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스트 아워>를 보는동안 같은 시기 도착적 유사 상황을 겪고 있던 또 한 국가, 바로 1945년의 추축국 일본이 떠올랐다. 갈수록 불리해지는 전황 속에서 두 나라 모두 주전파와 강화파의 대립이 있었다. 일본의 경우, 그래도 한번쯤은 적에게 일격을 가한 뒤 유리한 조건 하에서 강화를 하자는 육군 주전파와, 계전하다 패망할 경우 발생할지 모를 공산주의 혁명과 천황제 폐지가 두려운 궁중 중신 그룹이 갈등했고 그 결과 후자의 '종전 공작'이 성공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성단론'이 등장한다.

 

비슷한 점은 단순히 주전파와 강화파의 대립이라는 구도만이 아니다. 할리팩스와 체임벌린이 회담을 명분으로 내세워 사실은 처칠을 실각시킨 뒤 다시 자신들이 정권을 수복한다는 복심을 갖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궁중 중신 그룹 또한 천황의 지원을 등에 업고서 전권을 휘두르는 육군 주전파를 밀어내고 정국을 자신들이 주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종전' 공작은 단순히 전쟁 중단만이 아니라 도조 히데키 내각 타도 공작이자 천황제 존속을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전쟁 전략이나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 투쟁이자 권력 게임에 가까웠다.

 

영국에서는 처칠이, 그리고 일본에서는 천황과 육군이(도조 실각후에도 마지막 내각인 스즈키 내각의 육군 대신 아나미 히로치카까지 일관적으로) 필리핀과 오키나와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전을 주장한다. 두 나라의 비슷했던 처지와 상이한 선택 그리고 엇갈린 결과. 만약 처칠이 히틀러와의 회담에 응했다면 그리고 히로히토가 원자탄 투하 이후에도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지 않고 이른바 '본토 결전'을 단행했다면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선제공격을 하며 개전한 추축국과 그에 대응을 했던 연합국이라는 입장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당시 두 나라의 최종결정자들은 무모해보일 정도로 리스크를 감수하는데 있어서 별다른 주저함이 보이지 않았다. 부여된 권한과 책임의 크기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대하고 막중한 이들이 지위의 성격상 가질 수 밖에 없는 공통점일까 아니면 저러한 성정을 가진 인물형들이 결국 그러한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는걸까. 

 

<콜미바이유어네임>을 봤다. 작금의 동영상 시대에 맞게 몇 분 짜리 클립으로 편집될만한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빌드업해가면서 전체 스토리를 짜나가는 구성은 펠리니나 로셀리니 이후로 지금까지 계승되는 '이탈리아식' 시나리오 작법인걸까. 파울로 소렌티노도 그렇고 이 영화를 볼 때도 이런 식의 플롯이 계속 의식됐다. 무척 오래되고 전통적이지만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시나리오 구성. 안그래도 유럽 배경에 설정 자체도 어디선가 본 듯한데 시나리오까지 이런 방식이어서 기시감이 수시로 느껴지는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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