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글을 쓰는 동안 익명성을 유지하고 세상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에게 두번째로 소중한 가치일 것 같습니다. 이게 저의 불온한 생각입니다. -J.D. 샐린저, <프래니와 주이> 표지에서, 1961 

은둔은 곧 도피일까.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일까. 스토커, 채권자, 가족, 친구 같은 구체적인 개인부터 직장, 사회, 군대, 공권력 같은 유무형의 공동체 그리고 여기에 결부된 의무와 책임 또는 심원한 내적 고뇌와 이를 촉발한 자의식이나 자아 즉 자기자신으로부터의 도피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은둔자마다 결단의 이유와 방식은 제각각일테고 그로부터 얻는 것도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은둔자는 역설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은둔자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J.D 샐린저다. 애초엔 꽤나 실용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샐린저의 세속으로부터의 도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교에 기반한 점점 더 심원한 의미를 가진 운둔으로 바뀌어갔다. 사후 출간된 슬라웬스키의 전기에 따르면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구축하려는 목적 하에 행한 뉴햄프셔주로의 이주 이후, 출판 과정을 포함한 대인 관계에서 경험한 몇 번의 배신과 실망 그리고 결정적으로 종교적 각성이 서로를 강화하면서 점점 더 노골적인 혐인 증세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유추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훨씬 이전부터 샐린저는 개인 정보 및 사실 관계를 타인에게 고의적으로 누락하거나 왜곡했다. 자신의 모계에 관해서 한번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이는 결국 그의 사망 후 슬라웬스키가 직접 해냈다) 입영 서류에는 완전히 거짓 이력을 써넣을만큼 일찍부터 자신의 사적 정보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금욕적 은둔자' 내지는 '미학적 은둔자'로 불렸을만큼 샐린저의 은둔은 그 자체가 분명한 라이프 스타일이었고 그 결과 역설적이게도 그를 직접 만나겠다고 찾아온 방문객으로 인해 되려 은둔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 펼쳐짐으로써 '금욕적'이거나 '미학적'이기 이전에 너무나 전형적인, '가장 보통의' 미국식 유명인사의 삶에 가까웠다고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넓디넓은 미국 영토에서 은둔할 장소를 찾기는 쉬울지 몰라도 그렇게 은둔한다는 사실 자체가 타인의 주목을 끌고, 거기에 더해 그 넓은 땅을 전부 커버할만큼 촘촘하게 깔려있는 미디어와 대중 문화 탓에 미국에서 유명인의 은둔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구경거리이자 상품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은둔 사실이 그가 쓴 작품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유명하다면 그러한 도착에서 얻는 건 다름 아닌 진정한 은둔 같은건 불가능하다는 역설적 깨달음이 아닐까. 실제로 자신의 익명성을 지키려고하면 할수록 샐린저의 의도와는 반대로 일이 흘러갔다. 전기 출판을 막기 위해 고소를 함으로써 법원에 출석해 직접 모습을 드러내야 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은둔자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방문객과 언론의 지속적 관심은 사망할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아직은 소설이 전국민의 일반적인 오락거리였던 시절에 매우 논쟁적인 작품을 쓰고는 이후 줄곧 은둔한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어 정작 작품 한 줄 읽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유명인사가 되는 상황은 대중에게 진정으로 강하게 소구되는 대상은 예술이 아니라 여전히 실제의 삶이며 그래서 예술은 영원히 삶의 미진한 대체재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헛헛한 깨달음을 전한다.  

 

샐린저를 보면서 은둔의 두 종류 또는 진정한 은둔이 성립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가정해봤다. 타인의 관심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은둔이 있다면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예비 작업으로서의 은둔, 그러니까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서, 즉 독립적 태도 및 준비를 위한 진지 구축으로서의 은둔이 다른 한 편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은둔은 샐린저에서 보듯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짐으로써 완성된다. 만일 전자만 은둔에 해당한다면 공권력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범죄자의 도피나 도주와 다를 바가 없고, 후자만 은둔이라면 굳이 물리적으로 격리되지 않더라도 가능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목적과 그로부터 수반된 행위가 결락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둘이 결합될 때 진짜 은둔이 시작되는 것이다. 1963년 절필 후 본격적으로 은둔에 들어간 이래 행한 몇 안되는 인터뷰에서 샐린저는 글쓰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혼자만 즐기는 글쓰기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세상에 나서지 않고 혼자 틀어박혀 있을 때 가장 하던 일을 즐겁게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장애물도 방해도 없이.

 

은둔이 결국 자유를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말일텐데 창작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은둔은 아무리 보더라도 익명이 되는 것 밖에 없다.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도구 내지는 방법으로서의 익명은 상기한 은둔의 조건 두 가지도 당연히 충족한다. 그렇다면 상상해본다. 사망시까지 가장 멀게는 오십 년 가까이 발표되지 않은 채 샐린저의 책상 서랍 속에 들어있었을 미발표 원고들을. 수익 배분이 명시된 계약서도, 채워야 하는 최소한의 분량도, 도덕이나 윤리 내지는 금기로 통칭되는 온갖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강요된 플롯이나 결말이 없을 원고들을.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통해 생계를 잇고 수익을 얻는다는 건 어쨌든 가명을 정할지언정 원칙적으로 익명을 포기하는 일이고 일정 정도(이상)의 자유의 포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익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세상 어떤 예술가도 자유롭지 않으며 그래서 '해방으로서의 예술'이란 명제는 영구적 목표이자 끝내 닿지 못할 이상향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한 쪽 발목이 묶인 불리한 조건에 처한 자신이 벌인 사투의 흔적 그 자체가 예술의 본질인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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