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관영, 허관걸 두 동생이 모두 출연하지않는 허관문의 첫 연출작이자 두번째 80년대 연출작인 teppanyaki (철판소)는 그 제목과는 크게 상관없는 줄거리를 가지고있다. 그동안 그의 영화들이 특정 직업세계를 배경으로 개별 에피소드의 병렬적 모음이었던 반면 이 영화는 철판요리사인 주인공 허관문 개인의 직업과는 연관없는 '사적 모험'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허관걸의 노래로 시작하는 오프닝만 없는게 아니라 그동안 견지해온 허씨 형제 영화의 서사적 전통과도 일정부분 단절하고있는 것이다.

허관문이 처음 자신의 두 동생을 데리고 <귀마쌍성> (1974)를 만들었을때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지금처럼 번영하는 아시아의 금융허브 이전의 홍콩, 그러니까 대륙으로부터의 피난민 및 이주민과 영국인 그리고 그외 온갖 외지인이 끝없이 몰려들던 대륙끝에 위치한 자그마한 영국식민 도시에서 먹고살기위해 악다구니를 벌여야하는 노동계층들의 팍팍한 삶을 코미디로 위무하겠다는 목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본토로부터 구분되는 광동어 영화의 독자성을 구현하겠다는 것일테다)는 그래서 당시 홍콩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돈과(물론 지금도 마찬가지. 두기봉이 <탈명금>을 괜히 만든건 아니다.) 또 하나 당시 홍콩인들에게 익숙한 소재였던 도박을 결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귀마쌍성>의 히트 이후 계속된 삼형제의 합작은 그렇게 '서민'을 위로하는 포복절도의 코미디라는 목표를 단 한번도 놓지않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허관영과 허관걸이 모두 빠져버린 이 영화에서 그리고 전성기였던 70년대를 보낸 후 80년대에 허관문은 비로소 처음으로 철저하게 한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있으니 <철판소>를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다름 아닌 중년의 위기 바로 그것이다.

제법 유능한 철판요리사이기는하나 무서운 장인이 소유한 식당에서 그를 사장으로 모시고 집에서는 거기에 더해 장인만큼이나 악독한 그의 딸이자 부인 곁에서 한시도 편치않은 허관문은 식당에 찾아온 손님이자 연예인인 엽청문에게 몰래 연정을 품는다. 그리고 그 이후는 장인과 부인 몰래 어떻게든 외도에 성공하려 애쓰는 허관문식 코미디의 연속이다. 당시로선 동시대 영화였을 인디아나 존스 패러디를 보면 허관문의 코미디 감각이란 것이 얼마나 기민하고 또 영리한지를 다시금 확인하게된다.

결국 그의 외도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위기를 맞는듯하지만 어찌어찌해서 상황은 좀 이상하게 역전된다. 그가 직업과 가정 모두를 버리고 떠나자 그제야 장인과 부인은 그를 찾고 그는 결국 다시 가정과 일터로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마지막은 좀 괴이하다. 술에 취한채 집에 돌아온 그의 앞에서 장인과 부인은 싹싹 빌고 그렇게 허관문은 자신의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드디어 승인받게된다. 뭔가 갈등이 끝을 맺긴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봉합된 균열. 과연 그의 가부장으로서의 앞날은 순탄할 것인가. 누구도 그렇다고 말하지못할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해오던 이야기의 틀, 즉 영리하고 잇속셈도 빠르지만 알고보면 허당인 허관문, 그와는 반대로 멍청하고 덜떨어진 허관영, 잘생기고 인기도 많고 무술까지 잘하는 허관걸 이렇게 삼형제가 좌충우돌하며 어떤 주어진 임무를 완수한다는 식의 허씨 형제 코미디는 여기서 중년의 위기에 봉착한 한 남자의 딱한 사정을 늘어놓는 것으로 바뀐다. 이건 허관문 본인의 개인적 경험의 반영일까? 홍콩 영화계가 본격적으로 홍콩 밖에서 주목을 받기시작한 80년대에 정작 허관문의 영화는 이렇게 낯설게 시작한다. 70년대 작업들에서만큼 크게 웃기는 대목도 적고 매너리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그 때, 70년대 그의 영화에서 넘쳐나던 긍정적 기운과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그렇게 80년대 홍콩 영화계의 융성과 반비례하는 허관문 영화의 퇴조의 기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로부터 몇년 후 홍콩 영화계는 주성치라는 새로운 희극지왕을 얻게되나니 왕위계승이 얼마 남지않은 시점의 징후로서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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