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오펜하이머의 <Exit Right>(2015)은 앨저 히스를 고발한 장본인인 위태커 챔버스를 포함한 여섯 명의 미국인 우파(로의) 전향자의 삶을 전향에 초점을 두어 재구성한 책이다. 이들은 일본처럼 국가 권력에 의한 물리적 폭력 및 정신적 압박을 받은 끝에 공식적인 전향 선언이나 성명을 발표하는 형식이 아닌 자서전을 포함한 문필 활동, 연설, 강연 등을 통해 기꺼이 스스로 전향 이유를 밝혔다. 살아온 시대 배경도, 삶의 이력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공통점도 있다. 사망 직전에 비로소 고백한 어머니를 통해 뒤늦게 자신의 유대인 혈통을 알게 된 히친스까지 포함하면 여섯 명 중 셋이 유대인이고,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이도 셋인데 이는 저자 오펜하이머에게는 모두 해당하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아이비 리그 출신 미국 유대인과 전향 간의 모종의 관계성을 규명한 책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른 다섯 명과 거의 어떠한 교집합도 없는 로널드 레이건이 중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어떤 기준에 의해 이들 여섯 명을 골랐는지 알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끝까지 읽어봐야겠다.

 

조지 패커는 미국 우파 전향자들의 전향 동기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 바 있다. 소비에트로 대변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자행한 숙청과 폭력,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 못지않은 계급에 의한 위계와 권위주의 통치 등의 모순과 부조리를 목격했기 때문에/ 지하 활동에 불가피한 격리, 비밀 유지, 상습적 거짓말 등의 일탈 행위 등을 견디지 못해서/ 미국 리버럴리즘의 주요 원칙이자 대의인 다원주의 및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유주의를 혐오하게 되고 그 대안으로 보수주의를 선택하게돼서/ 정세 판단의 결과 더 이상 공산주의에 기대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해도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신념에 강하게 헌신했을 정도로 목적과 대의를 향한 집착이 좌파 사상의 대체제를 찾은 끝에 종교 정확히는 기독교에 안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적으로도 전향하게 되는 경우/ 보수주의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자유주의를 경멸하는 개인적 성향이 자연스레 좋았던 옛 시절의 부르주아 자유주의로 회귀하게 되어서(특히 이렇게 공산주의는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자유주의도 마뜩치않아 우파 보수주의를 택했다는 이들에게서는 더러 '내가 변한게 아니라 자유주의가 변했을 뿐이고, 나는 그대로이고 바뀐건 민주당이다'라는 궤변도 보게된다)/ 30년대 대공황을 경험한 끝에 자본주의의 불가피성을 깨닫고서는 체제 전복보다는 체제 안에서 정부의 통치 공학에 힘을 보태기로 하거나/ 순수하게 이론적 관점에서 마르크스 변증법에 대한 의문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서/ 마지막으로 이념과는 전혀 무관하게 순전히 사적인 이해 득실을 따라서 즉 돈, 명성, 사회적 지위 등 세속적 성공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전향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공산주의 및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하면서 그에 헌신했던 자신의 삶도 같이 실패했다는 비관적 판단이 선행한다.

 

그럼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어떨까. 이 책의 주제인 전향 이유에 초점을 맞춰 거칠게 본문을 요약하면 이렇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2차 대전을 지지하고 전시하 영국민을 격려했던 조지 오웰과 자신을 너무 동일시한 나머지 스스로를 21세기판 오웰이라 여기며 부시 정권의 이라크전을 옹호했고, 데이비드 호로위츠는 자신과 정치적 신념을 공유했던 동료들 사이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사건을 목격한 끝에 그간 침묵했던 좌파의 오류와 실패를 지적하고 그들의 위선을 직접 벗겨내기로 한다. 연기자 노조 임원까지 지냈던 로널드 레이건은 생계를 위해 선택한, 본업과는 제법 거리가 먼 홍보 목적의 기업 강연 여행을 하는 동안 점차 노동자보다 사용자와 자본가의 논리를 내면화는 한편, <내셔널 리뷰> 같은 보수지와 위태커 챔버스의 자서전을 탐독한 끝에 우파로 돌아선 다음 자신의 천부적인 스토리텔링 능력을 활용해 우파 이데올로그로 거듭나더니 마침내 백악관까지 입성하는데 성공한다. <코멘터리> 편집장으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며 물질적 보상의 달콤함을 맛 본 노먼 포도레츠는 자신이 동경하던 노먼 메일러의 글쓰기 방식을 참고하고, 남들은 쉽게 밖으로 발설하지 않는 인종에 대한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았던 에세이의 성공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활용해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가 좌파 동료들로부터 집단적 거부를 당하고는 종교적 계시를 접한다. 이들 여섯 명 중 가장 앞선 시대를 살았던 대표적인 미국의 우파 전향자인 챔버스와 제임스 버넘은 공통적으로 스탈린의 대숙청과 독소조약 체결로부터 충격을 받고는 스탈린 정권 비판 수준이 아닌 마르크스주의 신념 자체로부터의 절연을 실행한다.

 

이론과 실천의 격차를 (경험이 아닌) 목격하고 실망한 나머지 미숙했던 실천이나 이론의 적용을 탓하는게 아니라 아예 신념 자체를 철회하는 과정은 충분히 있을법한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한 쪽에서 공산주의 이론을 현실에서 구현하는데 실패한 소비에트 '정권'만을 비판한다면 그 반대 쪽에는 아예 마르크스주의 신념 자체를 거부할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잘못된 선택을 한 자신을 향한 철저한 자아비판까지 행한다. 그런 면에서 어린 시절부터 줄곧 최우등생이었고 학자로서도 전망이 밝았던 제임스 버넘의 전향은 주목할만하다. 그의 저서 <관리자 혁명>(1941)은 이른 시점에 공산주의의 붕괴를 예언한, 그 자체로 높은 지적 성취이자 동시에 정교한 전향 선언이다. 탁월한 지성을 갖춘 사람답게 버넘에게는 늘 체제와 목적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마르크스주의는 그중 가장 합당한 선택지처럼 보였다. 그런만큼 그의 전향은 이 책의 등장 인물들 중 가장 뜨겁고 드라마틱했는데, 트로츠키와 직접 주고받은 논전은 나중에는 조야한 수준까지 내려갔다고는 하지만 지면을 통해 논쟁을 벌이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했다. 불과 몇 해 전 <퇴각하는 지식인들>이라는 글로 우파 전향자들을 비판했던 이가 그로부터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비판하던 바로 그 대상이 됐다는 것은 일견 조소를 당할만한 일이기는 하나, 정작 트로츠키 분파는 그의 전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버넘에게 트로츠키주의가 절실하지 않음을 이미 간파했던 것이다. 부유한 성장 배경, 교수라는 안정된 직업, 그리고 혁명 세력 이외에도 자신과 세상을 연결할 다른 수많은 연결고리가 그에겐 남아있었다.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에 거는 절실한 기대와 달리 인텔리겐치아 버넘에게 트로츠키주의는 지적인 작업의 일환이자 그 자체가 오롯한 지적 구조물이었기에 처음 접할 때 만큼이나 떨어져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본 것이다. 버넘의 옛 동지들이 놀란건 그가 전향을 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그 정도가 너무 급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강령의 내용을 하나하나 공개적으로 부정해나갔다.

 

젊었을 적부터 늘 현대 사회의 위기를 근심해온 위태커 챔버스는 공산주의가 결코 그 위기의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계시를 어느 날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믿고 의지할 무언가가 없이는 그가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조우한 '신'이야말로 또다른 대의의 연장임을, 마르크스주의의 대체물임을 그는 과연 몰랐을까. 대개의 우파 전향자들이 공유하는 종교(정확히는 기독교)에의 헌신이 대의를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 보이는 공통점이라는 점에서 챔버스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이 공통점이 의미하는 바를 날카롭게 간파한 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종교세계 자체로의 퇴폐는 거의 항상 현세적 개인의 현세적 죄를 인간 일반의 원죄로 해소해버린다는 관념의 출현으로 나타난다. ... 이 현세적 개인 책임의 해소라는 관련."

 

이렇게 본다면 우파 전향자의 종교적 헌신은 죄책감의 우회적 고백이자 현실 도피 그리고 책임을 거부하는 비윤리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매우 크고 편안한 울타리를 벗어나 정반대편에 있는 또다른 크고 편안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건 선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반쯤 정해진 필연에 더 가까운게 아닐까. 과거의 공산주의자가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가 되는건 정말 방향을 바꾼걸까. 아니면 훨씬 멀리있는 동일한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중간 경유지를 살짝 바꿨을뿐인걸까.

 

노먼 포도레츠는 늘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이 옳은 주장을 한다면 두려워 않고 밀어붙이는 강한 배짱도 있었다. 흑인에 대한 양가감정을 솔직히 밝혀 우호적인 반응을 받았던 것처럼 좌파의 위선도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랬다. "명쾌함, 책무, 종교, 권위, 전통적 성별, 이스라엘, 미국 그리고 다시 명쾌함", "진리는 간단하다. 심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을 때 그는 좌파 공동체의 일원이기를 거부하고 유명 인사가 되고 싶다고 선언한 셈이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좌파로 규정했던 데이빗 호로위츠는 자신의 지인들이 같은 좌파 공동체 내의 구성원으로부터 살해당한 사건을 결정적인 전향의 동기로 삼는다. 흑인 시민권 운동을 이끌고 관련인들을 변호했던 저명한 여성 변호사가 자신의 클라이언트이자 연인으로부터 살해됐을 때 그는 좌파 내부에 여전히 팽배한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비판하기로 한다. 게다가 이 사건은 그보다 먼저 있었던, 휴이 뉴튼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의심되는 여성 활동가 살인 사건의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호로위츠는 정확히 말해 사람에 실망했지 신념 자체에 실망한건 아니었고 그런 점에서 챔버스와 버넘의 또다른 반복이라 할만하다.

 

히친스의 결정적 전향 동기는 보편적 정의감(거기에 더해지는 일말의 공명심)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 정권의 이라크전 개전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의 허구성이 훗날 드러나면서 살짝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이미 그의 신체가 조금씩 스러지기 시작한 이후였다. 그가 당시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 생전에 공개적으로 후회나 유감을 표명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언젠가 훗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판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회의나 두려움 같은건 처음부터 그의 고려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가용 정보만으로 결정한 자신의 스탠스에 대한 확신과 명분이야말로 행동하는 지식인을 자처하는 그에게는 가장 중요했을테니.

 

전향을 외부로부터 강제된 사상의 전환이라 규정한 츠루미 슌스케의 정의를 엄격하고 좁게 적용한다면 이 여섯 명을 '전향자'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재 통용되는 한자 조합어 '전향'(転向)이 우익이 득세하던 1930년대 일본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최초 고안된 개념임을 염두에 둔다면, 다른 용어를 채택하지 않는 한 기표만 전유했다고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국가에 의해 '강제'된 '전환'이 아니라면 물어야 할 질문은 이들의 정치적 입장 전환이 진정 자발적인지의 여부이다. 국가 내지는 공권력이라는 강고한 타자로부터 독립된 주체적 선택인가라는 소극적인 의미의 자발성을 묻는게 아니라, 전향자의 결단이 어떠한 '내재적'인 논리로부터 파생했는지를 세세하게 따져보는, 즉 이들이 정확히 무엇을 부정하고 비판하며 반성했는지를 식별해내는 것이다. 우선 이들이 눈 앞의 현실을 부정하는가 아니면 더 심층적 수준에서 기존의 신념 자체를 부정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론이 현실에 우선하지 않는다면, 즉 이론이 현실과 유리된 채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으며 현실을 추상화한 개념으로서 끊임없이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론과 신념의 부정이 마냥 비판당하기만은 어렵다. 이론이 현실로부터 추출된다는걸 인정한다면, 현실이 기대(가정)를 배반했을 때 그 파생물인 이론까지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와 신념의 부정이 오로지 이론적 층위에서만 행해진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론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과정에 개입한 무수한 우연과 의도치 않은 요소는 별개로 치더라도 결국 전향은 인간이 내리는 결단이고 거기엔 대상을 향한 온갖 감정이 투사되어 있다. 영화 제작 조건을 하나하나 물고 늘어지면서 결국 제작 자체를 사보타주했던 노조를 보면서 느낀 레이건의 감정,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에 대한 자아비판이나 반성이 없는 급진주의 운동가들을 보면서 호로위츠가 느낀 감정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최대한 균형잡힌 시선으로 보려고 하더라도 레이건은 자신의 물질적 기반이 풍족해짐에 따라 우선 정치적 스탠스를 바꾸고 난 뒤에 그걸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해 전향의 이유를 사후적으로 찾은 것처럼 보인다. 히친스는 생전에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몇몇 기준에 비추어 자신을 우파라고 호명한다해도 개의치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의 그 발언은 어딘가 모르게 자신은 끝내 전향하지 않았다는 우회적인 항변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전향은 자발적이기도 하고 '자발적'이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이들 중 현실의 정세 변환과 상관없이 이론에 진정 충실했던 이는 누구인가.

 

적절한 분노와 적당한 명분, 씁쓸한 자기연민과 부족했던 인내, 지나친 확신과 넘쳤던 자기애는 경험을 투사하고 상상을 확증하며 자신만의 전향 경로를 형성해나갔다. 하지만 나에게 너무나 정합적인 논리가 타인에게도 그럴까. 앨저 히스를 고발하기 전, 챔버스는 히스에게 자신과 함께 전향하자고 권했으나 그로부터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은 그저 정신적 자위행위일 뿐이네'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무리 자신에게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배제한 온전히 스스로의 판단 하에 얻어낸 결론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이들은 얼마나 고려했을까. 인식의 지평 사이에 놓인 결코 쉬이 좁혀지지 않는 거리와 간극을 가리켜 세계관과 사상과 이데올로기라 명명한다면 불가능할 것 같은 그 간극을 뛰어넘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체계적으로 축조된 것처럼 보이는 사상이라는 단단한 건축물 사이사이에 그에 어울리지 않는 유연하며 물컹물컹하고 어두운 무언가가 들어앉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건축물의 경도가 유지되지 못하고 무너져내릴 때 간극을 뛰어넘는 일이 가능해진다. 오롯이 논리와 이론으로만 사상이 축조된다면 전향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붙어있는 단단하지 못한 그 무엇, 그러니까 이 여섯 명의 전향자들이 드러낸 분노, 공감, 비애 같은 감정과 위신 같은 (세속적인), 한마디로 (매우) 인간(적 특)성까지도 사상을 구성하는 요소임을 염두에 둘 때 전향 문제를 사유하는 다른 관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간에서 찾아내려 한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후기에서 밝히듯 저자는 이 여섯 명의 전향 '원인'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데, 이는 출간 후 있을지모를 필화 등을 피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저자 또한 집필하면서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이 점점 더 어렵다고 느낀 때문은 아닐까. 이들 여섯 명은 현실에 패배한 강직한 이론가가 아닌 회의하는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구현에 실패한 이론보다는 자신의 주변에 있던 인간을 더 회의하는.

 

6인의 미국인 우파 전향자와 1930년대 일본의 전향자들 간의 결정적 차이도 바로 이 회의가 드러나는 방식에 있다. 권력의 강제에 의해 대중에게 자신의 달라진 정치적 입장과 생각을 공개 표명한다는 전향성명서 형식에 전제된 작위성은 어쩔 수 없이 성명서를 하나의 텍스트로 대하게 한다. 텍스트의 행간을 파악하고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그 안과 밖을 모두 살피려는 노력이 요구되는데, 자유로운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쓰고 발표한 글이나 책, 연설에서는 챔버스 등이 경험한 (이론과 인간을 포함한) 회의의 '속내' 내지 '느낌'이 어떤 식으로든 언급되는 반면 전향성명서에는 부재한다. 한마디로, 전향성명서에는 전향의 절반만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확인한건 바로 이 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나머지 절반에 대해 생각해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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