 살해당했던건 아닐까? 육신을 잃었지만 '보이지않는'그의 죄의식은 점차 실재가 되어 바다위의 '파도'가 되어 흘러다닌다. 노이, 딘, 그리고 도마뱀처럼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을 봤다면 자연스레 기억나게할 이름들이 다시 언급이 되고있는데 이건 전작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게만들려는 트릭정도이지 사실 전작과는 그다지 큰 상관은 없다. 사건이 있고 인물이 있거나 사건과 인물이 같이 있는게 아니라 인물을 파고들어가면 그제서야 사건이 발생한다는 공통점빼고는


두 편의 축구영화를 같은 시기에 보았다. 두 편 모두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에 관한 영화로 닉 혼비 원작의 <fever pitch>와 일라이자 우드가 나오는 <green street>다. 축구 팬, 그것도 열혈 팬에 관한 영화였으나 웨스트햄과 아스날이라는 팀만큼이나 주제는 전혀 달랐으니 앞의 영화가 축구를 떠나 뭔가의 팬이 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팬질과 인생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나아간다면 후자는 오히려 축구보다는 폭력 그것도 자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서의 폭력을 이야기하고있었다.

도대체 팬이란 뭐고 팬이 된다는건 뭘까? 그린스트리트엘리트는 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며 폴 애쉬워스는 년(year)이 아닌 시즌(season)에 맞추어 스케줄을 조정하는 식으로 자신의 삶을 온통 아스날에 바치는걸까? 인간은 원래 뭔가에 애착을 두게끔 되어있어서? 즉 그만큼 현대인의 삶이 공허하기때문에? 애증의 관계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다. 더이상 팬임을 그만두고싶어도 결코 하이버리를(이제는 어느덧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린 경기장), 폴의 애인인 여주인공 말마따나 몇시간씩 콘크리트바닥 위에 서있는걸 거부하지못하는 그런 삶 말이다. 고스란히 자기 삶의 일정 부분을 떼어갖다바쳐도 손해라고 생각하지못하는 기저에는 맹목적 충성이라는 그다지 현대사회와는 어울리지못하는 가치가 숨어있다.  

<그린스트리트>는 <파이트 클럽>처럼 폭력을 통해 회복하는 남성성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에 이르면 런던에서 보스턴으로 돌아온 맷은 이제 타인에게 위협도 할 줄 아는 '대범한' 청년으로 변해있다.


딱 열권만 뽑으려고한다. 그러고보니 거의 다 딱 1년전 그러니까 2006년1월에 읽은 책들이다. 상병 3개월차였는데 휴가간 동기대신 응급대기하고있던 중이라 시간이 정말 많았다. 웹과도, 또 자질구레한 선후임과의 관계와도 상대적으로 멀어진지라 책내용이 잘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농담>, 밀란 쿤데라

말한마디로 전락해버린 남자. 시대가, 국가가, 이념이 그를 버려도 인간이 그를 구원한다. 마지막 장면!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음모,협잡,배신,질투,시기,폭력,LA의 스모그,백만장자,술,담배,갱스터,팜므파탈,문명비판 이 모든게 이 한 권의 소설에 다 있다. 허장성세의 생경한 비유를 즐길 수만 있다면 최고의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이미 읽었던 소설이지만 갇힌 곳에서 몰래 읽는 <장미의 이름>은 얼마나 짜릿했던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한 음반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나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는 컨셉트 음반처럼 이 책은 컨셉트소설집이라 부를만하다. 수록작에서 책제목을 뽑지않았다는점에서, 또 의도였는지아닌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결국 모든 수록작이 하나를 말하고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 2006년에 읽은 최고의 한국소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이렇게 쉽게 쓰여진 개론서가 또 있을까. 모든 학자, 직업적 글쟁이, 학교 선생님들이 이렇게 글을 썼다면 아마 지금쯤 난 좀 더 똑똑한 사람이 되지않았을까.

 

<나는 왜 불온한가>, 김규항

그의 경향이 맘에 들지않을 순 있어도 이토록 강건한 신념의 유지를 뭐라 할만한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에 얼마나될까?

 

<군주론>, 마키아벨리

그래요, 난 남들이 고전이라 부르는 책은 거의 다 안읽어봤어요. 그러니 쉽게 감동할 수 밖에

 

<괴짜경제학>, 스티븐 래빗

전혀상관없어보이는 두 팩트가 서서히 서로의 꼬리를 물고물더니만 온전한 하나의 가설이 완성된다. 기발한 통찰력, 유쾌한 문장,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즐거운 독서경험

 

<피버피치>, 닉 혼비

번역이 안된 <high fidelity>원서를 읽는데 꼬박 몇달을 보내고난 얼마 뒤 이 책을 읽었다. 워낙에 좋아하는지라 딱히 뭐 따로 할 말은 없음

 

<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탈락된 쟁쟁학 책들이 많았던지라 마지막을 뽑기가 괴로웠다. 그렇게 좋은 책들이 많았다. 하지만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을 마지막으로 정했다. 다시금 영화를 찾아보게만든, 그럼으로써 다시 책으로부터 멀어지게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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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너무나 뻔하다. 같이 한탕을 했다가 배신당한 자가 자기 몫도 되찾고 복수도 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워커는 어떻게 감옥에서 총을 맞고도 '걸어'나온 것이며 죽은 린을 LA에서 만난건 뭐고, 느닷없이 끼여드는 회상에 한가지 상황을 놓고도 두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평자들은 이 영화에 대해서 워커가 이미 감옥에서 죽은거라 해석한다. 맞는듯 하다. 도저히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오히려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주는바람에 뭔가 더 있지않을까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까지만드니까.

워커가 이미 죽은게 아니라면 위에서 말한 린과의 재회나 마지막장면에서 그렇게 찾아헤매던 돈을 앞에두고 갑자기 사라지는건 뭐겠는가. 그리고 결정적 증거가 있으니 워커가 린의 무덤을 찾아간 장면이다. 무덤을 본 다음 묘지에서 빠져나오려 돌아나오는 그때 포크레인이 누군가의 무덤자리를 만드느라 땅을 파고있다. 이걸 땅 속에 누워있던 워커가 무덤을 헤집고 '걸어'나오는거라고 보지않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숱한 암시들때문에 "넌 이미 죽은거야" 라던 악당의 으름장정도는 그냥 무시해버릴 수준이다. 게다가 워커가 직접 죽이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던가.

리 마빈은 역시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터프가이를 연기하는데 너무 당당하고 감정기복이 없어서 마치 로봇을 보는듯하다. 지금와서보면 그렇게 폭력적인 장면은 없지만 훨씬 현란하고 흐느적거리는 괴이한 갱스터무비


<그림자 군단>의 후반부, 게슈타포에게 붙잡힌 필립은 감방에 갇힌다. 그곳엔 이미 그보다 먼저 붙잡혀 곧 처형을 기다리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다섯명 더 있는데 다들 죽기를 기다리는 처지이다보니 말한마디 없이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이다. 그순간 필립은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낸다. 반쯤 구겨져 딱 보기에도 얼마 안남아보이는 담배갑을 필립은 그냥 통째로 자기 옆사람에게 던진다. 받은 이는 "필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두겠다"고하고는(곧 죽을 판인데 언제? 게다가 총살인데?)한개피를 꺼내어 귀옆에 꽂아두고 다시 그 옆사람에게 건넨다. B 역시 하나를 꺼내고는 다시 C에게. 그런식으로 담배갑은 마지막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가 자기몫을 꺼내고나자 이젠 다 떨어졌다. 다음 차례가 필립이지만 건넬 수가 없다. 그는 담배갑을 한손에 넣고 찌그러뜨려 버린다.

영화를 아직 딱 한번 본 나에게 이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비중이 큰 순간도 아니건만 멜빌은 언제나처럼 이 장면을 하나의 생략도 없이 길게 이어간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의 흡연이라는 이미지는 분명 클리셰이지만 또한 그것말고 아무것도 할게 없다는 점에서 너무나 당연해보이기때문에 당당히 영화의 한자리를 차지하고있다. <Un Flic>에서는 총맞고 죽어가는 동료에게 불붙인 담배를 건네고(그런데 그친구, 한번 피우고는 찡그리며 옆사람에게 줘버린다.) 멜빌의 후계자인 오우삼도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중요한 순간이면 어김없이 담배를 물렸다.

그러고보니 멜빌과 오우삼의 인물들이 어느덧 30년,20년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2007년 새해. 첫 지구촌 뉴스는 홍콩에서 사실상 전면금연 정책이 시행되었음을 알려왔다. 파리와 함께 애연가들의 천국이라불러도좋을 국제도시 홍콩도 이제 금연이라는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물결에 뛰어든 것이다. 가만생각해보니 그렇다. 정말 멋지게 흡연하는 사람을 실제로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멋진 흡연이란 쿨한 영화속 범죄자들이나 하루키 소설 주인공들의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흡연 자체를 범죄로 인식하고있는건 아닐까?

그렇다면 유럽과 일본, 홍콩은 그렇다치고 미국은 어떨까? 요즘 미국영화엔 흡연장면이 금지되어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정말 그런가요?) 이 영화의 주인공 닉 네일러는 바로 이걸 없애기위해 할리우드의 에이전트를 찾아가고 이들은 브래드 피트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우주선 속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다분히 2류SF소설에나 나올법한 장면을 구상하며 시한부환자가 산소호흡기로 겨우 연명하듯 어떻게든 겨우겨우 흡연의 세상을 이어가기위해 분투한다.

하긴 어디나 마찬가지다. 지금 세계 어느곳에서나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싸움은 계속되고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점차 흡연자에게 불리하게돌아가고있는 게 사실이고 그 싸움의 양상은 싸우고있는 자들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있다. 닉의 분투기는 결국 그가 살고있는 나라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돋보기 구실을 하고있는 셈. 끝없는 항소가 가능한 법 제도, 특종에 혈안이 된 언론, 보이지않지만 계속되는 이익단체간의 로비싸움, 혹세무민하는 광고와 홍보, 그리고 협상보다는 논쟁을 해야 승리하는 그 나라말이다.

<흡연, 감사합니다>는 <금연,유감입니다>라고 투덜대거나 당신의 건강을 염려하지않는다. 다만 흡연을 하고싶으나 맘대로 할 수 없는 당신이 살고있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곳입니까라고 묻는다.

덧, 결국 이 영화에도 흡연장면은 나오지않는다. 그리고 새 컴퓨터구입기념  첫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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