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침략자>를 봤다. 철학적 SF? 그런데 분위기는 은근 코미디다. "'나'란 무엇인가? '일'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외계인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성인이 이런걸 진지하게 묻기 시작하면 우스꽝스럽지 않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배경음악도 희극적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설정만 보면 사변적 sf처럼 보이기는 하나 정작 본편을 보면 뭔가 영화가 뒤죽박죽이다. 아포칼립스, 액션, 멜로까지 온갖 서브 장르가 출몰하느라 전체적으로는 딱히 뭐라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변종 sf물의 꼴을 하고 있다. 

 

유심히 보면 이 영화는 양육에 관한 우화처럼 보인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 붙잡고 모르는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묻는건 어린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는 전형적 행동이고, 그렇게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말리고 붙잡아 끌고 다니는 나루미의 모습 또한 흔히 보는 부모들의 그것이다. 즉 여기서 자칭 '외계인'은 아이이고 '가이드'는 부모인 것이다. 그래서 신지와 나루미는 부부지만 섹스를 하지도 그렇다고 감정적인 '로맨스'에 이르지도 못한다. 사실상 부모와 자식 사이니까. 점차 신지가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부부 되기는 더 어려워진다. 근친상간은 터부니까. 두 사람(이라기보다는 나루미)의 감정 변화의 과정 연출에 좀더 힘을 들이지 못한게 아쉽긴 하지만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남편의 말을 어쨌든 믿는 척하면서 받아들이는 나루미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영화의 마지막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나루미는 지구 멸망 직전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사랑'이란 개념을 가져가라며 요구하고 신지는 그 요구를 따른다. 이후 침략이 중단돼 살아남았지만 '사랑'이라는 관념을 이미 상실한 나루미는 정신적 공백 상태에 빠진다. 자식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즉 모든 사랑을 내어준 후 늙어버린 부모를 이제는 자식이 보살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신지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대사를 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까지 평생 같이 있겠다고. 

 

일반적으로 보자면 정의를 내리는 사람이 권력자다. 선생님, 부모, 상사, 주권자 등. 그런데 여기서는 '우월'한 외계인이 하등한 지구인에게 정의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반대처럼 보이긴한다. 하지만 진정 지적으로 우월하다면 지구인의 관념을 그들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탈취할 필요가 있을까. 여타 sf물의 장르적 관습을 떠올려본다면 쉽게 비교가 된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지구인을 지적으로 열등한 종족 취급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영화의 외계인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지구인보다 열등했던건 아닐까. 굳이 침략 대상인 지구인의 몸을 빌려야하는 사정도 그렇고(물론 비슷한 설정의 고전인 <바디 스내처>가 있긴하다) 달랑 외계인 셋이서 침략을 꾸미다가 그 중 둘이 본격적인 침략을 시작하기도 전에 죽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외계인들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사족. 2010년대 이후로는 구로사와 기요시 역시도 일본 주류 영화가 그러하듯이 거의 각색물만 연출하고 있는데(<세븐스 코드>와 <은판 위의 여인>이 예외인 걸로 알고있다) 그가 쓴 오리지널 각본물이 보고 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