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 요시타로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 여덟 편을 영화로 연출했다. 그중 아래 세 편의 영화들은 온전한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수사극이나 범죄극에 더 가깝고, 온기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비정한 원작과 달리 멜로드라마적 관습에 기대고 신파적 감동을 끌어내는데 집중한 각색을 취한다는 차이가 있다.

 

1. 모래그릇(1974)

트릭과 동기 중 후자에 집중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답게 영화판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동기가 되는 범인의 과거가 밝혀지는 길고 긴 후반부. 반면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되는 현재 시점에서 발생한 최초의 살인 사건의 경우, 그 범행과정이 전혀 재연되지않는다. 앞에 말한 긴 후반부에서는 단연 카토 요시의 명연기가 빛을 발하고 범인역의 카토 고는 최근 <배를 엮다>(2013)의 노 편집자로 나온 바 있다. 

 

2. 影の車 그림자의 차 (1970)

아래 나오는 <귀축>과는 정반대의 설정으로 아이가 성인 남자를 죽이려한다는 이야기(원작은 읽어보지 못했다). 고향에서 알고지냈던 여인과 우연히 재회한 후 불륜에 빠져드는 주인공은 자신에게 적의를 품은 그녀의 어린 아들로부터 살해 위협에 빠진다. 과연 이것은 그의 기우이고 환상일 뿐일까. 영화는 살해 위협에 대한 남자의 망상보다는 고도성장기 변모하는 일본의 도시생활을 묘사하는데 더 공을 들인다. 여행사에서 바쁘게 일하는 주인공은 그만큼 레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도시 생활상을 반영하고 신식 아파트에 살면서 그 안에서 꽃꽂이 강좌를 여는 그의 부인은 정년 이후 남편이 수령할 연금에 큰 기대를 하는, 종신고용시대 봉급생활자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또한 여행업과 마찬가지로 당시 부흥하던 보험업에 종사하는 여주인공은 바쁘게 사람을 만나 영업을 하러다니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연을 접한다. 또 그녀는 남자 주인공과는 달리 외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직접 때야하는 낡은 목조주택에 살고있다. 이렇듯 각각 삶의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그들의 직업, 주택의 종류, 아이의 유무 등 두사람은 여러모로 대조적이고 보험 사기 에피소드를 삽입하며 이후 사건을 암시하는듯하지만 이런 흐름들이 결말에 이르면 하나로 응집되지 못한채 의외의 방향으로 전개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3. 귀축(1978)

국내에 번역이 되어있다. 자식 셋을 모두 기어이 죽여버리는 말그대로 '귀축'인 부부에 대해 분량이 그다지 길지않은 원작 단편에서는 부부의 배경이나 드라마가 많이 할애되지않는데 반해서 영화는 연기파 배우가 맡은 탓인지 남편의 성장기를 비롯한 삶의 이력을 (플래시백이 아닌 대사를 통해) 추가함으로써 그가 저지르는 행위의 잔혹성에 일말의 개연을 부여하려함과 동시에 역설적 비극성을 강조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범인을 특정할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데서 돌연 끝을 맺어버림으로써 여운과 함께 통쾌함을 주었던 소설의 결말과 달리 영화는 원작에 없던 신파적 결말을 집어넣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이자 특징.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더 대중적 파급력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원작에서 묘사된 부부의 잔인한 범죄행각도 한층 유순하게 바뀌었는데 막내 갓난아기의 경우 미필적 고의임을 더 분명히 암시한다. 원작이 얼마나 대담하게 쓰였는지를 다시금 생각케하는 대목. <모래 그릇>에서 선량한 경찰을 연기했던 오가타 켄이 여기서는 우물쭈물하기만하는 무능력한 남편을, 이와시타 시마가 아내를 연기하고 젊었을적 오타케 시노부가 끝부분에 여경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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