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광기와 예술간의 연관, 그러니까 '미친 예술가'는 무척 깊고 오래된 구구한 역사를 가진 스테레오타입. 그런데 이게 지금은 너무 정형화되고 뻔한 클리셰라서 왠만한 장편 영화에서 이런 주인공을 들고나오면 짐짓 의심부터 하게된다. <프랭크>의 변별점이라면 이걸 반박한다는데 있다. 광기와 예술은 그닥 별 상관이 없으며 미친 사람이 수준높은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이 영화는 미친 사람들의 공동체에 들어간 정상인의 관찰기라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 관찰자가 처음부터 참여관찰 목적을 갖고 들어간게 아니라 자기가 진정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으리라고 착각을 했다는데 있다. 한마디로 이 밴드의 사람들은 유명해지기위해서가 아니라 살기위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자기표현을 하지않고는 도저히 계속 삶을 이어가야 할 이유가 없는 자기만족형의 폐쇄된 공동체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더라도 결국엔 다시 뭉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고 그러니 당연히 관찰자인 존은 그들이 '감격적으로' 해후하는 자리에서 슬쩍 빠져나올 수 밖에 없다. 처음부터 그 밴드는 존이 있을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친 사람들이 도저히 뭘 어떻게 해볼 수 없어서 만든 광기의 분출 목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밴드에 들어갔으니 그는 처음부터 불청객이었던 셈이고 이 점을 처음부터 간파한 사람이 바로 클라라였고 프랭크는 몰랐던 것.

절청풍운3
절청풍운은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지금 홍콩, 아니 전세계 자본주의 동학에 대한 코멘터리가 되어간다. 이번엔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강탈에 의한 축적'이 소재. 액션이나 스릴러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장면이 적고 그 대신 긴 러닝타임을 <대부>류의 서사물 흉내를 내는데 진력한다.

 

aberdeen
팡호청은 정극과 코미디 사이를 의식적으로 왕복하는듯하다. 섹스코미디인 전작 vulgaria에 이어 이번에 드라마 장르. 평범한 홍콩 사람들의 오늘을 그려내겠다는 의도이고 거기에 지금의 그들을 있게한 과거와 역사로부터의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코미디를 만들때는 늘 재기가 번뜩이는 팡호청은 왜인지 진지한 드라마 장르에 도전할 때마다 완성도와 상관없이 뭔가 빠진듯 헛헛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그 이유가 거의 레퍼런스급으로 참고하는듯한 기존의 몇몇 영화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못하기 때문은 아닌가하는 의문. <이사벨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왕가위였고 이번에는 로버트 알트만 류의 다중플롯을 차용한다. 


rigor mortis
강시 영화의 주역인 임정영과 허관영을 추모하는 엔딩크레딧처럼 이 영화는 80년대 강시 영화에 바치는 오마주이면서 동시에 강시 영화 그리고 강시 장르가 유행했던 80년대 홍콩 영화의 한 세대를 추도한다. 이제는 (실제로는 그렇지않지만) 몰락한 배우 전소호가 자살하러왔다가 귀신과 퇴마사가 영역다툼하는 아파트 한가운데에 낀다는 이야기.

 

little murders

70년대 엘리엇 굴드 출연작들은 믿고 봐도 된다. 초현실코미디는 역시나 강한 현실 풍자 목적을 가질 때 빛을 발한다.

 

sorcerer

<공포의 보수>를 주말의 명화에서 본 게 중학교 때였던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사실 좀 심드렁하게 봤었는데 얼마전 hd로 복각된 이 리메이크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스타워즈에 밀려 흥행에서나 비평 양쪽에서 철저하게 과소평가된 작품인데, 실패가 예정되어있고 실패할 줄 알면서도 도전하는 인간의 이야기에는 쉽사리 눈을 떼지못한다. 이상한 취향인거 같긴하지만.

 

play it again
우디 앨런이 연출하지 않고 출연만 한 몇 안되는 영화이자, 앨런의 홈그라운드인 미국 동부가 아닌 서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 흔치 않은 영화. 출연만 했으나 연출까지 한 것 같은 전형적 우디 앨런 영화인지라 오히려 그의 연출작보다도 그의 일관된 캐릭터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영화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the hospital
6,70년대 미국 드라마 장르 영화에 대한 무조건적 선호가 있어서 틀면 마냥 보게된다. 오로지 일정 수준 이상의 각본, 연출, 연기로만 승부를 봐야하는 장르, 거기에 자본주의의 활황과 맞물려 미국 영화가 펄펄 끓던 시기의 미국 사회를 돌아보는 재미까지있기 때문이랄까, 굳이 이유를 설명해보자면.

seven days in may
국내에서 왜 금지됐는지 알만하다. 60년대 초에 이런 영화가 나왔다니 미국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

rehearsal from murder
엄청 찾아헤맸던 영화. 어렸을 때 심야에 엄마랑 둘이서 <명화극장>에서 봤었다. 사실은 <토요명화>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인터넷 검색으로 편성표를 확인한 끝에 알아낸거다. 옛날 tv 편성표를 올려놓은 블로그를 겨우 발견해서 드디어 제목도 알게됐고 심지어 유튜브에서 영화 본편까지 볼 수 있었다. 마지막 결정적 반전이 일어날 때 자리를 비웠던 엄마에게 내가 '스포일링'을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제목도, 출연배우도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이 영화를 찾으려고 얼마나 웹을 뒤지고 다녔던지. 알고보니 1982년에 제작된 tv 영화인데 아무튼 저런 옛 기억때문인지 그럭저럭 재밌게 볼 수 있었다.  


lenny
내게는 더스틴 호프만 최고의 연기.

blue jasmine
연출은 기성품인데 연기가 영화를 구한 케이스

야행
2013년 말에 보긴했는데 이월하자면 2014년에 본 가장 강렬한 한국영화. 거의 40여년 전에 나온 영화인데 여성의 심리적 방황이라는 주제도 그렇고 그걸 연출하는 방식이 고릿적에 이미 저런걸 다 하고있었다는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놀라웠고 신기했다. 여주인공이 혼자 사는 집이 이제 막 준공된 반포주공아파트인데 아파트 내부 모습이나 지금은 안쓰는 커다란 밥그릇과 숟가락 등의 살림도구, 여주인공이 일하는 은행을 포함해 계속 돌아다니는 명동을 비롯한 서울의 구시가, 그리고 저녁에 방영하는 tv드라마 제목이 무려 '홍길동'이라는 등 옛 서울의 도시풍경이나 문물 들여다보는 재미가 컸다.

티켓

vhs로 밖에 안남은 영화라고 알고 있었는데 영상자료원에서 역시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원스어폰어타임인 아메리카
현재까지 가장 긴 버전으로 알려진 4시간 19분판을 봤는데 이마저도 불완전한 부분이 남아있다. 도대체 최초 세르지오 레오네가 의도한 편집본은 대체 어느 정도 길이였을까.

 

미드나잇 애프터

원작이 홍콩에서 대박쳤다는 인터넷 소설이라는데 프루트 챈은 홍콩에서 나고 자란 이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홍콩을 배경으로 홍콩 배우들만을 데리고 또 한편의 홍콩찬가를 만들어냈다. 우산 혁명이 봉기하고 (반쯤은) 실패한 해에 동일한 자리에서 그는 본토로부터의 이런저런 영향으로 인해 점점 낯설어져가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이방인적 의식을 투영하려고 했던거 아니었을까하는 짐작.

 

f for fake

'천재'란 단어는 너무 남용되어 이제는 사실상 아무 뜻도 없는 단어에 가까워진 탓에 굳이 꺼내려는게 객쩍긴하지만 웰스에게는 다른 어떤 수사보다도 그냥 이 단어가 최적의 자리인듯하다.

 

인터스텔라

확실히 내가 미국인의 감수성과 안맞는다고 느끼는게 <보이후드>에 대한 만장일치에 가까운 그쪽의 열광, 또 반대로 이 영화를 향한 냉대에 가까운 홀대 양편 모두 이해가 안된다. 두 편 다 영화라는 예술의 독자적 특수성이라할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을 연출자가 맘껏 자기 개성대로 활용했는데 보이후드가 시계열적 시간의 퇴적이 보여주는 시간의 장엄함을 보여주는데 그쳤다면 이 영화에서는 첫번째 행성에서의 상대성이론 가지고 놀기보다 놀란 특유의 후반 교차편집이 더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말할거리가 있는데 이렇게 이 영화를 좋게 보는 것도 나 역시 한 명의 한국인임을 방증하는건가 싶기도하고 그렇다.


the raid 2/ the act of killing

인도네시아라는 국가에 대한 어떤 '이미지' 혹은 '편견'을 만들어준 두 편의 영화라고 해야되나. 앞의 영화는 배우들이 쓰는 무술의 형식을 제외하면 로컬색이란게 거의 없다시피한, 세계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했어도 거의 다 통할 익숙하디 익숙한 언더커버 이야기이고 후자는 그렇게 장르 영화의 외피에 가려졌을 그 나라의 폭력의 살벌한 민낯을 보여준다. 합을 맞춘 스타일리시한 '액션' 그리고 고문과 살인으로 이어진 생짜 폭력과의 연결고리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않겠나하는 생각. 한국도 예외가 아니듯이.

 

the grand budafest hotel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형식적으로 엄정해진달까 완고해진달까. 후반기로 갈수록 형식적으로 점점 완결되어가며 누구도 범접못할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했던 오즈를 보는듯했다. 헬베티카체는 이제 아예 버린듯.

 

inside lewyn davis

60년대의 미국 풍경 재현이 꽤 그럴듯해서 좋았다. 저렇게 입구와 출구가 맞붙은, 아니 맞붙어있지는 않더라도 아무리 좌충우돌 우회해봐야 입구와 출구가 이미 정해져있는 인생여정이야말로 진정 그럴싸하지않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macbeth

고전을 보는 재미가 이런데 있는거 같다. 영문학의 고전을 가지고 영화의 고전을 만들었는데 실제 중세의 실상에 가깝게, 그러니까 야만스럽고 흉폭하기 짝이 없는 고릿적 시대상을 고전에다 접목한다. 의도였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가의 악취미를 끝까지 밀어부쳤다는데 의의가 있는 작품.

 

천주정

중반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 에피소드가 앞의 둘에 비해 너무 약하고 억지로 앞과 연계지어 결말을 내려는 것도 무리한 시도인듯.

 

깡패수업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크루들인 오스기 렌과 하쿠류가 나오길래 캐스팅에 힘 좀 썼구나했는데 후반엔 v시네마 제왕인 아이카와 쇼까지 나온다. 뭘 하고싶었는지는 알겠는데, 즉 미드나잇 카우보이나 허수아비같은 70년대 미국 버디영화의 재현.(근데 이 장르의 한국식 로컬 버전의 또다른 한편인 게임의 법칙에도 박중훈이 나온다) 역시나 결과물은 딱 90년대 한국영화스러운 어색함과 촌스러움이 어쩔 수 없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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