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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ebs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다. 보고있자니 우리 영화 <삼포가는 길>이 떠올랐는데 원작 소설이 1973년에 발표됐으니 거의 동시대에 나온 셈으로 두 작품 모두 실낱처럼 불확실한 희망을 안고 여행길에 오르는 두 남자의 여정을 다루고있다. 모든 로드무비들이 다 애잔하고 쓸쓸하기만한건 아니지만 이 영화는 대개의 로드무비들이 공유하고있는 이 정서에 깊숙이 기대고있다. 먼지바람이 몰아치고 식당에서 밥을 사먹고 기차 화물칸에 몰래 올라타 이동을 하고 허름한 모텔방에서 하룻밤을 뉘이고 가는 곳마다 그곳 주민들과 드잡이를 하는 궁핍하고 피곤한 여행길은 두번세번봐도 보고있으면 좀 서글퍼진다.

기약없는, 그래서 본인들만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않는 세차사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피츠버그로 향하는 이 여정에서 두남자는 번번이 타지에서 타인들과 어울리지못하고 사고를 일으킨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오넬과 맥스가 찾아낸 대응방법은 바로 자기자신을 우습게 만들어 남들을 웃기는 것. 라이오넬이 가르쳐준 이 방법의 효용을 비로소 깨달은 맥스가 보여주는 술집에서의 '스트립 쇼'는 그래서 아프면서도 가장 훈훈한 장면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을 웃겨야하는 코미디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들인 법. 라이오넬이 그렇게 보고싶어했던 아들이 이미 죽었다는 (가짜)비보를 듣고 그 사실을 숨긴채 전화박스에서 뛰어나와 맥스 앞에서 기쁜 척 하고 뒤이어 분수대에서 결국 실신하고마는 장면은 그 생생함에 관객들도 수직상승하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영화의 최절정이다.

내게 이 영화는 무엇보다 알 파치노의 재발견으로 기억될 것 같다. 메소드 연기의 표본이자 전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아니 카리스마 그 자체인 것 같은 이 배우가 여기서는 자신보다 열살많은 진 해크먼과 공연하면서 나이 어린 막내동생같은 이미지로 쉴 새없이 다른 사람들을 웃기려고하는 쾌활한 캐릭터를 연기하고있다. 마이클 콜레오네부터 <오션스 써틴>의 윌리 뱅크에 이르기까지 냉철한 권력자가 그의 한쪽 얼굴이라면 그 반대편에서 이 영화나 <뜨거운 날의 오후> 그리고 <프랭키와 자니>같은 생활인의 냄새가 물씬한 소시민적 얼굴이 짓는 표정이야말로 파치노가 왜 최고의 성격배우인지에 대한 천편일률적 답변들의 빈틈을 메워주고있다. 해크먼 역시 평소 즐겨 해왔던 전문가 역할과 180도 달리 성질머리빼고는 아무것도 가진거없는 전과자 연기를 하고있는데 여전히 터프가이라는 점에서는 그 변화폭이 파치노에 비해 크지는않지만 또한 그래서 여전히 설득력이 크다.

"내가 감옥에 가기전엔 이 동네가 이렇지않았다"는 뻔한 대사를 읊을때, 추위에 떨며 외투깃을 부여잡을때, 왜 자신에게 잘해주느냐는 질문에 "나에게 마지막 성냥을 줬으니까"라고 대답할때, 맥스가 자신이 아닌 라이오넬을 괴롭힌 이와 뒤엉켜 싸울때, 이 영화는 더이상 낯설지가 않다. 풍경이 바뀌고 계속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싸우고 상처받지만 그래도 그나마 이 여정을 버틸 수 있는건 지금 내 곁에 동반자가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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