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형사 한 명이 있다. 경시청 수사1과 소속, 즉 살인사건 담당이다. 그런데 이 형사는 일하기가 그다지 어려워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담당하는 살인사건의 모든 범인들은 피해자의 최측근이기때문이다. 즉, 여기는 철저히 면식범으로만 이루어진 세계. 게다가 이 형사는 일복도 타고난 탓에 사적인 일정에도 여지없이 살인사건이 따라붙는다. 호주나 미국, 스페인같은 해외로의 휴가는 물론이고 치료를 위해 들른 치과에서마저 하필이면 그날 치과의사가 그 형사를 알리바이삼아 살인을 저지르니 말이다. 타인의 거짓말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뛰어난 직감을 가진 형사는 용의자를 끈덕지게 따라다니며 귀찮게 말을 건다. 그러면 이 용의자들은 거기에 맞춰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형사의 꾀에 넘어가 본인도 모르게 자백을 하고만다. 이 드라마에서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용의자들이 귀찮다고 느낄 정도로 쫓아다니며 형사가 말을 거는데 이 용의자들은 종내 그 대화에 응한다는 점이다. 그들을 상대로 형사는 우선 현장에서 용의자가 놓쳤거나 실수한 점들을 짚어내고 당연히 그 말을 듣고있던 살인범의 표정은 이내 얼어붙는다. 하지만 아직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는 상태. 그러다 형사는 뜻하지않은 지점에서 결정적 힌트를 찾아내고는 미소를 지으며 시청자에게 말을 건다. 과연 '나는 어디서 어떻게 범인을 확신하게 되었을까요?'

 

미타니 코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드라마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정수는 단연 1,2 시즌이다. 45분 안에 살인사건과 그 해결까지 한호흡에 마무리를 지어버리는 초기 두 시즌의 재미는 한 편당 2시간에 가까운 sp가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 드라마의 리듬 자체가 45분 분량에 최적화되어있음에도 어떤 sp 같은 경우는 범행과정에만 한시간을 할애함으로써 이 드라마의 패턴을 파괴하고마는하는 우를 범하기도한다. 그러나 3시즌에 접어들면 이제는 레귤러 드라마 형식 안에서마저 시리즈의 장기화에 따른 피로가 감지되는데 중후반부쯤에서 결정적 힌트를 얻어 범인을 확정하는 해결 및 풀이 방식을 유보하고 이미 범인을 특정해 놓고서 맨 처음 어디서 확신했을까를 맞춰보라는 방식으로 선회하게되는데 이는 부족해진 단서 찾기나 수사과정 등 결정적 사건 해결을 보충하기위한 차선책이다. 또한 사건 발생 후 출동이라는 패턴이 아니라 이런저런 상황에서 뜻하지않게 후루하타가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전개가 주를 이루는 것도 3기의 특징이다.

 

모든 추리 및 미스테리물이 마찬가지이겠으나 이 드라마에 나오는 트릭들도 한치의 빈틈도 없이 매끈하다고 할 수는 없다. 따지고들면 여기저기 헛점이 있고 끝까지 납득되지않는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점들이 이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재미에 전혀 영향을 주지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시리즈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후루하타 닌자부로라는 괴짜 형사 캐릭터, 그리고 그와 짝패를 이루는 허술하기 그지없는 이마이즈미와의 콤비플레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검은 옷, 길게기른 뒷머리 같은 외양과 함께 과하다싶을 정도의 연극적인 발성과 대사처리, 그리고 몸짓을 통해 개성이 분명한 캐릭터를 만들어놓은 타무라 마사카즈의 연기는 수사물이 기계적인 수수께끼 풀이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또 하나의 장기 수사물인 <파트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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