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크린으로는 처음봤지만 전체적으로는 세번째 본 <암흑가의 세사람>, 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

1.우선 중간에 앉아있던 관객들. 매장면도 아니고 매컷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혼자 계속 웃어대는데 극장에서 예의도 아니거니와 은근히 기분나빠지게하더라만.

2.오승욱 감독에게 묻고싶었던 질문: 도대체 마테이가 집에 들어오는 '고양이 장면'은 뭘까? 영화에서 총 두번 나오는데 그 내용은 완전히 똑같다. 집에 들어와 코트를 의자 위에 던져두고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욕실에 들어가 불을켜고 뜨거운 물을 받는다. 부엌에 들어가 불을 켜고 냉장고문을 열어 고양이 줄 먹이를 꺼낸다. 그다음 고양이들을 불러온다. 이 중 첫번째 장면은 내 느낌상으로 약 2,3여분간 지속되고 두번째에서는 똑같은 과정이 보다 짧게 연출되어있다. 그러나 앞에 말했듯 그 내용은 매번 똑같다. 이 장면은 마테이 반장의 유일한 사생활 장면으로서 이상한건 두번째 장면이 끝나고나면 사실상 약간의 시간적 여유도 없이 바로 마테이가 장물아비로 위장해 상티의 술집에서 코레이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상으로는 최소 하루가 지난 다음이란건데. 선하게 태어나 악인으로 변하고마는 마테이가 악인으로 변하기직전 유예되는 순간일까?

3.또하나 궁금한건 생략되거나 건너뛴 부분. 멜빌은 낚시에도 일가견이 있는걸까? 리코의 집에서 자고있던 여자는 분명 코리가 전에 사귀었던 여자가 틀림없다. 도대체 코리는 무슨일을 꾸몄다가 감옥에 들어간걸까. 물론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코리와 리코가 같이 한 일이 잘못되어 코리만 붙잡혔는데 리코의 이름을 불지않았으며 그래서 5년을 썩었고 그동안 리코는 코리의 여자를 가로챘다는. 그다음 궁금증은 역시 얀센과 마테이. 얀센은 마테이와 동기인 경찰 출신, 경찰직에 회의를 느껴서(그의 마지막 대사 '경찰은 역시 멍청하군')그만두고 폐인의 삶을 살고있다. 그리고 내사과 경찰은 마테이가 전형적인 코르시카인처럼 보이지않는다면서 그의 기록을 읽어본다. 하지만 관객은 전혀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이렇게 이 영화에는 관객의 상상으로 짐작해야하는 부분들이 꽤 있다.

4.이상하게 세사람 사이에서는 일말의 배신의 기운같은건 전혀 배제된채 서로가 서로를 굳게 신뢰한다. 그들을 배신하는건 그 외부의 인물들. 이 영화 그러고보니 정말 인물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5.결국 세번째 보게되자 이번엔 마테이를 중심으로 봤다. 처음 기차장면에서보면 그는 투철한 사명감보다는 지치고 힘들어하는 직업인의 모습이 보인다. 선하게 태어나 악인으로 변하는 예를 보여주는건 결국 이 영화에서 상티와 마테이뿐인데 마테이는 처음엔 용의자는 범인으로 생각하지않으며 자신은 이미 얼굴이 팔렸기때문에 직접 위장은 하지않고 다른 사람에게 시킨다고말한다. 그러나 그는 보젤을 범인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뿐만아니라 결말부엔 장물아비로 위장해서 코리 일행을 죽음으로 이끄는 치사한 수를 쓴다.

6.오승욱 감독은 코리와 보젤이 처음 대면하는 '담배갑'장면이 무척 재미있고 뛰어난 연출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한손엔 총 다른손엔 담배 그다음 라이터를 던짐으로써 보젤은 총을 집어넣고 땅에 떨어진 라이터를 줍게되면서 그제야 두사람이 담배를 친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걸 좀 다르게봤다. 그 장면에서 보젤은 담배갑을 받기전 '내가 트렁크에 있다는걸 어떻게 알았지? 내가 올라타는걸 지켜봤나?"라고 묻는다. 그리고 코리는 "물론. 그렇지않았으면 숨쉬라고 나오지도않게했지"라고 대답한다. 바로 이 장면이 힌트다. 그리고 다시 이 장면의 앞에 있었던 검문 장면을 다시 되돌아보라. 코리는 트렁크구멍에 열쇠가 들어가지않자 대번에 뭔가 잘못됐음을, 정확히는 그 안에 누가 타고있음을 직감한다. 그 다음이 바로 두사람이 대면하는 장면이다. 게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코리는 보젤이 올라타는걸 봤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도록 편집이 되어있다. 관객이 그렇게 생각하기란 쉽지않은 것이다. 우기면 뭐라할 수 없지만. 즉 이런 것이다. 코리는 검문과정에서 차안에 누군가 타고있다는 걸 알았지만 자신이 보젤의 생명의 은인임을 강조하고 아울러 관계의 주도권을 쥐기위해 자신이 이미 휴게소에서부터 보젤이 올라타는걸 봤다고 거짓말한다. 그 다음이 바로 담배갑 장면이다. 처음보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있는 자를 좋게 생각할 사람은 없다. 코리는 담배갑을 던지고 그 다음에 라이터를 던지면서 보젤의 손에서 총을 놓게함과 동시에 땅에 떨어진 라이터를 줍게함으로써 다시한번 관계의 주도권을 재확인한다. 다시말해 코리가 보젤에게 내가 너의 생명의 은인이니까 넌 그걸 잊지말라는 쿨한 경고쯤 될까. 물론 결과만 놓고보면 친해지는 장면이지만 그건 결과일뿐이고 그 과정의 경로를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다.

7.오승욱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한 얘기들을 짧게 요약하면 요즘 영화같았으면 아예 보여주지도않았을 장면들을 무던히 길게 보여주는건 일종의 종교적 의식처럼 생각했던것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은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으로서 영화 속 인물을 죽일 때 갖춰야할 윤리적 입장이나 판단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있는 중이다. 멜빌의 인물들은 기술적 장인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들이 맡은 임무 자체에 대해서는 철저한 프로페셔널들이지만 그 이외의 영역에서는 미숙한 나머지 결국 실패해버리고만다.

8.프로그래머도 말했지만 나역시 궁금했던 대사.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나타난 보젤이 코리에게 도망가라고한다음 마테이와 나누는 그 대사. 마테이가 묻는다. "왜 내가 누군지 말하지않았지?" 보젤의 대답 "그랬다면 도망가지않았을테니까?" 오승욱 감독은 마테이의 정체를 말했다면 코리가 그 자리에서 마테이를 쏴죽였을거기때문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보젤은 마테이가 죽지않기를 바란단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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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독립투사, 의사, 열사. 이런 단어들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대부분은 대개 한움쿰의 민족주의와 넉넉한 회고일 것이다. "엄혹한 시절이었으나 그때 목숨바쳐 항거한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는..." 그들에게 드리워진 영웅담의 휘장을 걷어내지않을때 우리 손에 남는건 또다른 전설과 신화 그리고 위인전이다. 이러한 일말의 영웅만들기도, 추억으로 회고하는 노스탤지어적 시선도 모두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자 군단>이 서있는 지점은 독특하다. 2차대전당시 실제 레지스탕스였던 멜빌은 폴 버호벤의 <오렌지 병사들>처럼 스릴만점의 무용담보다는 그시절 점령당한 국가를 위해, 정의를 위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지않았고 또 무엇을 해야했으며 하지말았어야했는지에대한 나름의 뒤늦은 후회를 하고있다.

다시말해 영화의 초반부와 맨마지막에 자리한 두번의 배신자처형이 얼마나 다른 의미를 갖는지를 비교해보는것이 이 두시간반짜리 영화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게 보는 방법인 셈이다. 첫번째 처형장면. 안전가옥에서 조직의 젊은 배신자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필립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다른 동료들, 특히 다른 젊은 신참 르 마스크는 심히 주저하지만 필립에게 배신자 처형은 재고해볼 가치가 전혀 없다. 반면 영화의 결말부에서 조직의 핵심인 마틸드를 죽여야하는 대원들은 모두 갈등한다. 조직에 대한 그동안의 그녀의 헌신을 모두 알고있는 우리가 어떻게 그녀를 죽일 수 있겠는냐는 의견과 그래도 조직의 안전과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은 어떤 선택도 쉽게 하지못하게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결국 내내 이 질문을 하고있다. 과연 그때 우리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인가? 과연 우리는 그시절 정말 현명했을까? 조직의 안전과 조국 해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위해 피도 눈물도 없어질수록 그들은 점점 더 목표완수와는 멀어진다. 형제를 눈앞에두고도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고 생각지도않은 곳에서 체포되고 배신자를 처형하지만 조직은 언제나 불안하기만하다.

살다보면 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의 순간. 그 순간에 과연 우리는 정말 옳았을까? 우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 진실했을까? 목표를 위해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 밖에 없을 때 우리는 과연 우리가 싸우고있는 적과 얼마나 다를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영화를 결코 반전(反戰)영화로 오해하면 안된다. 오히려 이 영화는 지나치게 정직하고 꾸밈없고 강직해서 더 안타깝다. 그 순간을 내려야만하게만든 시대가,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 사람들 모두.

1. 장 프랑소아를 연기했던 미남 배우이자 뱅상 카셀의 아버지이고 모니카 벨루치의 시아버지인 장 피에르 카셀이 얼마전 세상을 떠났단다.

2. 어디선가뽑은 작년 미국국내개봉영화 탑텐 목록에 이 영화가 2위에 오르면서 다시 화제에 올랐다. 뉴욕 단관상영이었다고 들은 거 같은데 나온지 30년도 더 된 영화가 미국에서 소개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으니 이것도 참. 그리고 올해 서울아트시네마에서도 완전판 상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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