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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가 길의 왕이라면 짐 자무쉬는 길 위의 구경꾼 정도가 되려나. 그에겐 길위에 있으면서도 늘 한발짝 떨어져서 눈앞의 풍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농담이나 늘어놓는 수다쟁이같은 면모가 있다. 장편데뷔작 <천국보다 낯선>부터 <다운 바이 로>, <미스테리 트레인>, <지상의 밤>, <데드맨> 모두 로드무비다.

 <다운바이로>는 처음엔 도대체 정체를 모르겠는 코미디로 시작해서 마지막엔 넉넉하고 유쾌한 로드무비로 끝난다. 미국남부 루이지애나의 풍경을 보여주기위해서 누구나 몇십번씩은 보고 들었을법한 이야기를 '이건 당신들 모두 알고있는 바로 그거라구. 별 거 없어'하는 식으로 전개한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온 남자들이 탈옥을 해서 다들 붙잡히지않고 흩어진다는 이야기. 하지만 어처구니없이 누명을 쓰고 황당하게 탈옥을 해서 한갓진 오후 햇살 아래 느긋하게 도망치는 이야기라면 이건 뭔가 확실히 다르다. 멜빌이라면 말한마디없이 몇분동안 탈옥장면을 공들여보여줄 것이고 마이클 베이라면 도망가는 중에 차 열대정도는 거뜬히 부숴버리는 카체이스씬 하나쯤 기가막히게 뽑아냈을테지만 자무쉬의 관심은 전혀 그런데 있지않다. 탈옥과정은 통째로 건너뛴채 그냥 웃으면서 하수구를 달려나오는 세사람의 표정만 잡아낸 (탈옥의 '흔적'만 있는) 이상한 탈옥씬을 지나면 도피장면에서는 아직 도시문명으로부터 침해받지않은 멋드러진 미국남부의 자연풍광을 뽑아낸다. 배를타고 천천히 늪을 헤어나와 토끼를 구워먹고 우연히 사람좋은 이태리 여인네를 만나(물론 이 역할은 니콜레타 브라쉬가 맡았다.) 밥도 얻어먹고 술도 나눠마시고 잠도 자고 옷도 바꿔입고 그렇게 헤어진다. 심지어 세명 중 이태리인 밥은 그녀와 함께 그곳에 정착하기까지하고있으니 도저히 그들에겐 다시 붙잡힐거라는 두려움따위는 보이지않는다. 그냥 먹고마시고 수다떨고 춤추고 노래할뿐. 여기엔 미국남부의 습하고 더운날씨를 영화내내 그대로 끌어오려는 자무쉬의 시도가 숨어있다. 내러티브가 아닌 배경의 공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겠다는 야심말이다. 등장인물은 딱히 착하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으며 뭐하나 작정하고 해보려는 의지같은건 눈에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냥 게으른 루저들이지만 그들의 대사하나 행동하나에는 서로에 대한 무심한 애정과 썰렁하고 나른한 유머가 있고 이같은 대책없는 낙천성이 관객을 끝까지 흐뭇하게만든다. 

 한가지 꼭 짚고갈점은 역시 로비 뮐러의 카메라. 그는 여기서 에드워드 호퍼 그림에서나 나올법한 각도 즉, 좌우 45도 에서 찍은 비스듬한 화면을 고집하므로써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이게하는 그림을 뽑아낸다. 붙어있는 두 감방을 계속 좌우로 비스듬히 왔다갔다하며 소개하는 감옥장면 그리고 배를 타고 늪을 건널때 보여주는 트랙킹씬은 단연코 이 영화를 로드무비라면 응당 갖추어야할 길 위의 그림중에서도 최고로 손꼽게 만든다.

 덧. 로베르토 베니니의 최근작 <호랑이와 눈>에 톰 웨이츠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오랜만에 두사람을 같은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 <다운바이로>를 찾아 보게된 것도 역시 웨이츠 영감과 <rain dogs>앨범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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