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최고권력자의 회고에서 대중이 기대하는건 좀 심하게말해서 공개처형(거기에 살짝 덧붙여진 분노의 배설과 감정의 정화)과 비슷한게 아닐까싶다. 대한민국에는 역사적 평가를 포함해서 '객관적으로' 봤을때 실패했다고 동의되고 간주되는 전직 최고권력자가 사실상 없고 당연히 실패한 권력자의 회고도 없어서 경험에 근거해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미루어 짐작해보자면 아직껏 버리지못한 권력을 향한 집착과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았던 시절에 대한 흐뭇한 기억 그리고 사과를 가장한 자기 변명을 보면서 괜히 사서 열받고 싶은 사람은 많지않을 것이다. 애초부터 대중은 그의 발언을 통해 숨겨졌던 모종의 역사적 진실을 기대하기보다는 모든 발언을 의심하고 부정하면서 (인격적 모독을 포함하여)실컷 욕을 퍼붓고 그리고 종내는 그래도 사과(비슷한 그 무엇이라도)를 하지않을까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개처형과 회고가 결정적으로 다른건 더 많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후자의 경우 그것은 철저히 본인의 자발적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는 점이다. 인터뷰이에겐 최소한의 자기 방어가 허용되고 본인의 역량에 의해 이는 얼마든지 반전의 기회로까지 삼을 수 있다는거다. 물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어떻게든 표면 아래 감춰진 사실의 한조각이라도 캐내려는 인터뷰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추기/드러내기의 사이에서 교묘한 말장난에다가 물한바가지도 부어가며 '고급'스런 물타기 기술을 구사하는 인터뷰이의 구렁이 담넘는 모습은 어쨌건 꽤 흥미로운데 여기에 출판물과 달리 영상 인터뷰의 경우 매체의 속성까지 이 모든 요소들에 중첩되다보면 진실보다는 한 개인, 정확히는 앞뒤맥락은 저멀리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하는 표정과 속도,억양등 어조의 변화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관찰자의 복잡한 심경까지 기록되어 엄밀한 사료적 가치보다는 마치 한 사물에 대한 임상적 관찰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백악관을 떠나는 리차드 닉슨의 얼굴을 TV로 지켜보던 영국 출신의 방송인 데이빗 프로스트의 머리 위로 스쳐간 것도 이런 종류였으리라. 당시 대중이 듣고싶었던 것은 닉슨의 재임시기 업적에 관한 사료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아니기때문이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목매여있는 토크쇼 호스트가 원한건 무엇보다 닉슨을 자신의 앞에 마주앉혀놓겠다는 것, 다시말해 흥행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인 것이다.

그와 같이 일해온 연출자 존이 말하듯 프로스트는 정치에 관심은 커녕 투표 한번해보지않은 영국 출신의 토크쇼 진행자다. 한마디로 그는 TV대담프로 진행자로서 요구되는 고결하고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불편부당한 지식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TV광대, 즉 손석희보다는 강호동에 가까운 인물이다. 또한 그는 야심많은 몽상가이기도한데 충동적으로 야심차게 닉슨과의 인터뷰를 기획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이를 방송하겠다는 방송국도, 광고를 붙이겠다는 회사도 없는등 프로젝트의 구체화 과정은 현실과의 격차를 뚜렷이 드러내고 그때문에 급기야는 광고주를 직접 찾아가는 영업사원 노릇까지하면서도 팀원들 앞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않으려는 프로스트의 모습은 저돌적이면서도 야심찬 도전자의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방어전을 앞둔 챔피언인 전직대통령이 있다. 스캔들 이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않은 채 은둔하며 은근히 정계로의 복귀를 갈망하고있는 닉슨은 적지않은 출연료와 미국인도 아니고 엄밀한 의미의 저널리스트가 아니라는 점 등 몇가지 이유로 프로스트와의 인터뷰에 응하게되고 노회한 정치인의 연륜을 십분살려 미소 속에 칼을 숨긴채 잔뜩 벼르고있는 프로스트와 이하 제작진의 공격을 능숙하게 받아친다.
 
이렇게 챔피언과 도전자라는 대결구도로 놓고보면 이 영화는 '정치 영화'라기보다는 누구보다 자기 확신이 강한 두 에고이스트, 즉 머리가 크고 쉴새 없이 땀을 흘리는 못생기고 나이든, 게다가 치명적인 스캔들로 낙마한 전직 정치인과 젊고 잘생기고 유머러스한 방송인의 대결로 맞춰진다.(세대간 대결양상의 구도도 슬쩍 강조된다.) 하지만 두사람은 적수라기엔 은근히 유사점을 공유하는데 전세계를 호령하는 최고권력의 자리에서 치욕적으로 쫓겨난 전직 대통령 그리고 불가능해보이는 프로젝트에 올인하느라 서서히 자기명성에 흠집을 겪고있는 프로스트 모두 현재 패배중이라는 공통점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간의 인터뷰는 별안간 두 남자의 패자부활전의 무대로 거듭나는데 이는 갑자기 한밤 중에 프로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뜬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닉슨의 모습에서 분명해진다.

여러모로 2009년의 대한민국을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칼과 방패에 비견되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의 기술(인터뷰어가 어떠한 질문을 던져도 자신이 이미 준비했고 '알고있(다고믿는)으며' 하고싶은 말만 자동응답기처럼 반복하는 한국의 어떤 인터뷰이들과의 비교를 도저히 피할 수 없다.)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서서히 닉슨을 코너에 몰아 원하던 대답을 이끌어내는 프로스트를 보면서 환경과 기회가 주어지지않아서 그렇지 이런 인터뷰어가 우리에게도 아예 없지는않을듯해서 부럽고 동시에 아쉬웠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방송은 결코 학술이 아니라는 점. 지극히 한정되어있으며 동시에 매우 불연속적인 시간 안에서 무한정한 편집이 가능한 방송인터뷰의 매체로서의 속성은 어쩌면 애초에 팩트는 보여줄지언정 진실을 드러내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평소의 회의가 영화를 보는동안 내내 고민을 하게했다. 카메라 안에 사실이 기록되는 것과 그것이 카메라 바깥 세상으로 전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고 카메라 안에 기록되는 그 무엇마저 수많은 권력의 밀고당기기가 개입된 결과물이라면 과연 거대한 껍데기를 벗기고벗겨낸 끝에 드러난(혹은 드러날 수도 있는) 한줌의 진실은 애초부터 허풍선이였을 수도 있기때문이다. 뭔가가 있긴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단적으로 말해 자신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린 닉슨의 마지막 발언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파를 타느냐 타지않느냐는 또 다른 문제일텐데 이 경우엔 그 결과가 전자였다는 것이고, 내 의문은 과연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 것이냐는 것이다. 그가 비록 현재 권력을 갖고있지않은 전직대통령이라 할지라도.(그럼 이제 여기서 다시 각자가 처한 상황의 형식과 질을 논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일테지만 이건 내가 말할 수 없는 능력바깥의 부분이니 미뤄둔다.)

이는 이 영화의 존재 자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객관적인 증거도 없이 전쟁을 개시한 부분에 대한 프로스트의 추궁을 보고있노라면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의 워터게이트 이후의 어느 후일담을 끄집어낸 피터 모건은 그렇다쳐도 이를 기어이 지금 시점에 영화화해낸 미국인 론 하워드가 노리고있었던 바가 뭔지 눈치채기는 그닥 어렵지않다. 아마도 누군가는 뜨끔했을테고 또다른 누군가들은 충분히 그래야함에도 너무 둔감한지라 그렇지않았을게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내게 영화 속 내용과 이 영화의 존재 자체까지 포함해 여러모로 '열폭'하게 만들었다. 연기? 말이 필요없다. 직접 보면 안다.(이미 피터 모건의 각본에 프랭크 란젤라와 마이클 쉰이 그대로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했었으니 연기에 관해서는 사전검증을 마친 셈.) 다른 배우들 중에는 오랜만에 올리버 플랫을 봤고 샘 록웰은 나름의 이미지 변신이 꽤 그럴싸했으며 매튜 맥파든은 보는내내 더못 멀로니를 떠올리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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