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2014년의 베스트같은건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로 보고나서 어쨌든 기억에 남은 점을 적어둔 메모들

 

도모구이
구구히 전승되는 남성들의 폭력이 여성에 의해 손이 묶이거나 잘려버리는 식으로 일시적으로 중단되며 쇼와시대가 끝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뿐. 현재 개헌에 목숨을 걸다시피한 일본 우경화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 밖에 없다. 묶인 손이 풀리면 언제라도 곧 재개될 남성 폭력, 즉 국가 폭력.

 

일본의 밤과 안개
올해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이자 가장 충격적인 라스트 씬. '정치 영화'는 과연 고리타분한 형식으로만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고전 영화의 날카로운 반격.

 

그여름 나의 누이
제작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너무 밀착되면 문제작은 될지언정 보편성을 가진 걸작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영화. 1972년은 오키나와가 다시 일본 영토로 귀속된 해인데 그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듯 같은 해에 나온 이 영화는 줄거리에서 이미 노골적인 알레고리로 가득하다. 오키나와로부터 자신이 이복오빠라고 주장하는 이의 편지를 받고서 도쿄에 살던 소녀가 오키나와로 건너온다. 남자의 아버지로 의심되는 두 남자가 도쿄에 사는 판사와 오키나와의 경찰 서장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이보다 직설적이기도 어렵다. 법과 치안으로 대표되는 국가 권력이 구식민지에 행한 침략과 착취라는 뻔하지만 그래서 더 당당한 알레고리.

 

잊혀진 황군
<일본의 밤과 안개>와 함께 나에겐 오시마의 베스트. 전쟁은 끝나도 가해 책임에 대한 부정과 은폐 그리고 회피는 2차, 3차 가해를 가한다.


전신소설가

후지타 쇼조는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의 후반부에서 이노우에 미쓰하루를 두고 비록 제명과 탈당선언이 있긴했지만 사상사적으로는 비전향이라 볼 수 있다면서 상당량의 페이지를 할애하여 그의 작품, 사상과 생애를 우호적으로 조명하고있다. 물론 그 글은 하라 가쓰오의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발표되기 훨씬 이전에 쓰인 것으로 훗날 후지타가 이 다큐를 봤다면 (후지타가 2003년에 작고했으므로 충분히 보고도 남았으리라)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가 궁금해졌다. 하라는 여기서 이노우에가 밝힌 자전적 생애에 관한 진술, 즉 후지타도 책에서 언급한 탄광촌에서의 성장과 의식화, 그리고 재일조선인 소녀에게 품었던 연정같은 것들 대부분이 허위이고 날조임을 밝혀낸다. 영화 내적으로는 (요모타 이누히코의 설명에 따르면) <가라가라 신군>에서처럼 작가와 대상간의 팽팽한 긴장이나 갈등, 그리고 연출자의 직간접적 개입 같은 방법이 아닌, 편집에 의한 입체적인 작품을 완성하고있다. 진짜와 가짜, 소설가와 혁명가, 견결한 신념을 갖춘 거짓말쟁이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감독 본인은 한번도 직접 얼굴을 내밀거나 목소리를 내고있지않음에도 이노우에의 발언 바로 뒤에 그의 거짓말을 밝히는 다른 이들의 증언을 붙이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그럼에도 결코 비난하는 투의 주관을 드러내지않는 태도가 돋보인다. 폭로 저널리즘 따위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 이노우에의 허위를 비난하거나 진상을 밝히는데 초점이 있는게 아니라 (만약 이 영화의 목적이 이거였다면 거짓말을 밝히는 것으로 영화는 거기서 끝났어야했다.) 그렇다면 카메라 앞에 선 이노우에라는 이 모순적 존재는 도대체 뭘까라는 궁금증을 두고, 마치 자기의 삶 자체를 하나의 완결된 소설같은 것으로 만들고자하는 이노우에와 거기에 도전하면서 마찬가지로 자신이 본, 자신만의 이노우에라는 한 편의 텍스트를 새로이 써나가는 하라, 두 명의 예술가간의 조용한 대결과 긴장이 영화를 관통하고있다.

 

만화잡지 따윈 필요없어
80년대 버블시기 일본의 소비 및 유흥문화, 그리고 물질 및 생활 수준등이 비교적 잘 기록되어있다. 플롯은 매우 엉성하지만 (우치다가 직접 썼다고함) 이 때 우치다의 무표정 연기를 훗날 기타노 다케시가 자신의 것으로 재전유한듯하다. 우치다 유야 영화에는 매번 기타노 다케시가 신스틸러로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는 스틸 수준이 아니라 아예 클라이맥스에서 영화를 장악해버린다.

 

토일렛
치유계 영화의 분위기와 정서는 그저 로컬하고 특수한 것일까. <카모메 식당>의 감독이 전작의 분위기를 일본이 아닌 서구에서 또 한번 재현하려는 이 시도는 그런데 묘한 지점에서 충돌한다. 이미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삶이 넉넉한 곳에서 치유계 영화는 그 본분을 다할 수 있을까. 핀란드와 캐나다, 북유럽과 북미의 차이는 또 어떤가. 세 명의 등장인물들의 어색한 젓가락질과 손발 오그라드는 '에어 기타'연주가 극명하게 대답하고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천연 꼬꼬댁)
역변 이전 '리즈 시절'에 찍었다는 따위는 다 필요없고 이 영화에 나오는 성인 배우까지 다 합쳐도 제일 뛰어난 연기를 카호가 보여준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본지라 그녀가 이 정도로 섬세한 연기가 가능한 배우인줄은 몰랐음.

 

장례식
내게는 이타미 주조의 감독 데뷔작인 이 영화가 그의 최고작. 이후에 나온 모든 연출작을 다 합쳐도 이 한편에 못 미침.

 

스펙 완결판
만화와 아니메가 발달한 나라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사례. 작가(츠츠미 유키히코)가 프랜차이즈를 이어가면서 그동안 하고싶었던거 다 풀고가겠노라는 자의식이 만개한 작품. 관객 반응 따위 생각않고 그냥 나하고싶은거 다 해보련다 이런 작정이었던거같다

트릭 라스트 스테이지
트릭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신인 나카마 유키에와 주목받지못하고 잊혀져가던 아베 히로시 두 사람을 지금의 위치에 있게해준 출세작이다. 이후 두 배우 모두 진지한 정극에 꾸준히 출연하면서도 무려 십년이 넘게 단속적으로 이어진 이 시리즈를 계속할 수 있었던건 이 프랜차이즈가 두사람을 '입신'하게 한 작품이기 때문이었을텐데 어쨌거나 이 극장판은 확실히 길었던 프랜차이즈의 한 단락의 끝맺음을 하기도했고 아니기도하다. 또 한번의 속편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역시나 있었기 때문. 엔딩은 역시 언급 안 할 수 없는데, 츠츠미 유키히코는 자신이 이끌었던 장기 시리즈 두 편을 거의 동시에 같이 끝내면서 남주인공보다는 여주인공에게 더 감사와 애정을 표한다. 여기서는 앞에 언급한 <스펙>에서만큼의 자의식 표출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정반대로 마지막 편 치고는 이야기의 스케일이 단출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이야기가 재미가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다 패턴화가 되있는 시리즈라하더라도 새로운 구석이 몇쯤은 있어야했다. 해외로케임에도 거의 티도 안나고. 그래봐야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비 도시지역으로 들어가는 설정이긴하지만, 동굴 안은 아예 일본에서 찍었을거같고. 그러고보니 연예계를 은퇴해버린 1시즌의 야베 부하 이시하라가 잠깐 나온다는 사실은 워낙 엔딩 자체가 인상적이라 덜 언급되는듯.

이사
태풍클럽이 소마이 신지의 80년대 최고작이라면 역시 90년대 최고작은 이 영화다. 90년대 이후로는 소마이의 연출편수가 적긴하지만. 계속 언급되는 불의 이미지는 소녀의 복잡한 마음을 대변한다. 교토라는 공간을 잘 활용한 아름다운 로케이션. 


하시구치 료스케 영화들
과작(寡作)의 작가이긴하지만 그의 영화들은 미묘하게 계속 이어지는 설정들이 있다.

우드잡
늘 일본 영화에 불만이었던 것이 원작이 없으면 영화를 못만드는 고질은 그렇다쳐도 거의 각색이 없다시피 원작을 그대로 영상화하는건데 이 영화는 다행히도 처음부터 끝까지 각색 작업을 거치면서 더 재밌어졌다. 부천국제영화제에서 볼 때 관객들이 빵 터졌던 부분들도 대개는 다 원작에 아예 없던 부분(요키가 나카무라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뛰어오는 장면이라든가 요키가 자고있는 유키의 베개를 걷어찬다거나, 그리고 제일 크게 관객들이 웃었던 노동요를 부르는 부분)이고 기본적 인물 설정도 꽤 과감하게 바뀌었다. 감독이 직접 했다는 각색은 쳐낼건 쳐내면서 더 효율적으로 거듭난 셈인데 잘빠진 기성품을 뽑아낼 줄 아는 중견 감독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 보여줬다하겠다. 원작에서 빠진건 노코와 산타와 유키간의 우정같은 것들, 그리고 클라이맥스 에피소드도 잔가지를 상당 부분 쳐내고 핵심만 남겨놨다. 나가사와 마사미의 후줄근한 츄리닝 패션은 덤. 미우라 시온은 <배를 엮다>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취재를 바탕으로 특정 직업세계에 뛰어든 초심자의 수행기 겸 관찰기를 그려낸다.

 

여름의 끝
올해 본 일본 영화중 단연 투톱은 이 영화와 <일본의 밤과 안개>다. 후자가 그 스토리 전개 방식, 그리고 그것이 무려 1960년에 가능했다는 사실 두가지가 충격이었다면 2013년작인 이 영화는 그와는 정반대로 흔해빠진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영상에 홀렸다. 오시마가 자신의 비판적 문제의식의 제기를 스토리와 플롯 그리고 미학적 완성도보다 앞세우는 감독이라면 이 영화는 스토리는 너무나 통속적인데 그것을 탐미주의적인 영상으로 극복해내고있다. 사소설적 풍경을 영상으로 확인한 기분.

 

리버
14분의 첫 롱테이크와 마지막 5분의 롱테이크. 엄청난 비극을 겪은 이후에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여전히 너무 그대로여서 이해할 수 없고, 더 낯설어진 세상을 부유하는 주인공의 첫번째 롱테이크.

익스트림 스키야키

시끌벅적한 20대 시절의 여행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30대, 그것도 오랜 우정을 이어온 30대 남녀들의 아무 계획없이 떠나는 근교로의 밍숭맹숭한 여행. (결코 홍상수같은걸 상상하면 안된다.) 보면서 한번쯤은 해봐도 괜찮겠다싶더라는.

산딸기
니시카와 미와의 데뷔작. 반전이 무척 인상적이라 전반부의 늘어짐을 만회하고도 충분히 남는다.

백설공주살인사건
출연배우의 '급'과 비중을 헤아려 캐스팅만 보고 범인 때려맞히게되는 추리영화의 단점을 비슷한 중량감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많은 캐릭터를 출연시켜 빠져나간 케이스.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발생하는 그들간의 시기 질투 열등감 같은 것들을 줄곧 다루어왔던 미나토 가나에의 그간 작품들과 별 다른건 없다. 사적 세계와 공적 세계가 불분명하게 겹쳐있는 상황에서 여성간의 보이지않는 반목까지 겹친다. 유년기의 경험과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지못한 채 성인이 되고나서도 늘 그때의 경험에 현재 상황을 대입해버리고마는 주요 등장인물의 사연은 누구라도 유년기를 완전히 빠져나오기란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영화 자체는 미나토 원작의 각색물이라고는 하나 예의 나카무라 요시히로 영화답게 나쁘게 말하면 무색무취하고 좋게 말하면 그냥 말끔하고 준수하다. 연출자만의 개성이랄게 전혀 없음

도플갱어
돈과 권력은 나에게 달라던 도플갱어의 바람대로 원본인척 하던 도플갱어는 맨마지막에 돈과 여자주인공을 얻고서 유유히 사라진다.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별다른 세팅을 안해도 괴상하고 낯설게 보이게하는 로케이션 헌팅과 독창적 공간 연출과 활용 그리고 과학기술과 이공계 페티시인데, 아무것도 아닌듯 하지만 자세히보면 괴상하고 이상한 공간활용법이 여기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운명이 아닌 사람
우치다 켄지의 장편데뷔작인데 그 후에 나온 두 편보다 훨씬 재밌다. 일본 감독들은 다작이 일반적인데 이 감독은 그에 비하면 엄청난 과작의 작가. 꼬인 플롯을 기반으로 폭력적이지않은 코믹 스릴러를 주종으로 한다. 검색해보니 이 영화가 과거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적이 있었다고. 

 

작은 집

이 영화를 들고 베를린 영화제에 갔을 때 야마다 요지가 아베 정부의 우경화 흐름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던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보면 그 발언이 작정하고 나온 꽤 의도적인 제스처로 보이는 면이 있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다키의 인식에는 몰역사적인 나이브함이 있고, 거기에 다키의 수기에 등장하는 주인집 사모님도 당시의 급박한 전황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이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랑놀음에 빠져있는데 이는 긴자 백화점에 들어온 신상품에 열올리는 그와 같은 계급의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일반적인 것이기도하다. '말하는' 자와 그 대상이 되는 사람 모두를 풍자함으로써 당시 직접적으로 전쟁과 연관되지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그 '무관함'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보면 그렇게 냉정한 인식과 판단을 하는 (야마다와 나카지마라는) 두명의 작가가 있다. 즉 현재 시점에서는 냉철한 입장에서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하는 또다른 '무관한' 이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프로덕션이 주도하는 최초의 기획물로서의 한국 로맨틱코미디라는 모 영화가 개봉한 1992년, 일본에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얽힌 삼각관계를 다룬 이 작품이 나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두 인접국가의 시간적 격차를 생각해봤다.

도쿄 오아시스 (재감상)
도시에 있으면 세상 넓은 줄을 모른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는 도시라는 거대한 섬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그리고 안다고도 또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알듯모를듯한 관계의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며 만났다 헤어지고는 다시 어디론가 간다. 도시라는 이 거대한 섬에서.

 

나는 진심을 다하지않았을뿐
뒤늦게 하고싶은 걸 찾아낸 남자, 원하는걸 참고있는 남자, 뭘 하고싶은지조차 모르는 남자까지 세 사람의 좌충우돌기.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고 원하는 것 자체가 큰 심적부담과 죄책감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

한여름의 방정식
후쿠야마가 어린 남자아이와 엮인다는 점에서, 또 낳은 정과 기른 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떠올리게했다. <용의자 X의 헌신>도 그렇고 드라마와 영화판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유머는 배제되고 훨씬 진중함.


지옥의 경비원
살인마 역할을 하필 고독한 미식가의 마츠시게 유타카가 해서 영화가 그닥 무섭지는 않았는데 그 점을 차치하고라도 영화 자체가 호러치고는 안 무서운 편. 서른 살도 되기전 이십대 후반의 마츠시게 상이 나온다는.

핑퐁
과연 모든 스포츠가 스포츠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스포츠 영화의 서사 동력인 승부를 가르는 세계관 자체를 걸고 넘어지는 스포츠 영화. 그깟 공놀이를 두고 죽고사는 것처럼 전존재를 거는걸 이해할 수 없어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도전-실패-부활'이라는 뻔한 서사가 되풀이되긴하지만 여기서는 어쨌든 승부의 세계 그 자체가 고민의 대상이 된다.

토키와장의 청춘
내가 좋아하는 이치카와 감독은 '곤'이 아니라 '준'임을 다시금 확인한 영화. 마침 우치다 타츠루의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이라는 책을 통독한 다음인지라 자연스레 이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책은 엄한 소리가 태반을 이루긴 하지만 같은 일을 하며 같은 고민과 꿈을 공유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에 대한 저자의 전망이 실제로 현실화된 영화 속 회고는 맘에 들었다. 물론 이런 공동체에서는 서로를 응원하기도하지만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유로 절망하는 이가 생기고 떠나는 이가 생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고생을 같이 견디면서 젊은 날을 보내고 한발한발 나아간다. 일본 만화 역사의 파이어오니어들이 한창 열심히 수련하던 시기에 대한 묘사인지라 어쩔 수 없이 애틋한 면이 있다. 실화를 극화할 때도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니라 소설,에세이,르포 등의 원작을 다시 각색하는 방식을 택하는 일본답게 이 영화 역시 원작은 nhk 다큐이고 제목도 그대로 빌어왔다.

안즈코(1958)/산의 소리(1954)
올해 본 나루세 미키오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던 두 편이다. 아직도 보지못한 그의 영화가 있긴하지만 (나루세 미키오는 엄청난 다작의 작가임). 두 편 모두 가족 제도로부터 억압받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커리어 내내 여성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나루세는 여기서 한마디로 가부장제로부터 억압받는 여성 주체를 50년대치고는 꽤 입체적으로 다루고있다. 이 정도로 세심하게 여성 주인공이 처한 억압적 환경과 그로부터 분투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현재 일본에서 나오고있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오키나와가 배경이면 어쩔 수 없이 관습적으로 영화를 정치적으로 읽으려든다. 게다가 최양일은 이후에도 <a사인 데이즈>에서 또 한번 오키나와로 갔었으니까. 그럼 여기서 오키나와는 뭘까. 미개척된, 앞으로 정복하고 개발해야할 사업의 대상이고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있기에 온갖 음모가 피어나는 장소라는 스테레오타입이긴한데 그 점을 빼면 딱히 로컬적 특수성같은게 전면에 부각되지않는다. 하드보일드라는 점에 너무 기대를 했는지도.

아키츠 온천
요시다 기주의 대표작. 60년대 일본 시네마스코프 영화 분위기가 물씬하다.

로빈슨의 정원
야마모토 마사시의 1987년작. 경제적으로 잘 나가던 시절의 덕을 입었달까, 한창 같이 부흥하던 독립영화계의 패기가 돋보인다.

도쿄 매리골드
3부작 이후 또 한편의 '도쿄' 연작이라고 해야할까. 다나카 레나와 키키 키린이 모녀로 나오고 이치카와가 연출한 아지노모토 조미료의 연작 cm은 98년부터 총 5년동안 계속됐는데 그 와중에 이치카와는 이 두 사람의 모녀 설정을 그대로 이어가는 장편 영화를 구상했고 이를 위해 하야시 마리코의 단편을 직접 각색해 연출한 것이 바로 이 영화다. 해외에 있는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중인 남자와의 짧은 1년여간의 씁쓸한 연애 이야기는 여전히 이치카와적인 온갖 클리셰들로 넘쳐난다. 대사를 하는 와중에도 배경음악은 쉬지않고 흘러나오고 위에서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는 부감샷이 씬과 씬을 구분짓는다. 하야시 마리코의 평소 글과 비교하면 영화는 무척 순화된 편으로 이치카와 준의 영향이 더 크다. 순간순간 보이는 다나카 레나의 얼굴은 앳되고 앙상한 줄거리를 분위기로 끌어가는 연출에는 기복이 없다. 특히 에리코가 출연한 극중 cm은 영화로 전향한 이후에도 틈틈이 cm 연출을 계속해온 그의 감각이 빛바래지않았음을, 또 장편 영화들에서 일관된 그 '이치카와스러움'의 정수를 짧고 확실하게 보여준다. 특히 에리코 모녀가 같이 미소시루를 요리하고 먹는 장면은 조미료 광고의 확장판격으로 원작 cm의 카메라 구도, 배경음악, 두사람의 대화가 거의 그대로 재현된다.

 

오사카 이야기
이치카와 준의 연출, 이누도 잇신의 각본 그리고 이케와키 치즈루의 장편 데뷔작이다. 마고코로 브라더스의 히트곡 endless summer nude가 인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료마의 처 그녀의 남편과 정부

이치카와는 시대극에서마저 자신의 연출스타일을 견지한다. 원작이 미타니 코키의 희곡이라는데 그래서인지 미타니 사단인 스즈키 쿄카와 나가이 기이치가 나온다. 보니까 굳이 료마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는 네남녀의 애정소동극. 동서고금의 각종 극형식에 대한 박식함과 함께 늘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고싶어하는 미타니 코키 스타일의 극본에 이치카와의 연출이 더해졌는데 과시적 스타일과 화려함에 반하여 늘 (헛)소동극으로 끝나는 미타니 코키의 전형적인 극작술.

 

고레에다 히로카즈 초기 다큐멘터리들

네 편 다 소재나 주제도 특이하고 작품 자체로도 뛰어나게 잘 만들었는데 특히 <그가 없는 8월이>는 계속 보고 있기 어려운, 마음 아프게 하는 한 편이었다. 고레에다의 초기작이 사실상 이 네 편으로부터 종합적으로 영감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tv 방송 목적의 다큐멘터리가 어느 정도까지 드라마로서의 서사를 갖출 수 있는지 보여준다. 주로 비교와 대조를 통해 다큐를 마치 드라마처럼 플롯을 짜나간다.

지옥이 뭐가 나빠

소노 시온도 이제 미이케 다카시처럼 되어가는구나. 과연 미이케의 오늘이 소노의 내일이 될까.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대
재밌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옥상에서의 클라이맥스에서 김이 새버렸다. 거기서 그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거 같긴하지만. 후속작인 <종이달>이 기대된다.


11.25 결단의 날
전작은 좌파감독으로서의 자기반성이란 점에서 이해가 되지만 정반대편을 다룬 이 영화에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입장 표명이나 태도도 보이지않고 철저하게 재연에만 충실한 것은 어떤 의도이고 어떤 효과를 낳고 있을까.

 

에로틱한 관계

우치다 유야 영화에는 꼭 기타노 다케시가 신 스틸러로 나온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아예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 파리 올로케이션으로 낭만적 탐정물을 만들고 싶어했어했던거 같은데 전부 백인들 사이에서 딱 이 셋만 동양인인데도 별 어색함이 없다. 만년작들이 워낙 진지하고 밀도가 높아서 그렇지 와카마츠 코지는 본디 이런 장르 영화에 정통한 감독이긴하다. 시기상 미야자와 리에의 최전성기 시절이 담긴 작품이기도.

 

lie lie lie
사기꾼이 예술가가 되는 순간

 

책읽기 좋은 날

<장서의 괴로움>에 이 영화 속 책장에 대한 언급이 나오길래 다시 한번 찾아봤다. 자살에 어떤 숭고한 미의식을 부여한, 그리고 (누구의 표현을 빌면) '기괴한 정신주의'를 가진 일본에서나 나올 수 있는, 그리고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겨우 납득할 수 있는 결말. 서구에서라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울거같은 줄거리 전개였을거같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유명한 영화인데 어째 이번에 처음 봤다. 어떤 면에선 러브레터보다 훨씬 재밌었다. 에구치 요스케 빼고 다들 외국어대사를 자연스럽게 하더라는. 혼종성에 대해 감독이 나름 깊이 고민했구나하는게 느껴졌다. 

 

룸메이트
그냥 <사이코>의 또다른 번안판. 스포나 반전같은거 잘 못맞추는 편이지만 절반도 보기전에 반전이 뭔지 훤히 보였다. 아무리 전개를 위해서라지만 대충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태반인, 날림으로 만든 장르 영화

 

몬스터즈

<룸메이트>와 마찬가지. 클라이맥스는 어이가 없을 정도. <우드잡>을 언급하면서 중견 감독의 소중함에 대해 말했지만 반대로 점점 시시해져가는 중견 감독을 보는건 그래서 배로 괴롭다.

 

after school
데뷔작보다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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