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작만 대상으로


독전

증국상은 자신과 팽호상이 중국에서 <4+1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동안 얼마나 호된 경험을 했던가를 얘기하면서 앞으로는 본토보다 홍콩에서 작업하고싶다고 했었다. 그에 따르면 중국영화의 검열 원칙중에 귀신과 살인 금지가 있다고하는데 (근데 이 영화는 어떻게 된건지) 무엇보다 여전히 권선징악이 이데올로기로서 강제되고있는 가운데 두기봉의 2013년 연출작중 한 편인 이 영화에도 그래서인지 상당히 사족으로 보이는, 그러나 무척 강렬한 엔딩이 있다. 이 영화에서 중국경찰은 절대로 동료를 포기하지않는 동지애가 투철한 인간미 넘치는 이들인 반면에 홍콩인들은 전형적 악당으로서 마약장사꾼이거나 속으로 딴 꿍꿍이를 품지않은 적이 없는 변절자로 나온다. 좁디좁은 홍콩과는 대비되는 중국의 광활한 공간을 활용한 스토리 전개 (이를테면 장시간동안의 추적이나 계속 여기저기 바뀌는 장소들)같은 것은 그동안 그의 영화에서 보지못했던 요소로서 신선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뭔가 애매하다. 과연 두기봉은 여기서 본토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건가. 아니면 홍콩인을 비하함으로써 오히려 강렬한 조롱을 하는건가. 전형적이다못해 고루해보이기까지한 선악대결이 역설적이게도 여러가지 해석을 가능케하는 텍스트를 낳은셈 . 


한나 아렌트

적이 아닌 자기 편을 향한 내부 비판이라는 비난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학살에 협력한 동포을 비판한 자신을 향한 유대인 공동체의 공격에 아렌트는 일급지식인답게 의연하고 결연하며 당당하게 대응한다. 딴소리이나 이 영화를 본 다음 도서관에서 빌리지않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구매했다. 그런데 번역이 그동안 읽어온 번역서중에서는 최악. 제대로 이해를 한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이 좋은 책을 이 따위 번역으로 낸건 명망높은 출판사에게도 흑역사로 기억될듯. 그렇다고 원서를 굳이 찾아읽을 엄두는 안나고. 하여튼 앞으로는 책구매 전에 구매평같은걸 꼼꼼히 찾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선희

심각하기보다는 코믹한 홍상수가 더 좋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보다 이 영화가 더 좋은 이유.


비포 미드나잇

로맨스의 판타지로부터 빠져나와 현실의 진창으로 빠져든 이들이 어떻게 환멸을 견뎌나가는지 그 과정을 묘사했다는 평은 3부작을 모두 감안했을때 가능한 것이고 이 한편만 봤을 때는 애초부터 영화 내내 그 어디에도 로맨스가 없다. 그저 날씨좋은 그리스에서 로맨스가 있다고 착각하(고싶어하)는 부부가 어떻게든 그 환상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애처로움만 보였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내 눈에는 한없이 불길하게만 보였다. 결국 아무 것도 해결된건 없고 기어이 한번 더 임시적 봉합에 합의하는 또 한번의 자기기만이 있을뿐이니까. 어쩌면 이 시리즈는 너무 지나치게 나간거 아닌가하는 생각.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감독의 데뷔작에서만큼 반짝거리지는 않지만 중간에 범효훤이 동명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볼만했다. 역시 이번에도 뮤지컬적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기억될만한 장면을 만들어냈는데 범효훤이 그동안 찍은 영화중에서는 가장 예쁘게 나오지않았나하는 (심지어 유부녀로 나왔음에도) 느낌적 느낌.


frances ha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는 미국산 '잉여 청춘'의 험난한 분투기. 굳이 공통점을 말하자면 '젊지만 가난한 여성의 고생담'이라는 점에서 느닷없이 나루세 미키오의 '방랑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분위기는 당연히 천양지차. 달변이 아닌 (창피를 피하기위한) 다변, 누구도 공감하지못하는 유머등 보고있으면 안쓰러운데 영화는 시종일관 경쾌하게 흘러간다.


일대종사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실질적인 주인공이 양조위가 아니라 장쯔이라는게 약간 놀라웠고 역시나 왕가위 영화는 편집이 완성하는구나라는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렇게 미완성같이 만들어놔도 대가는 그에 걸맞는 품격있는 미완성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래비티

한때 우주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소년시절을 거쳤던 사람으로서 산드라 블럭의 그 험난한 생존기도 내 눈엔 약간 부러웠다.


신세계

영화광 감독의 영화를 보는 피로함.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의 수치라고 생각함. '나 영화 많이 봤어'를 이렇게 노골적인 짜깁기로 인증해도 한국에선 그냥 넘어갈뿐만 아니라 통한다. 영화광들이 감독된다고 다 타란티노 되는거 아님을 여실히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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