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성시>를 처음 본 건 1996년 kbs 명화극장에서였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패전일이자 대만이 해방된 날, 출산하는 오프닝을 보면서 훗날 그 아이가 양조위 캐릭터가 되는 줄 알았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만 알았어도 그런 오해는 안했을텐데 그 정도로 미욱한 관객이었다. 필견작이라고 해서 늦은 시각 찾아봤지만 내용에는 그토록 무지했다. 반년쯤 전에 봤던 <중경삼림>과는 사뭇 다른 양조위의 캐릭터도 감상에 방해가 됐다. 그가 연기하는 막내 문청은 타인들과 주로 필담으로 소통한다. 연인은 그렇다쳐도 왜 가족과도 수화가 아닌 필담을 하는지 얼핏 생각하면 의아하지만 하고픈 말이 절실한 나머지 급하게 노트와 펜을 꺼내는 그의 움직임만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다음 날 등교 때문이었는지 끝까지 보지 못했는데 확인해보니 96년 1월 방영이라 학교갈 일은 없었다. 영화에 어지간히도 몰입을 못했었나보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03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에서 두번째로 이 영화를 봤다. 그제서야 줄거리 전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문청이 처한 상황과 그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임씨 형제들은 딱히 정치적이거나 하지 않음에도 당대의 현실이 그들을 마냥 놔두지 않는다. 문청의 친구이자 아내의 오빠인 관영은 빨치산이 되었고 맏형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대가족을 건사하려하지만 쉽지 않다. 아내와 조용한 삶을 살고 싶었던 문청은 점점 더 어떤 결단을 내려야만하는 순간으로 다가간다. 영화의 마지막즈음, 앞으로 다가올 어떤 날을 차분히 준비하는 그를 보면서 단순히 감정이입을 넘어 가당치도 않게 나를 찾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느리지만 침착하고 유려한 전개에 푹 잠겼던 기억이 상영관 안의 분위기와 함께 아직도 또렷이 남아있다.
 
그후 허우 샤오시엔의 전작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다 찾아봤지만 이 영화만큼 마음을 움직인 다른 작품은 안타깝지만 없다. 그의 90년대 이후 작품들은 템포가 갈수록 더 느려지거나 너무 관념적이었다. 그나마 두번째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건 <쓰리타임즈>인데 여기서도 그 선호는 사실상 마지막 에피소드에만 해당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그 작품들을 <비정성시>와는 달리 극장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화질이 열악하거나 자막이 부실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내가 나이를 먹었고 그러는동안 다른 영화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 수 있다. <비정성시>에 절절하게 감동했던 이십대가 순식간에 끝나버린 것이다. 선대의 뒤틀린 역사와 작금의 부조리한 현실에 좌절하며 분노하고 또 절망하는 젊은이의 모습에 공감하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세속적으로 변해버렸다. 이제는 일부러 어느 감독의 회고전을 보기 위해 집에서 먼 곳까지 발품을 파는 일도 거의 드물어졌고 가만히 있어도 어지러운 머릿속을 텅 비우기 위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위해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 감상한다기보다는 무심히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제법 늘었다. 이런걸 나이드는 거라고 한다면 이보다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살면서 하는 수많은 변명 중에 이보다 손쉬운 변명이 또 있을까.
 
다시 십오년이 지나 <비정성시>를 세번째 봤다. 이번엔 구체적인 정보에 좀더 신경을 기울였다. 의사인 둘째 형은 (아마도) 군의관으로 필리핀 루손 섬에 갔다가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있고 셋째 형은 (아마도 고문 때문에) 넋이 나간 채 귀환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대륙에서 온 밀수업자들과 일을 꾸미다가 사이가 틀어져 그들에게 린치를 당한 뒤 완전히 광인이 돼버린다. 그런 동생을 구하려다 장남 문웅마저 사망한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 북경어, 일본어, 광동어가 들리는 가운데 두 번의 통역을 거치는 장면으로 보아 또 다른 언어(아마도 대만어)도 나온 것 같다. 그렇게 여러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당연히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대만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반영한다. 일본에 대한 양가적 태도도 그중 하나다. '우리 대만인들이 제일 불쌍해, 일본인과 대륙인에게 차례로 괴롭힘을 당하니'라는 이 영화의 제법 잘 알려진 대사가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아들을 전쟁에서 잃고 패전 이후에도 대만에 쭉 남아있다가 뒤늦게 본국으로 돌아가는 옛 소학교 교장인 일본인 부녀의 에피소드도 있다. 서력이 아닌 '쇼와' 연호를 쓰는 전형적 일본인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는 식민 지배자를 향한 증오나 분노가 아닌 애처로움이 있는데 여기에는 종주국과 식민지 관계이기 이전에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다는 공통점에 기반한 인물들간의 정서적 연대가 있다. 물론 그러한 시선의 저류에는 추상적 개념인 국가나 역사가 아니라 실재하는 각각의 사람들에 집중하는 감독의 끈덕진 태도가 있을 것이다. 임씨 가족은 정치와는 무관하지만 본토인과 함께 사업을 하다가 그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자신들과 같은 본성인들로 구성된 자경단의 오해를 받아 린치를 당할 뻔하고, 수배중인 인물의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속을 당하는 등 쉼없이 역사와 정치에 휘말린다. 
 
히로히토의 '종전조서' 낭독 육성을 배경으로 시작한 영화의 중반부에는 장개석의 계엄령 선포 육성도 삽입되어있다. 국민들에게 직접 전하는 최고권력자의 육성은 곧 자신의 권력을 직접 체현하는 행위다. 그렇게 스스로 현전하는 권력으로터 개인이 자유롭기란 당연히 어렵다(저 두 육성 모두 자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민중은 대개 피해자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슬픈 도시'라는 제목에서도 보이다시피 이 영화 또한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역사와 정치와 국가에 휘둘리는 평범한 개인들을 리얼리즘적으로 그린 이 영화가 허우 샤오시엔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우리 관객에게 깊이 소구할 수 있었던 큰 이유도 일본의 오랜 식민지배와 해방 이후 우파 정권의 독재 및 장기집권이라는 경험을 서로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를 쟁취한 바로 그 해, 대만에서도 40년 가까운 오랜 계엄령이 해제됐다. 그로부터 불과 2년만에 이 영화가 제작된 데도 이런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비정성시>의 직전 연출작인 <나일의 딸>(1987)을 봤다. 굳이 말하자면 청소년물이라 분류할 수 있을 이 영화에서 실제 당시 대만의 인기 여가수였다는 주연 여배우는 방황하는 젊은 여학생을 연기한다. 고정된 카메라는 책상이 놓인 동일한 구도의 실내를 여러번 보여주는데 오즈 영화에서 익히 보았듯이 이런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시간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놓인 책상은 똑같은데 거기에 앉는 사람이 다르고 그곳에 앉아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 이렇듯 자신이 경험했고 알고있던 가까운 시대를 배경으로 실내극에 가까울 정도로 한정된 상황 하에서 캐릭터들 사이의 폐색된 관계와 심리를 그렸던 감독은 차기작에서 과감히 자신이 태어나던 즈음의 시절로 향한다. 예술가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해서 지금 이 곳에 있는지에 민감하기 마련인지라 그도 자기 부모님 세대의 시절로 돌아가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직접 자신의 힘으로 이해해보려 한다. <비정성시>보다 대략 십오년여쯤 뒤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 양덕창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계엄령하 대만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상시적인 불안 및 긴장감을 어른이 아닌 소년들의 공동체를 통해 투영했다면 <비정성시>는 그러한 사회 분위기를 만든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려고 한다. 동갑의 두 감독이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했음은 분명해보인다. 특히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하게 동시대물이 아니었던 양덕창의 경우를 본다면 더더욱.

오년만에 다시 보니 주인공들을 암울한 시대에 갇힌 채 희생당한 민중으로만 그리기보다 조금 더 과감했어도 좋았겠다 싶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영화사적 위상을 얻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벌써 삼십년 전, 그것도 계엄령 해제로부터 불과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제작 시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빠르게 제작에 착수한 감독과 제작진들의 진정성과 용기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삼십년동안 변화된 영화 제작 환경, 서사 문법, 관객의 구성과 취향 등을 생각하면 1989년으로부터 지금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실로 아득하다. 감독의 명성이 올라가고 만신전에 오를수록 정작 그들의 신작이 일반 개봉의 형태로는 찾아보기 힘들어지는건 작가주의 감독들의 얄궃은 숙명이라고 해야할까. 이제 허우 샤오시엔의 신작도 영화제나 회고전에서 더 안정적으로 볼 수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