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 아닌 도서관에 대한 기억이 훨씬 많다. 부모님이 책 구입에 돈을 아끼는 분들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접근성과 양에서 서점은 도서관에 비교할 수 없었다. 인터넷 이전 시대 얘기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갈수록 서적 외의 상품 매대가 야금야금 늘어나는 대형 서점을 보고 있자면 격차는 점점 더 커질 듯 싶다.
3학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집을 나와 요즘 다니듯이 아파트 단지 건너 일반 주택가 사잇길로 지르는 게 아니라 단지 밖으로 큰 길을 따라 크게 돌아 도서관에 도착해 어린이 열람실에 들어갔다. 그때만해도 신간은 대출이 안되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래서였는지 한 권을 집어들고는 널찍한 평대 책상을 혼자 전세내어 한쪽 끝 모퉁이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평일이었는지 주말이었는지, 학기중이었는지 방학이었는지, 심지어 무슨 책이었는지도 전혀 기억이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다른 이용자가 보이지 않는 한적한 열람실 한 켠에 앉아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그 조용했던 열람실의 분위기와 공기, 그리고 평대 끝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겼던 기억만큼은 지금도 너무나 또렷하다. 사서는 맞은 편 대출대에서 묵묵히 업무를 하고 있었다. 맨 뒷장에 대출 이력 조회 카드가 꽂혀있던 시기였다.
1년 뒤, 간신히 구색을 갖춰놓은 교실 학급문고에서 웰즈의 <우주전쟁>을 읽었다. '대관절'이라는 낯선 단어를 처음 보고는 대신 집어넣을만한 대체어를 머릿속으로 골라보던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결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들. 웰즈 말고도 크리스티와 도일, 르블랑을 처음 접한 것도 학급 문고였다. 몇 권 되지도 않는 책이 꽂혀있던 창가의 한 칸짜리 북엔드를 '학급 문고'라고 부르는게 겸연쩍긴 하지만.
흔히 말하듯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이 중요하다면 그 이유는 책의 내용뿐 아니라 제본, 장정, 속지의 질, 그리고 독서하던 시공간의 분위기에 대한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기억 자체가 향후 독서를 계속 이어가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자면 텍스트를 둘러싼 외부의 이러한 모든 것들이야말로 구체적 '경험'을 구성하고 어쩌면 텍스트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소유가 아닌 접속의 시대가 된 지금, '책'이 '컨텐츠'가 아니고, '독서'가 '소비'가 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바로 가능한 전자책 대여나 집앞 배송이 아니라 지금도 부지런히 몇몇 도서관을 정해두고 주기적으로 발품을 파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체험으로부터의 영향 말이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우치다 다츠루는 '무지의 가시화'라 명명한 바 있다. 도서관의 본질은 서가를 둘러보면서 한 개인이 평생동안 취하게되는 지식의 양이란 것이 극히 미미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내가 얼마나 무지한 지 새삼 각성함과 동시에 겸허함을 느끼는데 있다는 것이다. 개가식 서가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미지의 책을 손에 들고 표지와 속지를 보고 만지며 충족하는 시각과 촉감, 상시 포화 상태인 장서들이 뿜어내는 서가 특유의 낡아가는 종이 냄새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 속삭이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빚어내는 앰비언스까지. 이런 것들이 원체험이 되면 다시 도서관을 찾게 된다. 경험은 또다른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서점과는 아예 다른 환경이고 체험일 수밖에 없다. 모든 체험이 그러하듯 습관이 되어 반복하다보면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는다. 바로 여기에는 단 한가지 사실 내지는 진리만이 있다.
도서관의 기억
2024. 1. 13. 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