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달>의 원작 소설은 사실 장편으로서는 다소 미흡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신문 사회면에 종종 보도되는 은행원의 공금횡령이 대개 불륜이나 치정을 그 원인으로 두거나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 착안한 원작은 그래서 이 단순한, 차마 줄거리라고 할 수도 없을 최소한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변주하고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앞으로의 전개가 뻔히 예측이 된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작가는 주인공인 리카의 주변인물을 여럿 배치해 그들이 기억하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또한 그 주변인물들마저도 현재 리카와 마찬가지로 금전으로 인해 이런저런 문제를 겪는다는 공통점을 갖도록했다. 주인공의 이야기만으로는 중편 정도가 될 이야기가 장편 소설로 거듭나게 된데는 이런 구성이 있다. 


반면 영화화를 하면서 제작진은 이런 헐거운 구성방식을 버리고 더 꽉 짜인 기승전결의 플롯을 위한 각색을 했고 원작보다 훨씬 긴장감있는 이야기로 거듭났다. 그런데 현재 일본 영화의 단점 중 하나인 원작에 지나치게 충실한 영상화 방식을 포기함으로써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야기하고자하는 바가 조금 다른 결과물을 얻었다. 가장 큰 변화는 원작의 각 장에서 화자로 기능하던 리카의 주변인물들을 모두 없애고 그 대신 등장한 은행 동료인 아이카와와 스미라는 두 여성 캐릭터로, 이들은 끝까지 보면 각각 결국엔 리카와 비슷한 처지이거나 그녀가 미처 깨닫지못했던 점(이를테면 실제 그녀의 욕망)을 깨닫게 하는, 원작의 어떤 주변 인물보다 덜 기능적이고 더 뚜렷한 성격의 인물들이다. 


원작은 한 은행원이 돈을 다루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것에 매혹되어 횡령액을 키워가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공력을 들이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리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않은 주변 인물들의 현재 처지까지 더해지면 원작의 초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을 완전히 사로잡고 헤어나오지 못하게하는 화폐의 권능을 그리는데 맞추어진듯 보인다. 다시 말해 작가의 관심사는 주인공이 돈을 왜 횡령했느냐보다는 그 돈으로 뭘 하는지, 파멸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큰 액수를 횡령해서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에 있다. 특히 90년대 중반 버블이 꺼진 뒤 신용카드가 보급되고 자산 운용이 중요해지는 등 자본주의 재편이 이루어지던 시절의 소비 풍습이나 소비 문화에 대한 갖가지 묘사가 꽤 상세하다. 반면 영화는 원작에 나온 여러 횡령 수법과 누가 지갑을 열고 돈을 쓰느냐가 왜 중요하며 어떤 의미인지(남편과 고타와의 관계 내에서 그녀의 지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리고 인물들이 '돈질'에 탐닉하는 과정에 대한 핍진한 묘사보다는 리카의 횡령의 동기를 밝히고 이를 관객에게 납득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클라이맥스인 스미와의 대화 장면에서 영화는 리카가 지금 벌이는 이 모든 일이 어릴 적부터 이어진 일관된 행동의 연속인 것처럼 설명하려한다. 어린 시절 수녀의 물음에 현재의 리카가 대답하는 방식의 편집에서 보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부분 역시 원작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변용된 대목으로, 원작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구호모금에 앞장섰던 리카의 학창시절 이야기는 리카 자신보다 그시절 학교 친구의 회고를 통해 주로 서술되고 있는데 그만큼 착했던 아이가 지금 왜 그렇게 됐는지는 친구들도, 심지어는 정작 리카 본인도 알 수 없는, 그러니까 그녀의 성격의 일면을 드러내는 일화 정도로 머무는데 반해서(영화에서는 초반부에 스미가 그녀의 이런 성격을 꼬집는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나오는 이 과거의 에피소드는 현재의 동기를 설명하려는 허위의 알리바이임과 동시에 원작과는 자못 달라진 주제 즉 진짜와 거짓, 진실과 허위, 진심과 위선의 미묘한 경계를 강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즉, 그녀는 과거나 지금이나 본인은 진심에 솔직했다고 굳게 믿는다. 진심으로 타국의 불우한 어린이를 구하고 싶다면 그 액수는 클수록 좋은거 아닌가. 학생의 용돈 수준으로는 부족할게 아닌가. 등록금이 없어 곤란한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도와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구멍난 액수는 백화점에서 고객의 돈으로 구입한 화장품처럼 나중에 채워넣으면 깔끔하게 처리되는거 아닌가. 거기에 더해 그녀는 처음으로 고타와 밤을 보내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유'롭다고 느낀다. 그러한 자신의 진의를 알아주지않는 타인들(은행 직원과 고객들)이라면 이제부터는 그저 이용 대상일 수밖에 없다.  


돈이란 스미의 말대로라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잘 알 수 없는, 귀가하는 새벽녘에 리카가 우연히 바라본, 손으로 지워버린 가짜 달처럼 그 실체가 모호한 대상이다. 한편 리카의 말대로라면 돈은 누구의 것이든 다 똑같은 것이긴 하지만 누구든 다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의 대상이라는 점을 그녀는 애써 모른척한다. 즉 이 지점에서 이미 리카는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고 실제로 그 욕망을 충족하기위해 직접 나섰으면서도 진심과 선의로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영화와 소설의 근본적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 비판이라기보다는 그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인간군상에 관한 소묘나 풍자에 가까웠던 소설은 영화로 건너오면서 엉뚱한 것에 진심을 쏟은 혹은 자신의 진심과 선의를 끝까지 착각했던 한 개인을 쫓아간다. 영화의 에필로그도 이런 함의를 위해 바뀌었다. 과연 리카는 과거 자신이 후원했던 아이와 재회한거라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자신의 진심과 선의가 꼭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오지않는다는 점에 대해 뒤늦게라도 아니면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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