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 호금전이 한국에 와서 연달아 찍은 두 편의 영화를 본 한국 관객이라면 먼저 익숙한 우리의 자연과 산수 풍경에서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동시대의 자국 로컬 영화들에서 보던 그것과는 어딘가 다르다.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재현된 험준한 산세, 계곡과 능선, 파도를 헤치고 우뚝 돌출된 바위, 그리고 단청 등을 찍은 숏은 이를 처음 본 사람만이 갖는 낯섦의 시선이 매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자에 의해 비로소 (재)각성되는 익숙함은 그래서 이 영화들을 '무국적' 시네마로 보이게 한다. 서사가 더 보편적 차원으로 격상되는 것이다. 기실 두 편 모두 이야기는 불교에 기반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호금전의 무협 사극을 가장한 도덕극이다. 게다가 두 편 중 <산중전기>의 줄거리는 아예 무협이라기보다는 짧은 '기담' 혹은 '괴담'에 가깝고 그에 반해 러닝타임은 너무 길고 늘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그래서 요즘 영화에서는 이제 거의 사멸되다시피한 서사의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오히려 더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영화사에는 타국에서 온 감독이 바라보는 관찰자적 시선이 들어있는 영화들의 긴 목록이 있다. 빔 벤더스의 뉴욕과 텍사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런던과 데스 밸리, 요시다 기주의 리스본과 파리, 봉준호의 도쿄 등등. 이 두 편의 영화에서 호금전의 카메라는 단청과 마루와 장지문을 경공으로 넘나들면서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상상 속 '강호' 마냥 우리의 산과 바다와 절을 지나가고 햇빛과 석양을 무연히 바라보고 등진다. 인물들은 태연하게 대청마루와 온돌방에 좌식으로 앉아 식사를 하며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달리 보면 그 어색함과 무국적스러움이 이야기의 비현실성과 환상성을 승인한다.

 

한홍합작 영화들이 숱하게 만들어지던 가운데 나온 이 두 편이 그들 속에서도 개성적으로 보인다면 이는 역시 감독의 비전 때문일 것이다. 내내 정적이다 돌연 중력을 거스르다 못해 초월하는 동적 장면들이 이어지는 비주얼, 그리고 철저히 거짓과 위선과 음모에 의해서만 움직이던 인물들이 결말에 이르자 불심으로 대동단결하면서 권선징악을 맞고 개과천선하며 깨우침을 얻는 서사. 지금 시점에서 보면 도식적이기 짝이 없는 전개지만 더없이 고전적이고 거기에 위에 말한 무협의 비주얼이 더해져 정전으로 남기에 부족함이 없다. 산수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끝내는 예의 호금전스러운 엔딩 장면을 보면 알게 된다. 그가 왜 무협물의 마스터이자 세계영화사의 거장인지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