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이미 대출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탐독했다는 점, 거기에 4년 전에 표시해놓은 정오표까지 몰라봤던 점, 망각의 위력에 일견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편안해지기도 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처음 읽은 것 같은 두번째 독서에서 작금의 이런 상황에 대한 적절한 코멘트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

 

그러면 당신의 영혼은 인간의 허약한 기억력을 망각해버린 십억 년의 세월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요.

 

아무리봐도 위 문장에서 '허약한 기억력'은 망각의 주체이지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을'에 X자를 긋고 그 위에 '이'라고 작게 적어놨다. 아니 그랬겠구나하고 넘어간다. 정확히 말해 표시한 기억 자체는 없으니까. 하지만 저렇게 X자를 긋고 수정하는 건 내가 정오표를 적는 방식이고 아무리 봐도 책의 컨디션은 4년 동안 나 말고 다른 이용자의 대출은 없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참조 표시하는 방식, 그러니까 본문에 밑줄을 긋는게 아니라 문장 옆 공백에 세로로 괄호 비슷하게 직선도 곡선도 아닌 그 중간 정도되는 줄을 긋는 것도 내가 하는 그대로였다. 대출한 책에 밑줄을 죽죽 그어대는게 죄스러워서 스스로 타협한, 연하게나마 어쨌든 표시를 하는 버릇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훗날의 인용을 위해 옮겨놓은 파일 폴더를 열어봤다. 4년 전과 다른 곳이 제법 많다. 여전히 같은 곳도 있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세세하게 옮겨 적었으나 이번엔 간추린 핵심만 옮겨놓으려고 했다. 이렇듯 불과 몇 년만 지나도 처음 읽는 것처럼 내용이 전부 새롭고, 과거에 한번 읽었던 책이라는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른다면 과연 독서가 다 무슨 소용일까. 속도와 양에 집착한 결과이기도 할테고 아니면 그만큼 내용의 기억보다는 읽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행위로서의 독서를 한다는 뜻도 될 것이다. 늘 이렇게 어떤 책이든 처음 읽는 것처럼 대할 수 있다면 신간에 집착할 이유는 딱히 없지 않을까. 그저 적절한 로테이션 주기와 순서를 정해두기만한다면 더 이상 새 책을 들이지 않고 지금 갖고 있는 책들만으로 남은 생의 독서는 충분한 게 아닐까.  

 

그래서 망각과 기억에 관한 역설을 지어본다. 기억은 고통이지만 망각은 위로와 안정, 그리고 질서라는 것. 기억이 결코 놔주지 않는 족쇄 같다면 반대로 망각은 해방이고, 기억이 공포와 무기력을 낳는다면 망각은 의지를 샘솟게 한다. 기억이 복수를 낳는다면 망각은 희극을 길어낸다. 기억이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면 망각은 순진하게 만든다. 기억이 역사를 쓰게 한다면 망각은 미래를 예시하게 한다. 기억이 참조와 비교에 의한 독서를 하게 한다면 망각은 무지에 의한 글쓰기를 가능케한다. 그리고 삶이란 어쨌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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