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hunky dory>를 듣다가 생각나서 유튜브를 찾아봤더니만 이런 대박 영상이 있을줄이야.
아래 곡들을 연이어 들으면서 새삼 느낀건데 보사노바를 포함한 브라질리언 뮤직의 느낌을 만들어내는데는 악기나 연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포르투기스의 발음과 어감이 꽤 큰 것 같다. 시우 호르헤는 초저음의 목소리때문에 그 어감이 확연히 도드라지고.



호르헤의 리메이크 중에서는 이 곡이 가장 좋다. 어찌보면 원곡보다 살짝 더 낫다는.




보다시피 이건 영화 속 장면의 다른 테이크인데 위의 life on mars나 이거나 내가 갖고있는 국내판 dvd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아오, 결국 답은 크라이테리언판이란 말인가. 웨스 앤더슨과 노아 바움백의 코멘터리가 있는게 어디냐며 좋아했건만.



이건 2005년작 cru의 첫곡. 이 음반에서는 4번을 좋아하는데 유튜브에는 없다. 무엇보다 이 클립에는 흘렙닮은 윌렘 데포와 '그 분'이 나오신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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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은 결국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하지만 그렇지못하거나 반대로 언제까지나 그안에서 머물려고하는 아들들의 이야기다. 이는 (아직까지 보지못한 <바틀 로켓>을 제외한) 그의 모든 영화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이발사인 맥스의 아버지는 타인들 앞에서 신경외과 전문의로 둔갑되고 전직 변호사 로얄 테넌바움의 장남 채스는 부정혐의로 아버지를 고소한 후 오랫동안 소원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그 다음 영화 <스티븐 지수와의 해저생활>부터 이 아들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켄터키 항공사의 파일럿 네드 플림턴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만 믿고서 해양탐사전문다큐멘터리스트(이렇게 부르는게 맞나?)스티븐 지수를 찾아가고 나중에는 성까지 지수로 개명한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주인공 휘트먼 3형제는 여기에 한술 더 뜬다. 이들은 어찌나 돌아가신 아버지를 사랑했던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노라며 애정결핍증상을 보이면서 아버지의 선글라스나 면도기같은 물건을 하나라도 더 챙기려 서로 다툰다. 이렇게 덩치만 큰 미성숙한 애어른들은 그래서 남들은 일찌감치 해치운 ‘어른 되기’의 과정을 남들보다 비싼 방식으로 치른다. 뭐 평생 놀고먹어도 크게 지장없을정도로 부자들이니 큰 상관은 없겠지만.

비록 흔한 인도 클리셰이고 동시에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혐의에서 자유롭지는않지만 영적 체험을 위해서라는 기차 여행의 애초의 명목은 그럴싸해보인다. 파리 슈발리에 호텔에 처박혀있던 막내 잭, 임신한 여자친구를 떠나려하는 둘째 피터는 맏이 프랜시스의 부름에 왠일인지 고분고분 응한다. 그러나 각자 나름의 고민을 안고있는 형제는 결코 크고 대단한 게 아닌 작고 사소한 문제에서 매번 부딪치며 투닥투닥 여행을 계속한다.

형제들의 전사(前史)에 대한 약간의 궁금증을 남기면서 전개되는 영화는 처음엔 영적 체험으로 시작했다가 삼천포를 돌고돌아 어느 현지 소년의 죽음을 겪고 나중에는 은둔해있던 어머니와 재회하는 여정을 거친다. 그결과 값비싼 기차여행이 형제에게 정작 베푼 것은 그들의 영적인 고양이 아니다. 각자 살던 곳에서 개인적인 문제로 끙끙대던 형제들은 인도에서 여유롭게 요가를 배우거나 갠지스 강 앞에서 명상같은건 하지않는다. 여행이 모두 끝난 후 기차가 다시 돌아갈때까지도 그들의 문제는 단 한가지도 해결되지않았고 아마도 자신들이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간후에야 비로소 그때부터 풀어나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형제는 인도에서 분명 뭔가를 느꼈다. 자기가 먹고자고 일하던 곳에서 빠져나오면 그제서야 그곳과 자기 자신의 삶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늠된다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진실쯤. 그게 바로 여행의 기능 아닐까. 그것이 꼭 콜로세움처럼 오래된 건축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왜소화하고 영원에 가까운 장구한 시간 앞에서 경건해하는 방식으로만 행해질 필요는 없다. 휘트먼 형제가 이 영화에서 경험하는 것이 바로 그 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것, 고작해야 생전에 아버지가 몰던 차를 가져야만 그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취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전형적인 근대인/(혹은)도시인적 사고를 했던 형제는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어느 인도 소년의 죽음을 겪은 뒤에 비로소 죽음의 질감을 피부로 확인하고 무게를 실감한다. 어수룩한 삼형제는 그 후 오지에서 수녀생활을 하는 어머니와 재회하고나서야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사원에 가서 기도를 한다고해서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을리는 애초부터 만무하다. 대신에 길 위에서 죽음을 경험하고 직접 어머니를 마주한 이후에야 형제에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견문을 넓히기위함도 물론 좋지만 그냥 목적없이 떠나는 여행이 갖는 의외의 효용은 떠나봐야만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이를테면 프랜시스의 비서 브랜든이 만든 코팅된 일정표처럼) 스케줄에 맞추어 무심히 따라가다가 마주친 의외의 장소나 사람들이,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던 기억이 돌아오고나면 기억에 또렷이 남는 법이다. 그리고 기실 대부분의 모든 여행이 그러하다(남는게 사진과 쇼핑목록뿐인 가이드투어는 그래서 여행이 아니라 관광일뿐) 

덧. 그래도 하필이면 왜 꼭 무대가 인도여야만 했느냐는 힐난 앞에서는 내가 감독도 아니지만 나름 변명을 할 수는 있다. 이 형제는 세련됐을지는몰라도 지적이지는못한 전형적인 백인들이니까 그렇게까지 사려깊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는. 그렇게따진다면야 아들이 셋씩이나 있는 패트리샤 휘트먼이 인도에서 수녀원장을 하고있어서라는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니까 그저 웃기고싶어서, 따로 할 말을 위해서 앤더슨이 심어놓은 꽤나 과장된 장치들일뿐, 그는 인도라는 무대의 클리셰를 기꺼이 써먹고싶었을뿐이었으리라. 

최근 기사로서 앤더슨의 영화들이 어떤 레퍼러스의 영향 하에 놓여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목록이다. 원문은 http://www.avclub.com/content/feature/16_films_without_which_wes/2

1.the graduate(1967)
아마도 웨스 앤더슨 감독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시금석은 바로 마이크 니콜스의 독창적인 코미디에 나오는 불만에 가득찬 젊은이로서 이후 앤더슨의 다섯편의 영화들에게까지 고스란히 그 울림이 전해지고있다. 사운드트랙에서의 선구적인 팝음악 사용, 결점이 없는 와이드스크린 화면 구성, 그리고 불확실성과 멜랑콜리에 의해 특권이 무너진 젊은이의 이야기까지. 5월부터 9월까지 사이에 미성숙한 아이와 훨씬 나이많은 여인과의 역동성(<러시모어>), 단일 작곡가에 의해 꽉 채워진 음악선곡(여기서는 폴 사이먼, <스티븐 지수와의 해저생활>에서는 데이빗 보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그들의 부모와 함께 과거로 돌아간 젊은 아이들의 꽉막힌 삶(<로얄 테넌바움>) 그리고 결국엔 만족할만한 해결책은 그리 썩 훌륭한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점까지.

 

2.paper moon(1973)
앤더슨은 조숙한 젊은이, 아이같은 어른 그리고 명백히 복고적인 스타일을 포함하고있는 영화들에 취약하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영화들은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페이퍼문>을 떠올리게한다. 이 흑백 영화는 파인트 크기의 신동(라이언 오닐의 실제 딸인 테이텀 오닐)을 만난 음탕한 사기꾼(라이언 오닐)에 관한 이야기이다. 앤더슨처럼 보그다노비치도 그의 최고작에서 미장센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훌륭한 감각을 보여주고있는데(그의 전 부인이자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폴리 플랫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를 통해서 그의 영화는 연금술로 완성된 작은 세계로 거듭난다.

 

3.harold and maude(1971)
<러시모어>에서 캣 스티븐스의 “the wind" 삽입은 영화에서 60,70년대 노래들을 활용한 또다른 멋진 사례이다. 이것은 할 애쉬비의 컬트 클래식 코미디인 <해롤드와 모드>에서 끌어온 팁이기도하다. 이 영화에서 스티븐스의 노래들은 죽음에 사로잡힌 십대소년 해롤드의 등장에 쓰이고있는데 그는 노인 세대와의 상호교류를 통해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기에 이른다.(비록 제이슨 슈왈츠먼이 빌 머레이와 올리비아 윌리엄스와 맺는 관계는 해롤드가 루스 고든이 연기하는 이른아홉살의 친구 모드와의 맺는 그것보다는 훨씬 정숙한 것이지만 말이다)

 

4.brewster mccloud(1970)
코트는 슬프고 텅빈 얼굴을 한 잃어버린 또 하나의 윌슨 형제다. 로버트 알트만의 <브루스터 맥클라우드>에서 그의 역할은 앤더슨의 강박적인 인물을 앞서 보여주고있다. 여기서 코트는 당시엔 새로웠던 아스트로돔안에 들어가 하늘을 나는 것에 뜨겁게 미쳐있는 소년을 연기하는데, 소년의 굳건한 고집과 끈기는 <바틀 로켓>에서 오웬 윌슨이 실패한 강도질을 하면서 그대로 가져오고있다(그러니 거의 어쩔 수 없이 코트는 앤더슨 영화에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스티브 지수와의 해저생활>에서 불안한 회계사를 연기한다).

 

5.sullivan's travels(1941)
그러나 인생은 강박을 만들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게한다.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코미디 <설리반의 여행>에서 조엘 맥크리가 연기하는 할리우드 코미디 감독은 중요한 사회적 의의를 갖고있는 <오 형제여 어디로 가는가>라는 영화를 만들려고한다. 부랑자로 분하여 실제 세상을 경험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여행을 통해 찾아낸 것에 의해서만 영화를 만들리라 생각한다. 수많은 앤더슨의 캐릭터들처럼 그도 세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하며 동시에 더 친절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6.the world of henry orient(1964)
< 러시모어>가 그저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면, 거기에 나오는 조숙한 십대는 자신의 조숙함을 더 나은데 쓰는 법을 배웠을까? 그런 점에서 <헨리 오리엔트의 세계>보다 훌륭한 성장 영화는 없었다. 여기서 뉴욕에 사는 두명의 열네살 소녀들은 피터 셀러스가 연기하는 피아니스트를 스토킹한다. 티피 워커와 메리 스패스가 연기하는 소녀들은 짐 헨슨의 테넨바움 아기들 같은데 사춘기의 강박과 끝간데없는 상상을 공유하는 동안 예사롭지않은 표현들이 코믹하게 지나간다. 앤더슨의 캐릭터들이 마치 성인 소설의 세계에 나타난 십대 소설의 주인공인 것처럼 에 나오는 십대들이 공유하는 한가로운 우정은 이혼의 여파와 성에 눈을 뜨는 과정을 통해 파열된다. 영화의 외관은 부드럽지만 그 중심에는 친숙한 아픔이 자리하고있다.

 

7.the river(1951)
앤더슨에 의해 잘 알려져있다시피 <다즐링 주식회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장 르누아르의 첫 번째 컬러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흑백화면이 테크니컬러로 변화하는 방식만큼이나 대단하다. 모든 장면은 인도에서 촬영되었고 인도에 대한 식민주의자의 시각으로 불릴 수 있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그만의 목적을 위해서 이국취미를 만족시키고있지는않다. 반대로 그는 문화적 조건에 대한 깊은 호기심과 존경심을 표하고있다. 비록 앤더슨의 영화가 여행에 관한 것인데 반해 르누아르가 다소간 정지한 상태로 남아있지만 두 영화 모두 명백히 서구 우월주의로부터 기인하고있고 두 편 모두 급진적으로 타문화를 이해하려하는 어떠한 전문가적 태도도 취하고있지않다. <강>과 <다즐링 주식회사>의 인물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하고있고 -전자에서 세명의 십대 소녀들이, 그리고 후자에서 세 명의 형제가 아버지의 죽음을 다루지만 그들 서로간의 소외와 다양한 개인적 위기들은- 아직 인도가 그들을 변화시키거나 치유하고있지는않고 그들의 삶에서 다음 단계로 건너가기위한 문을 제공하고있을뿐이다.

 

8.bande a part(1964)
장 뤽 고다르가 만든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국외자들>은 수없이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있으며 그들은 그 유명한 댄스 시퀀스에 대한 경건한 오마주를 바치고있다. 그러나 앤더슨의 96년작 <바틀 로켓>에서는 다른 요소들이 강한 그림자를 드리우고있다. 예상하기힘든 달콥쌉싸름한 또다른 범죄코미디인 <바틀 로켓>에는 젋고 매력적인 남자들이 무법자가 된 상황을 연기하고있는데 그중 누구도 설득력을 갖고있지않다. 이 두 영화는 모두 멜랑콜리와 상실감을 갖고있으면서도 동시에 놀라울정도로 부드럽게 공존하는 젊고 쾌활한 캐릭터들을 공유하고있다.

 

9.a boy named charlie brown(1969)
<로얄 테넌바움> 사운드트랙에 “christmas time is here"를 사용한 것은 단순히 앤더슨이 찰스 슐츠의 페티시이기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캐릭터들에게 입히는 유니폼은 찰리 브라운의 지그재그 셔츠나 루시의 파란 드레스, 그리고 <피너츠>와 앤더슨의 심각한 코미디에 공통적으로 흐르고있는 현명한 멜랑콜리한 기운과 유사한 것이다. <a boy named charlie brown>에는 앤더슨 영화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sic transit gloria"라는 주제가 울려퍼진다. 찰리 브라운은 지역의 철자맞추기 대회에서 실력을 뽐내지만 전국대회에서는 고전한다. 찰리가 집으로 돌아왔을때 친구들은 그를 놀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찰리를 받아들이는데 찰리는 슬로우 모션으로 걷고 그러는동안 "ooh la la"가 흘러나온다.

 

10.stolen kisses(1968)
앤더슨의 주인공들은 세상이 자신들에게는 한번도 주어지지않은 법칙에 의해 굴러가고있는건 아닌가하고 자주 의심한다. 그리고 이 특징은 프랑수와 트뤼포의 앙투안 두와넬과 공유하는 것이기도하다. 1959년작 <400번의 구타>부터 20년 후 <사랑의 도피>까지 총 4편의 장편과 한편의 단편에서 장 피에르 레오가 연기한 두와넬은 <훔친 키스>에서 일련의 직업들을 거치고 뒤죽박죽인 연애를 하며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두걸음쯤 뒤에 처져있다. 그러나 그 거리는 앤더슨으로 하여금 트뤼포 영화들의 사려깊고 현명한 톤을 빌리게끔하여 그가 자주 반복하고있는 관점(앤더슨은 뿌리깊은 영향력의 원천으로서 트뤼포를 언급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않는다)을 제공하고있다.

 

11.big deal on madonna street(1958)
비록 <바틀 로켓>의 기발함은 없지만, 마리오 모니첼리의 클래식 패러디는 한탕을 하려고 하는 일련의 바보같은 범죄자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그 앞에 나온 강탈 영화와 다소간 유사하다. 오웬 윌슨이 연기하는 디그넌과 그의 패거리들처럼 <마돈나 거리에서의 한탕>에 나오는 이들은 한번도 범죄로부터 진정 떨어져본 적이 없으며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강도질을 계속하게한다. 놓칠 수 없는 그들의 이번 계획은 마돈나 스트리트에 있는 전당포 옆에 자리한 빈 아파트에 파고드는 것으로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얇은 벽을 손쉽게 부숴 둘로 만든 다음 반대편에 있는 무방비의 금고에 접근하는 것이다. 쉽게 들리지만 패거리의 유일한 전문가는 최근 하는 일이 없는 은퇴한 금고 전문가뿐이고, 유리턱을 가진 권투선수와 여동생의 정숙함에 사로잡혀있는 불같은 성질의 시실리아 사람이 나머지다. 그들은 사랑스러운 남자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1995년에 나온 능숙한 리메이크인 <팔루카빌>에서도 그렇다- 그들은 분명 이런 종류의 일에서 벗어나지못한다.

 

12.local hero(1983)
앤더슨의 영화들은 종종 감정적 위기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우울한 캐릭터들을 중심에 놓곤한다. <러시모어>와 <스티브 지수와의 해저 생활>의 빌 머레이와 <로얄 테넨바움>의 윌슨 형제를 떠올려보라. 빌 포사이스의 사랑받는 컬트 코미디 <로컬 히어로>에서 사업가 피터 리거트는 그의 사장의 지시로 마법과 경이로 가득찬 사랑스러운 스코틀랜드 마을로의 여행을 통해 어떤 심각한 일들로부터 다시 일어선다. 리거트의 우울한 표정은 보스인 버트 랭커스터의 그것과 비교되는데 심술궃은 늙은 군주인 그는 자신을 화나게하는 정신과 의사로부터 달아나 스코틀랜드 마을이 갖고있는 희열에 전염된다. 고맙게도 앤더슨과 포사이스 영화의 우울한 이들은 그들의 우울한 캐릭터에 동정심을 전할 줄 아는 매우 따뜻한 창조자들에 의해 생생한 삶을 가져다주는 세상에 존재할만큼 운이 좋다.

 

13.the king of comedy(1983)
마틴 스코시즈는 앤더슨에게서 자신과 유사한 정신세계를 발견한 이후 그의 경력 초기부터 공공연한 지지자 역할을 해왔다. 앤더슨의 작업에서는 <비열한 거리>나 <성난 황소>같은 거칢은 없지만 두 감독 모두 공공연히 막스 오퓔스와 마이클 파웰에 대한 관심을 공유해왔다. <코미디의 왕>에서 스코시즈의 영화적 자양분과 네오리얼리스트적 측면에 대한 균형감각은 앤더슨과 흡사하다.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하고있는 명성에 굶주린 루퍼트 펍킨의 초상은 <러시모어>의 제이슨 슈왈츠먼이나 <스티브 지수와의 해저 생활>의 빌 머레이를 연상케한다. 이 세사람 모두 위험할정도로 망상에 빠져있으며 이를 저지하기란 불가능하다.

 

14.metropolitan(1990)
휘트 스틸먼의 데뷔작이 불러온 컬트적 인기는 인디영화 제작자들에게 나약하고 박식한, 그러면서도 모호하고 어두운 관심사를 갖고있는 성인들의 세계가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걸 보여주었다. 뉴욕 영화들의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메트로폴리탄>은 <로얄 테넌바움>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두 편 모두 계급이 산산조각난 꿈의 도시를 스케치하고, 인간의 허영심에 의해 너무 빨리 녹슬어버린 황금 시대를 이야기하고있다.

 

15.a thousand clowns(1965)
J.D 샐린저가 자신의 작품 중 어느 것도 각색을 허락하지않았기때문에 영화감독과 작가들은 대사나 상황 그리고 까칠한 컬트 작가의 공격성같은 전체적인 태도등을 통해서 뒷구멍으로나마 슬쩍 샐린저를 끼워넣는 방법을 찾아야만했다. 앤더슨의 초기 영화들은 결정적으로 샐린저'스러운'톤을 갖고있는데 -<바틀 로켓>에서의 남매간의 관계는 홀든과 피비의 그것 그대로다- 이것은 허브 가드너가 쓴 연극이자 영화인 <a thousand clowns>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샐린저의 우상파괴적인 이상주의가 드리워져있다. 제이슨 로바즈는 그의 조카에게 어떻게하면 뉴욕의 게으름뱅이들처럼 삶을 멋지게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기를 즐기는 불성실한 tv작가를 연기한다. 그러나 자기 일에 끈덕지게 달라붙지않는다면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양육을 계속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로바즈의 평범함을 동반한 불쾌함은 변덕스러운 성향과 마찬가지로 전혀 쓸모가 없으며, 이는 스티븐 지수에게서 -그리고 홀든 콜필드- 슬쩍 엿보인다.

 

16.murmur of the heart(1971)
그의 영화이력을 돌아보건대 앤더슨은 문화적 무관심을 조롱하고 상위계급의 특권을 매혹적으로 그려내는데 이러한 특징은 그의 캐릭터에게 기인한다. 앤더슨 영화의 캐릭터들은 <마음의 속삭임>의 주인공인 지방에 사는 10대 소년 베누아 페로와 비슷한데 그는 부(富)가 허락하는 이점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성장통에 대처한다. 쇼킹한 클라이맥스의 연기를 통해 그의 소년적 불안함은 말그대로 자궁으로의 회귀로 이어진다.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루이 말은 자기반영적 주인공을 이상한 방식으로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그의 거만함에 약간의 노스탤지어를 섞어 재현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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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나오지만 앤더슨은 트뤼포를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고있고 다른 기사를 보면 가장 좋아하는 트뤼포 영화는 <포켓 머니>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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