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인 두 형제의 성격을 분명하게 대비해보여준 다음 본 줄거리를 시작한다. 비서와 운전기사를 둔걸보니 뭔지몰라도 크게 성공한듯 보이는 동생 다케루, 알고보니 사진작가인 그는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위해 고향으로 떠나는 길이다. 그런데 그는 검은색 상복을 입지않고 그냥 손에 들고 나간다. 도착한 다음 갈아입겠다는거다. 고향에 도착한 다케루는 간만에 얼굴을 마주한 아버지와 만나자마자 싸운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가듯 고향을 떠나버린 아들을 원망하는 아버지와 자신을 고향에 묶어두려는 아버지에게 반발하는 다케루. 전형적인 가부장 아니랄까봐 아버지는 대번에 자기 앞에 놓인 상을 뒤집어 엎어버린다. 바로 그때 형 미노루는 허겁지겁 엎어진 상을 치우고 마룻바닥에 쏟아진 술을 걸레로 닦는다. 마치 자기의 잘못인냥 열심히 바닥을 닦는 미노루, 그런데 무릎을 꿇은 그의 발뒷꿈치 위로 아직 상 위에 엎어져있는 술병을 타고 술이 한방울씩 떨어지고있다. 자신은 돌보지않고 가족을 먼저 챙기는 남자.

 다케루는 사진을 찍는 사람, 따라서 그가 사물을 보기위해서는 사물과 눈 앞에 렌즈가 놓여야하고 그것이 그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늘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쉽게 도망갈 수 있는. 반면 미노루는 좀체 세상 속으로 섞이지못하는 남자다. 여기서 흥미로운건 이 영화에는 결국 단 한명의 여자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리 위에서 죽어버리는 치에코는 그저 사건을 끌어가기위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남은 두 남자의 가면을 벗겨내고 그들을 링 안으로 불러내는 심판에 가깝다. 남는건 각기 다른 두형제, 네 남자다. 처음 영화에서 가족을 한자리에 불러모으는건 한 여자의 죽음, 즉 어머니의 장례식이다. 초반부터 한 여자의 부재를 알리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결국 또 한 명의 여자를 죽이고나서야 본 궤도에 오른다. 이 집안 남자들에게 여자는 치명적 함정이란말인가? 하쓰미 계곡에서 다케루는 분명히 형과 치에코가 엎치락뒤치락 하던 다리 위의 상황을 온전히 목격하고도 몰랐던 것처럼 형에게 행동한다. 치에코가 죽기를 바랬던 것이다. 여기서도 그는 보고도 못본척 알아도 모른척, 늘 그랬듯 다시한번 사물과 진실 앞에서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유지한다.(그의 목에 라이카가 걸려있었음을 상기하라)그녀의 사망에 대한 진실 여부를 잠시 미뤄둔다면 어쨌든 그렇게 또 한명의 여자가 이 집안으로부터 제거(배제)되자 진심이 없는 치사한 수컷들에게 위기가 닥친다.

이제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남자들의 세계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기시작한다. 다케루 형제와 이사무 형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한데 형과 아우 사이의 위치는 두 형제 사이에서 묘하게 역전되지만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유사하다. 다케루 형제에서는 동생보다 못난 미노루가 고향에 남지만 이사무 형제의 경우엔 공부를 잘했던 형 오사무가 도쿄로 떠나 변호사가 되고 동생인 이사무가 고향에 남아 주유소를 운영한다. 그리고 고향에 남은 자들은 미약하게나마 여성의 ‘지위’를 ‘역할’한다. 그래서 그들은 밥을 하고 빨래를 넌다.

하지만 이 남자들은 한번도 진심인 적 없고 늘 가식적인데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러하듯 괜히 화를 내고 저혼자 분에 겨웠던지 슬쩍 도망간다. 면회 도중 드디어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며 분노하는 미노루와 그런 형으로부터 자신의 치부와 죄의식이 낱낱이 밝혀지자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태도를 뒤집는 다케루도 마찬가지. 따라서 그건 다케루가 기억을 제대로 하고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숨기고싶었던 자신의 내면이 까발려졌을때 튀어나온 반사적 대응일뿐.

이토록 수컷들의 나약함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면서 바늘하나 들어갈 구석없는 치밀한 심리 대결을 보여주던 감독은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도 이 수컷들에게 옮았는지 괜한 사족에 가까운 에필로그를 붙여놨는데 다케루가 집에서 형제의 어린 시절이 담긴 옛날 8미리 테입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끝났다면 차갑긴해도 훨씬 감독의 애초 의도에 가까운 결말이 되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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