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유럽통신>
지금도 매년 한권 이상 꼴로 나오고있는 수많은 그의 저작들 중에서도 사고싶다고 쉽게 살 수 있는게 아닌지라 몇년간 위시리스트 일순위에 올라있었는데 알라딘을  둘러보다가 중고장터에 올라있는걸보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냅다 질렀다. 같은 날 주문한 일곱권의 다른 책들과 같이 배송이 도착해 기대감이 정점인 상태에서 새 책보다 먼저 뜯었는데 책 상태가 너무 좋은거야. 나온지 십삼년이나 지난데다 도서관 장서였음에도 많아봐야 두번 이상 본 것 같지는 않을 정도로 종이 변색도 심하지않고, 단 한 장도 줄 치거나 접힌 흔적없이 깨끗해서 거진 반쯤은 새 책이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판매자 측에서 이렇게 좋은 상태의 책을 사천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책정해서 더 만족스러웠다. 배송받고나서 알라딘에 다시 들어가보니 또 한 권이 장터에 올라와있는데 가격은 무려 원가의 두배인 만원이다. 배송비까지 합치면 거의 만삼천원꼴인데 책 상태가 그만큼 자신이 있는건지 괜히 한번 보고싶다.(내가 구입할 때는 못봤는데 이제 매물이 하나뿐이라 가격이 더 올라간건지.)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중고서점을 뒤지고 다닐 능력이 안되는데 집에서 책상 앞에 앉아 클릭 몇 번으로 이렇게 좋은 책을 받아보게되니 오랜만에 인터넷 생활에서 만족을 느낀 순간이었다. 안그래도 시장을 접수하다시피한 인터넷 서점이 중고책 거래까지 시작하면서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더러 있지않을까싶은데 그래도 이렇게나마 툴이 생겼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이용한 새로운 방식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의 이 시스템이 현존하는 중고서점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계되어 거래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면 서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혹시 이미 그렇게 하고있는건가.) 

나름 '어렵게'얻은 '귀한' 책인지라 밑줄도 못 긋고 귀퉁이를 접지도 못하고 페이지 떨어져나갈까 살살 조심스레 다 읽었다. 나로서는 확실히 그의 초기 저작들이 요즘 나오는 것들보다는 더 유용하고 더 잘 읽히는데 칠년여 전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정신적 포만감은 그대로였다. 역사에 도통 관심이 없는지라 분명 세계사 시간에 들어는 봤겠지만 이름만 남았을 뿐인 파리코뮌이 비로소 이 책을 통해 내 머릿속 한 켠에 자리를 잡았고, 그래서 파리에 갔을 때는 제일 먼저,는 아니고 (첫번째는 에펠탑이였다. 촌스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번째로 간 곳이 페르라셰즈였다. 오랜만에 서문을 읽고있으니 마음이 안정되면서 다음엔 김병익의 책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문을 쓰는 이론가가 명징한 의식을. 투명한 정신을 지닐 수 있다는 걸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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