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느낀 두가지

우선 lp의 물성에 대한 집착. 특정 사물의 물질적 성격에 대한 페티시적 성향을 바이닐 매니아들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현대인도 드물 것이다.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소중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컴퓨터를 뒤져 mp3를 보여주는 것보다 초라한 것이 있겠느냐는 한 인터뷰이의 말이 단적인 예. 대형사이즈의 커버가 주는 시각적 쾌감과 촉각을 통해 전해지는 레코드의 중량감, 판을 꺼내고 먼지를 털어내고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늘을 내리는 일련의 물리적 동작들은 음악을 듣는 행위에 일종의 의식적 성격을 부여하까지한다. 결국 lp의 이런 물성에 대한 집착은 다시 턴테이블과 앰프, 그리고 스피커같은 오디오 기기에 대한 애착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페티시즘이다. 이건 결코 좋고나쁘다의 가치판단으로 논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여하튼 테입이나 씨디에서는 보기 힘든 이러한 lp만의 물성에 대한 애착은 확실히 남다른 구석이 있다. dj들이 주로 lp를 이용함으로 인한 일종의 전문가주의, 묵직한 lp의 중량감과 방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레코드덱이 보여주는 아카이브로서의 기능과 인상적인 시각적 이미지같은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두번째, 그럼에도 앞의 성격과는 전혀 반대되는 것으로 그렇게 lp가 갖는 사물로서의 성질에 집착을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닐이 cd나 mp3에 비해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굳은 믿음. 먼지에 의한 소음마저도 여기서는 잡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격을 더해주는 요소로 격상된다. 'cd는 디지털화된 카피일뿐이지만 레코드는 판 안에 음원이 직접기록되기때문에 소리 그 자체이며 레코드에서 나는 소리는 좀더 편안하고 인간적이며' (이 역시 다큐에 직접 언급되는 인터뷰 내용이다.) '영혼이 고스란히 담'겨있기까지하다. (영화의 홍보문구 중에서) 이런 견해들은 단순히 아날로그 대 디지털의 대결 양상이 아닌 좀 더 연원이 오래된 두가지 가치관의 대결일런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세대간의 갈등이다. 이 논쟁은 과연 '요즘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그저 소음일뿐이다.' 혹은 '예전엔 그래도 세상 살만했지'같은 푸념들과 얼마나 다른가. 처음 cd가 나왔을때 사람들은 그 디지털화에 의한 휴대성과 연장된 수록시간에, 그리고 mp3가 나타났을때는 다시 한번 획기적으로 발전한 휴대성과 편리성 그리고 음질의 보존에 찬탄을 보냈다. 그래서 lp는 과거의 역사적 유물 대접을 받으며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면 음원을 물리적 매개체 없이 직접 주고받는 상황에 이른 현재 최근의 바이닐 리바이벌은 어쨌든 상당부분 과거의 향수에 대한 애착과 그 흔치않음 (rarity)에 기댄 바가 크다. 이건 그 음원을 디지털로 처리하느냐 아니면 아날로그로 처리하느냐와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더불어 산업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기존의 오디오매니아들을 흡수하고 또 새로이 오디오기기에 진입하는 이들을 만들기위해서, 즉 시장과 관련 산업의 유지와  관련하여 최근의 유행을 바라볼 수도 있다. 최근 신보들의 바이닐도 꾸준히 소량이나마 생산된다는 사실이 이런 매니아들의 희귀수집벽에 호응하고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산업적 이유들은 흥미롭게도 '예전에는 음악이 맘에 들지않으면 판을 부러뜨리고 구부리고 집어던지면 됐지만 지금은 그냥 클릭 몇번으로 지워버리면된다'는 식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로 환원되면서 애착의 대상이 된다. 

한편으로는 물성에 집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극단적인 물화라고할 디지털을 거부하고 역설적으로 좀 더 '인간적'인 것에 집착하는 모순. 이는 꽤 변덕스럽지만 어쩌면 예술에 대해 인간이 갖는 늘 한결같은 태도를 다시금 보여주는 어떤 장면인지도 모른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물적인 것에 대한 애착으로 전환하는건 예술도 예외가 아니고 기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이기도하다. 예술을 내 것으로 소유하기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어떻게든 하나의 사물로서 곁에 두는 것이고 이는 늘 그래서 귀족이나 부르주아지만이 진정으로 예술의 강력한 소비자이며 그래서 가장 확실한 예술의 보호자이자 결국은 예술을 부흥하게했던 매개자였던 이유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 다운로드가 아니라 음반을 사라는 외침들. 그럼 지금 돈을 주고 다운로드 받는 이 풍경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이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말했듯 디지털이야말로 궁극의 물화이니까. 일체의 다른 맥락을 소거한 채 교환가치만을 갖고있는, 교환가치가 있을때에만 비로소 어떤 사물로서 존재하게되는 그런 0과 1이라는 숫자의 조합. 이것이 과연 글로벌 금융네트워크상에서 오고가는 일련의 가상의 화폐들과 다를바가 뭐란말인가. 즉, 우리는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 없는 세상을 살고있는 것이다. 그럼 바이닐 매니아들의 진짜 정체란 과연 뭘까. 그저 시대에 적응하지못하는 노스탤지어에서 헤어나오지못하는 매니아들인가. 그들은 과거에 애착을 느끼고 집착하는 퇴행적 감성의 소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전통적 의미의 예술애호가들인지 모르겠다. 대개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않는 미적가치를 어떻게든 실증적으로 붙잡으려애쓰는. 반면 그렇다고해서 파일로 음악을 듣는 이들이 탈근대적인 것도 결코 아니다. '소유'하지않은채 '즐기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가장 흔한 보통의 방식이니까. 예술 작품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만끽함으로써 사실상 '소유'하면서도 소유하지않는, 예술을 특별한 행위양식이 아닌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평범한 장삼이사들이 늘 해오던 방식 그대로인 것이다. 알고보면 우린 그다지 크게 '탈'하지못한 것이다. 아직 우리는 여전히 근대를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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