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보았다(1964)

소문으로만 듣던 영화를 드디어 봤다는 점에서 높은 기대치와 그에 상응하는 만족감을 준 올해의 한 편이 되겠다. 마스무라 야스조 영화에서 와카오 아야코는 늘 어떤 위태위태한 경계선 위에서 어떤 처지에 있든지간에 남성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이라는 일관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변연인(1981)

<무간도>로 대표되는 와저(언더커버 스파이)영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일편.  <이지라이더>식 결말이 나름 충격적인데 무간도 1편 이후 한동안 차고 넘쳤던 홍콩산 와저 영화들이 어떤 식으로든 참조하거나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설정과 스토리.

 

사기사(1971)

60년대 말 70년대 초 아직은 곳곳이 남루하고 빈한한 서울 시내 풍경 속에서 주인공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의 무대로 돌연 등장하는 장충체육관과 그 옆 신라 호텔의 전경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지금과는 달리 무채색의 어두침침한 서울 시내 풍경과 전혀 이질감이 없는 그 풍광이. 물론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장충체육관 실내 장면은 스튜디오 촬영이긴했지만. 이렇듯 꽤 오랜 시간 이어졌던 한홍합작 영화의 유구한 계보를 새삼 확인하고 있자니 현재 이루어지는 아시아 영화들의 합작은 훗날 어떻게 보일지 자못 궁금해졌다. 오직 시간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

 

34번가의 바냐 삼촌(1994)

2022년에 본 신작 중 가장 인상깊었던 건 결국 <드라이브 마이 카>인데 <바냐 삼촌>의 리허설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연출과 실재가 얇게 맞물린 설정도 흥미롭지만 어쨌든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를 보는 맛이 있어서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늘 분주한 뉴욕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철거 예정의 낡은 극장에서 바깥 현실과는 상관없이 아지트이기도 대피처같기도 한 실내에서 자기들만의 예술 행위를 펼쳐나간다는 그 설정만으로도 이미 매력적이다.

 

림보(2021)

올해 본 신작 중에서는 가장 야심찬 영화이자 가장 용감한 여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영화다. 야심이라면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착각)했던 시네마 시티 홍콩의 완전히 낯설고 다른 이면을 조명했다는 점. 즉 뒷골목, 쓰레기 하치장, 공장 등 관광객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도시의 뒷공간을 강렬한 흑백 콘트라스트 속 스릴러의 무대로 그것도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주 무대로 탈바꿈함과 동시에 말그대로 '몸을 던졌다'라는 표현 외에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고된 연기를 기꺼이 해낸 여배우의 과감함과 용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당연히 금상장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일찌감치 촬영은 끝났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그로부터 한참 뒤인 2021년에 정식 개봉을 했는데 오히려 그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로 인해 배경이 된 시공간의 의미가 새롭게 거듭나는 결과를 얻었다. 

 

downtown 81(2000)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바스키아, kid creole and the coconuts 그리고 80년대 초반의 뉴욕!

 

매염방(2022)

연기를 노래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았고 과거 출연작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보게 만들었다. 주로 90년대 이전, 더 정확히는 <연지구> 이전 출연작들을 중심으로.

 

unstuck in time (2021)

<타임퀘이크>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 이름을 집어넣는 식으로 저자의 사적인 삶을 작품에 녹여넣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예전에 마이너 출판사에서 이미 한번 출간한 카탈로그들이 메이저 출판사에서 옷을 갈아입는 방식의 재출간이 주를 이룰 뿐, 전에도 안 나왔던 (보니것이 아니라) '보네거트'의 작품들은 여전히 안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슬랩스틱>같은.

 

hello bookstore(2021)

출판 시장과 독서 인구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미국에서조차 팬데믹을 거치면서 기부와 자선에 의해서야 겨우 명맥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독립 서점의 실정을 보자니 맥빠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래도 한 자리에서 그렇게 오래 운영할 수 있었던 데는 운영자의 캐릭터가 한 몫을 하는데, 물건을 파는 자영업자이기 앞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늘 유머를 잃지않는 동네 이웃이 되는게 먼저라는걸 보여주는 실례였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

결코 '예술 영화'로 분류할 수 없는 핍진한 드라마라는 점, 역시나 전성기 이탈리아 영화답게 촬영과 미장센이 교과서적으로 아름답다는 점, 허세가 없는 알랭 들롱의 연기를 거의 처음 본 거 같다는 점. 고전 영화를 찾아봐야 한다는 당위를 찾게해준 또 한 편이 되었다.

 

<베터 콜 사울> 마지막 시즌

이 마지막 시즌으로 인해 이 드라마가 프리퀄만은 아니게 되었지만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이라는 '이데올로기'(그러니까 강요된 엔딩)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보던 관성이 있어서 끝까지 보기는 했으나 브레이킹 배드 이후 전개 그러니까 현재 시점이라 할 흑백의 시퀄 부분은 그 앞까지의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져서 심드렁하게 봤다. 클라이막스를 이미 지나고도 속죄와 사필귀정의 결말을 위해 계속 이어지면서 결국 늘어지고만 에필로그라는 불균형.

 

나르코스 시즌3

오히려 그래서 올해 재밌었던 미드는 뒤늦게 본 나르코스 3시즌. 지난 두 시즌은 솔직히 심드렁하게 보는 정도였으나 오히려 이 3시즌은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잡으려는 자와 숨으려는 자의 숨바꼭질이 두뇌싸움에 의한 자잘한 작전들로 이어지면서 스릴감이 높아진 때문이었다. 다시금 느낀건 미드 시청은 영화와 달리 관람자의 에너지를 비축하고 소모하는 과정의 반복이라는 느낌이어서 쉽사리 도전하기가 힘들어졌다는것.

 

night(2021)

차이밍량은 몇 해 전부터 극영화로부터 조금씩 비주얼 아트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단편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영상시 쪽에 가깝다. 평범해보이는 홍콩의 밤 풍경 위로 우산혁명과 격렬했던 반중시위를 지난 흔적들은 곳곳에 생생히 남아있다. 고정된 채 관조하는 카메라의 시선의 주체는 연출자도 cctv도 아닌 그곳을 떠나지못한 채 떠도는 유령이나 여전히 그곳을 살아가야하는 홍콩인들의 감정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 연작 (1972~1974)

연말에 이 영화들을 쭉 보면서 든 생각은 cgi없이 편집과 촬영, 분장과 특수효과, 스턴트로만 구성한 영화의 연출이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는 정말이지 너무 참신하고 독창적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액션씬의 아이디어라는 점에서는 지금이 6,70년대보다 퇴보한 지점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의문에 대해 '확신'을 갖게됐다.

 

장단각지연(1988)

80년대 홍콩 영화 특유의 왁자지껄함과 들뜬 분위기가 물씬하다. 개인적으로는 87년 88년 이 무렵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코미디물들의 느낌도 사뭇 다르다고 느낀다. 왓차덕에 80년대 중심으로 온갖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홍콩 영화들을 잔뜩 볼 수 있었다.  

 

극도전국지 후도 (1996)

초등학생 킬러, 양성구유, 성기를 무기로 쓰는 여고생 킬러 등 불과 25여년 전 일본에서는 이런 영화가 나왔었다. 창작의 자유는 현실 사회의 정치 환경, 인권, 자유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지점. 지금은 실사화 전문 감독이 되다시피한 미이케의 창작력은 역시 이 시기에 가장 만개했던게 아닐까.

 

대보살고개 3부작

한 편으로 끝난 나카다이 다쓰야의 미완결작이 아닌 이치카와 라이조가 주연한 완결된 삼부작을 봤다. <너의 이름> 삼부작(1953;1954)이나 <푸른 산맥> 연작(이마이 타다시, 1949;1950)에서 보듯 tv 드라마라는 개념이 아직 없거나 생소했을 시절에 나온 기획, 즉 '연속극'으로 나왔어야 할 이야기를 2시간 안쪽의 극장용 장편 영화들의 연작 형식으로 개봉하는 방식이 꽤 많았다는걸 알게 됐고 사실 이는 지금도 일본에서 이어지는 나름의 전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노 라이프 킹(1989)/ 옷 한벌 살까요?(2009)/ 자와자와시모키타자와(2000)

지난 해 두 편에 이어 올해는 이치카와 준의 영화 세 편을 볼 수 있었다. 미완성 유작은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다큐 질감의 화면이 몰입을 방해하긴 하지만 끝까지 완결을 보고 싶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했다. 2000년작은 90년대에 그가 주로 썼던 전개 방식, 즉 확실한 기승전결 없이 여러 인물의 사연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이야기. 89년작은 나름 복잡한 서브텍스트를 가진 원작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절반 정도의 성취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아직까지 보지 못한 이치카와의 극장용 장편은 <다동과 치쿠와>(1998) 한 편이 남은듯.

 

베드룸 윈도우(1987)

히치콕 우수 전공생의 또다른 오마주이자 응용작.

 

무관 (1981)

올해 본 홍콩 영화 중에서 장철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장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 결투 장면의 공간 세팅이 창의적이었음.

 

seven beauties(1975)/ swept away(1974)

리나 베르트뮬러의 영화 두 편을 봤다. 성과 정치를 엮어 난감한 상황이나 딜레마를 풀어가는 코미디 연출이라는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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