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항공기를 타면 목적지에 정확히 떨어지는게 아니라는걸 불과 얼마 전 제프 다이어의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공항에서 기차로 두시간 반 이상을 달려야 오슬로에 도착한다는걸 그 때 알았다면 라이언 에어로 오슬로행이 아니라 그냥 일반 항공사를 통해 처음부터 베르겐행을 예약했을 것이다. 노르웨이에 머물렀던 5~6일동안 오슬로 관광은 정작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으니까.
높디높다는 북유럽 물가는 그다지 편의점 샌드위치나 생수 가격 정도 외에는 체감할 수 없었는데 그럴만큼 비싼 숙박시설에 묵거나 호화로운 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그다지 셈에 밝지못하다는 이유가 컸다. 돈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호스텔에는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백팩커들로 늘 만원인지라 겨우 하룻밤을 묵고나면 다시 다음날 자리가 나는지 봐가며 갱신을 해야했다. 나흘밤 중 사흘을 방을 바꿨는데 처음 이틀은 우연히 나처럼 혼자 여행중이며 게다가 동갑인 한국인 여행객과 함께 했고 뒤에 이틀은 계속 방을 바꿨음에도 또 우연히 중년의 대만인 부부와 같이 방을 쓰게 됐다. 생업은 어떻게하고 같이 여행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그 호스텔에는 온통 궁금한 사람들 투성이었다. 헝가리인가 폴란드인가에서 왔다는 장년의 여성 여행객은 하룻밤만 묵고 다음날 새벽 일찍 출발하는 페리를 탄다고 했는데 그렇게 일정이 빡빡한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관광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내가 머물렀던 기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온종일 라운지에 앉아 와이파이를 이용하거나 tv를 보거나 새로 온 여행객들과 안면을 트고 대화를 하는등 사교에만 올인하는 '장기 투숙객'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 퍼질러 앉은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긴 할텐데. 희한한 우연도 있어서 거기서 안면을 익힌 어떤 여행객들과 사나흘쯤 뒤 이제는 흔적만 남아 관광명소가 된 베를린 장벽 앞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복지천국' 혹은 '북유럽스타일'이라 불리며 높은 생활 수준과 산업디자인으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중 한 곳이지만 아는 이 하나없는 여행객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생활을 내밀히 들여다보는건 애초에 불가능했으니 주마간산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저명한 어느 영화평론가는 자신의 지론으로 영화란 모름지기 그 표층을 봐야한다고 했는데 이야말로 타국을 여행하는데 가장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심층을 볼 수 없다면 철저하게 표층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건축물의 외관, 교통량, 도시의 청결, 소음의 정도,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옷차림, 표정 등등.
베르겐에 대해 아는거라곤 항구도시라는 것, 그리고 sondre lerche와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출신지라는 정도의 터무니 없을 정도의 지엽적 정보만 알고 있었다. 트램을 타고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알게 되지만 베르겐은 그렇게 크지 않은 항구도시이고 하루 이틀이면 거의 모든 관광명소 섭렵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그 도시에서 닷새나 머물렀다면 그에 걸맞는 여행을 해야하건만 사정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전체적으로 북유럽답게 오밀조밀하고 단정하며, 산을 끼고 들어선 자그만한 집들은 장난감처럼 앙증맞았다. 그리고 항구도시인지라 매일 아침 호스텔 앞 편, 그러니까 도시의 정중앙쯤 되는 자리에는 어시장이 열렸는데 위치상 그곳을 하루에도 몇번씩 지나가곤해서 기억에 남는다.
피요르드 관광을 마치고도 이틀이나 더 베르겐에 머물렀던건 주말에는 중앙역인 오슬로행 기차가 없기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여정도 그래서 조금 더 길어졌는데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그 덕에 오히려 도시 곳곳을 걸어다니며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베르겐의 표층을 훑으며 얻은 한가지 지배적 심상이 있다면 그건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어두워지기 전까지 하루 온종일 걸어다닌게 주말 이틀간이었는데 전망대와 트랙킹 코스는 오전이어서 그렇다고 해도 오후에도 도시는 한결같이 조용했다. 주말이어서 다른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많은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길 한복판에 벌여놓은 공사도 중단 상태였다. 그러나 그 조용함의 실체는 단순히 소음이나 유동인구의 양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소규모의 퍼레이드도 봤고 관광객들이 있을만한 곳에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붐볐다. 그런데 그런 곳들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정숙했다. 항구도, 성곽도, 심지어는 주택가에도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 이 도시에는 관광객만 있고 상주인구는 없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텐데 어디를 가도 마치 공터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차장에도 차가 없어 널찍하게 텅 빈 운동장같고 항구에 정박한 커다란 유람선이나 화물선들도 마치 전시용 오브제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이야말로 내가 그동안 오매불망 애타게 찾고있던 장소가 아닌가. 늘 사람으로부터 도망치려하고 고립을 자처하는 내 음험한 욕망은 생각지도 않았던 의외의 시공간에서 충족되고 있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여객선과 화물선이 늘어서있는 항구, 조립식 장난감같은 집들이 늘어선 언덕길, 그리고 서울에서는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주말 오전 맑은 공기를 마시며 트램으로 올라갔던 산길을 직접 걸어내려오는 산책도 기억에 남지만 역시 제일 조용했고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아쿠아리움 근처에 있던 곶 전망대에서 바라본 그 적막하기 짝이 없는 수평선이었다. 그토록 침묵에 가까운 먹먹한 시공간과 광경은 처음이었다. 바다쪽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어서 시선을 가로막는 그 어떤 장애물도 없는 수평선을 무연히 한참동안 바라만보고 있었다. 나 말고는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고, 파도도 없는 정물화같은 수평선만이 시선 아래로 펼쳐져있었다. 이런 광경을 계속 보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느낄까. 자연의 광대함 앞에 한낱 미물에 불과한 나의 왜소함에 대한 깨달음은 결국 그렇게 다시 스스로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오게 했다. 짧게는 며칠전 제출한 논문 점수와 그를 포함한 최종 성적, 그리고 길게는 앞으로의 진로까지. 물론 그 당시에는 당분간은 아무 것도 하고싶지않다는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큰 산을 하나 넘은 후 심적으로 적지않이 탈진한 상태였던 탓이 크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나같이 생활력이 전무한 인간이, 그러니까 단순히 생계를 이을 방도를 모른다는 것뿐 아니라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기위한 구체적 매뉴얼과 기술이 전무한 인간이 품게 마련인, '하고싶지 않다'가 아닌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그 실체였다. 적극적인 생의 의지 자체가 부족한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의 본질인 '할 수 없다'를 '하기 싫다'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당면과제가 없어진 그 때의 나에게 미래란 앞으로 무엇이 펼쳐질지 모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가 아니라 그 반대 의미로서 백지였다. 암흑이고 제로이고 그냥 무 자체인. 모든 것이 제약이고, 가능보다는 불가능에 더 가까운. 그렇게 바닥을 모르는 부정적 생각을 하고 있던 내 마음과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의 심상이 서로 공명하며 베르겐이라는 도시의 인상을 내면에 각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