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 얇은 책이긴 하지만 <개소리에 대하여>(2016)의 핵심을 요약해보자면, 거짓말은 화자가 진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상대를 속이기 위해 그 진실을 숨기고 위장하고 왜곡하는 발화임에 반해, 개소리는 화자가 진실과 거짓의 문제에는 처음부터 일절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철저히 기만과 선동을 위해 하는 언설이라 할 수 있다.

 

거짓말이란 것을 지어내기 위해서 거짓말쟁이는 무엇이 진실인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효과적인 거짓말을 지어내려면 거짓말쟁이는 자신의 허위를 그 진리의 위장 가면 아래에 설계해야 한다. 54

 

거짓말이라면 응당히 그러해야 할, 그것이 참이 아니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지도 않다.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37


거짓말의 예로서 최근 나온 <denial>(2016)이란 영화를 들 수 있다. 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실제 있었던 명예훼손재판을 다룬 이 영화에서 원고였던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데이비드 어빙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그의 저서에 대한 (학계에서는 좀처럼 드문) 매우 면밀한 검증을 통해 그가 의도적으로 특정 사실을 은폐하거나 사료를 왜곡하거나 모호한 서술을 함으로써 편향된 프로파간다를 행하려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가 과연 실제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그가 정말로 홀로코스트 따위는 없었다고 진심으로 믿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본인이 아니고는 알 수도 없으며 관심 둘 일도 아니다. 중요한건 결과적으로 그가 자신의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진실처럼 보이도록 하기위해 체계적인 준비, 즉 사료를 수집하고 해석을 하고 주석을 쓰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고 그러므로 어빙은 개소리꾼이 아니라 거짓말쟁이가 된다. 기존의 홀로코스트 증거와 증언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거기에 학술적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즉 거짓말쟁이는 늘 진실 내지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그러니까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기위해 엄청난 노력과 수고를 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개소리는 다르다. 아무 근거가 없고 그저 당위와 날선 주장만 있을뿐이다. 당연히 노력과 수고가 들 일도 없다. 요즘말로 하면 '아무말 대잔치'에 가깝다고 할까. 이를테면 본문에서 예를 든, 일상 속 사교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형식적인 말들을 향한 비트겐슈타인의 반응처럼 아무런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채 관습적으로 하는 이른바 교화적 커뮤니케이션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폭넓게 규정하기 시작하면 개소리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지게 되는데 저자의 본래 의도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는 물론 정치인의 말이다. 이를테면 미국 사회 곳곳에 소련 스파이와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한다는 조지프 매카시의 발언이나 '그러니까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다 하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주장 같은 것들 말이다. 정치 영역 바깥에서는 사이비 종교나 혐오발언이 여기에 해당할텐데 이들 모두 넓게보아 일종의 선동으로서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진릿값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허세 부리기'에 가깝다. 


향후 공론장에서 이렇게 거짓말과 개소리를 엄격히 구분한다면 언어의 메타게임을 비판적으로 분별하고 다루는데도 얼마간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다. 거짓말과 개소리 각각에 대응하는 방식도 달라지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거짓말에는 객관적 검증으로, 그리고 개소리에는 똑같은 개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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