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밥상은 '엄마'가, 동네 분식점 메뉴는 '이모'와 '아주머니'들이 담당하지만 고급호텔의 '셰프'는 대부분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들이다. 동네 미용실은 여성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지만 최고의 '헤어 디자이너'들로 눈을 넓히면 남성의 수가 확연히 늘어난다. 고정된 성역할의 구별에 따라 가사노동에 속하는 행위도 이렇듯 사적 영역 내에서는 여성의 몫으로 한정되고 심지어 당연하게까지 여겨지지만 그것이 공적 영역으로 이동할수록, 또 그 중요도가 높아질수록 남성이 차지한다.

<무사의 메뉴>에서 '식칼무사'인 야스노부가 인정을 받고 높은 자리에 있게한 이는 그보다 월등한 요리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물심양면 그를 도운 아내 하루다. 영화 말미 그가 영주에게 진상할 요리를 준비하는 그 시각, 하루는 여전히 집안 한켠 어두침침한 부엌에서 평소와 똑같이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요리를 하는 장면의 교차편집은 동일한 노동이 젠더에 따라 갖게되는 상이한 가치를 명징하게 대조한다. 야스노부가 직접 참여하고 지휘하는 현장의 그 수많은 요리사들은 '식칼'을 들었을지언정 모두 무사들, 즉 남성이고 여성은 전무하다. '전속요리사' 집안인 후나키가의 큰아들이 병으로 죽자 아버지는 요리에 뜻이 없던 작은 아들 야스노부가 형을 대신하기를 희망하고, 그 뜻은 끝내 이뤄져 에필로그를 보면 이후 6대까지 가문은 이어졌다고 한다. 아마 그 긴 시간동안에도 하루처럼 부녀자와 시녀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겉으로 드러나지않은 채 가문을 위해 남편과 주인을 도왔을 것이다.

여성이 가사노동을 통해 세상을 아래에서 지탱한다면 남성은 여성들이 그렇게 지탱해놓은 세상을 법과 권력과 정치로 지배한다. 여성상위와 남성의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지금도 이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변하지않는건 모든게 변한다는 만물유전의 공리뿐이라지만 자세히 보면 너무 미세하게 변했는지 멀리서 보면 여전히 그대로인 것들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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