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나같이 뼛속깊은 도시 사람으로서는 약간은 신기하게 봤다. 다시금 확인한 바가 있다면 시골 사람들은 확실히 '일을 만들어서 한다'는 느낌이랄까. 젊고 힘있을적 엄마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다. 굳이 딸기를 사서 몇시간씩 졸이며 잼을 직접 만들거나 나는 입 한번 대지않던 청국장이나 가지볶음같은 '슬로우푸드'를 철마다 꼭 한번 이상은 만든다거나 심지어 좁은 아파트 베란다에 상추까지 키웠던 적도 있었다. 시골에서 나고자란 엄마로서는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버릴 수 없었던걸까. 영화는 최소한의 이야기 전개를 위한 드라마의 흔적만을 남겨놓고 대부분을 요리하는 장면으로 채워나가는데 이렇게 앙상한 드라마가 의외로 그 앙상함으로 인해 관객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낳게하는 대목들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가 왜 집을 나갔는지는 전혀 궁금하지않지만 왜 이치코는 유우타를 집으로 부르면서 키코가 모르도록 걸어오라고 했을까라든지 왜 갑자기 둘의 대화는 불현듯 뚝 끊어졌는가 같은 것들. 어쨌든 후속편도 개봉하면 보게되겠지.

도보 7분
현재 보고있는 1분기작중엔 단연 가장 흥미롭다. 드라마적 서사의 개연성이나 작위성같은걸 일부러 자꾸만 벗어던지려고하기 때문인데 이번 6회에서도 그저 두 여배우가 한자리에서 이어가는 시시껄렁한, 실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대화로만 30분 러닝타임의 3분의 1이상을 끌어간다. 2회를 보면서 자매가 왜 저렇게 이상한 대화를 할까라고 생각했는데 기실 대화 내용은 전혀 이상할게 없으나 이상하다고 느낀건 굳이 드라마에서 보여줄 가치는 전혀 없어뵈는 평범한 일상의 대화였기 때문이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 히키코모리인 여주가 내적으로 전혀 성장하지않는 결말을 취한다면 가장 이상적일듯한데 그건 그저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데이트
지금 내게 가장 흥미로운 작가는 사카모토 유지가 아니라 바로 코사와 료타다. 단연코. 연애가 '능력'으로 간주됨에 따라 만성연애부전 혹은 불능이 만연한 시대에 연애부적격자 두 명을 붙여놓고 케미를 만들어내는 그 방식도 그렇지만 다른 것보다 '고등유민'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 현상을 이 연애 소동극에 무리없이 유연하게 끼워넣고 있다는 점이 발군이기 때문이다. 저성장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신인류라할 잉여, 백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지도 모를 이 신 종족을 희화하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극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등장인물들도 악인이 전혀 없이 하나같이 다 호감가는 인물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러고보면 소세키가 특히 요즘들어 더 여러모로 쓰이는 허울좋은 구실을 하나 만들어줬구나싶다.

24시간 플레이보이
원제목은 "사랑과 헤이세이의 플레이보이"쯤 될거같다. 80년대후반 버블이 터지기 일보직전의 그 긍정적이지만 흥청망청하는, '1억총중류' 캐치프레이즈가  마침내 실현된듯한 전 사회의 유한계급스러운 분위기가 120% 구현되어있다. 동시대나온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ova를 실사화한거같기도하고. 시티팝이나 j-aor과도 물론 맥을 같이한다. 검색해보니 남주역을 한 배우는 주인공캐릭터보다 더한 플레이보이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듯. 80년대의 모리타 요시미츠는 이렇듯 감각이 넘치는 감독이었다. 90년대 후반이후 만년까지의 필모를 보면 도저히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안습이지만. 

 

괜찮아 정말 괜찮아

아무런 정보없이, 그저 작년에 나온 감독의 최신작의 반응이 좋다고해서 찾아봤는데 꽤 늦은 나이에 내놓은 장편극영화 데뷔작이다. 코미디는 황당무계하나 단순히 개그 차원을 넘어 감독이 자기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애정을 갖고있음이 보여서 좋았다. 이는 감독의 전반적인 인간관이기도 하겠지만.

 

폭스캐처

그저 하나의 가설을 제시할 뿐이란건 알지만 그럼에도 한켠으로는 그래도 납득할만한 것이길 바랬는데 역시나 감독의 견해에 이심전심을 하게되면 충분한 설명일테고 그렇지않은 내게는 약간 뜬금없다고 느꼈다. 씬마다 장소와 시간을 비교적 충실히 고지하던 영화는 (심지어 88 서울 올림픽 장면에서 경기장만 봐도 알 수 있는데도 굳이 자막을 첨가하는 친절을 보였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 사건이 있기 전까지 8년간의 공백에 대해서는 슬쩍 모른척 의뭉을 떠는데 정작 살인이 벌어진 96년에 둘 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해서 설득력이 확 떨어졌다. 88년에서 사실상 모든 이야기가 종결되고 (96년 사건당시 배경으로는 달랑 러닝타임 마지막 10여분동안만 주어지는 상황에서) 그것만 가지고 8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범행과 이으려고 한다면 더 구구한 산문적 설명이 있어야하지않았을까. 영화에 나온대로만 본다면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낀데 따른 듀퐁의 우발적 범행인데 영화는 그걸 가문 내 자신의 위치에 대한 개인적 열등감과 슐츠 형제와의 감정의 골에서부터 생겨난 은원에 의한 것처럼 제시하고있다. 범인이 사망한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명확한 진실을 알 수는 없을테고 이런 류의 사건이 늘 그렇듯 가설과 가설들 사이에서 좀 더 그럼직하다는 개연성과, 짐작들에 기댄 또다른 가설과 말들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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