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보잘것 없는 삶일지라도 거기에 난데없이 틈입하여 잡음을 넣고 소란을 만드는 방해자는 늘 있게마련이다. 살인 누명을 쓴다거나 존재여부조차 몰랐던 자식이나 가족의 빚쟁이가 찾아오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은퇴한 노년의 교수는 비록 성적 관계까지 원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정확하지는않지만) 어쨌건 젊은 여자에게 돈을 지불하고서 잠시동안만이라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하지만 그 하룻밤의 로맨스를 방해하는 이들이 사방에 출몰한다. 쉴새없이 전화로 원고를 독촉하는 편집자, 카센터에서 만난, 아마도 자신의 정체를 탄로내고말 기억도 나지않는 옛 제자, 처녀시절부터 지금까지 붙박이처럼 늘상 창문가에서 교수의 출입을 지켜보고있었을 옆집의 여자 스토커 (키아로스타미는 의도적으로 꽉찬 정면클로즈업으로 잡음으로써 이 여자를 '공포'스럽게 보이도록했다.) 비단 교수만이 아니다. 결국엔 만나지못하고마는 상경한 할머니의 연이은 전화메시지도 아키코의 죄책감을 증폭시키는 외부로부터의 방해자로서 기능한다.


무엇보다 두사람의 관계를 방해하는 결정적인 인물은 아키코의 남자친구 아키다. 오프닝에서 목소리는 들리지않지만 아키코를 의심하는 그의 전화로 인해 그녀는 곤란해한다. 아키코를 귀찮게하는 남자친구의 전화통화를 보여주는 이 첫씬은 앞으로 이 영화가 뭘 말하려하는지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조금만 더 앞으로 돌아가보자. 그러니까 맨 첫장면, 카페 안 풍경을 바라보는 화면 위로 통화하는 아키코의 목소리가 보이스오버로 들린다. 즉 여기서 카페 내부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지못한채 들려오는 불균질한 외부로부터의 목소리는 바로 아키코의 것. 이미 약속을 했지만 갑자기 상경한 할머니로 인해 '손님접대'를 하지못하겠다는 그녀 역시 사장에게는 자신의 사업에 대한 갑작스런 방해자일 것이고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않는다고 투덜대는 남자친구에게도 마찬가지.


이렇듯 영화는 이미 익숙한 그래서 사전에 계획한대로 흘러갈거라 생각했던 일들이 조금씩 틀어지는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멀리서 크게 보면 그들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는 훼방꾼이라는 점이다. 교수는 아침에 아키코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싶어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와의 우연한 만남으로인한 거짓말들이 축적되면서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일을 흘러가게한다.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모두 선의에 의해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자신이야말로 아키와 아키코 두사람, 어찌보면 그리 심각할 것도 없는, 잠시 관계가 삐걱거리는 정말 흔해빠진 연인 사이에 느닷없이 불쑥 끼어든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끝내 깨닫지못하는 것이다. 대신에 그들은 철저히 자신의 세계만은 지키려고한다. 외부로부터 방해받지않겠다는 등장인물들의 의지는 이어폰, 전화선 차단, 계속 올리는 자동차의 창문 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얼마나 가소로운지, 내가 주도한다고 믿는 나의 일상과 삶이 외부로부터의 아주 작은 균열에도 깨어질 수 있음을, 또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균열을 일으키는 방해가 될 수 있음을 깨닫지못함으로써 겪는 곤란함은 맨 마지막 장면에서 우스꽝스럽게 재현된다. 의도된 일탈, 그러나 되찾기는 쉽지않은 일상의 균형 그리고 그 균형을 유지하기위해 요구되는 삶 속의 긴장에 대해서 키아로스타미는 늘 그래왔듯이 현자처럼 한편의 작은 우화를 보여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